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번역 하섭내

새번역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제5장 순수한 신앙 상태에 대하여

은가루리나 2018. 8. 4. 15:59


p.51


제5장


순수한 신앙 상태에 대하여




   순수한 신앙 상태란 

하느님과 그분의 활동에 우리의 마음을 결합시켜주는 유일한 행위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섞여있는 그런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모인 삼덕(三德)은 

이제는 오로지 하나의 유일한 덕일 뿐이고, 

단지 하나의 유일한 행위일 뿐이며, 

하느님을 향한 하나의 유일한 심적 고양이자

그분의 활동에 대한 단순한 내맡김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거룩한 혼합을, 이 영적 본질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어떻게 이 거룩한 혼합에 그것의 본성과 관념을 잘 나타내주고, 

그 삼덕의 일체성(一體性)을 이해시켜줄 수 있는 그런 이름을 찾아줄까요? 


이 삼덕은 이제는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향유하고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것일 따름입니다. 


우리는 이 경배할 만한 대상인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에게서 모든 것을 희망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순수한 사랑, 순수한 희망, 순수한 믿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순수한 믿음이라는 명칭은 

이 신비주의적 일체성을 가리키는 말에 남아있습니다. 


자칫했으면 

이 명칭으로 대신덕(對神德)을 의미할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하느님 쪽에서 보면 이보다 더 확실한 신앙 상태가 없고, 

마음 쪽에서 보면 이보다 더 이해관계를 떠난 상태가 없습니다. 


하느님과 마음의 결합으로 말하자면, 

이 결합으로 하느님 편에서는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고, 

자유로운 마음 편에서는 두려움과 희망이 가미된 확신을 갖게 됩니다.




   오, 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삼덕의 바람직한 일체성이여! 


거룩한 영혼들이여, 

그러니 믿으십시오, 희망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단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선물한 성령이 

여러분 마음속에 일으키는 단순한 터치를 통하여 그렇게 하십시오. 


이것은 바로 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름부음을 받는 것으로, 

이는 성령이 여러분 마음 가운데 뿌려주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신비주의적인 말씀과 계시, 

예정된 운명과 그것의 온갖 복된 결과에 대한 증표가 여기 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정녕 하느님께서는 올바른 마음을 지닌 이들에게 참으로 좋은 분이시다!

(“Quam bonus Israë̈l Deus his qui recto.” (시편 73.1) )

 

p.52


   사랑으로 불타는 영혼들에 대한 이 터치를 

순수한 사랑이라 부르는 까닭은 

충만한 신뢰감과 깨달음과 함께 영혼의 모든 제 기능 위로 

격류처럼 넘쳐흐르는 환희 때문입니다. 


그러나 압생트 술에 취한(애가 3.15 참조. 

“그분께서 나를 고통의 쓴 맛으로 배불리시고, 압생트 술로 취하게 하셨네.”)



영혼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터치는 순수한 믿음이라 불립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밤의 어두움이나 그림자가 온전히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사랑은 보고, 느끼고 그리고 믿습니다.

순수한 믿음은 보거나 느끼지 않고도 믿습니다. 


자, 바로 이것이 순수한 사랑과 순수한 믿음 간의 차이입니다. 

이 차이는 그저 같지 않은 겉모습에 토대를 두고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순수한 믿음 상태에 사랑이 결여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사랑의 상태에도 믿음과 내맡김이 결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용어들은 이런 상태에서 가장 지배적인 성격을 감안할 때 

각 상태를 가장 지배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비추어 볼 때 

거기에 잘 들어맞습니다. 


성령의 이런 터치 하에 이 삼덕(三德)을 서로 다르게 배합하여 

온갖 초자연적이고 고상한 상태에 다양성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 삼덕을 한없이 다양하게 배합하실 수 있는 까닭에, 

모든 영혼은 이런 소중한 터치가 있을 때 

각자 자신에게 고유한 몇몇 특성을 예외 없이 부여받습니다. 


