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공적인 생활
1 (p.105)
루이사는 양친의 죽음 이후 삼 년 동안 동생 안젤라와 친구 로사리아 붓치의 보살핌 아래
비교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생활을 계속하였다.
나자리오 사우로 가의 집세를 지불하기 위해 몇몇 마을 사람들에게
뜨개질과 바느질, 레이스를 떠 주고 품값을 받았고,
성당용 수예품을 만드는 일에도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안젤라는 이따금 빵 따위 일용품을 제공하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들였지만
루이사는 어떤 종류의 선물도 받지 않았다.
하기야 안젤라가 그런 선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루이사의 단골에게서 나오는 얼마 안 되는 품삯으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루이사는 일반적인 관점으로 볼 때 숨은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자주 방문객을 맞았다.
혈육들이 도움을 청하러 올 때도 있었다.
언니 마리아가
어머니의 마음에 들게 결혼을 할지 아니면 자기 원대로 독신으로 남아 있을지를 결정하려고
루이사를 찾아와 조언을 구한 적도 있었다.
루이사는
자기와 동생 안젤라가 독신으로 있으니 언니는 결혼하여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라고 하면서,
그래도 언니의 희생은 오래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마리아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라켈레와 필로메나는 농장 일꾼들과 결혼하였다.
이 언니들은 종종 남편과 함께 루이사의 도움을 청하러 오곤 하였다.
한번은 코라토 지역이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적이 있었다.
곤경에 처한 언니들과 형부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루이사가 하느님께 자기네 농작물을 보호해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다고 원망하였다.
루이사는 돌아가서 잘 살펴보라고 말하는 것으로 응대했는데,
과연 이웃 사람들의 농작물은 대부분 쑥대밭이 된 반면,
그들의 것은 조금도 냉해를 타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2 (p.106)
안니발레 디 프란치아 신부는 1910년 고아원 설립을 위해 트라니 교구청에 왔다가
처음으로 루이사 피카레타를 만났다.
아마도 루이사의 고해 사제 젠나로 디 젠나로 신부의 제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머지않아 안니발레 신부는
성덕에 대한 공통적인 갈망과
루이사를 소중히 여기며 따르는 마음을 공유하는 자유로운 사제들 모임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이 모임에는 예수회 소속 젠나로 브락칼레 신부,
‘성심 수도회’ 의 창설자인 에우스탁키오 몬테무로 신부,
나중에 추기경이 된 페르디난도 첸토 신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브락칼레 신부와 몬 테무로 신부와 디 프란치아 신부는
수개월 동안 나자리오 사우로 가에 있는 루이사의 집에서 자주 만났으며,
트라니 교구 대주교의 허락으로 루이사의 방에서 미사를 올리곤 하였다.
한번은 안니발레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 중에
브락칼레 신부가 황홀경에 빠져드는 것을 루이사가 목격한 적도 있었다.
안니발레 신부와 루이사는 그들의 우정을 통해 예수님께서 복음에서 명하신 두 가지 기도를,
즉, 사제성소를 위한 기도와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기를 비는 기도를 연결시켰다.
안니발레 신부는 루이사의 조언과 기도와 저술에 따라
그의 수도 공동체와 ‘복음적 기도 사도회’ 를 통하여
사제성소를 위한 기도를 촉구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이 사제와 수도자 및 평신도 연합회는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마태 9,38 ;루카 10,2 참조)고 하신
예수님의 명에 의거하여 거룩한 사제들올 청하는 기도 안에 일치하였다.
3 (p.108)
또 안니발레 신부는 성령의 활동에 마음을 활짝 연 채 루이사의 저작들에 몰두하면서
이들 안에 담긴 풍성한 재화를 알아보기도 했으므로,
메시나에서 트라니와 로마 등지를 다니는 잦은 출장 여행 중 코라토에 멈춰
나자리오 사우로가 루이사의 아파트를 방문하곤 하였다.
