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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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나의 아버지시다.
그 반면 영원히 존속하지 못하는 것이 체제이다.
인간들의 역사에서, 자기네 이념과 계획을 고정시키고자 하는 힘겨운 노력에서 만들어지는
체제는 그 이념과 계획을 실천하는 데 필수적이며 불가결한 통제수단이다.
체제는 인간을 교육하는 가정, 학교, 신학교로 나타나고, 대인관계를 규제하는 법률로 나타
나며, 관습과 전통과 문화, 직위와 신분, 본당과 교구와 성전, 읍과 시와 국가가 된다.
사랑은 결코 낡아지는 법이 없는 데 비해, 체제는 시대가 흐르면 낡아질 염려가 있다.
더 좋지 않은 일은, 그것이 장애물이 되고 불필요해져서 거치적거리기 쉽다는 것이다.
기존 신학교들은 여전히 종전 방식대로 운영되고 그 숫자도 여전하다.
그러나 그 속은 텅텅 비어 있다.
많은 법과 조문들이 여전히 법전에 실려 있지만 아무 쓸모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습이 변하기 때문이다.
여기 미묘한 예화 하나 들겠다. 몇 해 전 12월 13일의 일이었다.
성탄절이 열이틀 남았고, 우리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의 구유에 각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다.
마을에 순례자 두 명이 들어왔다. 사회활동가들로 스물여덟 살 난 프랑스 사람과 스물 다섯 살
된 캐나다 사람이었다. 그들은 도보로 로마순례에 나선 길이었고, 성탄절까지는 로마에 도착
하여 그곳에서 성대한 성년(聖年)의 개막식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가난한 사람의 처지가 어떤가를 몸소 겪어보겠노라고 청빈 정신으로 여행해보겠노라고 해서
주머니도 두둑하질 못했다. 무전여행에 가까웠다.
우리 마을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올린 뒤 두 사람은 수도원과 자선 단체를 찾아다니며 숙식을
청했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지는데로 잘 곳을 얻지 못했다. "시간이 넘었습니다. 문을 닫았습
니다. 자리가 없는데요. 옆집으로 가보시지요. 윗동네로 올라가보세요. 아랫동네로 내려가
보세요..."
두 사람은 마음이 울적한 채로 동구 밖으로 나갔다. 들에 마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여행중인 노르웨이 사람들이 막 잠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네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 비좁은 마차에서 추운 겨울 밤을 지낼 수 있었다.
두 노르웨이인은 프로테스탄트였다.
여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웅장하고 거대한 수도원 건물과 자선기관이 베풀지 못한 친절이
옹색한 마차에서는 서슴없이 베풀어졌던 것이다. 누가 사랑을 아는가?
우리 마을 사람들이 질시하는 뜨내기 프로테스탄트들은 아직 '너'라는 것을 알았지만,
경건한 수도원들과 웅장한 자선기관에는 더 이상 '너'를 받아들일 자리가 없었다.
종각이 있고, 거창한 대문이 있고, 규칙이 있고, 침범당하지 않는 평화와 귀챦은 적자들이
흐트러뜨리지 않는 완벽한 질서가 거기 있었다. 그러나...
제도가 우선권을 갖고 우위를 차지한다.
인간은 움츠러들고 밖으로 밀려난다.
가난한 사람은 갈 곳이 없다.
그 제도와 체제 속에는 가난뱅이를 생각해줄 사람이 따로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도 똑같은 일이 생겼었다.
성전이라는 체제도 그분을 모셔들이기에는 너무도 거창하였다.
그분을 알아보기에는 너무도 무디고 매정하였다.
그 귀챦은 분을 보기 싫어서 아예 죽여 없앴다.
하지만 이야기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옛날 사람이라고 우리보다 못된 인간들이
아니었다. 우기가 그들보다 나을 것이 도시 없다.
아담에게서 비롯하여 이 땅에 살고 갈 마지막 인간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심성이란
여일하다.
언제나 어떤 문들은 열려져 있고 어떤 문들은 늘 굳게 잠긴 채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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