그러나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그것은 여전히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니 말입니다. 


내맡김은 일종의 이러한 터치들이 있을 때에 

보편적인 덕들을 부여받기 위한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모든 영혼들은 하느님의 작용 하에서 

동일한 종류의 동일한 상태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 하느님과 결합할 수 있고, 

모두 그분의 활동에 자신들을 내맡길 수 있으며, 

모두 자신을 내어놓은 신부가 될 수 있고, 

모두 그들 각자에게 고유한 상태를 성령의 터치를 통해 받을 수 있으며, 

모두가 마침내는 하느님의 왕국을 발견하고 

그 왕국의 영광과 그곳에서의 놀라운 특권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곳은 모든 영혼이 각각 하나의 왕관을 열망할 수 있는 왕국입니다. 


사랑의 왕관이든 믿음의 왕관이든 상관없이, 

그것은 여전히 하나의 왕관이며, 

그곳은 여전히 하느님의 왕국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어떤 왕관들은 암흑 속에 있고, 

또 다른 어떤 왕관들은 빛 속에 있다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한 번 더 말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우리가 하느님이나 그분의 활동과 하나가 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우리가 찾는 것이 그런 상태에 대한 명칭입니까? 

그런 상태의 고귀함이나 훌륭함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찾는 것은 하느님 바로 그분 자신과 그분의 활동입니다. 

그 방식이 어떠하든 영혼은 이에 완전히 무관심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모든 영혼들에게 

순수한 믿음이나 순수한 사랑의 상태, 

십자가의 또는 어루만지듯 오는 은총의 상태에 대해 전하지 맙시다. (p.53)


그런 것은 

모든 영혼들에게 똑같이 동일한 방식으로 주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단순한 마음을 지닌 모든 영혼들을 선도하여 

신적 활동 전반에 그들 자신을 내맡기도록 만듭시다. 


그리고 그들에게 들려줍시다, 


이 신적 활동이 

그들을 위해 영원으로부터 선택하고 준비한 독특한 상태를 

그들은 이러한 방식들을 통해 부여받게 되리라고 말입니다. 


고도의 완덕 때문에 비탄에 빠지거나 낙담하는 사람이 없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이 완덕으로 부르시고, 

이들 모두에게 당신의 아버지 뜻에 순종할 것과 

당신의 신비체를 구성하는 일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이 신비체의 지체들은 

자신들의 뜻과 예수님의 뜻이 완전히 일치하는 한에서만 

진실되이 그분을 자신들의 머리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 온유하고 다정한 구원자로부터 오는 완덕에로의 초대는 

그렇게 어렵거나 그렇게 특별한 뭔가를 전혀 요청하지 않는다는 점을 

모든 영혼들에게 끊임없이 반복해서 들려줍시다. 


그분이 요구하시는 것은 절대로 그들의 노고가 아닙니다. 


그분이 오로지 바라시는 바는 

당신의 뜻에 일치하는 그들의 선한 의지일 뿐으로, 

이는 이 일치의 정도에 따라 

그들을 인도하고 지도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기 위해서입니다.  


p.53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영혼들이여,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만을 원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느님 홀로 다스리시는 이 왕국, 이 보물을 찾는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친다면

그 순간부터 여러분의 마음은 

여러분이 그토록 갈망하고 찾던 이 보물* (마태오 6.21 참조.), 

바로 이 하느님의 왕국 자체가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봄과 동시에 

바로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즐겨 누립니다. 


그리고 이때 우리가 맛보는 기쁨은 

우리가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 대해 품는 갈망에 부응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기를 갈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사랑하는 까닭에, 

우리는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구현될 수 있도록 

그분 활동의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적 활동에 상응하는 것은 

단순하고 거룩한 영혼의 재주가 아니라, 영혼의 의지입니다. 


신적 활동은 

우리가 취하는 조치, 우리가 세우는 계획들, 

우리가 숙고하는 방식, 우리가 선택한 방법들이 아니라 

우리 의도의 순수성에 부합합니다. 


