제 7장
예수님의 서기
1 (p.85)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몇 해 전부터
루이사 피카레타는 나자리오 사오로 가에 있는 작은 집에서 조용한 일상을 살았다.
이 집은 그녀의 부모가 근검절약하며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에게 얻어 준 셋집이었다.
그녀는 남의 눈에 거의 띄지 않게 생각과 말과 행위를 성령의 인도에 맡기면서
남의 눈에 거의 띄지 않는 숨은 생활을 하였고,
때때로 예수님께 자신의 “하찮은 것들” 을 예물로 봉헌하였다.
“다정하신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보십시오, 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를뿐더러 아무것도 당신께 드릴 것이 없으니,
하찮은 것들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이 하찮은 것들을,
사실 그대로 모든 것이신 당신께 결합시키면서 영혼들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숨 쉴 때마다 이 숨이 당신께 영혼들을 청합니다.
저의 심장 박동이 끊임없는 외침으로 영혼들을 청합니다.
제 팔의 동작이, 제 안을 순환하는 피가, 제 눈꺼풀의 깜박임이, 제 입술의 움직임이
다 제가 당신께 청하는 영혼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를 당신과 당신의 사랑과 하나 되어 당신뜻 안에서 청합니다.
당신 안에서 언제나 영혼들을 청하는 저의 끊임없는 외침을 모든 사람들이 듣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말씀드리고 그 밖의 다른 말씀도 드리고 있노라니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며
‘딸아, 나하고 친밀한 영혼들의 기도는 내게 얼마나 감미롭고 흐뭇하게 들리는지!
나자렛의 내 숨은 생활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느낌이다!’ 하셨다.
‘나자렛에서의 내 생활은 밖으로 드러나는 면이 없었고 사람들과의 어떤 모임도 없었으며
윙윙 울리는 종소리도 없었다.
외부인들의 주의가 전혀 쏠리지 않는 고독한 생활이었으므로 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일어나서 계속 영혼들을 청하고 있었다.
숨 한 번, 심장 박동 하나도 영혼들을 청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와 같이 하는 동안 나의 소리가 하늘에 윙윙 울리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끌어당겨
내게 영혼들을 주시게 했던 것이다.
같은 소리가 피조물의 마음들 안에도 ’영혼들!‘ 을 외치면서 윙윙 우렁차게 울리고 있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와 땅에 계신 내 어머니만이 아시는 나의 숨은 생활 동안,
그러니 내가 놀랍고도 놀라운 일을 얼마나 많이 행했겠느냐!
숨어 지내며 나와 친밀한 관계 속에 있는 영혼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 영혼이 기도할 때면
비록 그 기도가 땅에서는 들리지 않더라도 하늘에서는 종소리처럼 윙윙 울려,
하늘의 모든 주민들을 자기와 하나 되도록 부르고 자비가 땅에 내려오게 할 정도가 된다.
그것이 피조물의 귀가 아니라 마음에 울리면서 그들을 회개시키게 하려는 것이다.”
2 (p.87)
루이사는 새 고해 사제 젠나로 데 젠나로 신부에 대한 순명으로
현행 중인 초자연적 체험들을 기록하였다.
그녀는 하느님의 뜻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과 함께 시공을 통해 두루 다니면서,
어떤 순간에는 코라토에서 자살하려는 사람을 위해 전구하고,
다른 순간에는 중국의 의화단 사건으로 대량 학살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고,
또 다른 순간에는 이탈리아의 이혼 자유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기도하였다.
다음은 1902년 1월 12일의 기록이다.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오늘 아침에는 나를 몸 바깥으로 나오게 하시더니
심각한 사회악들과 당신의 격심한 고통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당신을 그토록 괴롭히는 고통의 상당 부분을 내 안에 쏟아 부어 주셨다.
그 뒤에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인간의 무분별이 인간을 얼마나 멀리까지 끌고 갔는지 보아라.
그들은 그들 자신과 자기네 사회의 안녕을 거스르는
가증스러운 법률을 제정하려고 들 지경이 되었다.
