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삶’은 최상의 선물이다.
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언제나 모든 행위들 중에 첫째가는 것이며,
모든 행위들을 능가하는 최상급을 지닌다.
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이므로
영원한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은 영혼의 중심이고,
이 중심은 영혼의 깊은 곳에 있으며
이것이 태양처럼 빛살을 퍼트리면서
정신에는 빛을 주고,
활동에는 거룩함을,
발걸음에는 힘을,
마음에는 생기를,
말과 다른 모든 것에는 능력을 준다.
성사들 자체도 영혼들이 나의 뜻을 따르는 정도대로 그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 하느님의 뜻이라는 이 환경 속에는
언제나 더욱 즐거운 일들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모든 것을 놀랍게 여기며 믿으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창조능력을 의심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원하고 이 능력을 주는 것이 바로 나인 한,
온갖 의심은 입을 다물게 마련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자유로이 줄 수 없겠느냐?
그러니 너는 주의를 집중 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나의 창조적인 힘으로 너를 덮어 보호하면서
내가 너에게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내겠다.”
(기쁜 소식 p44. 1921년 2월 2일 제12권)
-------------------------------선물 지식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는 선물들 중에서 가장 큰 선물이다.
나의 선성(善性)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언제나 더욱 세차게 분출된다.
그들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더 이상 줄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주었으므로
이제 나의 뜻을 선물로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를 소유함으로써 자기네가 지니고 있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선물인지를 제대로 깨닫고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다.”
(기쁜 소식 p48. 1924년 9월18일 제17권)
“내 뜻의 성성(聖性)에는 길이나 문이나 열쇠나 방이 없다.
그것은 만물에게 두루 퍼져 있으니,
누구든지 숨을 쉬기 위하여 마시지 않을 수 없는 공기와 같다.
이 공기는 또한,
이를 원하고 자신의 인간적인 뜻을 버리기만 한다면
마실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이 영혼의 호흡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영혼에게 생명을,
내 뜻의 생명의 효과와 가치를 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이토록 거룩한 삶의 방식을 사람들이 어떻게 좋아하며 원할 수 있겠느냐?
이는 사람이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인데 말이다.”
(기쁜 소식 p49. 1922년 7월 16일 제14권)
우리가 하느님 뜻대로 사는 것이 하느님께 가장 큰 영광입니다.
“그러나
내 뜻 안에서 사는 삶의 성성(聖性)과 이것이 내포하는 효과와 가치
- 내 창조적인 손이
사람을 나와 닮은 모습으로 그리기 위한 이 마지막 붓질 - 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나의 관심은 온통,
내가 너에게 말해온 모든 것이 널리 알려지는 일에 쏠려있다.
그러므로 네가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나의 뜻을 억제하며 나를 삼키려 드는 불꽃을 내 안에 가두어,
사람들이 내게 돌려 줄 완전한 영광을 지연시키기를 원하는 셈이 된다.
나는 이 글이 질서정연하게 서술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하나의 낱말, 심지어 하나의 쉼표나 대사나 마침표만 빠져도
나에 대한 빛이 아니라 어둠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내게 영광과 사랑을 주는 대신에
아무 관심도 없는 상태로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주의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빠뜨리지 말고 써라.” (기쁜 소식 p50. 제14권)
그래서 루이사가 다 쓴 것이다.
“내 뜻 안에서, 내 뜻의 힘으로 살기 때문에
마치 오직 한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처럼
참으로 살아있는 나를 각자가 소유하고 있으니,
나는 그들 안에 신비적으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실제로 살아 계시는 것이다.
신비체의 지체니까 그런 정도가 아니라.)
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과연 하나의 선물이다.
더군다나 가장 위대한 선물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 선물은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순간 마다 증가하는 확대로
꺼질 줄 모르는 빛이며 지지 않는 태양이다.
그래서 인간으로 하여금
신적 질서 안에서 하느님께서 정하신 자리
곧 만물의 왕이라는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게 한다.
「한없이 나를 사랑하여라!
여기에서 나의 모든 사랑을 가져 너의 것으로 만들어라.
나의 능력을 가져 너의 것으로 만들어라.
