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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에 대한 글들 (김창렬주교님 메시지) ▣ 보조교사방

은가루리나 2018. 8. 22. 15:39

moowee 등급변경▼조회 329 추천 0 2017.06.01. 16:22



[김창렬 주교님]


'죄와 죽음의 근원이요 지배자인 마귀''


(2000년 부활절 사목 서한) 




+ 찬미 예수 

주님 안에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천주 강생 제2천년대 최초의 예수 부활 대축일을 오늘 우리는 경축하고 있습니다. 인류 구원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의 부활 대축일을 오늘 우리는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은혜롭고 뜻깊은 새 천년대의 첫 사순절을 지내는 동안 예수님의 파스카의 신비를 깊이 마음에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사순시기를 예수님이 당하신 유혹 사건으로 시작하여 그 유혹자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로 끝나게 하는 전례의 정신과 의미를 되새기면서 내 생각은 자연히 '죄와 죽음의 근원이요 지배자인 마귀'(세례 예식서 참조)에게로 쏠리게 되었고, 그러는 가운데 그놈이 이번 내 서한의 주제가 되게 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1. 사탄 그것은 건드려서 안될 존재인가 

오늘 우리 교회 안에서의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는 성직자, 수도자, 또는 평신도의 구별없이 거의 모든 신자들이 생각하기를 피하고 말하기를 꺼려하며 듣기를 싫어하는 대상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사탄,' '마귀,' '악마,또는 '악령'이라고 불리우는 그 존재입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보다도 먼저 형제 자매님들께 당부하고 싶은 것은 그 실재를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대하시라는 것입니다. 강생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것이 바로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고 그 근원이요 지배자인 마귀로부터의 속량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분의 부활은 그것들에 대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승리와 개선이 아니면 다른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이 예수님과 인류의 적대자이고, 구원사업의 방해자이고, 죄와 죽음의 조성자이며, 세상과 육신의 조정자인 마귀에 대해서 어찌 모른체 외면하거나 침묵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말할 필요도 없이 사람이 되신 말씀께서는 인류 구원사의 주역이십니다. 그러나, 인정하거나 말거나, 사탄도 역시 그 구원사에서 중요한 한 몫을 차지하는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일단의 천사들을 사탄의 처지로 추락케 한 것은 다름아닌 하느님의 뜻에 대한 교만, 불순명, 반항심이었습니다. 사탄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서도 그 못된 본성을 발휘하여 성공하였습니다. 인류의 타락과 이에 따른 모든 피조물의 저질화는 그놈 승리의 표입니다. 사탄은 자기 손아귀에 들어온 인간과 세상을 제멋대로 지배하고 부렸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인류 구원 계획에 따라 인류 앞에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은총의 새 시대의 개막을 좌시할 사탄이 아니었습니다. 그놈은 은총의 시대를 여시려는 예수 그리스도를 쓰러뜨리기 위해 언감생심 도전까지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도전받으신 예수님은 그 놈의 도전을 통쾌하게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악마를 멸망시키시고, 한 평생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2:14b-15). 

