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65 pp.341-343 제 3편 제 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⑵

은가루리나 2019. 4. 17. 15:45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179 추천 0 2013.03.10.06:06



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

 제4절 장소와 환경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 


⑵ 


⑷ 


제8장 7장의 계속 - 실패와 과실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8장의 계속 - 내적시련의 일반


제10장 9장의 계속 - 유혹


제11장 10장의 계속 - 위안과 건조


제12장 11장의 계속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제13장 12장의 계속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제2절 각가지 공포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제4절 양심상의 小心


제14장 13장의 계속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





p.341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7 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어떤 종류의 영적 원조(靈的援助)의 상실(喪失) - ⑵ 



2.

선업(善業)을 하기 위하여 마련된 각가지 자력(資力)에 관해서도,

천주께서는 뜻대로 자유로이 그것을 우리에게서 걷우실 수 있으시다.


이와 같이 

천주께서는 우리에게서 재물, 건강, 시간, 재능, 학식을 걷우시어,

바라시는대로, 일시적으로 혹 결정적으로 우리의 능력을 감소시키고,

말하자면 무(無)로까지 돌리실 수 있으시다.


현세의 행,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에 관해서 말했을 때,

이미 이런 모든 것에 언급하였다.


여기서는 단지 영적 선익의 연장이 되는 범위에 있어서만,

이에 관해서 주의를 촉구하는데 그치자.


그리고 반복을 피하기 위하여,

여기서는 우리에게서 그 수단을 앗아가시는 한,

이전의 사업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만을 말해 두자.



천주께서는 그때 우리에게 인내와 순명을 요구하시고,

완전한 위탁까지도 바라신다.


그리고 이 거룩한 무관심과 이 사랑에 넘치는 복종 때문에

우리는 부유한 때에 있어서보다 현재의 궁핍 안에서,

천주께 보다 커다란 영광을 돌려드리고,

스스로 보다 커다란 선익을 찾아낼 것이다.



p.342


성「프란치스꼬.살레지오」와 함께

보기로서 거룩한 「욥」을 들기로 하자.


이 위대한 천주의 은총은, 어떤 고뇌에도 좌절되는 일은 없었다.


처음 부유할 때,

그는 허다한 선업의 씨를 뿌리는데, 자기 재산을 아끼지 않았다.


스스로 말한 것과 같이,

「그는 절름발이의 다리, 소경의 눈, 굶주리는 이의 양육자,

고통을 겪는 이의 지지자」였다.



그런데도 이제는 극도의 빈곤에 사로잡히고,

자녀, 후계자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는 주에 의해서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이의 손으로 타격을 받은 것,

그토록 유익하고 또한 필요했던 많은 선업을 계속하기 위한 수단을

모두 빼앗긴 것을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는 인종(忍從)하고, 모든 것을 천주의 뜻에 맡겼다.



이렇게 하여 그는 인내와 복종의 유일한 행위로써

유복한 날에 할 수 있었던 무수한 사랑의 업보다도

더욱 훌륭한 덕을 드러내고,

더욱 천주의 뜻에 맞갖는 이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 하나의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행위를 합쳐서

이것을 행하는 것보다도 훨씬 강한, 관대한 사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또한 우리의 소망, 비록 그것이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만일 이것을 실현하는 방법을 앗으시는 것이 주의 뜻에 드신다면, 

원하시는 대로 뺏아가시는대로 맡겨 드리며,

결코 주께서 마치 무엇인가 커다란 불의(不義)를 가하시는 것처럼,

탄식하고 슬퍼해서는 안된다.」(대화편7)



실제, 인내와 위탁은,

우리가 이미 할 수 없는 선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건강, 재능, 재보에 대한 이 거룩한 무관심,

사랑에 의한 천주의 의지와 우리의 의지와의 일치,

이것이야말로 자아(自我)에 대한 죽음,

영적 생활의 완성이 아니겠는가.


이보다 더욱 자신 위에, 이웃 위에, 우리의 사업 위에,

넘칠만큼의 은총을 내리게 하는 유력한 수단이 또 있겠는가.



p.343


3.

회칙에 의한 어떤 종류의 수업(修業),

개인적인 어떤 종류의 신심행위(信心行爲)는,

질병, 장상의 명령, 그 밖에 이와 비슷한 원인에 의해서,

기간의 장단(長短)에 불구하고, 실행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한편으로는,

극히 우리의 마음에 드는 일이기는하나,

그러나 한번도 이것을 실행할 수단을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것이 있다.