나의 아름다움... 등을 가져 너의 것으로 만들어라.
네가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네 예수는 더욱 행복해 할 것이다.」
(하느님의 뜻이 군림 p79 1919년 2월 27일)
"너희 인간들의 전리품이랑은 다 내버리고 하느님의 것들을 차지하여라.
나는 내 재산을 증식 시키려고 인색하게 구는 법이 없다.
네가 무엇이든지 다 가지기를 바란다.
한없이 나를 사랑하여라. 가져라.
내 사랑을 전부 가져라.
너의 힘에는 나의 힘이 부족하고,
너의 아름다움에는 나의 아름다움이 부족하다.
네가 한층 더 많이 가져 갈수록 네 예수는 그만큼 더 기쁘다.”
(12권 88번의 메시지,
그전의 것은 18번,16번, 23번 메시지로 여기 저기서 핵심 되는 것만 뽑은 것이다.)
남김없이 몽땅 주시려고 하는 예수님의 사랑,
당신 자신을, 당신의 뜻을 선물로 주시려고 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생각해 봅니다.
‘어떻게 그것이 이루어지는 거예요.’(질문)
‘방법은 다음시간에 어떻게 이 선물을 받을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답)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삶을 재현 한다고나 할까요.
예수님의 신성이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하던 행위를
예수님의 뜻과 하나가 되어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서 예수님의 의지를 받아서
그것을 재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고
내가 그 뜻을 이루려고 막 내 뜻대로 노력을 하는 것은
내가 유한하기 때문에 내가 행한 공로가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무한하신 그분의 뜻과 하나가 되어서
그분이 나를 통해서 그 일을 하시게 되면
똑같은 행위를 했어도 그 효과는 무한한 것이다.
내가, 다른 표현 같은 데서 보면,
한순간에 행한 그 행위가 지금까지 행했던 모든 그 행위의 가치를 능가한다.
그런 표현이 나오는데
그것이 무언가 하면,
내가 이 세상에서 나의 뜻을 죽이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고
많이 노력을 하고 그러는데,
나의 의지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가려고 노력을 하는데,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행위들의 가치는 유한한 것이다.
지금까지 행했던 모든 선행을 다 합해도 그 가치는 유한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그 신성은 무한한데
신성이 예수님의 인성 안에서 행하는 가치는 무한한 것이다.
내가 예수님의 신성과 하나 되어서 행하게 되면
나의 그 가치도 무한하게 되는 것이다.
한 순간에 행한 행위의 가치가
지금까지 행한 모든 행위를 뛰어 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영성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그런 표현을 쓰는데,
이 지상에서 기거나, 걷거나, 뛰는,
뛰어서 막 앞으로 나가는 그런 영성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의 우리가 기도하고 노력하고 또 장애가 있으면,
산도 넘고, 바다도 건너고, 강도 건너고
그러면서 산전수전 다 겪는다고 굉장히 힘들어 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구를 열심히 돌고 뛴다고 해봅시다.
그것을 몇 달 몇 년 하더라도 지구를 몇 바퀴 못 돌 것이다.
그런데 만약 빛을 타고 돈다면 똑딱하는 순간에 지구를 7바퀴 반을 돈다.
하느님의 신성과 일치하여 한다면 그런 효과가 있는 것이다.
‘지금 왜 이것을 알려 주느냐?' (질문)
‘이제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답)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으려면
하느님께서 이를 주시고자 하신다는 것을 알고,
이를 갈망하며 계속 청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삶에 대한 간절한 원의가 일어나도록 하려면,
하느님의 그 뜻 안에서의 삶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으려면,
자신의 죄를 성찰하고 진정으로 통회하며 진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을 선물로 주시기 전에,
그동안의 삶을 심판하시고,
죄를 역겨워하며 고의적인 소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에서 완전히 이탈하고 자기의 뜻이 무(無)가 되어,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습관이 될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지를 선물로 주십니다.
이를 위해서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모든 것을
성모님을 통하여 성삼위께 봉헌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과 관련되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하느님 뜻 안에서의 삶에 대한 갈망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선물로 주고 싶어 하신다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나는 네가 내 뜻 안에서 사는 삶이라는 성덕을 일으키기 바란다.