영혼은 이 모든 점에서 잘못 생각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일이 그에게 빈번히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의 올곧음과 그의 좋은 의도는 

절대로 그를 기만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일단 영혼 안에서 이런 바람직한 마음가짐을 보기만 하시면,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좀 더 확실한 목적이 그의 선한 의지를  뒷받침할 경우, 

영혼이 향후 어김없이 행하게 될 일을 이미 행해진 것으로 간주합니다. 


p.54


   따라서 선한 의지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만일 영혼의 선한 의지가 추락한다 하여도, 

그는 그의 온갖 방황 속에서 그를 이끌고 그를 지탱해줄 

이 전능하신 분의 손길 안에 떨어질 뿐입니다. 


영혼이 목적지에서 멀어질 때 그 목적지를 향해 가도록 그를 인도하고, 

그가 가야 할 길을 이탈했을 때 그를 다시 그 길 위로 데려다 놓는 것이 

바로 이 전능하신 분의 손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손길은 영혼의 맹목적인 눈먼 제 기능들의 노력과 노고로 인해 

영혼이 빠지게 되는 일탈 행위 속에서 

늘 그 타개책을 찾아냅니다. 


맹목적인 눈먼 제 기능들로 말할 것 같으면, 

영혼으로 하여금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들뿐만 아니라, 

그로 하여금 오로지 전능하신 분에게만 의지하고 

그분의 확실한 이끄심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노력과 노고를 얼마나 멸시해야 하는지를 

느끼도록 만듭니다. 


따라서 

착한 영혼들이 저지르게 되는 과오는 늘 내맡김으로 종결되며, 

선한 마음은 절대로 틀릴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 로마 8.28.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님이여, 

제가 전하는 것은 내맡김이지 어떤 특별한 상태가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영혼들이 놓이게 되는 모든 상태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는, 

어떤 한 상태를 다른 상태보다 특히 선호하는 일없이, 

당신께서 모든 영혼들을 위해 계획하신 그 상태에 

각각의 영혼이 도달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하나의 보편적인 방법을 가르칩니다. 


저는 그저 모든 영혼들에게 

당신의 이끄심에 온전히 자신들을 내맡기고자 하는 의지만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반드시 그 영혼들을 

그들에게 있어 최고로 훌륭한 상태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제가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내맡김, 신뢰심, 믿음과 같은 신앙심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신적 활동의 대상이나 도구가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고, 

이 활동이 매 순간 모든 것들 가운데에서, 

영혼의 선한 의지가 좀 더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동시에 모든 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가르치는 신앙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신앙과 순수한 사랑의 어떤 특별한 상태가 아닌 

일반적인 상태로서, 

이 상태에 의해 모든 종류의 영혼들은 

은총이 그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거룩한 형상과 분명 차이를 보일 그런 부류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88 


p.55


   저는 앞에서 힘겨워하는 영혼들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모든 영혼들에게 말합니다. 


모든 이들에게 속하고,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모든 이들에게 복음의 비밀을 전하고, 

모든 이들에게 모든 것이 되는 것.86

제 마음이 지닌 참된 본능입니다. 

86 역자 주 : 모든 종류의 영혼들은 장차 은총에 의해 그들에게 주어질 거룩한 상태나 조건과 관계가 없는 

지극히 개별적인 선택들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런 다행스런 마음가짐으로, 

저는 우는 이들과 함께 울고,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며87 (로마 12.15.)