1913년경에는
「수난의 시간들」 원고 사본을 들고 로마로 가서 교황 비오 10세를 알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대목을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가자 교황은 그를 중단시키면서
“신부님,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계시니까요.”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교황 자신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루이사는 「수난의 시간들」의 출판이 도무지 내키지 않았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시간들」이 이루게 될 큰 선을 가리켜 보이시며
루이사의 그런 마음을 돌려세우셨다.
그리고 이렇게 고무(鼓舞)하셨다
“얘야,「수난의 시간들」을 쓴 상급으로,
네가 쓴 날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영혼을, 한 번의 입맞춤을 네게 주마“
루이사가 이 기도를 바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주시겠느냐고 묻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수난의 시간들’ 의 효과는
사람들이 나와 어느 정도로 긴밀히 일치하여 바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나의 뜻을 따라 이 기도를 바친다면,
그들에게도 역시 발음하는 날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영혼을 주겠다.
또한 나의 뜻과 하나 되어 이 기도를 바침으로써 그들은 나의 뜻 안에 숨어들게 되고,
나는 단 하나의 날말로도
(그들 안에서 활동 하는)내 뜻을 펼쳐 내가 원하는 모든 선을 할 수 있다.”
그러니 「수난의 시간들」 의 출판과 때를 같이하여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진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루이사는 코라토에서 침상에 붙박인 채 고통 받으며 이 대학살의 종결을 위하여 전구하였다.
그녀의 고통에 감동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이 때문에 징벌을 완화시키게 되는 것을 피하시려고 그녀에게서 자주 모습을 감추셨다.
그러니 예수님과의 완전한 결합을 체험해 왔던 루이사로서는 그분의 부재로 인한 고통이
오상의 고통보다, 심지어 연옥의 고통보다 더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딸아, 내 가슴에 안겨 생명을 끌어당겨라.
하지만 너는, 가장 흡족하고 가장 유패하고 가장 힘있는 고통
- 나의 고통과 맞먹기에 내 앞에 설 수 있는 고통이 곧 내 부재의 고통이라는 것읕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신적인 고통이기 때문이다.
네가 또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영혼들은 내 인성과 연결되는 수많은 고리를 이루며 나와 함께 묶여 있다는 점이다.
영혼들이 길을 잃게 되면 그들이 이 고리를 끊어 버리는 격이 되기에,
나는 한 지체가 다른 지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은 고통을 엮는다.
그러면 누가 나를 위해 이 끊긴 고리들을 다시 연결할 수 있겠느냐?
누가 그것을 용접하여 끊긴 자국마저 사라지게 할 수 있겠느냐?
즉, 누가 그들을 내 안으로 다시 들어오게 하여 생명을 받을 수 있게 하겠느냐?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내 부재의 고통이니, 그것이 신적인 고통인 까닭이다.
영혼을 잃음으로 인한 나의 고통이 신적인 것이듯이
나를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서 겪는 영혼의 고통 역시 신적인 것이다.
이 두 고통이 다 신적인 것이기에
둘이 서로 입 맞추며 하나로 합칠 수 있고 서로 앞에 설 수 있으며,
단절된 고리인 영혼들을 데려와서 나의 인성에 다시 연결시킬 만한 능력이 있는 것이다.
딸아, 나의 부재가 너에게 많은 희생을 치르게 하느냐?
그렇다면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르게 하는 고통을 무익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된다.
내가 그것을 너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니
너만 독차지하지 말고, 전투를 하고 있는 영혼들 속으로 날아들게 하여라.
포탄이 터지는 가운데서 영혼들을 낚아 올려 내 안에 집어 넣고,
네 고통을 녹여 용접하고 인장을 찍어라.
그런 다음 그 고통이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게 하여라.
영혼들을 붙잡아 내 안으로 돝아오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즉 내 부재의 고통이 느껴질 때에
너는 단절된 고리들을 다시 연결하여 인장을 찍는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4 (p.111)
하지만 루이사가 크게 상심한 것은
자신의 고통이 하느님 정의의 저울을 평형 상태로 돌아가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딸아, 큰 재난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각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이 아닌 어떤 비극적 장면 속에 있는 것처럼 거의 건성으로 대한다.
모두 한목소리로 부르짖으며 자비와 용서를 간청하러 내 발치로 오기는 고사하고,
제자리에서 차려 자세를 한 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소식이나 들어 보려고 할 뿐이다.