내 딸아, 이런 이유로 내가 너를 다시 불러 고통을 겪게 하고 있다.
나와 함께 고통을 하느님의 정의에 봉헌함으로써
이 이혼법과 투쟁하는 사람들이
승리를 거들 수 있는 빛과 효과적인 은총을 얻도록 하려는 것이다.
딸아, 나는 전쟁과 혁명으로 새로운 순교자들의 피가 세상을 적시는 것을 너그럽게 보아준다.
이는 나와 교회에 영예를 안겨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야만적인 법은 교회에 대한 모욕이니, 내게는 가증스럽고 참을 수 없는 것이다’ “
그로부터 6주 후 루이사는 주님께 물었다.
“주님, 사람들이 논의 중인 이 이혼법은 틀림없이 통과되지 않겠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 ‘지금은 그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오 년이나 십 년 이나 이 십년이 지나면...이 법이 통과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마귀들과 이 법을 원한 자들의 뜻을 사슬로 묶어
그 시도를 꺽어버리는 기적을 행했으니,
이미 승리를 거두었다고 확신들을 하고 있었던 그들의 격노가 어떠하겠느냐?
끓어오르는 분통으로 말미암아,
할 수만 있다면 이 일에 관계되는 모든 이를 죽이고
어디든지 쑥밭으로 만들면서 앙갚음을 할 것이다.
그러니,
이 분통을 주저앉히고 이 황폐를 막기 위해서 네가 직접 그들의 격분과 맞서지 않겠느냐?
‘주님께서 저와 함께 계신다면 맞서겠습니다.’ 하고 나는 응답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성이 나서 미친 듯이 길길이 뛰고 있는 마귀들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이리 떼처럼 덤벼들었다.
사정없이 마구 때리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내 살을 뜯어내는 자들도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를 죽이겠는데, 그럴 힘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토록 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나는 두렵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었다.”
3 (p.89)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때에 그녀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공격이 여러 나라에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를 보게 하셨다.
“딸아, 사회주의자들이 교회를 겨냥해서 음모를 꾸몄다.
프랑스에서는 공공연하게, 이탈리아에서는 보다 은밀한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
그러기에 나의 정의는… 징벌을 내리려고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징벌을 보여 주셨는데,
인류가 하느님을 배척함으로써 스스로 위에 끌어당긴 징벌이었다.
1906년 4월 17일 루이사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오늘 아침에는 너무 무서워서 혼났다.
나 자신의 몸 바깥에 나가 있었는데 보이는 것이라고는 다만 불길뿐이었고,
땅이 갈라져서 도시들과 산들 및 사람들을 집어삼킬 것 같았던 것이다.
주님께서 땅을 멸하시려는 듯하였다.
하지만 특히, 서로 다른 세 지역을 없애실 모양이었다.
그 곳들은 각각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 중 하나는 이탈리아에 있었다.
세 개의 화산 분화구로 보이기도 했는데,
어떤 것은 불을 뿜어내며 도시들을 덮치고
어떤 곳에는 땅이 갈라지며 끔찍한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사태의 원인은 오직 죄이건만 인간은 죄 짓기를 그만두려고 하지 않는다.
마치, 인간이 하느님을 대적해 왔으니
하느님께서 물과 불과 바람과 다른 많은 자연적 요소들을 무장시켜 인간과 맞서실 것 같다.
이 자연력들로 하여 수많은 인간이 죽어 갈 것이다...”
4 (p.90)
루이사는 파업과 노동 쟁의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 부자들과 빈자들 사이에 들어 화해를 이루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 ‘딸아… 순종이 없는 질서란 없다.
부자들이 하느님에게서 빠져나갔으므로 사람들이 하느님께 반항하고
부자들에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 반항하는 것이다.
내 의노의 그릇이 가득 찼으니, 내가 더는 그것을 자제할 길이 없다...’
… 내가 보니 사람들이 부자들에게 저항하며 투쟁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인자하신 예수님께서 심히 괴로워하시며 탄식하시는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가난한 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이다. 부자들에게는 신물이 났다.
그들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거슬리게 굴었으니.