무지한 이들과는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박식한 이들과는 

좀 더 현학적이고 좀 더 격조 있는 용어들을 사용하여 대화하는 것을 

제 의무로 삼았고, 

이를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완수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든 이들에게 그들 모두 동일한 은총들이 특별한 사물들이 아니라, 

동일한 사랑, 동일한 내맡김, 

동일하신 하느님, 그분의 동일한 업적을 요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그들 모두가 차별 없이 빼어난 성덕을 바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는 모든 이들에게 그들 모두 동일한 개별적인 것들이 아니라, 89

동일한 사랑, 동일한 내맡김, 동일하신 하느님, 그분의 동일한 업적을, 

그리고 이를 통해 그들 모두가 차별 없이 빼어난 성덕을 열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특별하고 특권적인 은혜라고 일컫는 것이 그러한 연유는 일컫는 이유는 

단지 그런 은혜를 받기에 합당할 만큼 

충분히 신실한 영혼들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점을 최후 심판의 날에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아아! 우리는 그날에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은혜들이 허락되지 않은 것은 

하느님께서 이를 유보하셨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이 풍성한 은혜가 영혼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순전히 영혼들 자신의 잘못에 기인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늘 한결같은 선의로 완전히 순종했다면 

얼마나 좋은 것들이 그들 마음속에 넘치도록 흘러들었을 것인가!




   신적 활동의 경우나 예수님의 경우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지도 공경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은, 

그분이 모든 이들에게 베풀었던 은혜를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사람들이 탓할 수 있는 건 자신들의 사악한 마음가짐뿐입니다. 


그리고 사실이지, 

모든 이들이 똑같이 숭고한 상태, 똑같은 은사, 

똑같은 수준의 탁월성을 열망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모든 사람이, 은총에 충실하면서, 

각자 자신의 능력에 맞게 이에 응답한다면, 

모두가 만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 다 자신들의 갈망을 한껏 만족시켜 줄 

탁월하고 은혜로운 그런 지점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본성과 은총에 따라 만족할 것입니다,


이 소중한 특혜에 대한 갈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내는 탄식 속에 

이 본성과 은총이 합쳐질 테니까 말입니다.


86 역자 주 : 모든 종류의 영혼들은 장차 은총에 의해 그들에게 주어질 거룩한 상태나 조건과 관계가 없는 지극히 개별적인 선택들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87 1고린토 9.22.

88 로마 12.15.

89 역자 주 : 모든 영혼들이 동시에 어떤 개별적인 상황에 똑같이 놓이기를 갈망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모든 영혼들은 동시에 똑같이 기쁘거나 슬프기를 바랄 수 없다.



p.56


   만일 우리가 어떤 상태에 고유한 본능을 부여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어떤 상태에 고유한 본능을 부여받게 될 것입니다.


순수한 믿음은 그 상태에 고유한 본능들을 가지고 있고, 

다른 상태들 또한 그것들에 고유한 본능들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이 상태들을 구별지어 줍니다.


자연계에 있는 만물은 

각각 자신의 종에 어울리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즉 각각의 꽃은 자신만의 매력을, 각각의 동물은 자신만의 본능을, 

각각의 피조물은 자신만의 완전함을 지닙니다. 


이처럼 다양한 은총 상태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각각 자신만의 특별한 은총을 누립니다. 


그리고 이들 개개인의 선의(善意)와 섭리에 의해 

그들 각자에게 주어진 상태가 조화를 잘 이루는 이들 각각에게는 

상급(賞給)이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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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의 마음속에 선한 의지가 형성되자마자 

영혼은 신적 활동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 신적 활동은 영혼의 내맡김 정도에 따라서 

그에 대한 작용에 다소간 차이를 보입니다. 


자신을 내맡기는 기술은 단지 사랑의 기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찾아 얻으며, 

사랑이라면 우리는 그 무엇도 거절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사랑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사랑이 원하는 것만을 요구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사랑이 원하는 것을 사랑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까? 



신적 활동은 단지 영혼의 선한 의지만을 고려합니다. 


다른 재능들이 지닌 역량이 신적 활동을 끌어당기는 것도 아니고, 

그 재능들의 역량 부족이 신적 활동을 멀어지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적 활동이 

착하고, 순수하고, 바르고, 단순하고, 순종적인데다, 

자식과도 같으며 공손한 그런 마음을 찾고 있습니까? 


