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번역 하섭내

제1장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계시며 우리는 그 말씀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가

은가루리나 2018. 8. 2. 01:08



제1장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계시며 

우리는 그 말씀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는가



p.23


   하느님께서는 

영적 지도자도 없고 영성 체계도 세워지지 않았던 까마득한 그 옛날, 

우리 선조들에게 말씀하셨듯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 시대에는 하느님의 명령이 내려지는 순간 모든 영성이 생겨났습니다. 


그 때의 영성은 그 명령을 대단히 숭고하고 세세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그 명령이 지닌 그렇게 많은 계율들과 가르침들 그리고 규범들을 포함하는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에는 우리가 필요해서 영성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좀 더 솔직하고 단순했던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다만 매 순간 충실히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영성인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으며, 

그들의 모든 주의력은 

그 의무를 차례차례로 행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시간을 가리키며 매분마다 정해진 주행공간을 이동하는 시계바늘처럼, 

끊임없이 신적 충동에 이끌리는 그들의 정신은 

부지불식간에 매일 매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제공하는 새로운 대상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가장 완전하게 자신을 내맡겼던 

마리아의 모든 행위 아래 숨겨져 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분이 천사에게 그저 

지금 말씀하신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fiat mihi secundum verbum (루카 1.38))라고 말하는 것에 그쳤을 때, 

이 대답은 그분 선조들의 모든 신비 신학을 표현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에도, 

하느님의 뜻이 어떤 형태로 계시되든지 간에, 

모든 것은 그분의 뜻에 가장 순수하고 가장 단순하게 자신을 내맡기는 것으로 

귀착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영혼의 모든 근본을 이루는 이 고결하고도 아름다운 마음가짐은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fiat mihi)라는 참으로 단순한 이 말 속에서 

경탄스러우리만큼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입술과 마음에 늘 담고 있기를 바라는 말, 

주님의 뜻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fiat voluntas tua)와 

전적으로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이 엄숙한 순간 마리아에게 요구되었던 것이 

그녀에게는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감응을 불러일으키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하느님의 뜻이 

거기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면, 

이 모든 영광스러운 광채가 그녀에게 새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그녀를 지배했던 것은 바로 이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녀의 일들이 평범한 것이든 고상한 것이든 간에, 

그것들은 

그녀의 눈에 단지 하느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게 하고 

전능하신 분의 역사(役事)하심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뭔가를 감추고 있는 

다소간 빛나는 그림자일 뿐이었습니다. 


기쁨으로 충만한 그녀의 정신은 

매 순간 그녀가 행하거나 참아 견뎌내야 하는 모든 것을, 

피조물의 외양이나 허울이 아니라 

오로지 그분에게서 오는 것으로만 양식을 취하는 마음을 

늘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그분의 손길이 베풀어주는 선물로 여겼습니다.


p.24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그녀를 당신의 그늘로 감쌌는데, 

이 그늘은 

단지 매 순간 의무나 유혹 내지는 시련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실, 

이 그늘은 우리가 자연의 이법이치 속에서 그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들처럼, 

감각적인 대상들 위에 드리워져 

우리에게 그 대상의 모습을 숨기는 베일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정신적이고 초자연적인 이법 이치 속에서, 

자신들의 어두운 외양 아래, 

유일하게 우리의 주의를 끌 가치가 있는 신의 의지라는 진실을 

감추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항상 이렇게 바라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이 그늘은 그녀의 제 능력들 위로 퍼져 나가면서 

그녀에게 환상을 품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의 신앙을 항상 변함없이 동일하신 분으로 채워주었습니다. 


대천사여, 물러나십시오. 당신은 그늘입니다. 

당신의 때는 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당신은 사라져 갑니다. 


마리아가 당신을 추월하여 당신보다 항상 앞서 가고 있으며, 

이제 당신은 그녀에게 아주 뒤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늘이라는 이런 감각적 외양 아래, 

이런 사명을 띠고 그녀 안으로 막 침투해 들어간 성령은 

결코 그녀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동정 성모 마리아께는 이처럼 외양상 눈에 띄게 특별한 점이 

별로 없습니다. 

