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위탁

40 p.191-197 제 3편 위탁의 대상 제 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은가루리나 2018. 7. 21. 10:29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제4절 장소와 환경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제8장 7장의 계속 - 실패와 과실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8장의 계속 - 내적시련의 일반


제10장 9장의 계속 - 유혹


제11장 10장의 계속 - 위안과 건조


제12장 11장의 계속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제13장 12장의 계속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제2절 각가지 공포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제4절 양심상의 小心


제14장 13장의 계속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



p.91



제三 위탁 (委託) 의 대상 (對象)


제 2 장 현세적 사물(現世的事物)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인생에는 현세적인 행복과 불행이 있다。


행복(선)이라고 말한다면、

지식、건강、재산、번영(繁榮)、명예 등이며、

불행(악)이라고 말하면、질병、빈곤、재화(災禍) 둥이다。


이러한 일은 세상 사람이 첫째로 중요시하여、

무엇보다도 노고를 아끼지 않는 것인데、

사실은 잘못이다。


지상의 것은 영원한 광명에 비추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최고선(最高善)、오직 필요한 것은 천주시다


따라서 

성 「토마스」가 가르치고 있는 것과 같이、

(「신학대전」 二부의 二、八三문、五항 및 六항) 

우리에게 있어 가장 긴요한 그리고、궁극적인 선은 

영원한 행복과 그것에 우리를 맞갖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러한 선을 남용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것에는 나쁜 결과가 있을 수 없다。


성인들이 이러한 선을 절대적으로 기구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즉 「성영」에도 있는 것과 같이、

「당신의 명랑한 낯을 드러내시며、우리를 건전하게 만드소서」(79.3)라고. 

이것은 즉 영원한 행복을 뜻한다。


또한「나를 당신 계명의 소로로 인도하소서」(동118.35) 라고. 

이것은 즉 영원한 행복에의 길이다。




현세적 선(現世的善)에 관해서는、

거룩한 박사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너무나도 남용하여、

그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악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래서 부귀(富貴)나 명예가 많은 사람들의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므로、이러한 선(善)은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제이의적(第二義的)인、일시적인 것이며、

우리의 육체적 생명을 지탱하고、덕을 실행하는 수단이 되는 한에 있어、

영원한 행복에 나아가기 위하여 우리를 돕는 지주(支柱)와 같은 것이다。


그러한 것은 우리가 추구하여야 할 주요한 대상이 아니고、

제이의적(第二義的)인 대상에 지나지 않는 한 

그런 것을 바라고 기구하며、

적당한 노력으로써 이것을 구하고 필요에 따라 또한 적절한 때에、

장래를 배려하는 것까지도 전연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만일 우리가 필요에 따라 그런 것을 사용하는 대신、

그런 것을 목적으로 삼고、

또는 영적(靈的)인 것을 소홀히 하면서까지 현세적인 것을 추구하고 

그리고 해야할 것을 하여도 필요한 것을 빼놓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러한 걱정은 지나친 것이며、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그러한 때에는、천주의 섭리에 신뢰하여야하기 때문이다。



음식물은 당장 필요한 것이지만、

이러한 것에 관해서는 

주께서 노력을 촉구하는 적절한 배려를 조금도 꾸짖지 않으시고、

다만 우리의 마음을 불안에 빠지게 하는 것과 같은 지나친 배려만을 금하신다。


만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수행한다면、

현세적인 선은 덤으로 그리고 필요에 따라 주어진다는 것을 굳게 신뢰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영적선(靈的善)을 찾으라고 그 가르침을 매듭지셨다。」

(성 「토마스」「신학대전」 二부의 二、五五문 六항 및 七항、八三문 六항)



p.192


주께서는、

하늘에 계신 성부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알으시기 때문에、

이방인(異邦人)처럼、

함부로 지상(地上)의 재보(財寶)에 골몰하기를 금하시어、

비록 

우리의 성부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 이상으로 알으심에도 불구하고、

천주의 나라를 구하라」고 분명히 덧붙이신다。


이것은 주께서、

우리 마음 안에 너무나도 둔감(純感)한 착한 원의를 불러 일으키시고

또한 우리의 너무나도 민활(敏活)한 감각적 욕망을 약화(弱化)시키기 위해서이다. 