원천적 격파에 실패한 사탄은 드디어 독을 품고 각개격파에 나섰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창세기 3:15)는 하느님의 판결문대로 그놈과의 결전은 이제 인류의 운명이 된 것입니다. 인류는 그 역사를 통하여 악마와의 투쟁을 쉴새없이 해왔으며, 그것은 세상 종말에 가서야 끝을 보게 될 투쟁인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하느님께서 지켜보시며 간섭하시는 가운데 벌이는 인간 대 사탄의 투쟁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사탄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하시는 일을 사사건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놈은 어떤 모습이라도 취합니다. 그놈은 과연 천의 얼굴을 가진 자입니다. 때로는 마귀라고 할 수 없으리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놈의 유혹 방법은 때에 따라,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다릅니다. 사탄의 작전은 인간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가장 강한 곳을 치려듭니다. 큰 영향력을 가진 대상을 우선적으로 택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야 할 사람들까지도, 마귀가 있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귀를 모르기 때문에 언제나 그놈의 존재를 부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최후의 계획은 자기가 죽었다는 소문을 널리 퍼뜨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탄의 작전에 말려들어 오늘날 주님의 양들을 치는 많은 목자들이 사탄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되었고, 그놈에 대하여 가르치거나 언급하기를 꺼리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렇게 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게까지 된 것입니다. 그러한 목자들로 인해 오늘날 우리 한국의 '가톨릭 기도서'에서는 마귀라는 말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바쳐온 '십자기의 길' 기도문 중에는 삼구(三仇)라는 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기도서에서 '십자가의 길' 제7처를 한 번 찾아보십시오. 여러분은 삼구 중에서 세속과 육신 둘만 남아 있고, 그 원흉인 마귀는 빠져있음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전통적 교리 안에 자리 잡았던 삼구나 사말(四末)은 이제 교회의 고어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낱말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삼구 중에 마귀는 차츰 없는 존재로 알려져 가고 있고, 세속과 육신은 말씀이신 성자의 육화로 말미암아 성화되었다는 전제 아래 거리낌없이 친숙해질 수 있는 것들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마귀에 대한 무관심과 방임적인 신앙 풍토, 그리고 친속친육적 시류(親俗親肉的時流)에 휩쓸려 자연히 사말에 대한 가르침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상입니다. 마귀를 얘기하지 않는다면, 죄와 죽음에 대하여 얘기할 근거를 잃어버리게 되고, 따라서 구원이나 구세주에 대한 가르침도 의미를 상실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황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고 하는 이 기본적이며 근간적인 신앙 교리를 자주 힘주어 강조하시는 사실도 나의 이 견해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탓이 아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는 여러분처럼 정통적인 올바른 신앙 감각을 지니고 충실히 생활하는 신자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 버젓이 또는 은밀히 번지고 있는 이단적 교설, 불온 사상, 세속화 경향 등에 대하여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그러한 병폐의 탓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돌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공의회의 업적이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현 교황께서는 이 사실을 거듭 거듭 강조해 오셨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20세기 가톨릭 교회의 금자탑이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했습니다. 지난 2월 27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실적 평가회에서도 그 분은 당신의 그 확신을 표명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교황님은 그 공의회를 "교회에 내려주신 성령의 선물"이라고 하시면서, "그것은 교회를 위한 진정한 예언적 메시지이며, 방금 시작된 제3천년기에서도 여러 해 동안 계속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이 출판된지 근 4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그것들에 친숙한 가톨릭 신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으니, 그것은 마치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시장에서 구축(驅逐)한다,"는 그레샴의 법칙과도 같이 정통신앙의 정신에 따라 그것을 올바로 해석해주는 신학자나 목자들의 소리는 너무나 약한데 반하여, 그것을 지나치게 피상적이며 왜곡되게 해석하는 일부 신학자들이나 아마추어 논평가들의 떠드는 소리는 너무나 요란하다는 바로 이 사실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공의회를 빙자하는 거짓 교사와 목자들의 그릇된 가르침으로 인해 적지 않은 해를 입고 있습니다. 설익고 덜된 신학자들이 자기들의 그 허위적이고 왜곡된 교설의 권위를 위해 흔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들먹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공의회가 세속화의 구실이 되어 주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 교황님이 저 위의 평가회 석상에서 언명하신대로 "교회는 언제나 교리의 올바른 해석법을 익히 알아왔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사실은 과거 모든 시대의 신앙의 연속 선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와의 단절을 가정해 놓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또한 요한 23세 교황님으로부터 공의회의 대업을 이어받아 훌륭하게 이끌어가시고 마무리하신 바오로 6세 교황께서도 일찍이 강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누구든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신앙, 전통, 수덕, 애덕의 실천, 희생정신,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십자가에의 충성에 대하여 교회가 가르쳐온 바를 완화한다고 해석하든지, 원리 원칙도 없고, 초월적인 목적도 없이 나약하고도 변덕스러우며 상대적인 세속적 사고 방식에 대하여 관대하게 양보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든지, 이전보다 더 용이하고 덜 철저한 크리스챤 신앙 형태를 포용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완전히 오해를 하는 것이다,"라고. 

