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번역 하섭내

하느님섭리에내맡김《서론》⑹ p.27-32

은가루리나 2018. 7. 24. 11:08


  p.27


   제 코사드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포기의 최상적 중요성에 관한 그의 주장은  새로운 것이라곤 전혀 없다.  

그렇다면 그의 주장은 어떻게 말해질 수 있을까? 

코사드는 그리스도인이었고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와 함께 있었다.  

"여러분은 마음을 다하고 영혼과 정신을 다해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위대하고 첫째가는 계명입니다."  


몇 세기 이전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승이었던 성 대 알베르투스(Albertus Magnus)는 

모든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당신 삶의 가장 작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에 있어서 당신존재의 미세한 부분들을 다함이 없고, 

가장 확실한 섭리에 간절하게 또 완전한 신뢰를 두고 맡길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권고들이 거의 모든 성인들의 글과 설교에 잘 나타난다. 

그래서 이 문제에 있어서  코사드는 고상한 영적 가르침을 설교한 적이 없었다. 

어쨌든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1675년 그가 태어난 해보다 몇 년 앞서서 로마에 와 자리 잡았던 스페인 신부 

미카엘 데 몰리노스(Miguel de Molinos)가 쓴 『영적 안내서』(The Spritual Guide)라는 책이 

로마에서 출판되었다. 

그는 교황 인노첸시오 11세의 도움을 받았으며  바티칸의 방 하나를 선사받기도 했다. 

그의 책이 나왔을 때는  다섯 명의 고위 성직자들로부터 흔쾌한 승인을 받게 되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은 예수회원이었고  나머지 네 명은 종교 재판관들이었다. 


이 책은 5년에 걸쳐 네가지 언어로 20판을 찍었다. 

이 책의 가르침은 순식간에 이탈리아를 휩쓸었고 

수많은 사람들은 이 책을 영성의 기본 서적으로 삼았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불완전한 몰리노스의 가르침에는  

두 가지의 신앙생활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외적인 것으로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성과 상상력을 통해  또 감각의 절제와 금욕생활로 하느님을 찾는다. 

이들은 하느님을 목자와 의사로서, 아버지나 주인으로 생생하게 마음에 그리려고 힘쓴다. 

"그들은 하느님에 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며 

흔히 정열적인 사람의 행동방식을 취하고자 합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위대해지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외적인 방법이며 초보자들의 길입니다.

비록 이와 같은 방법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이것으로써는 결코 완덕에 이르지 못합니다. 

실상 50년 동안 이 외적 수업을 해왔던 많은 이들의 경우에  하느님은 빠져 있으며 

오로지 그런 사람들의 이름만 남아있음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내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이미지나 형식 혹은 형상과는 무관하게 

평정과 내적 휴식에 근거한 크나큰 확신을 가지고 

순수한 믿음으로 하느님의 손안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며, 

주님의 현존에로 들어 높여진 영과 더불어  영혼의 깊숙한 부분에 숨어듭니다." 


물론 몰리노스는  내적인 영성생활에 대해 아주 세밀하게 조사하여 

미세한 활자로 된 150여 쪽에 이를 할애하고 있다. 

그것은 위대하고 심금을 울리는 책자이다.  

그러나 이 책으로 말미암아 몰리노스는 남은 여생을 감옥에서 지내야만 했다.  (p.29


    인간은 너무나 자주 인간적이다. 

몰리노스의 글을 읽은 많은 이들은  

그가 구원에 대한 손쉬운 방법을 가르쳐주었음을 알았다. 

그들은 관상으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있을 때, 

그 상태에 이르는데는  

멀고도 아주 힘든 여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면서 

누구든 관상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 잘못된 생각을 하는 영혼들은  관상이라고 잘못 믿고 있는 것에 시간을 소비함으로써  

일상적인 종교상의 의례를 지키는 일과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모든 애덕의 본분에서 

자신들의 의무가 해제된다는 견해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 생각으로는 자기들이 너무나도 영적인 사람들이었으므로, 

신심에 도움을 주는 물리적 도구들, 

즉 묵주, 성상, 성화 그리고 성해 등 모든 것을 멀리하였다. 

