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단계 하느님의 뜻 영성 교육 ,개정판(제5강의,제1일 - 사랑에 대한 성찰)
제5강의 내 뜻과 나 자신을 봉헌하기 위한 성찰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요한 9.31)
“죄란 이성과 진리와 올바른 양심을 거스르는 잘못이다.”
“죄는 어떤 것에 대한 비틀어진 애착 때문에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참다운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849)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기 위하여
내 뜻과 나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내 뜻대로 살면서 지은 죄를 성찰하고
진정으로 통회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제1일 사랑에 대한 성찰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마태 22,37-40)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거슬러 여러 가지로 죄를 지을 수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094)
하느님께 대한 봉헌 준비에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성찰입니다.
하느님의 나에 대한 사랑에 어떻게 응답했는지?
자신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았는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웃을 사랑했는지?
하느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지 않았는지?
살펴봅시다.
1.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성찰
1-19,9
눈이 멀어 분별이 없어진 인류는
세속적인 것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고 말아서
단지 내게만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도 서로 그렇게 한다,
물질적인 부를 찾는 데만 급급하여
초자연적인 진리를 모조리 내던지고,
이로 인하여 온갖 도덕적인 타락의 진창 속에 빠져들면서도
그들 자신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서는 숫제 관심조차 없는 것이다.
1-66,6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오직 끊임없는 슬픔과 괴로움만 받을 뿐이다!
사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나의 말을 마지못해서 듣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와 함께 있는 것을 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내게서 멀리 달아나거나 일부러 귀가 먹은 체하는 사람들도 있다.
4-123,3
얘야,
너는 올곧은 사람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의로운 사람이 되기도 해야 한다.
의로움 안에는
너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서
나에게 사랑과 찬미와 영광과 감사와 찬양과 보속과 흠숭을 바치는 행위가
포함된다.
이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는 의로움이요,
창조주인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의로움이다.
이 중 한 가지라도 내게 거절하는 이는
결코 의로운 사람이라고 불려질 수 없다.
그러니 네 의로움의 본분에 유의하여라.
이 의로움 안에 거룩함의 시작과 과정과 끝이 있는 것이다.
4-145,3
사랑의 특전(특질)은 세 가지이니,
끝없이 한결같은 사랑, 강렬한 사랑,
하느님과 이웃을 한꺼번에 싸안는 사랑이다.
영혼 안에 이 특전들이 발견되지 않으면
아직 참사랑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없다.
4-174,3
가장 고약한 모욕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4-182,3
영혼의 내적 생명이 활기차게 활동하며 나를 사랑한다면,
즉 그 자신의 생명 안에 내 생명의 힘을 느낀다면,
(그 영혼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외적 요인으로 뜨거워져서 약간의 선행을 하다가 금방 식어 버린다면,
그리하여
다시 그 자신의 악습으로 돌아가며 평소의 나약 속으로 떨어지고 만다면,
은총에 대해 죽었거나 한창 죽어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4
그러므로, 영혼이 내적으로 나의 은총을 느끼며
그가 행하는 모든 선이 그 내면 안에 녹아 있다면,
그 영혼에게 오는 것이 바로 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체가 온통 외적인 것이어서 영혼이 내적으로 아무런 선도 느끼지 못한다면,
거기에는 악마의 작용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6-92,2
딸아, 내 자녀들의 특징은 십자가에 대한 사랑,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사랑,
교회의 영광에 대한 사랑에 있고,
그것도 목숨을 내어놓을 정도로 사랑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특징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자칭 내 아들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8-43,5
나의 선함은 크나큰 것인즉,
피도 눈물도 없고 지나치게 요구를 많이 하는 엄격한 존재로
나를 알리는 사람들은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11-7,3
내 딸아,
영혼이 오직 나만으로 가득 차 있어서 밖으로 넘쳐흐를 정도가 되면,
즉, 오직 나만을 생각하고 찾으며 나에 대해서만 말하고 나만을 사랑하면,
다른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4 그런 영혼은
하느님이 아닌 것에는
기껏해야 찌꺼기나 맨 끝자리를 내 주는 것이 고작이다.
이는 인간의 물질생활에 필요한 것에 대해서
맨 끝으로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과 같다.
8
맨 마지막 생각과 말과 행동을 나를 위해서 한다면
나를 사랑하치 않는다는 표시이다.
이런 사람은 내게 뭔가를 준다고 해도 찌꺼기만 줄 뿐이다.
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14-39,2
보아라,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나를!
나는 그들 가운데에서 살며 그들이 행하는 각 행위의 생명이건만,
그들은 내가 그들과 함께 있지 않은 것처럼 지낸다.
2. 이웃에 대한 사랑의 성찰
2-20,5
이웃에 대한 많은 사랑이 내 마음속에 들어올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에 대한 사랑과 합쳐져서
서로 구분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를 이룰 때라야 한다.
나에 대한 사랑으로 변화되지 않은 이웃 사랑이라면
나는 그것을 내게 속한 무엇으로 여기지 않는다.
3-77,4
다른 이들에 대한 존중의 결여는
참된 그리스도인다운 겸손과 친절의 결여이다.
영이 겸손하고 친절한 사람은 모든 이를 존중할 줄 알고,
남들이 하는 일을 항상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3-84,3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을
확실히 모든 이가 받아들이게 하려고
나는 그것을 하나로 만들고 거룩한 교훈이 되게 하였다.