내 마음은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이 더 많아지기를
억누를 길 없도록 열망하고 있다.
나를 보아라.
나의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나의 고통과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리고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이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너에게 내 거룩한 뜻을 주기를 원한다.
누가 이렇듯 아버지다운 사랑이 가득한 나의 (뜻?)을 주기를 원하느냐?
너희가 나를 기쁘게 맞아 드리면
자녀들 가운데 있는 아버지로서 내가 함께 머물러 있겠다.
그러면
우리는 더 없이 큰 일치 안에서, 오직 한 뜻으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오,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 나를 에워싸고 모여,
바로 나 자신의 뜻으로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것이 너무나도 간절한 바람이기 때문에,
나는 얼마나 많이 탄식하고 혼절할 정도로 부르짖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모른다.” (기쁜 소식 p16)
“나는 또 왕으로서 백성들 가운데 살기위하여 와있다.
이 왕은 그러나 너희에게 세금을 징수하거나
부담스러운 짐을 지우려고 온 것이 아니다.
아니고, 말고!
나는 너희의 뜻과 비참과 나약과 모든 악을 내게 달라고 하려고 온 것이다.
너희를 괴롭히고 불행하게 하며 불안에 떨게 하는 모든 것을
내 사랑 안에 숨겨 모조리 태워 없애는 것
― 이것이 내 주권(主權)의 실제이다.
자비롭고 평화스럽고 너그러운 왕인 나는
내 극진한 사랑과 부요함과 행복 및 내 평화와 지극히 순수한 기쁨으로
너희를 충만하게 하면서,
나의 뜻을 너의 뜻과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기쁜 소식 p18)
“……나의 뜻은 사람들 안에서 살기 위하여 하늘에서 온다.
그러니 내 뜻을 받아드려 다스리게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기쁜 소식 p25 1925년 2월 8일 제19권)
그래서 이렇게 주님은 당신의 뜻을 주기를 열망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제 인간 편에서 어떻게 응답을 해야 되느냐.
어떻게 다룰 수 있느냐.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람은 다만 우리의 뜻을 소유함으로써
자기 창조주와 닮은 모습, 창조주의 모든 선의 공동소유주가 될
자격을 얻지만,
우리의 지고한 뜻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우리와 공통점이 도무지 없다.
그러므로 내 뜻의 나라를 땅에 다시 세우려면
이 나라가 모르는 체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이 무한한 선을 얻으려고 행한 행위들 위에
내 뜻의 나라가 내려와서 건설되도록 해야 한다.
이 선물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이를 허비하지 않고 드높이 존중하며
자기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사실, 나의 뜻이 일체를 지배하는 최상권을 얻게 하려고
제 목숨마저 바치는 사람,
목숨 그 자체보다 이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이 그것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이 선물에 비하면
자신의 목숨은 실상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나는 우선, 사람이 결코 그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고
나의 뜻을 따르기를 참으로 원하며,
이를 위하여 무슨 희생이든지 다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자 한다.
그런 이는 자기가 행하는 모든 일속에서 언제나 내 뜻을 선물로 달라고,
아니면 빌려서라도 달라고 청하게 된다.
그리하여,
내 뜻을 빌려서가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보일 때,
그 때에야 나는 내 뜻을 선물로 준다.
왜냐하면, 거듭해서 청하고 또 청하다보면
그 영혼 안에 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하느님의 음식’을 빌려 사는 것에 익숙해짐에 따라
그 자신의 뜻에 대한 맛을 잃게 된다.” (기쁜 소식 p57. 1925년 12월 25일 제18권)
지금 우리 뜻으로 하는데 맛들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으로 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하느님 뜻에 따르는데 맛들이다 보면 자기 뜻은 맛없는 음식이 된다.
“미각이 고상해져서
그 자신의 자아의 소산인 천한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 영혼은
자기가 그토록 동경하고 열망하며 사랑한 선물을 소유하게 된 자신을 보면서
그 선물의 생명으로 살아갈 것이고,
이를 사랑하며 이에 합당한 존경을 바칠 것이다....” (기쁜 소식 p58 19항)
“나는 일체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내게 신뢰를 이루고 있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줄 수 있다.