그 밖에 주께서는、

「천주의 나라와 그 의(義)」와 같이 절대 무조건으로 구할 것과、

단지 조건을 붙여、

그리고 천주께서 바라시는 한도에서만 구할 것을 구별하기를 

우리에게 가르치시려고 바라신다。


p.193


「또한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기구할 것을 가르치셨다。


이 기도에는

물질적 선(物質的善)을 기구한다는 하나의 의미가 항상 내포되어 있다。


성교회도 그 도문과 전례 안에서 마찬가지로 가르치고 있다。


완전히 영적(靈的)인 사람이라도、

주의 기도』의 일곱가지 원망(願望)에서 이 원망을 제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만일 그러한 사람이 물질적인 것을 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가 물질적인 것을 절대적인 선(善)으로서가 아니라、

또한 절대적으로 구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구령에 관련되는 한、천주의 뜻이라면이란 조건 밑에 구한다는 뜻이다。」

(「보수에」「묵상상태」 六장 一八)




성 「알퐁소」는 말하고 있다。


「참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겠다는 천주의 약속은、

건강、재물、지위、그 밖에 이와 비슷한 행운과 같은 

현세적 은혜에 관한 것이 아니다。


허다한 경우 

천주께서는 그러한 것이 우리의 구령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알으시므로、

정당하게 이것을 거절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적인 것을 원할 때에는、

천주의 의지에 완전히 적합하여、

그리고、

그런 것이 구령에 아무런 해도 없다는 명백한 조건만으로 원해야 한다。


영적선(靈的善)에 관해서는 

무조건 절대적으로、그리고 반드시 그것이 주어진다는 확신으로써 

이것을 구하여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정배」 二○의 一)




현세적악(現世的惡)도 재화(災禍)도 

역시 신앙의 눈으로써 영원한 빛에 비추어 바라보아야 한다。


죄、특히 대죄의 상태에 있어서의 죽음、

그것에 수반되는 우리의 종극목적(終極目的)의 파탄(破絞)、

회복할 수 없는 재화(災禍)인 영원한 벌 등은 

이것이야말로 악중의 악이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절대적으로 우리를 그것에서 반드시 면하게 되도록 

천주께 간청하여야 한다。  p.194


그러나 

빈곤、질병、허약、그 밖에 이와 비슷한 고난、죽음 그 자체까지도 

상대적 불행(相對的不幸)에 불과하다。



천주의 섭리의 계획에 있어서는 

그러한 화(禍)는 오히려 귀중한、그리고 때로는 극히 필요한 은혜로 

간주하여야 할 것이다。


즉、

만일 우리가 겸허한 복종으로써 천주의 활동에 응한다면 

그런 것은 

죄의 보상、각가지 영적 병약(病弱)의 의약(醫藥)、

탁월한 선덕(善德)과 무수한 공로의 샘이 된다。


이에 반하여 

시련에 있어서의 인내(忍耐)와 신앙(信仰)과의 결핍은 

약(良藥)을 변하여 독약(毒藥)이 되게한다。


즉 이 결핍에 의하여、

우리는 천주의 섭리가 우리에게 생명을 대비하신 곳에 질병、

아마도 죽음을 취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를 전쟁과 질병(疾病)과 기근(機謹)과의 악에서 구하시고、」

그 밖에 사회와 자신에게 닥치는 재난(災難)을 우리에게서 멀리해 주시기를 

천주께 기도하는 것은 전연 정당한 일이다。


주께서는「주의 기도」에 있어、또한 성교회는 그 전례 (典禮)에 있어 

우리에게 그렇게 기도하게 한다。


그러나 

천주께서는 그러한 기도를 항상 들어 주신다고는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천주의 뜻이시라면이라는 조건으로만 그렇게 기도할 수 있다。


우리가 인내(忍耐)를 잃을 것을 두려워할 때에도、

혹은 우리의 무거운 짐을 덜게 하고、혹은 힘을 더해 주시도록 

어느 편이든지 천주께 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항상 그리고 절대적으로 기도해야 할 것은、

신앙의 정신과、인내와、시련을 겪을 적에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시련이 계속되는 동안은、