최소한 성경에서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그런 점이 아닙니다.  


외부에 드러나는 그녀의 삶은 매우 단순하고 평범합니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사회적 신분의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고 

참아 내는 것을 참아 냅니다. 


마리아는 다른 친척들과 마찬가지로 사촌인 엘리자베스를 방문하러 갈 것입니다. 갑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호구 등록을 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갈 것입니다.갑니다.


그녀는 가난했던 탓에 외양간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헤로데의 박해로 인해 한동안 멀리 떠나 있었던 나자렛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p.25


   예수님과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그곳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성가정에 날마다 주어진 빵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와 요셉의 신앙을 살찌운 빵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의 성스러운 순간들의 성사는 무엇입니까? 

그 거룩한 순간들을 꽉 채우는 평범한 사건들의 외양 아래에서 

그들이 발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시적인 것은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과 유사해 보이지만, 

신앙이 거기에서 발견하고 식별해내는 비가시적인 것은 

다름 아닌 아주 위대한 일을 행하고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오! 천사들의 빵이여, 천상의 만나여, 복음의 진주여, 현순간의 성사여! 

그대는 외양간, 구유, 건초, 짚과 같은 비천한 모습 아래 하느님을 선사해 줍니다. 


그런데 그대는 대체 누구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까? 


주님은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신다 

(Esurientes reples bonis (루카 1.53 참조).)


하느님께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것들을 통해서도 약자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시지만,

껍데기에만 집착하는 강자들은 

중차대한 일들 속에서도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보물, 이 겨자씨, 

이 드라크마(마태 13.31, 루카 15.9 참조).를 발견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런 비결 따윈 전혀 없습니다. 


이 보물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하느님처럼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친구와 원수 할 것 없이 모든 피조물들은 이 보물을 마구 퍼부어 

이 보물이 우리 심중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몸과 영혼의 모든 기능들을 통해 이것을 흘려보냅니다. 


입을 열어보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입 안은 이 보물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네 입을 한껏 벌려라, 내가 채워 주리라” (시편 81.11) 참조.


하느님의 활동은 우주를 가득 채우고, 모든 피조물에 스며들며, 

피조물 위를 떠돕니다. 


피조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하느님의 활동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활동은 

피조물을 선행하고, 피조물을 동행하며, 피조물을 뒤따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활동이 일으키는 파도에 실려 가도록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왕들과 그의 대신들, 교회와 세상의 우두머리들, 

성직자들, 군인들, 부르주아들 등, 

한마디로 말해 모든 인간들이 

이 드높은 거룩함에 얼마나 쉽게 다다를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면 

참으로 좋으련만! 


그들에게는 그저 

그리스도교 신앙과 그들의 사회적 처지에 따른 단순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그에 결부된 십자가를 순순히 껴안고, 

그들이 구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그들 앞에 나타나 그들로 하여금 

행하고 참아내게 만드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신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렇게 많은 영성법들이 생겨나고 

그토록 많은 스승들이 존재하기 오래 전에 

선조들과 예언자들을 거룩하게 만들었던 영성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시대와 모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영성으로 

이들은, 

영혼의 유일한 지도자이신 하느님께서

교회법이든 군주법이든 간에 이에 복종하도록 

매순간 영혼들에게 행하게 하거나 견뎌내도록 하시는 것을 

그저 단순히 사용함으로써만 행사함으로써만 보다 더 고귀하고, 더 특별하며, 

동시에 더 수월한 방식으로 확실히 성화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성직자들은 성사를 볼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매 순간 그들의 수중에 떨어지는 나머지 모든 일에 대해서는 

성직자들이 없이도 지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도 쉼 없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방법들을 모색하는 단순한 영혼들은 

그들을 통제하는 것을 즐기는 몇몇 성직자들이 

그들에게 쓸데없이 부과하는 힘겹고 위험한 짐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