바로 이것만이 신적 활동에 필요한 전부입니다. 

이런 마음을 찾게 되면, 

신적 활동은 이 마음을 차지하고, 그의 모든 재능들을 소유합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이 영혼을 위해 너무나 잘 준비가 되어져 있는 까닭에 

영혼은 모든 것 안에서 자신을 성화시켜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합니다. 


다른 영혼들에게는 죽음을 안겨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설령 이 영혼 안으로 들어온다손 치더라도, 

해독제와 같은 그의 선한 의지가 

반드시 그 치명적 물질의 효력을 멈추게 할 것입니다. 


만일 이 영혼이 벼랑 끝에 이르렀다면, 

신적 활동이 그를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끌 것이고, 

행여 거기 그대로 영혼을 방치해둔다면, 

최소한 그 영혼이 추락하지 않도록 막을 것입니다. 


만일 이 영혼이 거기에서 떨어진다면, 

신적 활동은 그를 그곳에서 구해낼 것입니다. 


결국 

이 영혼들의 허물은 단지 나약함에서 오는 허물에 불과하고 

좀처럼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늘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이 허물들을 변화시킬 줄 압니다. 


신적 예지에서 오는 섬광처럼, 

사랑은 은밀한 암시를 통해 

영혼들에게 상황에 따라 그들이 말하고 행해야 하는 바를 들려줍니다 

(그것들을 행하는 이들은 빼어난 슬기를 얻으리라 88 로마 12.15.

    p.57


"지혜의 근원은 주님을 경외함이니 

그것들을 행하는 이들은 빼어난 슬기를 얻으리라. 


그분에 대한 찬양은 영원히 존속한다."(시편 111,10)


실제로 이 신적 예지는 

그들의 모든 행동거지에 있어 그들을 동행하고, 

그들의 단순함으로 인해 발을 들여놓게 되는 모든 궁지에서 

그들을 구해냅니다. 


이 영혼들이 자신들에게 해가 될 수도 있는 어떤 일에 개입될 것 같으면, 

섭리가 

이 모든 것을 바로잡아 줄 적절한 만남들을 그들을 위해 마련합니다. 


아무리 이 영혼들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고 이를 무수히 되풀이해도 

소용없습니다. 


이 섭리가 이 음모의 모든 연결고리들을 끊고, 

음모를 꾸민 장본인들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며, 

이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영을 이들 위에 퍼뜨려 

이들 스스로 자신이 만든 함정 속에 빠지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거기에서 그들이 기습하고자 했던 이 영혼들은, 

섭리의 인도 하에, 

외양상 무척 쓸데없어 보이는 어떤 일들을 무심코 행하는데, 행하게 되는데 

이 일들은 다음 순간 

그들의 올곧음과 그들의 원수들의 악의로 인해 

그들이 빠지게 되는 모든 곤경으로부터 그들을 벗어나게 해줄 것입니다.




   오, 이 선한 의지는 얼마나 세련된 전략입니까! 


그의 단순함 속에는 신중함이, 

그의 순진함과 솔직함 속에는 능수능란함이, 

그의 올곧음 속에는 신비와 비밀이 자리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

젊은 토비야를 보십시오. 

그는 한낱 아이일 뿐이나, 라파엘 대천사가 그의 곁에 있습니다. 

이런 인도자와 함께라면, 그는 담대히 나아갈 뿐만 아니라, 

그 무엇도 그를 두려움에 떨게 하지 못하며, 

무엇 하나 그에게 부족한 것이라곤 없습니다. 


그에게 식량과 약을 제공해주는 것도 

다름 아닌 그가 길에서 맞닥뜨린 괴물들입니다. 

그를 집어삼키기 위해 그에게 달려든 괴물 자신이 그의 양식이 됩니다. 