아, 딸아, 얼마나 불성실한 태도이냐!
그러면서도, 보아라, 국가 통치자들에게는 아주 고분고분 순종한다!
성직자고 속인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 희생도 거절하지 않으며 목숨마저 내놓을 태세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위해서는 순종도 희생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뭔가를 한다면 더 뽐내거나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것은 정부가 폭력을 쓰기 때문이다.
나는 폭력이 아니라 사랑을 쓰건만, 인간은 이 사랑을 업신여긴다.
내가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기나 한 듯이 숫제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것이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루이사는 죽어 가는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전구하면서
예수님께 그들의 고통을 면해 주시기를,
아니면 적어도 성사들을 받고 죽을 은총을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이 간청을 들어주셨다.
“내가 너를 기쁘게 해 주었으니 잠자코 있어라. 생각나지 않느냐?
전쟁으로 죽은 수많은 사람들 및 주민들이 전멸했거나 거의 버리고 떠난 도시들을
누차 너에게 보여 주었을 때,
‘오 안 됩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정 그러시려면 그들에게 성사들을 받을 겨를은 주셔야 합니다!’ 하고 네가 말하곤 했던 일이?
내가 이제 그럴 겨를을 주고 있으니, 네가 달리 원하는 것이 없지 않겠느냐?’’
5 (p.113)
1917년 5월 13일부터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는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세 어린이들에게 나타나기 시작하셨다.
민족들에게
평화에 이르는 길과 러시아에서 일어난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재앙을 피하는 길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기도, 특히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하셨고,
당신의 티없으신 성심에 봉헌 할 것과 인류의 죄를 보속할 것을 요청하셨다.
그해 9월 18일 에는 눈물에 젖은 모습으로 루이사에게 나타나셨고,
왜 우시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셨다.
“딸아, 하느님 정의의 불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고 하는데
내가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느냐?
죄악의 불이 영혼의 모든 선을 집어삼키기에
정의의 불이 피조물에게 속한 모든 것을 멸하려고 한다.
그 불길이 넘실거리며 달려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울고 있다. 그러니 기도해라, 기도해라.”
같은 해 10월 4일에는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이렇게 경고하셨다.
“인간은 갈수록 더 악화되고 있다.
그 내부에 하도 많은 고름이 쌓여서 전쟁도 이 고름을 빠져나가게 할 수 없다.
전쟁은 인간을 때려눕히기는커녕 더욱 방자하게 만든다.
혁명은 인간을 사납게 만들고, 비참은 인간을 절망으로 이끌어 범죄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어떻게든 인간이 지닌 그 썩은 것을 밖으로 나가게 하는 데에 도움은 될 것이다.
그 위에 나의 선성(善性) 이 인간을 치리니,
피조물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치지 않고 하늘에서 직접 칠 것이다.
이 징벌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유익한 이슬과도 같을 것이다.
그로 인해 인간이 죽기도 하겠지만,
내 손에 맞고서야
비로소 자기를 인식하고 죄의 잠으로부터 깨어날 것이며 제 창조주를 알아볼 것이다.
그러니, 딸아 모든 것이 인간의 선익을 위한 것이 되도록 간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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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미국의 참전으로 독일과 그 동맹국들과에 싸움에서 전세(戰勢)가 일변되었다.
1918년 8월, 50만의 미국 신규 병력으로 증강된 연합군은 독일 방어선을 격파했고,
(동맹국에 가담했던) 투르크와 오스트리아에 이어 불가리아가 항복했다.
국제적인 혁명이 일어나 오스트리아 황제 찰스와 그 가족은 해외로 추방되었고,
독일에서는
군항 해병들의 반란과 폭동을 계기로 황제 (빌헬름 2세)가 11월 9일 네덜란드로 망명하였다.
(이어서 수립된 임시 정부가) 11월 11일 (연합국과) 휴전 협정을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즉시 인위적인 평화의 취약성을 지적하셨다.
휴전 한 달 전에 루이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딸아, 발밑의 지반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끼는 정부들이 있다.