그러한 것에서 우리에게 고뇌와 미련의 정이 생기지 않을 수도 없으리라.



그러나 그러한 일에 관하여 비탄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도대체 한 사람이 오주나 성인들이 남기신 덕행의 모든 것을

모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섭리의 계획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만 만족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섭리가 우리에게 정하신 몫에 대해서는 불평할 이유가 결코 없다.


왜냐 하면,

섭리는 우리에게 활동해야 할 광대한 광장을 우리에게 개척해 주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모든 신도에게 공통적인 의무,

그리고 우리의 신분상의 고윽한 의무를 합쳐,

일상의 의무 전체를 그 사소한 점까지 견인불발(堅忍不拔),

충실하게 수행해 간다면,

그만큼 큰 성인이 되는 것에는 충분하다.


p.344


실제,

우리의 소명(召命)의 길에 있어서는,

천주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시는 성화수단의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한다.


예컨대,

수도적 청빈에 의해서 물질적인 시사(施捨)를 할 수 없는 점은,

영적 시사로써 이를 대신하며,

금품을 줄 수 없어도 기도와 희생을 남을 위하여 바칠 수 있다.


관상생활은 외적 활동에 의한 포교생활을 금하고 있지만,

그러나 내적 생활의 업으로써 이를 행할 수 있다.


즉 죄인의 발자취를 쫓아 세계를 다름질하는 대신,

천주의 곁에서 그들의 일을 돌볼 수 있다.


사도적 활동은 한정된 범위에 있어서만,

감미롭고 거룩한 관상생활의 업을 허용한다.


그래도 순명과, 헌신에 의해서

순수한 의향과 천주를 끊임없이 생각함으로써,

우리의 업을 드높여, 충분이 자신을 성화할 수 있다.




우리는 소명(召命)에 의해서 주어진 수단을 가장 훌륭하게 이용한다면,

그로써 가장 높은 완덕이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데 충분하다.


성인은 어떤 수도회에서도 또한 사회의 모든 계급에서도 배출되지 않았던가.


어떤 환경의 조건은 그것 자체보다 유리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우리 각자에게 있어서는

성의에 의해서 주어진 경우는 오직 하나의 좋은 것이다.



질병은 대재, 소재를 금하고

공동의 성무일과를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그대신 우리는 자기 마음 안에서 천주를 찬미하고,

자기 판단과 고집을 엄히 제어하고

자기 눈, 혀, 마음, 모든 감각을 정확하게 억제할 수 있다.


건강할 때의 의무를 수행하여 거두어 들일 수 있는 공로는,

인내, 자아포기, 순명, 거룩한 위탁과 같은,

질병 때의 의무를 충실히 지켜 이것을 보충할 수 있다.


p.345


장상의 명령,

또는 같은 다른 모든 이유에 의해서

우리는 규정된 어떤 종류의 공동수행(共同修行)

또는 개인적인 신심 행위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지만,

그 손실은 언제나 보충할 수 있다.


즉 먼저 새로이 처하게 된 환경이 요구하는 의무를

관대한 마음으로 수행함으로써 다음에

「우리의 소망이나 수업을 배가하는 것이 아니고,

의무의 수행에 있어서의 완전성의 분량을 배가함에 의해서다.


이렇게 한다면,

오직 하나의 행위로써,

자신의 선택과 취미로 행해지는 다른 백가지 행위에 의하는 것,

보다도  많은 영적 이익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대화편」7)




요컨대,

덕에 나아가는 유일한 수단은 우리의 의지를 포기하고,

천주의 의지에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신자로서의 의무,

회칙에 의한 수행(修行)과 개인적 신심행위(信心行爲)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이상,


그리고 우리의 과실에서가 아나라,

천주의 임의의지에 의해서 그러한 것의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할 경우에도

어찌 우려되는 일이 있겠는가.


모든 것을 하시는 것은 홀로 천주시며,

손실을 보충하는 길은 또한 허다하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록 우리의 눈에는 가장 옳고,

가장 거룩한 것처럼 보이는 일에 있어서까지 자기의 의지를 버리고,

천주의 의지에 따르는 열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