그의 정신은 온통 혼례와 혼인 잔치에만 쏠려 있는데, 

그 까닭은 그것이 섭리의 질서 안에서 그의 현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신경 써야 할 다른 일들이 없어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만사에 있어 그를 조력할 임무를 띤 이 영적 존재에게 

이 모든 일들이 일임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일들은 더 바랄 나위 없이 성공적으로 잘 이행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단지 축복이자 행운일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어머니는 울며 통곡하고, 극도의 쓰라린 고통 속에 놓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믿음으로 충만하고, 

자기 온 가족과 더불어 위로와 기쁨에 넘친 아이는 

곧바로 극도의 행복한 상태에 빠져듭니다.


p.58


   주님, 

다른 이들로 하여금 당신께 온갖 종류의 은사를 청하게 하시고, 

그들의 말과 기도가 한없이 늘어나도록 하십시오! 


저의 하느님, 

저는 저를 위하여 당신께 단 한 가지 은사만을 청하오며, 

제가 당신께 올릴 수 있는 기도는 

“저에게 깨끗한 마음을 주십시오!”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오, 깨끗한 마음이여, 그대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대는 그 마음 안에서 그대의 강렬한 신앙을 통하여 하느님을 봅니다. 


또 그대는 

그대의 안팎에서 역사(役事)하시는 하느님을 만물 안에서 매 순간 봅니다. 


그대는 만사에 있어 그분의 대상이자 도구이며, 

그분은 만사에서 그대를 인도하시고 그대를 모든 것에로 이끄십니다. 


대개의 경우 

그대는 그것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그분께서는 그대를 위해 그것을 생각하십니다. 


그분의 명령으로 그대에게 일어나는 그리고 일어나야만 하는 일은, 

그대가 그것을 바라는 것만으로 그분에게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그대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놀란 그대는 그대 안에서 이 바람을 애써 꿰뚫어보고자 하지만, 

그대는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오! 그러나 그분은, 정말이지 그것을 잘 보십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이리 단순합니까! 



그대는 처분에 따를 준비가 잘 되어있는 마음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정녕 모르는 것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하느님께서 거처하고 계시는 마음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마음 안에서 이 모든 성향들을 보시고, 

이제부터는 

이 마음이 항상 당신의 명령에 순종하리라는 것을 아십니다. 



이와 동시에 

하느님께서는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것이 무엇인지 

그다지 아는 게 없음을 보시고, 

당신께서 맡아서 그대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하느님께는 

그대가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게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그대가 동쪽으로 가고자 하면, 그분은 그대를 서쪽으로 이끄십니다. 


만일 그대가 정말로 암초에 부딪쳐 좌초할 것 같으면, 

그분은 배의 키를 돌려 그대를 항구로 인도하십니다. 


그대는 지도나 항로, 바람이나 조수에 대해 무지하지만, 

늘 운 좋게 항해를 계속해 나갑니다. 


만일 해적들이 그대를 막아서면, 

예상치 못한 돌풍이 일어 

순식간에 그대를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데려다 놓습니다.



 

   오, 선한 의지여! 

오, 깨끗한 마음이여! 


예수님께서 그대를 진복팔단 가운데 두셨을 때 

그분께서는 그대가 있어야 할 자리를 얼마나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까! 


하느님을 소유하고, 하느님의 소유가 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매력 넘치는 감미로운 상태여! 

영혼은 거기에서 섭리의 품에 안겨 평화로이 잠들고, 

거기에서 신적 예지로 천진난만하게 뛰놉니다 89

89 역자 주 : 모든 영혼들이 동시에 어떤 개별적인 상황에 똑같이 놓이기를 갈망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모든 영혼들은 동시에 똑같이 기쁘거나 슬프기를 바랄 수 없다.


도중에 멈추는 것이 절대 허용되지 않는 항해, 도중에 어떠한 중단도 겪지 않고

계속해서 암초와 해적들 

그리고 줄기차게 불어대는 폭풍우를 뚫고 나아가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이루어지는 자신의 항해가 

성공하느냐 마느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고 말입니다.


p.59


오, 깨끗한 마음이여! 