우리가 이러한 덕을 실행할 것을 천주께서 바라신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은 바로 천주께서 의도하시는 목적인 것이다。


p.195


그러므로 

현세적 선과 악--행과 불행--과는 상대적 선(相對的善) 또는 악에 불과하다。


그 어느 것이나 

혹은 가장 거룩하게 이용하고、혹은 가장 나쁘게 남용할 수 있다。


우리는 과연 그러한 것을 선용(善用)하여 지상(地上)의 것에서 이탈하여、

천상의 유일한 선에 항상 더욱 강하게 애착할 정도의 예지를 가지고 있는가。


「현세의 사물을 빠져나가 영원한 사물을 잃지 않도록 지내고 있는가.」

(성신강림 후 제三주일 축문 참조) 



행운(幸運) 의 때에는 천주를 잊고、

역경(逆 境)을 당해서는 불평하는 어리석은 자는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것에 관하여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오직 천주께서만 알으신다



현세적인 행(幸)、불행(不幸)에 부딪쳤을 경우、

우리가 수행하여야 할 의무는 허다하지만 

그러나 그 첫째는 항상 천주의 의지에 적합하는 일이다。


바라건대、

우리의 적합이 단지 인종(忍從)이 아니고、도리어、

거룩한 위탁 즉 덕(德)에 의한 보편적 무관심(普遍的 無關心)、

사건 발생전(發生前)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평온한 대기(待機)이며、

그리고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가 명백히 되면、

사랑과 신뢰와 효애(孝愛) 에 충만한 복종이기를!




나는 여기에서 

수도원 또는 세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경우를 얼핏 살피겠다。 


그러나 일정한 경우를 위하여 내가 주는 권고(勸告)는 

각자가 그 신분상(身分上)의 의무에 따라서 

다른 유사(類似)한 경우에 그러한 것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극히 복잡한 문제를 다소라도 정돈하기 위하여、

나는 차례대로 우리밖에 있는 물질계의 선과 악、

우리 안에 있는 육체적 또는 정신적 행(幸)과 불행(不幸)、

그리고 남의 의견에 기인하는 행、불행 등에 관하여 검토 해보자。


그러나 그에 앞서、우리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속하지 않으며、

바라거나 바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참아야 할 자연적 선악(自然的善惡) - 행、불행 - 에 관하여 

한마디 하여야 한다。




여기서 성 「쥬르」신부에게 말을 양보하겠다。..............


p.196


「우리는 외계(外界)의 모든 자연적 사상(自然的事象)、

즉 더위、추위、강우(降雨)、강설(降 雪)、폭풍、

뇌성(雷聲)、번개、질병(疾病)、기근(機鐘)、

그밖에 일기불순(日氣不順)、자연력(自 然力)의 혼란등과 같은 일에 있어、

자신의 의지를 천주의 의지에 적합시켜야 한다。


우리는 천주께서 보내시는 모든 천후(天候)를 기꺼이 받아 들이고、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 천후에 부딪칠 적에는 

언제나 인내(忍耐)를 잃는다거나、노엽게 여기는 것과는 반대로、

이것을 유화(柔和)로써 참아 견디어야 한다。


난처한 절망적인 천후(天候)라고 말하거나、

또는 

우리 마음의 불만이나 반항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말을 해서는 안된다。


천주께서 그러한 것을 정하신 이상 우리는 천후(天候)를 그대로 바라며、

그러한 불쾌한 때에는、

저 「바빌로니아」의 불가마 안에 있는 세 소년과 함께、

『추위도 더위도、어름도 눈도 번개도 구름도 모두 주를 축복하고、

영원히 주를 찬양하며、주께 영광을 돌릴지어다라고 말하여야 한다。


이러한 피조물은 끊임 없이 천주를 따르며、

그 거룩한 의지를 수행하면서 주를 찬미하고 있다。


우리도 역시 그러한 것과 함께 마찬가지로 주를 축복하고、

주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앞에 말한 것과 같은 

마음의 불의(不義)나 움직임이나 지나친 말을 억제하는데、


비록 지금의 천후(天候)가 자신에게 불편하고 불쾌한 것일지라도、

남에게 있어서는 바람직한 것이며、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드라도、

인인(隣人)의 그 것에는 도움이 되는 것이며、


부분적으로는 좋지 않드라도、

전체적으로는 유익한 것이며、


그리고 그렇지 않드라도 

만사가 천주의 의지에 의한 것이며、


천주께서 기꺼이 여기시는 이상, 

그것이 항상 천주의 영광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겠는가。」

(「예수·그리스도에의 인식과 사랑」 三편 八장 七절)  p.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