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오직 나에게서만 참된 평화 영구적인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할 작정이다.
그러므로 어떤 때는 이 나라가, 또 어떤 때는 저 나라가 수치를 당하게 하는가 하면
서로 우호관계를 맺게 하는 때도 있고 서로 적이 되게 하는 때도 있다.
내가 이 모든 일을 하는 것은 그들을 무력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일로 그들을 어리둥절하게 하여
인간적인 것과 그들 자신의 불안정성을 깨닫게 할 것이다…
따라서 정의와 평화를 원한다면, 참된 정의와 참된 평화의 원천인 하느님께로 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아무것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계속 싸을 것이고 화친을 맺을 듯하면서도 그런 관계는 지속되지 않을 터이니,
다시 다툼이 시작되고 전보다 더 맹렬히 싸울 것이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앞서 말씀하신 “새로운 전쟁” 이 전 세계를 휩쓸 것이라고 확언하셨다.
1923년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의 체제로 부담을 받으며 경제가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그 무렵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연합국 세력에 보복하기 위한 개략적인 계획을 서술한 「나의 투쟁」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이르셨다.
"아, 여러 나라가 제2차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로 연합할수록 내분과 증오와 불의를 더욱더 조장하여,
억압 받는 이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억압받는 이들의 자기 방어는 당연히 정의의 문제이기도 한즉 내가 함께하게 될 것이다.
여러 나라들의 외관상의 승리가
더할 수 없이 배반적인 불의를 기초로 하여 거둔 성공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들은 이 점을 깨닫고 억압받는 이들을 보다 부드럽게 대해야 했건만,
그렇게 하기는 고사하고 더욱 냉혹하게 대함으로써
결국 수치를 당할 뿐만 아니라 자멸을 초래할 것이다.
얼마나 큰 배반인지! 얼마나 지독한 배반 행위인지 악마의 그것을 능가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직 피에 주리고 있을 터, 가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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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로운 세계 대전의 가공할 전망이 루이사의 마음을 공포로 가득 채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보다 밝은 미래의 희망으로 그녀를 위로하셨다.
이는 하느님의 뜻에 대한 그분의 가르침이 책으로 출판될 미래를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내가 태양보다 더 찬란한 빛을, 곧 내 뜻에 대한 진리의 빛을 네 안에 두었으니,
이것이 만물을 비추기에 넉넉하고,
태양이 땅에 베푸는 선보다 더 많은 선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 자신도 모든 사람들도 이 빛이 너에게서 쏟아져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1921년 안니발레 신부는
하느님의 뜻에 대한 짧은 논술을 함께 실은 「수난의 시간들」 새 판을 출판하였다.
이 1921년판에는
뒤에 베네수엘라 주재 교황 대사, 더 뒤에 추기경이 된 몬시놀 첸토의 소개문도 들어 있었다.
이 「시간들」 은 먼젓번 판과 마찬가지로
“교회 인가” (Imprimatur)와 “오류 없음” (Nihil Obstat)의 날인을 받아 가지고 있었다.
첸토 추기경은 루이사에게 보낸 한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그대의 삶과 영적 가르침의 근본을 이루는 점들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사랑 겨운 관상과 하느님 뜻의 나라가)
매우 특별한 매력으로 내 마음을 끕니다.
나의 인간적인 뜻이 진실로 하느님의 뜻 안에 사라지도록 계속 기도 해 주십시오.
하느님 뜻의 나라에 대해서 그대가 쓴 글을 읽으면 황홀 속에 빠져 드는 기분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도 그 지식들을 살게 해 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더욱이 나머지 책들도 출판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를 원하시니 말입니다.
켜진 등불을 함지 속에 숨겨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빛이신 그분께서 모든 장애를 극복하는 법을 아실 것입니다.”
8 (p.118)
루이사는 젠나로 디 젠나로 신부의 후임인 새 고해 사제 프란체스코 디 베네딕티스 신부에게
자신의 내적 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이 있음을 알았다.
이 사제와 디 프란치아 신부와 가깝게 지낸 여러 해에 걸쳐
그녀는 예수님의 내적 생활에 대하여 새롭고 심오한 통찰을 얻었다.
