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위탁

38 p.186-190 제 3편 위탁의 대상 제 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은가루리나 2018. 7. 21. 10:28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제4절 장소와 환경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제8장 7장의 계속 - 실패와 과실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8장의 계속 - 내적시련의 일반


제10장 9장의 계속 - 유혹


제11장 10장의 계속 - 위안과 건조


제12장 11장의 계속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제13장 12장의 계속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제2절 각가지 공포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제4절 양심상의 小心


제14장 13장의 계속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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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三 위탁 (委託) 의 대상 (對象)


제 I 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一般的對象)




여기서、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와 임의의지(任意意志)와의 구별을 

새삼스럽게 상기함은 

결코 무익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바로 문제의 핵심(核心)이 바로 이 점에 있기 때문이다。


명시의지에 의해서 천주께서는、

「우리가 믿기를 바라시는 진리、

희망할 것을 바라시는 선익(善益)、

두려워 할 것을 바라시는 고통스러운 벌、

사랑할 것을 바라시는 대상(對象)、

지킬 것을 바라시는 계명、

따를 것을 바라시는 권고 (勸告) 둥」을 명백히 하시고、

또한 미리 들어내셨다。(「신애론」」八편 三장) 


또한 그 의지의 영속적 표지(永續的標識)는 

주의 십계와 성교회의 법규、 복음의 권고、

우리의 서원(誓願) 및 회칙(會則)、은총의 권유 둥이 그것이다。


이 네 표지에다가 

여러 덕에 관한 교의(敎義)、천주와 및 성인들의 모범을 

결부시킬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천주의 임의의지 (任意意志)는 미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각가지 사건에 의하여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이 의지는 보통 우리의 선견(先見)을 벗어날 뿐 아니라、

가끔 우리의 계획까지도 혼란케 한다。


그 의지의 대상이 되는 일은、

우리 자신에게 의한 것이 아니고、

그 결정을 보류하시는 천주께 의한 것이다。


예컨대、일정한 때에 

우리는 건강 혹은 질병、순경 (順境) 혹은 역경、

평화 혹은 싸움、건조 (乾燥) 혹은 위로의 어느 상태에 있겠는가。


과연 살아 있기까지 하겠는가。

누가 그것을 장담할 수 있겠는가。


천주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이들 사건에 의하여 비로소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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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의 임의의지에 기인하는 사건에 관해서는、

위탁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 하면 위탁은、

천주의 의지가 아직 명백히 되지 않는 동안은 

평화(平和)와 신뢰(信賴)와의 대기(待機)이며、

그 것이 일단 명백히 되었을 때에는、

사랑에 충만한 동의(同意)이기 때문이다。


그리고、그것에는 예비조건(豫備條件)으로 

덕(德)을 바탕으로 하는 무관심(無關心)이 전제로 되어 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모든 사건에 대하여 각오하려고 생각한다면、

모든 것에 무관심하는 것보다 더 긴요한 것은 없다。



한편 천주의 임의의지가 아직 명백해 지지 않은 동안에는 

그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대기(待機)는 신뢰에 충만된 것이며、

복종은 효애(孝愛)에 넘치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 하면、

우리를 처리하시는 분은、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며、

예지 그 자체、선(善) 그 자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건이 우리에게 의하지 않는 이상、

평화롭고 순종하는 대기(待機)는 

정관주의자(靜觀主義者)의 무위주의(無爲主義)와 같은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러한 대기(待機)는 

이미 

위탁에 있어서의 현덕(賢德)과 기도와 노력에 관하여 말한 것은 별도로、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에 대한 우리 태도는 

이것과 전연 다른 것이어야 한다。


천주께서는 

「우리가 이러저러한 것을 믿고、희망하며 두려워하고、

사랑하며、실행할 것을 바라신다는 뜻을」 

명백히 드러내셨다。


우리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을 바라는가 바라지 않는가에 관하여 

무관심하다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천주께서 일단 미리 그 의지를 우리에게 명시하신 이상、

우리는 개개의 경우에 있어、

각각 천주께서 새삼스럽게 설명하시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


그러한 일에 관련된 일은 모두、

우리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한 것이며、

또한 우리는 은총과 함께 

자기의 결단(決斷)에 의해서 행동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천주의 의지에 적어도 의무적인 일에 관해서、즉 

