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17권

{17권 26장} 모태에서부터 평생 겪으신 예수님의 죽음 고통.|

은가루리나 2015. 12. 11. 23:38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17-26



1924년 12월 8일



모태에서부터 평생 겪으신 예수님의 죽음 고통.

강생과 더불어 당신 자신을 피조물의 손에 맡기시다.

사랑에서도 활동에서도 흔들림 없는 신적 굳건함.

    


                                                                                        

1 한층 더 고통스러운 나날이다.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에서 오는 심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분의 부재가 마치 치명적인 무기처럼 내 머리 위쪽에 드리워진 채 

끊임없이 나를 죽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끝장내기 위한 마지막 일격만은 보류하고 있는 형국이다. 

나는 마치 구조를 기다리듯 이 마지막 치명타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야 내 예수님께 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허탕이다!

 

2 내 변변찮은 영혼은 그러므로 

내 본성과 아울러 타들어 가면서 완전히 녹아내리고 있는 느낌이다. 

아! 나는 큰 죄들 때문에 죽을 자격도 없나 보다! 

얼마나 큰 고통인지! 얼마나 긴 단말마인지! 

저의 예수님, 부디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오직 당신만이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상태인지를 알고 계시니, 저를 버리지 마십시오. 

저를 저 자신의 손에 맡기지 마십시오.

 

3 그런 상태로 있다가 보니 나 자신의 바깥에 나가 있었다. 

매우 맑은 빛 안에 있었는데, 

이 빛 안에서 여왕이신 엄마와 그 순결한 태 안에 계신 아기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오, 세상에! 사랑하올 아기 예수님께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태에 놓여 계시던지!

 

4 그분의 조그만 인성이, 

그 조그만 손발이 옴짝달싹 못하도록 갇혀, 눈을 뜨거나 숨을 편히 쉴 여지도 없어 보였고, 

어찌나 심각한 부동 상태인지 살아 있으나 죽은 듯한 모습이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예수님께서 이런 상태로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계시는지 누가 알랴? 

그분의 사랑하올 엄마는 또 얼마나 괴로우실까! 

아기 예수님이 당신 태중에서 이처럼 옴짝달싹 못하시는 것을 보실 터이니!' 

하고 생각하였다.

 




5 그런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자 

그 조그만 아기 예수님께서 흐느껴 우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딸아, 

내 엄마의 이 동정 모태 안에서 내가 겪은 고통은 인간의 정신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한데 내가 잉태의 첫 행위를 하면서 겪은 최초의 고통으로서 

일생 내 지속된 고통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죽음의 고통이었다.

 

6 내 신성은 

물론 어떤 고통도 죽음도 범접할 수 없는, 완전히 행복한 상태로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나는 내 작은 인성이 

피조물에 대한 사랑으로 죽음과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자, 

죽음의 고통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다. 

내 신성의 능력이 기적적으로 나를 지탱해 주면서 

죽음의 고통과 삶의 지속성을 함께 느끼게 해 주지 않았다면, 

순전히 그 고통 때문에 실제로 죽었을 것이다.

 

7 내게는 항상 그 죽음의 고통이 있었으니,

죄라는 죽음피조물 안에서 죽는 선의 죽음 및 그들의 자연적 죽음도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생토록 내게 얼마나 잔인한 고문이 되었는지! 

생명을 내포하며 생명 자체의 절대적 주인인 내가 죽음 고통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8 내 작은 인성이

사랑하올 엄마의 태 안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죽어가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그리고 너는 

죽어가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죽지 않는 고통이 얼마나 혹독하고 견디기 힘든 고통인지를 

네 내면으로 겪고 있지 않느냐? 

딸아, 그것은 

네가 내 뜻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내 인성의 그 지속적인 죽음에 참여하는 것이다."

 



9 그러므로 나는 거의 오전 내내, 

어머니의 태중에 계신 예수님 곁에서 지내면서 

죽어가다가 다시 살아나고 다시 죽어가기를 반복하시는 그분을 지켜보았다. 

그런 상태에 놓여 계신 아기 예수님을 보는 것은 이만저만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10 그 후 밤이 되었을 무렵, 나는 그 조그만 아기께서 

우리 가운데에 태어나시려고 모태에서 나오시는 순간에 대해 묵상하였다. 

내 하찮은 정신이 그리도 심오하고 온전히 사랑인 신비 안을 돌아다니고 있노라니,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그 작은 손으로 나를 안으며 이르셨다.

 



11 "딸아, 나의 탄생은 창조 사업 전체에서 가장 장엄한 행위였다. 