오, 선한 의지여! 

그대는 모든 영적 상태를 지지하는 유일한 기반입니다. 


바로 그대에게 

순수한 믿음, 순수한 소망, 순수한 신뢰, 순수한 사랑의 은사가 주어졌고, 

바로 그대에 의해 이 은사들이 성장합니다. 


바로 그대의 나무줄기에 사막의 꽃들이, 

다시 말해서 

완전히 초연한 영혼들 안에서만 꽃을 피우는 소중한 은총들이 접목되었습니다. 


이 초연한 영혼들은 하느님께서,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거주지에서처럼, 

다른 어떤 물건 하나 들여놓음이 없이 마련한 당신의 거처이십니다


그대는 

신랑의 화단과 신부의 정원에 물을 대는 모든 시냇물의 원천인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아아! 그대는 정말이지 모든 영혼들에게 이렇게 말해도 될 것입니다. 


“저를 잘 보세요! 

항상 최상의 것을 식별해내어 그것에 온 정신을 쏠리게 하는 이 사랑, 

이 아름다운 사랑 (집회 24.18.)을 낳는 것이 바로 저이고, 


악을 혐오케 하는 효력을 지닌 이 부드러운 뿌리를 생기게 하고, 

정신적 장애를 겪지 않으면서 문제 없이 이 악을 피해가도록 하는 것도 바로 저이며,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을 공경하는 미덕에 대한 상급(賞給)을 발견케 하는 이 아름다운 지식이 

잘 피어나도록 하는 것 또한 저이고, 


언젠가, 

지금처럼 그러나 더 달콤하게, 

신실한 영혼들이 누리게 될 지복을 가져다 줄 이 거룩하신 분에 대한 향유,

그리고 이 분을 기다리는 동안 끊임없이 선을 행하도록 하는 

이 지극히 거룩한 희망으로 늘 생기를 띠는 이 열망, 

이 열렬한 바람을 일으켜주는 것도 바로 저입니다."



그대는 이 모든 영혼들을 그대 곁으로 가까이 오도록 초대하여 

그대의 무궁무진한 보화로 이들을 부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영혼들의 모든 영적 상태와 모든 영적 행로는 

바로 그대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영적 행로들은 

바로 그대 안에서 영혼들에게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매력적인 보화를 제공하고, 

바로 그대의 보물창고로부터 이 보화들을 끌어올립니다. 


그 길의 도처에서 우리가 개화를 목도하고

그 길에서 우리에게 자양을 공급했던 

이 온갖 종류의 놀라운 은총과 미덕의 열매들은 

단지 우리가, 마치 낙원으로부터 이식하듯, 

옮겨 심은 그대의 묘목으로부터 수확한 것입니다. 


그대의 대지 위에 젖과 꿀이 흐르고, 

그대의 젖가슴이 젖을 분비하며, 

그대의 가슴에서 몰약 다발을 따고 (아가 1.13 참조.) 

“나의 연인은 내게 몰약 주머니 내 가슴 사이에서 밤을 지내네.”

그대의 손가락으로부터, 

보통은 눌러야만 추출해낼 수 있는 리쾨르 술이 

완전 정제된 형태로 풍부히 흘러내립니다.




   그러니 자, 사랑하는 영혼들이여, 

우리를 부르는 이 사랑의 어머니에게로 달려갑시다, 

아니 날아갑시다!

무엇을 기다리는 것입니까?    p.60


당장 달려 나가, 

하느님 안에, 그분의 성심 바로 그 안에 몸을 숨기고, 

이 선한 의지로 흠뻑 취해봅시다! 


주님의 성심 안에서 천상 보화의 열쇠를 얻어냅시다! 


그리고 바로 천국을 향해 우리의 길을 떠납시다. 

혹여 이 길이 닫혀있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접어두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열쇠가 천국으로 인도하는 모든 문들을 

우리에게 활짝 열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뚫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비밀스런 곳은 전혀 없습니다. 


