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제3장] 21. 하느님은 웃고 즐기신다|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은가루리나 2019. 1. 20. 00:10



김소영데레사무소53|등급변경▼|조회 25|추천 0|2019.01.19. 21:31



21. 하느님은 웃고 즐기신다



의로운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살고 하느님은 그 사람 안에서 사신다.

하느님은 의로운 사람 안에서 태어나고 의로운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의인의 모든 덕 안에서 하느님은 탄생하고 기뻐하며, 그의 덕뿐만 아니라 그가 덕과 정의로

행한 모든 행위를 기뻐하신다.

하느님은 기뻐 환호하신다.

그분의 근저에는 기뻐 춤추지 않는 것이 없다.


하느님이 영혼에게 웃으시고 영혼이 하느님께 웃는다면 영혼은 위격을 낳는다.

비유로 말하자면 성부께서는 아들을 향하여 웃으시고 아들은 다시 아버지를 향해 웃으며

이 웃음은 호감을, 호감은 기쁨을 , 기쁨은 사랑을, 사랑은 위격을, 위격은 성령을 낳는다.


진실로 하느님께 맹세코 가장 작은 선행, 가장 작은 선한 의지, 가장 작은 선한 갈망에도

천국의 모든 성인과 천사들은 이 세상의 모든 기쁨을 모아도 비길 수 없을 만큼 크게 기뻐한다.

더 높은 성인일수록 더욱 기뻐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하느님의 기쁨에 비하면 점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하느님은 이 선행에 대해 웃고 즐거워하는 반면, 하느님의 영광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른

모든 행위는 하느님이 보시기에 재나 먼지와 같다.

그러므로 "하늘아, 기뻐하여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셨다."라고 외친다.


최고선의 직관, 그것이 하느님이다!

최고선의 직관을 소유하는 것은 피조물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값진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 고유의 분명한 개념을 가지기를, 당신 스스로 즐거워하기를 원하신다.

신성 안에서 이를 원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것은 당신 본성이 하는 놀이를 바라보시는 성부이다.


그 놀이는 무엇인가? 
하느님의 영원한 아드님이다, 그 놀이는 성부의 본성 안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놀이와 이 놀이를 보는 관객은 동일하다.

성부께서 당신 자신의 본성을 보는 눈길이 곧 그 아들이다.


성부는 당신 자신 외에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성부의 영원한 본질의 고요한 어둠 속에서

당신 자신의 본성을 바라보신다.

그분의 고유한 본성이 다시 보내는 눈길이 바로 성부의 영원한 아들이다.

그러므로 성자는 성부를 그분의 본성 안에서 바라보신다. 성자는 성부와 본성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부께서는 당신 자신의 본성을 바라보시는 데서부터 성자의 이 영원한 놀이가 시작된다. 이 놀이는 창조 이전에 영원히 있었던 것이다.

지혜서에서 기록되어 있듯이 창조가 있기 전에 영원한 현재 안에서 성부께서 당신의 영원한 고요

가운데 계실 때 지혜는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


성자는 성부 앞에서, 성부는 성자 앞에서 영원히 뛰놀고 계셨다.

성부와 성자가 함께하는 놀이가 성령이며, 성부와 성자는 성령 안에서 놀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 안에서 논다. 놀이와 놀이를 하는 이는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