하늘과 땅이, 내 신성을 담벼락처럼 둘러싸고 있는 내 작은 인성을 보고 

더없이 깊은 흠숭에 잠기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 내가 탄생한 현장에는 침묵깊은 흠숭기도가 있었다.

 

12 내 엄마는 당신에게서 나온 이 신적 존재의 능력으로 황홀경에 잠겨 기도하셨고, 

성 요셉천사들기도하였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그들 위에 새로워지고 있는 내 창조력의 사랑의 힘을 느꼈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을 창조하신 분이 당신의 인성에 필요한 것을 그들에게서 얻으시는 것을 보고 

영예스럽게 여겼고,  

실제로 그 영예를 받기도 하였다.

 

13 태양은 자신의 창조주께 빛과 열을 드려야 하는 것에 영예로움을 느꼈고, 

그분께서 자기를 만드신 참된 주님이심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빛으로 그분을 즐겁게 하며 경의를 표하였다. 

은 내가 구유에 누워있는 것을 알고 영예스러워하였고, 

나의 연약한 손발이 닿는 것을 느끼자 놀라워하며 기뻐 뛰놀았다.

 

14 모든 조물이 

그들의 참된 임금이신 주님이 그들 가운데에 계시는 것을 보고 영예로움을 느꼈으며, 

제각기 나를 위해 저마다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하였다. 

은 내 목마름을 풀어 주려고 했고, 

새들은 노래하듯 지저귀며 나를 흥겹게 하려고 했고, 

바람은 나를 어루만져 주려고 했고, 

대기는 내게 입맞춤을 주려고 했으니, 

모든 것이 내게 꾸밈없이 깨끗한 예물을 바치고자 했던 것이다.


15 오로지 인간만이, 

모두가 특별한 무엇을 - 어떤 기쁨과 강력한 힘을 내심으로 느꼈으나 

배은망덕하게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그 모든 것을 질식사시킨 채 무덤덤한 마음으로 있었다. 

나는 눈물과 탄식과 흐느낌으로 그들을 불렀건만, 

일부 목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부름에 감동하는 사람이 없었다.

 



16 하지만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사람을 위해서였다. 

사람에게 나 자신을 주며 구원하기 위해서, 

그들을 내 천상 고향으로 다시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그러기에 나는 그들이 

내 신성과 인성의 생명이라는 큰 선물을 받으려고 내 앞에 오는지 어떤지 보려고 

온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17 그러니 

나의 강생은 다름 아니라 나 자신을 피조물의 손에 맡기려는 것이었다. 

성육신(聖肉身)으로 나를 내 사랑하올 엄마의 손에 맡겼고, 

내가 탄생한 후에는 성 요셉의 손에도 나를 맡겼으며, 

나는 그에게 내 생명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나의 사업들은 끝없이 영원한 것이기에, 

하늘에서 내려온 이 '말씀' 

-- 이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끊임없이 자신을 내어 줄 기회를 잡으려고 절대로 지상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18 나는 그러므로 지상 생활 동안에는 드러나게 나를 내어 주었고, 

죽음을 당하기 열 몇 시간 전에는 

성사 안에 나 자신을 남겨두는 놀라운 기적을 행함으로써 

나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내 생명의 위대한 선물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19 그 당시 

나는 사람들이 내게 줄 모욕이라든지  또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할 것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혼잣말을 했을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나 자신을 주었다. 

이를 철회할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내키는 대로 나를 대하도록 내버려두자. 

언제나 나는 그들의 것이니 그들의 처분에 맡겨져 있다.'







20 딸아, 참사랑과 하느님 활동의 특성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것과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이다. 

내 사업의 이 확고부동한 성격이야말로 나의 승리요 가장 큰 영광이다.

 

21 그리고 사람이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지를 알게 하는 표징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이다. 

그런 영혼은 아무에게도 눈길을 모으지 않는다. 

고통도 그 자신도 자만심도 다른 피조물도 보지 않는다. 

이로 해서 목숨을 잃을지 모르더라도 말이다. 

그는 오직 하느님만 본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니, 

그분에 대한 사랑으로 자기 목숨을 바칠 때에 승리감을 느낀다.

 


22 반면에 인간의 본성과 활동 방식은 유동적이다. 

쉬이 변하고 흔들리는 것이 격정이요, 

격정으로 하는 활동인즉, 이는 비겁함이지 참사랑의 특성이 아니다. 

그런고로 확고부동의 자세가 나를 위한 일의 인도자가 되어야 한다. 

내가 그렇다. 

내 사업들을 하면서 이랬다저랬다 하는 법이 없다. 

무슨 일이든지 일단 행한 것은 영원토록 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