신앙의 한 측면인 마귀와 그의 세력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중에 명백히 들어 있습니다. 공의회는 열일곱 군데에서 '사탄,' '악령,' '악,' '늙은 뱀,' '암흑의 세력,' '이 세상의 권력자'를 말하고 있고, 전체 공의회 문헌 가운데 현대 세계에 가장 개방적인 '사목헌장'에만도 네 다섯 번 그것들이 등장합니다. 이 엄연한 사실을 놓고 볼 때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 사탄에 대한 가르침이 쇠퇴하고 있는 현상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탓으로 돌릴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3. 사탄의 황금시대런가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연스럽게 거리낌없이 마귀에 관해서 말씀하시기도 하고 그것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 설립자의 본을 따라 사도 시대로부터 지난 세기 중엽까지 근 2,000년 동안 마귀를 항상 경계해야 할 실재로 가르치는 한 편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것과 그 세력을 제어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교회가 돌연히 그 고귀한 직무를 망각하거나 유기할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만일 그 직무를 유기한다면 그것은 필시 교회가 사탄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것이 인류 구원의 방해자라는 사실을 부인하는데서 생겨난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마귀를 입에 올리는 사목자는 시대 착오적인 구식장이로 취급되고 있으니 어인 일입니까? 심지어는 그것에 대해 유권적으로 가르치시는 교황께 반기를 들기까지 하니 도대체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1972년 6월 29일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악마의 연기가 어떤 틈을 타서 하느님의 성전에 들어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 . .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빈번히 복음에서 이 인간의 적에 대하여 언급하신데서 우리는 의혹, 불확실, 문제 의식, 불안, 불만의 씨를 뿌림으로써 혼란을 조성하기 위해, 교회 일치적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교란하기 위해, 그리고 교회로 하여금 환희의 찬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들어온, 자연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교황님의 이 말씀은 그 당시 세상을 술렁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1972년 11월 15일 일반 알현 석상의 인사말에서 그 분이 마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때에는 마치 회칙 '인간 생명'을 발표하셨을 때와 같은 항의가 교회 안팎의 매스컴에서 몇 달 동안 계속 빗발쳤습니다. 그 때 그 분의 말씀은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죄란 우리와 이 세상에 악마라고 하는 어둡고 적대적인 첩자가 침입한 상태요 작용입니다. 악의 실재는 한낱 결핍이 아니고, 하나의 작용하는 힘, 스스로 타락하였고 또한 타락시키는 살아있는 정신적 존재입니다. 그것은 무섭고 비밀에 찬, 그리고 불안하게 만드는 실재입니다. 이 실재를 인정하기를 거절하는 자는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의 뿌리를 버리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이를 모든 피조물과 달리 하느님에 근원을 갖지 않은 진부한 주장이라고 하는 자라든가, 그것을 '위실재(僞實在),' 또는 우리의 모든 고통의 알려지지 않은 원인의 개념적이고 망상적인 의인화라고 설명하는 자도 그러합니다.교황님은 당신의 설명을 뒷받침하는 일련의 성서 구절을 인용하신 다음 계속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악령은 적 제1호입니다. 그놈은 바로 유혹자입니다. 우리는 이 어둡고 유혹하는 존재가 실재하며, 그 영향이 끊임없이 행사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악령은 인간의 윤리적 균형 감각의 교활한 파괴자욕정, 환각, 탐욕, 망상적 논리, 또는 무질서한 사회적 접촉을 통하여 오류를 퍼뜨리고자 우리 안에 파고드는 데에 능란하고 음흉한 유혹자입니다."