「그 가르치시는대로 믿고、그 약속하신대로 희망하며、

그 위협하시는 대로 두려워하고、

그 명하시는대로 사랑하며 생활하는 것」으로써 

우리의 의지를 복종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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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우리의 행동과는 전연 무관계하지 않고、

어느 정도까지 이것을 예견(豫見)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경우에는 

위탁에 각자의 현덕(賢德)과 노력(努力)을 덧붙여야 한다。


왜냐 하면、그것은 근본에 있어、

천주의 명시의지(明示音心志)와 임의의지(任意意志)와의 

혼합(混合)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위탁의 영역(領域)은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이며、

복종의 영역은 그 명시의지(明示意志)이다


따라서、구령할 수 있느냐 없느냐、

또한 구령을 확실하게 하고、지옥을 피하기 위하여 

천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고 권장하신 방법、

예컨대 

십계와 성교희의 법규의 준행(遵行)、죄를 피하는 것、

선덕을 쌓는 것、회칙(會則)과 서원(誓願)을 충실히 지키는 것、

장상(長上)에게 복종하는 것、

은총의 권유에 순명한다는 것 등에 관해서는 

위탁이 개입(介入)할 여지가 조금도 없다. 


천주께서는 이러한 모든 일에 관해서는 그 의지를 명시(明示)하시고、

그러한 것을 충실히 실행시키시기 위하여、약속과 위협을 하시며、

성자를 보내시고、성교회를 세우시며、

사제직(司祭職)과 성사(聖事)를 제정하시고 

외적 원조(外的援助)를 무수히 불리시며、

내적 은총(內的恩寵)을 풍부히 부여하셨다。


거기에는、이미 무관심이 통용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의무적 일에는 순명이 요구되고、

단지 권고에만 그치는 것에는 적어도 이에 경의(敬意)를 표시하고 

관대한 영혼을 거기에서 멀리하게 않는 것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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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에」주교는 말한다。


「그리스도교적 무관심은 

천주의 명시의지에 관한 일에 대하여는 제외되는 것이며、

성 『프란치스 꼬· 살레시오』가 한 것처럼、

천주의 임의의지로써 결정되는 약간의 사건에 그것을 제한(制限)시켜야 한다。


참으로、우리의 일생 동안 날마다 일어나는 일은、

천주의 지상명령(至上命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묵상상태」八편 九장) 라고. 



무관심은 

건강、질병、미추(美醜)、강약(强弱)등과 같은 

자연적 생명에 관한 일、

명예、지위、부유(富裕)와 같은 시민적 생명(市民的生命)에 관한 일、

영적 건조(靈的乾燥), 위안、흥미、무감각 둥과 같은 

영적생명(靈的生命)에 관한 각가지 상태、

또는 활동、고통、요컨대 모든 일에 있어 실행되어야 한다。」

(「신애론」九편 五장)     /////




천주의 임의의지(任意意志)에 의해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하여는 

무관심은

「과거、현재、미래에、육체와 그 모든 상태에、

영혼과 그 모든 장점과 약점에、 행운과 불행에、

인간의 선의와 악의에、 물질계의 변동과 정신계의 변혁 (變革)에 

삶과 죽음에  현세와 내세에 미치는 것이다。」

 (「드.고사드」신부「위탁」부록 二부) 



그러나、천주께서는 그 활동을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하신다。 


「즉、

세속적인 사람들에게서는 명예、현세적 재보(財寶)、생활의 일락(逸樂)을、

학자인 경우에는 그 박학、지능、학식을 앗으시며、

저작(著作)등이 업신여겨짐을 허용하시고、

성인에게는 그 영적 생활과 선덕의 실천에 관한 것에 고뇌를 보내신다。」

(「듀뽕」의「발다살.알바레스 전」四○장) 



환희(歡喜)는 고뇌와 마찬가지로 위탁의 대상이라고 하지만、

고난이 보다 자주 위탁을 행할 기회를 준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가 자신의 쓰라린 경험에 의해서、