무도회며 연극이며 쓸데없는 여행이며 허영심을 채우는 것에,
심지어 죄를 짓는 것에 너무나 많은 돈을 탕진하였다!
한데 가난한 이들은 어떠했느냐?
허기를 채울 만한 빵조차 구할 수 없었으니,
잔뜩 풀이 죽은 채 지치고 가슴 아픈 상태로 있었다.
부자들이 불필요한 것에 소비하는 것만이라도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다면
이들은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자들은
이들을 그들에게 속한 가족이 아닌 것처럼 버려두고 심지어 멸시마저 해 왔다.
일신의 안락이며 오락은 자기네 신분에 어울리는 것인 양 독점 하면서
곤궁에 처해 있는 가난한 이들은 곤궁이 그들 신분에 걸맞기나 한 듯 버려두었던 것이다.’ “
5 (p.92)
이 악행들을 보속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루이사에게
당신께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태 안에 잉태되신 순간부터 수난에 이르기까지
숨은 고통들을 함께 나누자고 하시며 이렇게 이르셨다,
“ ‘나는 잉태되면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모든 영혼들을 나와 함께 나 자신의 생명으로 잉태하였고,
또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내가 겪어야 할 고통과 죽음도 잉태하였다.
이처럼 모든 것을,
곧 영혼들과 그들 각자가 치러야 할 고통과 죽음도 내 안에 전부 통합해 넣었으니,
그것은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리기 위해서였다.
’아버지, 피조물을 보시지 말고 오직 저만 보십시오. 제 안에 모든 사람이 보이실 것입니다.
제가 그 모두를 위해 보속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만큼 많은 고통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각 사람을 위해 죽기를 원하십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시기만 한다면 저는 무엇이든지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그토록 많은 죽음과 고통을 주려면 하느님의 능력과 뜻이 필요했고,
내가 그것을 치르게 하기 위해서도 이 능력과 뜻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의 뜻 안에서는 모든 영혼과 모든 것이 현행 중에 있다.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추상적이거나 지향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내가 그들 모두를 나와 하나가 되게 했고
그들이 나와 함께 바로 나의 생명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 실제로 내가 그들 모두를 위해서 죽었고 각자의 고통을 다 겪었던 것이다.
사실 그것은 내 전능의 기적과 내 무한한 뜻의 놀라운 일을 요하는 일이었다.
내 뜻이 없었다면 나의 인성이 모든 영혼들을 찾아내어 다 싸안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토록 자주 죽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작은 인성은 잉태된 순간부터 고통과 죽음을 번갈아 겪기 시작하였다.
모든 영혼들이 끝없는 바다에 잠기듯 내 안에 잠겨,
내 지체들의 지체들, 내 피의 피, 내 심장의 심장을 이루고 있었다.
내 인성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신 내 엄마께서
얼마나 여러 번 나의 고통과 죽음을 느끼시며 나와 함께 죽곤 하셨는지!
내 엄마의 사랑에서 내 사랑의 메아리를 느끼는 것이 내게는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는지!
이는 심오한 신비들이니,
인간의 지성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이 신비들 안에서 길을 잃은 모습이 된다.
그러니 너는 내 뜻 안으로 들어오너라.
와서 잉태의 순간 부터 내가 겪었던 죽음과 고통에 참여하여라.
그래야 내가 지금 하는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어떻게 들어갔는지 설명할 수 없으나 내가 여왕이신 엄마의 태중에 있었고,
여기에서 작디작은 아기 예수님을 뵐 수 있었다.
작디작지만 아기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당신 안에 담고 계셨다.
그분의 심장에서 내 심장 속으로 빛살 하나가 확 들어 왔는데
나를 꿰뚫으며 들어오는 순간 죽음을 주는 듯 했고
그것이 밖으로 나가자 생명이 내게 되돌아왔다.
그 빛살에 닿은 부위마다 너무나 심한 격통이 이는 바람에 온 몸이 부서지는 것 같더니
실제로 죽었고,
다음 순간 같은 닿음을 통해 생명이 돌아오고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당신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려면
연옥 영혼들을 위해 고통을 받으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사랑하는 애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네가 안다면!