이 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원초적 성덕에 대하여,
또 그 성덕을 이 땅에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큰 열망에 대하여 자주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우리는 사람을 창조할 때 그의 영혼에 우리의 숨을 불어넣으면서
우리 내면의 가장 심오한 요소들 곧 우리의 뜻을 그 안에 넣어 주고자 하였다.
동시에 우리의 뜻은
사람에게 피조물로서 수용할 수 있는 한도만큼 우리 신성의 모든 구성도 부여하여
우리의 모상이 되게 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배은망덕하게도 우리의 뜻에서 떨어져 나가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여전히 영혼은 남아 있었으나
하느님의 뜻을 대신한 그의 인간적인 뜻이 그를 어둡게 하고 더럽히며,
신적인 모든 요소가 그 안 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하였다…
오, 사람이 내가 빚어내었을 때처럼 아름답게 회복된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간절한 나의 바람인지!”
9 (p.119)
예수님께서는
당신 강생의 전 목적이 창조 본연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에 있었다고 가르치셨다.
이 목적을 이루시려고 사람으로서의 삶 전체를 “당신 아버지의 뜻 안에서” 사셨다.
다시 말하자면, 지상 생활의 각 순간을 시간 속에서 사시면서
동시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피조물에게 현재적인 “영원 속에서” 사셨다,
그리하여 각 피조물을 대신해서,
아버지의 본 의도에 따라, 신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다시 사셨다.
이를 아버지께 봉헌함으로써
모든 피조물이 아버지께 마땅히 드려야 했으나 드리지 않았던 영광을
완전히 보상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창조의 질서를 원래대로 회복하셨고,
그것을 루이사에게 이렇게 설명하셨다.
"딸아,
내 인성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하모니를 다시 정돈한 오직 하나의 오르간이었다.
나는 각 영혼을 대신하여
그들이 자기네 창조주께 행하기로 되어 있었던 모든 것을 행하였고,
멸망한 영혼들의 것도 제외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모든 피조물을 대신해서
아버지께 완전한 영광과 사랑과 보속을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인성은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깨어진 조화를 회복하였고,
피와 전대미문의 고통의 대가로 그것에 도장을 찍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성령을 통해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기고 영원히 항시적인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 나누면
루이사도 그 분의 내적인 삶을 본받을 수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게다가 그녀가 영원 속으로 들어가
그분과 같은 보편적인 지향으로 그분과 함께 자기에게 마련된 선한 행위들을 하면,
“살아 있는 성체” 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딸아... 이 성사 안의 나를 덮고 있는 옷이 보이지?
이는 성체를 이루는 부수적 요소인 빵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체 안에 존재하는 생명은 바로 나의 몸과 피와 신성이다.
그리고 이 생명을 내포하는 원동력이 내 지고한 뜻이다.
이 뜻이 사랑과 보속과 희생 및 성체성사 안에서 내가 행하는 여타의 것들을 수행하는데,
이 모든 것은 내 의지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는다.
내게서 나오는 것 치고 내 의지의 인도를 받지 않는 것은 도무지 없는 것이다.
너도 성체의 형상을 이룰 수 방법이 여기에 있다.
즉, 이 형상을 이루는 빵은 물질적이며 온전히 인간적인 것이고,
너 역시 물질적인 몸과 인간적인 뜻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너의 이 몸과 뜻이 - 깨끗하고 올곧으며 죄의 그림자도 없도록 보존되면 -
바로 내가 나 자신을 축성하여 네 안에서 숨어 살 수 있게 하는 부수적인 요소,
곧 나를 덮어 가리는 천이 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족하지 않다.
아직은 축성 되지 않은 빵과 같은 상태일 터이니 내 생명이 필요한 것이다.
내 생명은 거룩함과 사랑과 지혜와 능력 등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모든 것의 원동력은 나의 뜻이다.
그러므로 너는 빵을 준비한 다음, 이 빵 안에 너의 뜻이 소멸되도록 해야 한다.