영혼이 신뢰를 가지고 있으면
그가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틀림없이 얻기 마련이다.”
루이사 피카레타는 1945년 1월 15일 편지에서 이렇게 말 합니다.
‘가엾은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으시는지,
얼마나 많이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시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삶을 선물로 주시기를
그분께 간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쁜 소식 p97 38항)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삶을 선물로 주시기를 그분께 간청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또 이런 말씀도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딸아,
나의 사랑은 천지 창조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뜨겁게 흘러넘치고 있다.
그래서 나의 뜻은 사람들에게 이 뜻의 생명을 되돌려주기로 정하였다.
찬란한 광채에 싸여 나타나서, 더할 수 없는 관대함으로,
사람들의 공로를 보지 않고
다시 한 번 이 뜻의 나라를 그들에게 주고자 하는 것이다.
(공로를 보지 않고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를 알고 그 선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거룩함과 빛과 행복의 나라를 다시 간절히 열망하게 된다.
이 나라를 배척한 것이 인간의 뜻이었으니만큼,
이 나라를 부르고 갈망하면서 사람들 가운데 다시 오시기를 간청하는 것도
인간의 뜻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뜻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이유이다.
어떤 선(善)이라도 그것을 알지 못하면
생활화할 수도 갈망할 수도 없는 것이다.”
(기쁜 소식 p81-82 29항 1927년 10월 30일 제?권)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뜻에 대하여 알고, 갈망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내 뜻을 선물로 주고자 하는 사람에게
선물보다 앞세우는 것은 이 선물에 대한 지식이다.
지식이 미리 길을 닦는다.
지식이 내가 주고자 하는 선물에 대한 계약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영혼에게 지식을 많이 줄수록
이 선물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더 커진다.”
(기쁜 소식 p58 19항 1925년 12월 25일 제 18권)
‘그러면 저희들은 그 지식을 조금 아는 것입니까’(질문)
‘지금 배우고 있지 않습니까.’(답)
‘아직 저희들은 모르고 있죠. 당연히 모르죠.’(질문)
‘지금 강의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답)
‘조금 더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까?’(질문)
‘하하’(답)
“사람이 내 뜻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
이 뜻의 무한성을 알아차리는 것,
나와 함께 자기 자신을 많아지게 하여 어디든지 들어가는 것,
지상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하늘과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것,
인간적인 방식을 처분하고 하느님의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
이것은 아직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이상하게 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빛을 향해 정신이 열려 있지 않은 이들은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뜻 안에서 사는 삶에 대하여
어떤 때는 이 사실을 다른 때는 저 사실을 서서히 알려 줄 터이니,
그들도 마침내 알아듣게 될 것이다…….”
(기쁜 소식 p38. 1918년 1월 12일 제12권)
“딸아, 나의 뜻에 관해서 이제껏 많이 말해 왔지만
내 영원한 지혜가
네게 단지 그 지식을 주기 위하여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뜻 안에 사는 법과 그 뜻 안에 있는 재산을 알려주고
네가 이 뜻 안으로 걷는다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주위에서 네 안에 부어주고 있는 수많은 은총에 화답하여라.
이 화답이 나로 하여금 마음 안에 들어가서
거기에 내 거처를 잡게 하는 열린 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 뜻을 하느님 뜻 안에서 삶을 알고,
그 뜻 안에서 삶을 사는 훈련을 하고,
그러면서 물론 그 뜻 안에서 삶을 청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자리 잡고 일하시면서
당신의 뜻, 당신의 의지를 선물로 주시게 됩니다.
내용이 너무 많아 가지고 다 할 수가 없구요.
하느님의 뜻을 선물로 받아서 우리가 살기위해서는
아까 이야기 한데로 그것을 간절히 갈망을 해야 되는데
그리고 그 뜻 안에서 살려고 하는데
제가 그냥 제 예화를 들어 어떻게 실천을 하려고 하는지,
제가 하는 삶을 조금 설명을 해 드리고 이쪽으로 넘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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