너에 대한 사랑에로 나 자신이 강력히 이끌림을 느낀다.
내가 늦게 오는 것 자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이는 나로 하여금
새로운 은총과 천상적인 은사들로 너를 가득 채우게 하는 새로운 동기가 되는 것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네가 깨닫게 되면,
이 나의 사랑에 비해 너의 사랑은 거의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인자하신 예수님, 당신 말씀은 과연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저도 당신을 매우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사랑이 당신 사랑에 비해 거의 눈에 띄지도 않은 것은,
당신의 능력은 무한하지만 저의 능력은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당신께서 주시는 만큼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너무나 사실이기에
당신께 대한 제 사랑을 더 많이 증명해 보이려고 더 많은 고통을 받고자 할 때에
당신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저로서는 그럴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포기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늘 그러하듯이,
저 혼자서는 쓸모없는 자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당신으로 말하자면, 고통 자체도 당신 수중에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방식으로든지 저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고자 하시면
언제나 그렇게 하실 수 있 습니다.
제 사랑이시여, 저에게 그 능력을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가 아는 대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것도 당신께서 제게 주시는 것과 같은 정도로 저도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6 (p.95)
예수님께서는 말도 안 되는 이 말을 더할 수 없이 흐뭇해하시며 듣고 계셨다.
그리고 나를 시험하시려는 듯이 몸 밖으로 나오게 하셔서
흔들리는 불길이 가득한, 깊고 어두운 어떤 장소 가까이로 데려가셨다.
그것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무서운 곳이었다.
‘이것은 연옥이다.’ 하고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이 불길 속에 수많은 영혼들이 밀집해 있다.
너는 이 속으로 들어가서 고통을 받음으로써 내가 택하는 영혼들을 해방시켜 주어라.
나에 대한 사랑으로 그렇게 하여라.’
좀 떨렸지만 나는 즉시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는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무엇이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저와 함께 가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당신께서 저를 떠나신다면
저로 하여금 다시 당신을 찾아 헤매며 많은 눈물을 쏟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간다면 너의 연옥은 어찌 되겠느냐?
나의 현존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들이 기쁨과 만족으로 바뀔 것 아니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저는 혼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 불길 속으로 함께 들어가서 당신은 제 뒤에 계십시오.
그러면 저는 당신을 뵐 수 없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싸인 그 곳으로 들어 갔고
예수님께서는 내 뒤에서 함께 가셨다.
그러나 그분께서 떠나실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는 그분의 손을 당겨 내 어깨에 올려놓고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우리는 드디어 거기에 도착했는데, 그 영혼들이 겪는 고통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 역시 어떤 인간에게도 그것을 표현할 수 없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내가 들어가자 그 불이 저절로 꺼졌고 어둠도 흩어졌다.
많은 영혼들이 연옥에서 나갔고, 다른 영혼들은 위로를 느끼는 것이었다.
우리는 거기에서 15분가량 머문 뒤에 밖으로 나왔다.
예수님께서 몹시 슬퍼하고 계시기에 나는 이렇게 여쭈었다.
‘저의 선이시여, 말씀해 주십시오. 슬퍼하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제 소중한 생명이시여, 혹시 제가 그 고통의 지역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말씀해 주십시오.
저 영혼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시기 때문에 괴로우신 것입니까?
대관절 무엇을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얘야, 내 안에 쓰디쓴 고통이 완전히 가득 찬 느낌이 든다.
어찌나 쓰디 쓴지 더 이상 품고 있을 수가 없으니 이것을 땅 위에 쏟아 부으려고 한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인자하신 제 사랑이시여. 그것을 제 안에 부어 주십시오.’
그러면서 나는 그분의 입에 바싹 다가갔다.
그러자 그분께서 지독히 쓴 물을 쏟아내셨는데,
너무 많아서 내가 다 받아 마실 수가 없었으므로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다 받아 마시지 못하면 아주 유감스럽게도 우리 주님으로 하여금
내가 원치 않으면서도 땅 위에 그것을 쏟아 부으시게 할 것 이기 때문이었다...“
7 (p.98)
침상 생활을 하면서부터 루이사는 동생 안젤라에게 의지하였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는 약간의 보살핌만 받았다.