바오로 6세께서는 당신의 서거 1년 전에 다른 일반 알현 시 다시 한 번 그 주제를 화제에 올렸습니다. "우리 사회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참된 인간성의 지평으로부터 추락하고 있다면, 그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 . . 성서는 우리에게 온 세상이 악에 의해 지배되리라는 것을 통렬히 경고하고 있습니다."교황님의 이러한 가르침에 대한 반응은 번번이 발악이요 항의였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까? 교황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팎에 득시글거리고 있으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가위 사탄의 황금시대요 오늘의 이 세상은 그놈의 황금어장이라는 느낌을 나는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전체 교회의 신앙 실태는 차치하고, 우리 한국교회만 보더라도 냉담자가 전체 신자의 3분의 1선을 넘고 있는 실정입니다. 만일 우리 교회 안에 마귀에 대한 부정적 또는 방임적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면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는 무리가 더욱 늘어나리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자 염려이며 슬픔입니다.



4. 사탄 그것은 우리가 모름지기 들멱여야 할 존재 

  
다행히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섭리로 제2 성령강림 시대로 들어서면서 마귀의 흉칙한 모습과 그 음흉한 계략은 서서히 탄로나기 시작했습니다. 종전에는 사탄과 무관한 것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사실은 사탄이 조종하는 가(假)그리스도들이라는 것을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의 배후에는 언제나 사탄이 도사리고 있음을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일러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반드시 세상 종말에 가서나 나타나기로 되어있는 인물들만은 아닙니다. 이미 2,000년 전에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은 말로 당시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았습니까? "어린 자녀들이여, 마지막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적이 오리라는 말을 들어 왔는데 벌써 그리스도의 적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때가 왔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1요한 2:18).


사실 사탄이 조종하는 가그리스도들은 인간의 탈이나 또는 다른 여러 가지 모습들을 취하고 역사에 나타나 꾸준히 인류를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게 해왔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외교, 군사, 종교, 언론, 출판, 교육, 과학, 제도, 관습 등 어디라 할 것 없이 인간사와 세상사의 전반에 걸쳐 가그리스도들을 무수히 만들어 부려왔습니다. 모든 형태의 미신 행위가 그 놈의 수중에 들어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비밀결사와 범죄조직도 그놈의 것이요, 소비주의, 물질주의, 배금사상, 뉴에이지, 퇴폐적인 풍조-문학-예술-유행, 종교 무차별주의, 윤리적 상대주의, 신신학 따위도 그놈의 시나리오에 따른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죄에 대하여 얘기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사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도 결코 별난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도무지 얘기하기를 꺼려할 일이 아닙니다. 도대체 누구 때문에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습니까? 사탄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니 그놈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악마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제 이야기가 그리스도인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기를, 제 계략이 탄로나지 않고 방해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놈의 동태를 예의 주시하며 그놈을 빈번히 들먹여야 합니다. 기탄없이 가차없이 무시로 공공연하게 얘기해야 합니다사탄은 하느님의 백성이 전반적으로 자기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고 무관심하기를 확실히 바라고 있습니다. 성직자나 수도자가 자기에 대하여 함구해 준다면 더욱 좋아할 것입니다. 성서학자나 신학자들이 그렇게 해준다면 그놈은 더욱 좋아라 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자기로 인해 생겨난 죄와 지옥에 대하여 얘기하기를 신학자들과 사목자들이 기피하거나 싫어한다면, 그놈으로서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것도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모든 기회와 온갖 사물과 사건들을 빼놓지 않고 이용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교회의 과오와 실책이라든가 성직자나 수도자에 관한 추문 따위는 그놈에게는 더없는 호재료(好材料)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신자들이 구원을 향해 가는 길에 깔린 돌들인데 그것들을 깔아놓은 마귀는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늘 눈여겨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 기회에 우리가 누구든 상관없이, 그것이 평신도든, 수도자든, 성직자든 상관없이 본의 아니게 사탄의 앞잡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놈은 누구라도 자기의 앞잡이나 심부름꾼으로 부려먹을 수 있을만큼 영리한 존재입니다. 인류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십자가 상에서 예수께서는 사탄이 자기 앞잡이들을 시켜 외치게 한 유혹의 소리들을 들으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소리들을 우리 한 번 들어봅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이면 다시 짓는다던 자야, 네 목숨이나 건져라. 네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 . . 남은 살리면서 자기는 못 살리는구나. 저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래. 십자가에서 한 번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고 말고. 저 사람이 하느님을 믿고, 또 제가 하느님의 아들입네 했으니, 하느님이 원하시면 어디 살려보라지" (마태오 27:40-43).