현세는 눈물의 골짜기이며、

기쁨은 흔하지 않고、또한 헛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사람들이 떨어지기 쉬운 두 가지 그릇된 의견에 관해서 

주의를 촉구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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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이는 탁월한 행위、

또는 아마도 그 기회가 한번밖에 없는 것 같은 이상한 인내로써 

천주를 섬기려는 위대한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십자가를 상상으로 안으면서、

섭리에 의해서 그날 그날에 보내지는 훨씬 작은 십자가를 

힘을 다하여 피하려 든다。


정신에 있어서는 그렇게도 용감하면서도、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 그렇게도 비겁하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유혹이 아니겠는가。


바라건대、

천주는 은밀한 자존심을 자주 양성하는 그러한 

공상적 분발 (空想的奮發)에서 우리를 면하게 하시기를! 

(「신애 론」一二편 六장「입문」三 편 三七 장 참조) 


우리는 그러한 공상에 사로잡히기보다는 

현실의 시련, 즉 

현재의 순간의 그것을 가급적 성화하는 것에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위탁에 있어 어디까지나 실제적이어야 한다。



2. 우리의 나날의 십자가를、

그런 것이 작은 것이라는 이유로 업신여기며、

또는 너무나도 과소평가(過小評價)한다는 것은 

극히 해로운 미혹(迷惑)이다。


개개의 십자가는 과연 극히 사소한 것임이 틀림없겠지만、

그렇지만 그러한 것은 거의 순간마다 찾아오는 것이므로、

그 수 자체에 의하여 충실한 영혼에게 무수한 희생과 공로를 초래한다. 


그리고、

이러한 십자가를 커다란 신앙과 사랑과 관대함으로써 맞이하는데 

아무런 방해도 없다。


또한、우리 의향(意向)의 거룩함에 의하여 

천주의 눈에는 평가(評價)할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가치가 

거기에 덧붙여진다。


물론 같은 사랑으로써 감수한 커다란 십자가는 

우리에게 보다 많은 공로와 보답을 초래하겠지만、

그러한 것은 흔하지 않다。


오만(傲慢)과 자애심(自愛心)은 더욱 쉬이 거기에 숨어 들어간다。


「일반적으로、이러한 훌륭한 행위는、

보다 작은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신애론J 一二편 六장、「대화편」 一○) 


그런데 사랑과 그 밖의 거룩한 심정(心情)과는、

「우리의 모든 일에 가치와 공로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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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우리는 커다란 십자가를 존중하자. 


그렇지만、

각가지 사소한 시련을 지나치게 평가한다는 것은 경계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그런 것에서 

우리는 바로 가장 커다란 영적 선익(靈的善益)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도스타」신부는 말한다. 


「최소의 점에 있어서까지、

예컨대 

사소한 망각 또는 졸렬(拙劣)함에서 야기되는 치욕(恥辱)이나、

귀찮게 날아다니는 파리、짖어대는 개、

발을 다치게 하는 돌맹이、꺼지는 둥불、

해어져가는 옷 따위에 관해서도 

우리는 천주의 의지에 적합할 것을 실천하자。」

(「천주와의 일치」四부 九장) 


또한 각별히 

서로의 성격상(性格上)의 차이、각가지 당황、치욕、

수도생활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작은 사건에 관해서도 이 적합을 실행하자。


이것이야말로、

외관상으로는 나타나지 않아도 자아(自我)에 죽고 

또한 온전히 천주의 것이 되기 위하여 유력한 방법이다。




이상 길게、

거룩한 위탁의 성질、그 동기、그 일반적 대상 등에 관하여 

말해 왔으므로、

나는 그 실제의 응용(應用)을 독자에게 맡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련은 각양각색(各樣 各色)이므로、

더욱 그 주요한 것을 연구하여、그로써 각 시련의 성질에 응하여、

인내와 복종과의 특유한 각가지 동기를 지시하고、약간의 난문을 해결하며、

도와 현덕(賢德)과 개인적 노력에 관한 것을 명확히 하는 것은 

결코 무익한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아래에 계속하여 

물질계에 속하는 시련과、

이어 영적 세계(靈的世界)의 통상적인 길, 및 

신비적 길에 있어서의 시련에 관하여 말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