따라서 나의 고통과 피는 그만큼 많은 혀가 되어,
모든 이에게 서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고,
모두가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도 하는 것이다.
4-8,2
딸아, 자기 이웃을 해치는 사람은 자기를 해치는 사람이다.
이웃을 죽이면서 그 자신의 영혼을 죽이는 것이다.
4-139,2
딸아, 사랑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양쪽 다 사리사욕이 없어야 한다.
5-22,3
사랑한다는 것은 희생이 요구될 때에도
상대방의 뜻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니 말이다.
6-131,2
딸아, 내 손을 가장 아프게 하고 상처를 넓히며 괴롭히는 것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행하는 선업이다.
부주의는 선업에서 생명을 앗아가고,
생명이 없는 것은 썩기 십상이니 말이다.
6-34,4
영혼이 나와 긴밀히 일치해 있는 표는
자기의 모든 이웃들과 일치해 있는 것이다.
10-26,2
딸아, 사랑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다.
인간적인 생명이 아니라 신적인 생명이 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행해지지 않은 모든 일은
비록 선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물감으로 그린 불과 같아서 열을 내지 못한다.
혹은, 물감으로 그린 물과 같아서
그 누구의 갈증도 풀 수 없고 아무런 정화 작용도 하지 못한다.
3
오! 사람들이, 또 내게 자기를 봉헌한 사람들 역시
그렇게 실속 없는 일을,
죽은 거나 다름없는 일을 얼마나 많이들 하는지!
사실, 사랑만이 생명을 지니고 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11-18,2
딸아, 진정한 사랑은 불만을 품지 않는다.
12-31,1
그분은 다수의 사람들이 영혼들 안에서 그분의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영혼들의 애정과 마음을 그분에게서 훔쳐 가기 때문에 애통해하셨다.
5
나에게서 애정과 마음들을 훔쳐 가는 것은
만금을 훔치는 것 이상으로 나쁜 짓이다.
14-1
사람을 지어내면서 나는 내 신성 내부로부터 많은 사랑을 쏟아내어,
사랑이 피조물의 으뜸가는 생명 역할을 하게 하였다.
16-13
다른 피조물에 대한 진정한 사랑도 그치고 말았다.
우리 성삼위 사이에 감도는 것과 같은 사랑으로 내가 사람을 창조했으니,
이 사랑 안에서 사람이 서로를 닮으며
서로의 행복과 기쁨과 생명이 되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12
이런 이유로 내가 세상에 와서 가장 강조했던 것이,
내가 사랑하는 것처럼 그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나의 첫사랑을 그들에게 주기 위함이었고,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사랑이 땅 위를 감돌게 하기 위함이었다.
3. 하느님보다 자신이나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죄 성찰
2-25,4
어떤 이들은 재물을,
또 어떤 이들은 명예를,
다른 이들은 영광을 갈망하고 있었고,
성덕이나 다른 많은 것들을 갈망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기 위해서였다.
3-107,4
그러한 사람들은 오로지 그들 자신과 관계있는 것,
곧 그들의 만족과 열정 따위
그들의 마음에 드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행동한다.
이 사랑은 나를 위한 것이라고 말들을 할 때에도
실제로는 다만 그들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다.
4-18,5
딸아, 인간의 가장 강력한 원수는 쾌락과 재산과 명예에 대한 욕망이다.
이 원수들은 인간의 마음속에 교묘하게 파고들어
끊임없이 들볶아 대기 때문에
인간을 불행하게 한다.
인간을 괴롭히고 우울하게 만들어 모든 행복을 잃게 하는 것이다.
나는 갈바리아에서 이 세 가지 원수를 쳐 이겼다.
인간에게도 이를 정복 할 수 있는 은총을 얻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행복을 되돌려 주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인간은
나의 이 은총을 배척하고 열광적으로 그 원수들을 사랑한다.
4-82,6
나는 사람들이 나의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지만,
그들은 내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나를 사랑한다면 단지 그들 자신의 이익 때문인 것이다,
5-3,2
하느님과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그친다면 생명도 그칠 것이다.
한데 사랑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영적이고 거룩한 사랑이고,
또 하나는 육적이고 난잡한 사랑이다.
4
난잡한 사랑
― 이를테면 재물이나 쾌락이나 다른 숱한 것들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생명을 빚어 내지 못한다.
이런 것에 대한 사랑은 거룩한 삶을 이룩하게 하지 못할 뿐더러
인간으로 하여금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5
그러므로 거룩한 사랑은 성화의 삶을 이루는 반면에,
타락한 사랑은 멸망의 삶을 이루기 마련이다.
6-55,6
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언제나 자기를 찾는 그들 자신의 의지로 참된 신앙을 왜곡하고,
지극히 거룩한 일들을 모독하고 있는지!
사람이 거룩한 일에서도 자신의 방식과 취향과 자기만족을 찾는다면,
그렇게 자꾸 자기를 찾는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니
그분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11-6,2
딸아, 나는 사랑이니 피조물을 온전히 사랑으로 만들었다.
3
그러므로 피조물은 다만 사랑의 복합체여서
오직 사랑으로만 움직이기 마련이다.
언제나 사랑으로 움직이는데 사랑의 종류가 다양할 뿐이다.
거룩한 사랑, 자기에 대한 사랑,
피조물에 대한 사랑, 악한 사랑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언제나 사랑으로 움직일 뿐
다른 동기로는 움직이지 못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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