이는 

쉽사리 유혹이나 많은 인간적 행위의 상대적이며 대수롭지 않은 것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왜곡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그것은 영혼과 사회 질서를 매우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실 몰리노스는 단 두 가지 점에서 잘못을 범하였다. 

그는 내적인 영성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성체를 모시기 전, 

자신을 준비하는 데에 있어서  죄를 고백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은 계속적이며 완전한 준비이기 때문입니다."

몰리노스 자신은 죄를 고백하지 않고 12년을 살았다. 

물론 이것은 가톨릭 신자로서 남긴 잘못된 교리이며 그릇된 행동이다. 


   그가 범한 두 번째 실수는, 

묵상이란 오로지 초보자들을 위한 것이기에 

크리스천 생활을 드높은 수준에까지 끌어올리고자 애쓰는 사람들은 

묵상을 버리고 그것을 관상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이 두 방법은 좋기는 하지만, 

하느님을 찾고 있는 영혼들은 

몰리노스가 말하고 있는 방법이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강요하고 있음을 

체험은 말해 준다. 

이것은 비록 이단은 아니었다해도 

몰리노스가 여타의 다른 방법보다 이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선언한 것은 

주제넘은 일이었다.


   그가 교육 수준이 높은 신비론적인 언어에 능통하고 

고도로 세련된 대중을 상대로 글을 남겼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묵상'과 '관상'이 아무런 의미조차도 부여하지 못하는 수많은 영혼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이들 영혼이 하느님을 발견하였음을 우리는 항시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에게는 수천 가지의 길들이 주어져 있다. 


예수회원들은 몰리노스를 공박하였다. 

이것은 교회 역사상 치욕적이며 불명예스러운 이야기다. 

이 공박은 오래 동안 계속되었으며 복잡한 것이었다. 

여기서 본인이 말하고 싶은 것은, 

로마에 있는 종교 재판소의 명에 따라 몰리노스가 1685년에 감금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22년 동안 감옥에 갇혀 살았고, 

재판소는 그의 저서, 강론 그리고 추종자들의 활약상에 관해 

- 1687년 초에 그의 추종자들 가운데 200명이 감옥에 갇혔음- 철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해 여름,  종교 재판소의 법령은 

몰리노스가 이단적인 교리를 가르치고 행하였음을 선언했으며, 

그의 저서와 추종자들의 저서에서 이끌어 낸 68개의 명제들을 조목조목 나열하였다. 

그 내용들은 "신심어린 이들의 귀에는 이단적, 불경적, 공격적이었으며 

무례하고 위험스러웠고 그리스도교 윤리를 파괴시키는" 것들이었다.   (p.31


   몰리노스는 무릎을 꿇고 

모든 그릇된 가르침을 저버리기로 맹세하는 대공개 의식을 치른 다음  

도미니꼬회의 한 수도원에서 종신형에 처해졌다. 

그는 끝내 죄수로서 167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죄목이었던 이단은 정적주의(Quietism)였으며,  

코사드는 이 정적주의에 매우 가깝게 물들었다고 고발되었다. 


실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이라는 저서는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오랜 기간 동안 발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에 와서 인쇄된 것을  그가 살던 당시에 설교했고,  

자신의 책에서와 같은 메시지가 들어 있는 많은 편지들을 썼다. 

그는 예수회원이었고 정적주의를 매우 적대시하였다. 

그는 몰리노스의 단죄를 확고히 하기 위해,  로마에 전적인 외교상의 압력을 가한 

루이 14세의 신하였다.


   코사드는  책들과 충고와 권고 그리고 염경기도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의 감각을 이용하는 것을  정적주의가 단죄할 때,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조심스레 정적주의와 단절한다. 

하느님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신께 이르는 데에 도움이 되는 수단들을 사용토록 하셨음을 

그는 매우 정확하게 짚었다.  (p.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