예수께서는 그 전에 이미 그와 같은 유혹의 소리를 들으신 적이 있는데, 그것은 놀랍게도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당신 사도단의 단장이라고도 할 수 있고 당신 정예부대의 대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베드로의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는 이것이었습니다.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음 당하는 일) 있어서는 안됩니다" (마태오 16:22).


인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그 얼마나 갸륵한 마음씨와 충성심에서 우러나온 베드로의 호소입니까? 그런데 그 때 그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훼방하는 악마의 도구요 앞잡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를 향하여"사탄아, 물러가라,"하고 준엄하게 명령하시는 예수님의 구마 행위가 이를 증명합니다. 이런 실례를 놓고 볼 때, 마귀의 대변인, 대리인, 또는 앞잡이가 될 위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고, 그놈의 공격에서 면제된 성역이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에페소 6:11-12)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요,"(1베드로 5:8-9a)하고 권고했던 것입니다.



5.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님 안에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사목적 권유로서 실천 사항을 하나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마를 쫓아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그 이름을 받들고 사랑하며, 그 이름의 힘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으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이름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이름으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가르치며 병을 고쳐주고 상처를 낫게 하며 마귀를 쫓아내게 되었습니다. 치유와 구마는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미개발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제2 성령강림 시대의 도래와 함께 그 분야는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내 영안으로 보건대 우리 신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악의 세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악마에게 마음과 정신이 잡혀있게 되면 정상적인 신앙생활은 불가능해집니다. 나의 이와 같은 단언은 성령의 비추심에 의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는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전에는 어둠 속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태양을 본 후 시력을 찾아내어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분명히 보듯이, 성령을 모실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조명을 받아, 인간 시력의 범위를 넘어 그가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예비자 교리' 16, 성령론에서). 그와 같이 나는 전에 모르던 것을 이제는 확실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비추심으로 가정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온전히 가톨릭이 아닌 가정에서는 마귀의 공세가 매우 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신자가 가장이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에서는 신자 식구들은 힘겨운 신앙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십자고상이나, 성상, 성화 같은 것을 제대로 모시지도 못하고, 기도도 제대로 바치기 어려우며, 식사 시의 기도마저 눈치를 살펴야만 할 형편입니다. 이런 가정에서 어떻게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자녀들의 종교 교육을 바르게 시킬 수 있겠습니까?


소위 외짝 교우의 신세를 나는 알고 있습니다. 가정을 이루고 나서 일부 구성원이 입교하게 됨으로써 부분 신자 가정이 되는 경우도 어려움이 많지만, 애당초 이른바 관면 혼배로서 외짝 교우가 된 경우에는 대다수의 비신자 식구들의 압력을 받게 되므로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악마는 어떤 누구라도 이용하지만, 외짝 교우 가정에서는 그놈이 이용하고 사주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구 내의 거의 모든 본당에서는 성사혼보다도 관면혼의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인데, 나는 이것을 매우 불안하고 염려스러운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혼인성사의 은총이 베풀어지지 않는 결합을 우리는 완전히 축하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어떻게 그것을 무턱대고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 중의 하나로 꼽히는 중대한 혼인성사를 받지 않고 가정생활을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당사자들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신품성사를 받지 않은 사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 성사를 받지 않으면, 사제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관면혼으로써는 부부생활에 필요한 혼인의 은총이 베풀어지지 않는 점으로 보아서는, 물론 가상적이기는 하나 신품성사의 은총을 받지 않은 사제생활과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사정이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 교구민은 이제부터라도 누구나 관면혼이란 것을 매우 예외적인 것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한편 사목자들은 이미 많이 생겨난 외짝 교우의 가정들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마귀의 지배를 받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가정들이니 말입니다. 가끔 방문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그 가정과 식구들로부터 몰아내주는 한 편, 교우 자신이 악의 세력의 기운을 느낄 때마다 그 일을 하도록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사목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그 이름에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구원 사업에 힘써야 합니다. 구원사업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목자들이 그 일을 우습게 알기를 가장 바라고 부추기는 것은 다름아닌 마귀 바로 그놈입니다. 사제들이 무서운 원수의 존재를 부정함으로 인해서 주님의 양들이 신앙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오늘날 전체 가톨릭 교회의 보편적인 실정입니다. 많은 사제들이 주님께 받고 있는 강한 무기들을 쓰기는 고사하고, 그것들이 자기에게 있다는 사실마저 모르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주님 안에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 모두에게 간곡히 권유합니다. 우리는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써 구원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고 있지만, 인생 최후의 승리는 아직 우리의 것이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승리는 투쟁을 전제합니다. 그 투쟁은 우리 각자 안에서, 우리 가정 안에서, 그리고 사회 안에서 치러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투쟁의 대상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과 같이 인간이 아니라 사탄인 것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는 말도 그 진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은 사랑하되 나의 나쁜 점은 미워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식구들을 사랑하면서, 그들의 잘못만은 미워해야 하며, 사회에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마해야 할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이란 표현은 자기를 조정하는 악마와의 싸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원수진 사람과의 싸움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사탄과의 싸움인 동시에 그를 원수로 여기도록 부추기기 위해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악마와의 싸움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미운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를 미워하지 말고, 그를 밉게 만들고 있는 악마를 미워하십시오. 그리고, 동시에 그를 미워하게 하는 여러분 안의 악마도 미워하십시오.