정원, 지하저장실, 포도밭* (아가 4.12, 2.4, 2.15 참조.)

그 어느 곳도 우리에게 닫혀있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시골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다면, 

그곳을 그저 한 바퀴 돌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결국에 우리는 이 다윗의 열쇠, 이 지식의 열쇠, 

거룩한 지혜가 감춰둔 심오한 보물이 매장되어 있는 이 심연의 열쇠를 가지고 

마음대로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할 것이며,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할 것입니다 *

(묵시록 3.7, 루카 11.52, 묵시록 9.1, 지혜서 7.14 참조.)



우리는 또한 이 거룩한 열쇠를 가지고 

신비스런 죽음과 그 죽음의 신성한 암흑의 문들을 엽니다.


그리고 바로 이 열쇠로 깊은 구렁과 호수와 사자 굴로 내려갑니다* 

(이사야 14.15, 다니엘 6.17 참조.) 


이 영혼들을 다시금 이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으로 밀어 넣었다가 

무사히 빠져나오도록 해주는 것도 이 열쇠입니다. 


예지와 빛이 자신들의 거처로 삼는 이 복된 처소로 우리를 인도해주는 것도 

바로 이 열쇠입니다. 


그 처소에서 신랑은 서늘한 곳에 자리를 잡고 대낮의 휴식을 취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신랑을 봄과 동시에, 어떤 지략을 써야 그의 입맞춤을 받아낼 수 있고, 

그의 신방으로 가는 계단을 자신 있게 올라갈 수 있는지를, 

그리고 또 바로 그곳에서 사랑의 비밀을 배우게 되리라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아가 1.1~6 참조..)


오, 덧없는 인간의 입으로는 도무지 형용할 수 없는, 

결코 누설되어져서는 안 될 거룩한 비밀이여!


p.60


   그러니 친애하는 영혼들이여, 우리 사랑하도록 합시다! 

우리를 부요케 부유케 해 줄 이 모든 재산은 단지 사랑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은 성성(聖性)을 부여하고, 성성을 동반하는 모든 것을 제공합니다. 


성성은 사랑의 좌우에 자리를 잡고, 

온갖 거룩한 사랑의 토로에 표출에 열려있는 모든 마음 안에 

성성이 사방으로부터 흘러들어가도록 합니다.


오, 거룩한 영원의 씨앗이여! 

그대를 아무리 찬미한다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장황하게 그대에 대해 말하는 것일까요? 


보잘 것 없는 말로 그대를 찬양하기보다 

침묵 가운데 그대를 소유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은데 말입니다. p.61



아니, 제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 


그대를 찬양해야 합니다.  

그저 그대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그대를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대가 어떤 사람의 마음을 차지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에게는

읽고, 쓰고, 말하고, 행동하고 또는 그 반대되는 일을 하는 이 모든 것이 

결국 다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갈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피하지 않으며, 

은둔자였다가 사도가 되고, 

건강했다가 아프기도 하며, 

우둔하게 굴다가 달변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요컨대 우리는 그대가 우리의 마음에 구술해주는 그 모든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대의 충실한 메아리인 마음은 

다른 기능들에 이를 되풀이해 전달합니다. 


그대가 무척이나 그대의 왕국으로 간주하고 싶어 하는 

이 영적 물질적 혼합체 안에서, 

그대의 비호 아래 지배자로 군림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은 

그대가 그에게 불어넣는 본능 이외의 여타 다른 본능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까닭에, 

그대가 그에게 제공하는 대상이라면 

어떤 대상이든 모두 그의 마음에 듭니다. 


본성이나 악마가 그걸 그것으로 대체하기 위해 불어넣는 대체하고 싶어 하는 본능들은 

오로지 마음에 역겨움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행여 그대가 가끔이라도 

이런 나쁜 본능이 마음을 기습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이는 마음을 좀 더 현명하고 좀 더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