1907년에 몸져누운 어머니를 예수님께서 곧 하늘로 데려가실 것임을 깨닫게 해 주시자,
루이사는 어머니가 연옥 고통을 받지 않게 해 달라고 끈덕지게 예수님을 졸라 대었다.
“ ‘주님, 당신께서 제 엄마를 데려가시고자 하시니
그 전에 제가 먼저 엄마를 선물로 바쳐 올립니다.
먼저 바치지 않고 당신께서 데려가실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하지만 제 선물을 보시고 당신께서도 보답으로 이 상급을 주시기를 바라오니,
엄마가 마땅히 받아야 할 연옥 고통을 제가 대신 받게 하셔서
연옥을 면해 주시고 바로 천국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제 감미로운 사랑이시여, 저 때문에 그토록 고생하며 많이도 우셨던 엄마가
연옥 고통을 받으시는 모습을 차마 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사랑하는 얘야, 너무 끈질기게 졸라 대지 마라. 너는 정말 지칠 줄 모르는구나.
지칠 줄 모르고 졸라 댐으로써 네 원대로 해 주지 않을 수 없게 하는구나’ 하셨다.
하지만 결정적인 확답을 주시려는 기색은 없었으므로
나는 다시 그분께 어린아이처럼 소리소리 지르고 울어대면서 연거푸 간청하고 또 간청했고,
시시각각 그분께서 수난 중에 겪으신 고통을 봉헌하고
이 고통을 내 어머니의 영혼에 적용하여 어머니가 정화되도록
- 정화되어 아름답게 되도록… 하고자 하였다.
그러니까 그분은 내 눈물을 닦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사랑하는 얘야, 울지 마라.
네가 알다시피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네 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있겠느냐?
보아라, 네가 내 수난 고통을 끊임없이 바치면서 내가 너의 어머니를 위하여 겪었던 고통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영혼은 지금 끝없는 바다 안에 있고,
이 바다에 의해 깨끗하게 씻어지고 아름답게 단장되고 부요하게 되면서 빛에 잠겨 있다.
또한, 내가 네 원을 들어준다는 확실한 표를 줄 터이니,
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너는 불길에 휩싸여 온 몸이 타는 느낌이 들 것이다.’ ”
그리고
1907년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에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알려 주셨다.
“그 순간 나는 온몸이 안팎으로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느꼈다.
어찌나 강렬한 불길인지 내장이며 위장이며 나머지 모든 것이 다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 불이 무슨 음식이나 물을 준다거나 죽음이나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 상태에서 행복감을 맛보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데려가시는 광경만 보여 주셨지
어디로 데려가시는 건지는 보여 주시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그 행복감이 줄어들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 며칠 나를 거의 떠나시지 않았던 복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울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의 감미로운 사랑이시여… 제 어머니를 어디로 데려가셨습니까?
저희에게서 어머니를 데려가신 것을 제가 만족해하는 것은
당신께서 줄곧 함께 계셔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어머니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저로선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 나는 특히 그분을 뵙곤 할 때마다 계속 울어댔다.
내 어머니가 지복을 누리시기에는 아직 원가 모자라는 점이 있다는 것을
내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 내 주변에 와 있었던 사람들은
내가 그토록 많이 울어대는 것을 보고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내가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도 하면서 거의 분개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깊이 이 영역 안에 잠겨 있었건마는!…
며칠이 자난 후 어지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딸아 위로를 받아라.
이제 네 어머니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주겠다.또 그곳을 너에게 보여주겠다.
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후하여,
내가 지상 생왕 동안 그녀의 선익을 위해서 얻어둔 것과 행한 것과 참아 낸것을
네가 끊임없이 바치며 겪었기 때문에,
그녀는 내 인성이 행한 것과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참여하고 있다.
오로지 신성만이 그녀에게 감추어져 있지만 그것 역시 머지않아 밝히 나타나 보일 것이다.