충분히 잘 구워서 그것이 다시는 살아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후 나의 뜻이 너의 온 존재 안에 꽉 들어차게 하여라.
그러면 내 생명 전체를 지니고 있는 나의 뜻이 참되고 완전한 축성을 이룰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적인 생각은 더 이상 생기를 띠지 못하고
다만 내 의지의 생각만이 살아 있게 되리니,
이러한 축성으로 인하여 너의 정신 속에 나의 지혜가 창조될 것이고,
인간적인 점과 나약과 항구하지 못한 성질은 생명을 잃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뜻이 신적인 생명과 힘과 굳건함 및 내 모든 것으로 축성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너의 뜻과 소망과 또 너의 모든 것과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 뜻 안으로 흘러들게 할 때마다
나는 이 축성을 새로이 하고, 네 안에서 내 생명을 계속할 것이다.
나를 지니지 않은 죽은 제병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성체와 같은 네 안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축성된 빵 곧 성체와 성합과 감실 안에는 일체가 죽은 듯 말이 없다.
넘쳐흐르는 나의 사랑에 응답하는 심장 박동이나 사랑의 용솟음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나 자신을 내주기 위하여 그러한 마음들을 기다린다는 사실이 없다면,
나는 아주 불행할 것이고, 내 사랑 안에서 배신당한 느낌이 들 것이며,
내 성사적인 생명이 목적을 잃은 상태로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감실 안에서는 내가 이를 감수하지만,
살아 있는 성체들 안에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생명은 양식을 필요로 하기에 이 성사 안의 나는 양식을 원하는데,
바로 나 자신의 양식을 원한다.
그런데 이 양식은 영혼이 나의 뜻과 기도와 보속과 희생을 그 자신의 것으로 삼고,
이 모두가 마치 자기의 소유인 양 나에게 주는 것, 그래서 내가 먹게 될 양식이다.
그런 영혼은 나와 일치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며 나와 함께 그것을 행할 것이고,
나 자신의 행위를 거듭함으로써 내게 양식을 대어 내가 행복하게 할 것이다.
이 살아 있는 성체들 안에서만
내가 감실들 안에서 겪은 고독과 굶주림과 기타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얻게 될 것이다.“
10 (p.123)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하신 말씀에 의하면,
그분은 지상 생활 동안 언제나 당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피조물의 선익을 위하여 모든 행위를 하셨다.
이제 그분께서는
삶의 매 순간마다 그분께서 마련하신 완전한 사랑의 행위를
그분과 같은 지향으로 할 영혼들의 부대를 원하신다고 루이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겸손한 영혼들을 통하여 교회 신비체 전체를 치유하며 회복시키고자 하셨으니,
1922년 1 월 11일 루이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딸아, 교회는 과연 내 신비체이고 나는 그 머리임읕 영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이 신비체 안에 들어오려면 지체들이 적당한 크기로 성장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 몸을 불구자처럼 변형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아아,
너무나 많은 지체들이 적당한 크기에 이르지 못한데다 곪아 터진 상처투성이여서
머리인 나에게도 건강한 다른 지체들에게도 역겨움릏 일으킬 지경이다.
내 뜻 안에서 살고 있고 또 살게 될 영혼들은 내 교회라는 몸읕 싸고 있는 피막과 같다.
사람의 몸은 내피와 외피를 가지고 있고,
내피 안에 몸 전체에 생명을 주는 혈액이 순환하고 있으므로,
이 순환 덕분에 지체들이 적당한 크기로 자란다.
만약 피막 조직도 혈액 순환도 없다면 인체는 보기에 끔찍할 것이고,
지체들도 적당한 크기로 자라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보아라, 내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이 내게 얼마나 필요하겠는지를!
내가 그들을
교회 신비체의 피부같이, 모든 지체에 이르는 생명의 순환같이 되도록 미리 정했으므로,
그들은 자라지 못한 지체들을 알맞게 성장시키며 상처 입은 지체들을 치유할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내 뜻 안에서 삶으로써
내 신비체 전체에 활기와 아름다움과 광채를 회복시켜
이를 머리인 나와 완전히 닮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머리가 모든 지체들 위에 엄위롭게 좌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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