가정에서도 그렇게 해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어떤 가정에 음주나 도박벽이 있는 가장이 있어 온 식구들이 슬픔과 두려움 속에 나날을 보낸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에 온 식구들은 그를 사랑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마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끔 성수를 집 안팎에 뿌리십시오. 그러면,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쉽게 찾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악마는 너와 나의 적이요, 인류 공동의 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 개별적으로 사탄과 싸우는 동시에 공동작전을 펴서도 대적해야 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일을 어려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우리는 악의 세력와 맞서서 싸우는데 필요한 힘과 무기를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즉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악의 세력을 쳐부수신 예수님의 구원 공로로 우리에게는 그것을 격퇴하고도 남을 하느님의 은총이 항시 마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마귀의 머리를 발로 짓누르고 계신 성모님이 계시고, 미카엘 대천사를 비롯한 천사들의 군대와 수호천사가 있으며 성인들의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마귀와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의 기치를 높이 들고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악마와 대항해 싸웁시다. 

위의 가르침이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가시적인 효과를 드러내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마귀의 정복자이시며 죄와 죽음의 승리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께 드리는 기도로써 이 글을 줄입니다. 


친히 죽으심으로써 죽음의 권세를 잡은 자를 쳐이기시고 
오늘 영광스러이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진심으로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리옵니다. 
주 예수님, 이 땅에서 창조와 구원이 계속 이루어지는 한 
사탄의 방해 공작은 계속될 것이옵니다.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 
시기 투성인 그놈의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옵니다. 
저희는 개인으로나 공동체로서 그놈에게 시달리다 못해 
때로는 그놈의 밥이 된 적도 있사오나 
당신께서는 언제나 손을 펴시어 저희를 살려내셨나이다. 
제 아무리 악마의 공격이 심할지라도 
저희가 그러한 기억을 늘 되살려 당신께 의지하며 
그놈과 꿋꿋이 맞서 싸우게 해주소서. 
그리고 악마에게는 무시로 겁을 넣어주시어 
감히 저희를 잡으려들지 말게 해주소서. 
만일 그놈이 새로운 전략으로 공격을 꾀할 양이면 
주님, 미리 그것을 저희 앞에 폭로해 주소서. 
지극히 복되신 어머니 마리아님을 
저희와 사탄과의 투쟁에 개입시키신 주님, 

저희로 하여금 
저희 어머니도 되시는 그분의 전구로써 
싸움에 필요한 당신의 은총을 
풍성히 받아 누리게 해주소서. 아멘
.



2000년 부활절에 
교구장 김 창렬 주교 

제주 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