네가 겪은 불의 고통과 너의 기도가
그녀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받기 마련인 어떤 각고(覺苦)도 겪지 않게 하는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내 정의가 너에게서 이미 보속을 받은 관계로,
너희 두 사람 모두에게서 받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끝없이 무한한 공간 안에 있는 내 어머니를 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던 같다.
그 무한한 공간에는 많은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만큼 많은 말과 생각과 탄식과 과업과 고통과 심장 박동이,
요컨대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인성이 내포하는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기가 복된 이들을 위한 둘째 천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느님 신성의 낙원에 들어가려면 누구든지 이 그리스도 인성의 낙원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 어머니가 어떤 연옥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한정된 매우 희귀한 톡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알게 된 바에 의하면,
고통 중에 있지 않고 오히려 기쁨 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어머니의 행복은 아직 완전하지 않고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12일간 계속 고통을 받고 나니
생명이 한 가닥 숨줄에만 가까스로 붙어 있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이 숨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순명’ 이 개입했으므로 나는 다시 정상 상태로 돌아왔다...”
루이사 어머니의 죽음 이후 겨우 열흘쯤 되었을 무렵 아버지 니콜라 피카레타도 중병에 걸렸고,
이때에도 주님께서 아버지 역시 세상을 떠날 것임을 알려 주셨다.
루이사는 아버지를 주님께 미리 선물로 바치면서
어머니를 위해서 했던 것과 같이 연옥을 거치지 않게 해 달라는 탄원을 거듭거듭 올렸다.,.
그런데 몸져누운 지 보름 만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는
새로운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사실을 보고 나는 아버지가 연옥에 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예수님은 번쩍 나타나셨다가 사라지곤 하셨다…
이틀… 뒤 복되신 예수님을 잠시 뵙게 되어 내 아버지에 대해서 여쭈어 보고 있을 때,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 뒤쪽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도움을 간청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따라서 온통 미어지는 마음으로 기도를 계속하였다.
마침내 그로부터 엿새가 지난 날,
평소와 같은 상태로 있던 중 나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서 어느 성당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 연옥 영혼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 내 아버지도 성당에 와서 정죄(淨罪)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성당에 있는 영혼들은 집전 중인 미사와 기도에서,
더욱이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신 예수님의 현존에서 계속 위안을 얻고 있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것이 그들에게는 계속적인 원기 회복제와도 같았다.
바로 그때 외관에 귀태(貴態) 가 나는 내 아버지가 보였는데,
주님께서 나로 하여금 아버지를 감실 가까이로 모시게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마음이 덜 아픈 듯한 상태로 있게 되었다.”
루이사는 그렇게 양친을 여윈 후,
가족이 함께 살던 나자리오 사우로 가의 집에 그대로 머물렀다.
동생 안젤라의 보살핌을 받았고, 나중에는 친구 로사리아 붓치의 보살핌도 보태졌다.
양친의 죽음이 루이사의 조용한 일상에는 아무런 외적 변화도 가져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다음 해 12월에 일어난 자연 재해가 그녀의 삶과 사명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였다.
1908년 12월 예수님께서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주와 시칠리아 섬에 바야흐로 지진이 일어나려고 한다고 경고하셨는데,
그런 지 다섯 시간 뒤 대지진이 일어나 시칠리아의 메시나 시를 파괴하였고,
무너져 내린 잡석 더미 아래 수천 명의 사람이 매물되었다.
이 지진으로 안니발레 신부의 고아들은 단 한명도 죽지 않았지만
수녀 열세 명은 건물 붕괴와 함께 묻히고 말았다.
교황 비오 10세는 이 재앙에 즉각 대응하여 희생자들을 구하기 위한 돈을 보냈고,
여기에는 고아들을 위해 특별히 배정된 비공식 자금도 포함되어 있었다.
교황은 메시나의 고아들을 위한 이 부성적인 배려를 통하여,
루이사 피카레타의 삶과 사명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될 안니발레 디 프란치아 신부에 대한
심심한 치하와 존경을 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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