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70 pp.362-368 제 3편 제 8장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은가루리나 2019. 5. 31. 14:17


제 3 편 8 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계속) (제 3 절) ★거룩한위탁



옴니아  등급변경▼  조회 190  추천 0 2013.04.12. 15:25



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

 제4절 장소와 환경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 



⑷ 


제8장 7장의 계속 - 실패와 과실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8장의 계속 - 내적시련의 일반


제10장 9장의 계속 - 유혹


제11장 10장의 계속 - 위안과 건조


제12장 11장의 계속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제13장 12장의 계속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제2절 각가지 공포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제4절 양심상의 小心


제14장 13장의 계속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





p.362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8 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계속)



―실패(失敗)와 과실(過失)―



제 3 절 남의 영혼의 성화(聖化)에 있어서의 실패



사람들의 영혼의 성화에 대한 분발에 관해서,

마찬가지로 우리는 현명하고 변함없는 열심으로

그리고 평온한 위탁 안에서 자신의 힘이 미치는데까지 노력해야 한다.


실제, 천주께서는 의무를 완수할 것을 명하시지만,

성공은 반드시 이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우선 중요한 점은 

천주에 있어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슴 속에 거룩한 사랑의 불꽃이 치성함에 따라,

열심의 불꽃이 치솟게 될 것이 분명하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그 영혼을 지도하기 때문에,

또는 그 밖의 특별한 명의로 우리에게 있어 특히 사랑해야 할 이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모두 영원한 광명에 비추어 소중히 여겨야 한다.


즉, 최고의 심판자는 그에 관해서 우리에게 셈을 요구하실 것이고,

악마는 그들에게 덤벼 들려고 틈을 엿보지만

천국은 아마 우리에게 의해서만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천주를 주고, 그들을 모두 온전히 천주께 바쳐야 한다.



천주 성부께서는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도록 

당신 마음에 가장 맞갖는 독생성자를 희생하셨다.


주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제물로 바치시고,

제대 위에서 간단 없이 당신을 봉헌하시며,

그 실체(實體)로써 우리 영혼의 양식이 돼 주신다. p.363


주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교회와 사제와 성사를 주시어,

아낌없이 내적(內的)및 외적(外的) 은총의 비로써 우리를 기름지게 하신다.


성신에 의해서는 

우리를 비추시고, 끌어 당기시며, 격려하시고, 이끄시며, 정복하시고,

또한 옹호하시며, 뒤따르시고, 돌아서게 하시며, 그리고 용서하신다.


요약하면,

구세주께서는 우리의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사랑으로써 사랑하신다.


이 훌륭한 모범은 얼마나 성인들을 크게 감동시켰을 것인가.

또한 우리의 미온(微溫), 냉담(冷淡)을 얼마나 각성케 했을 것인가!


우리의 열심이 아무리 큰 것이라도 어찌 천주의 그것과 비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는데는,

천주의 행동과 섭리의 질서에 적응하면서, 천주께서 하시는 길에 따라야 한다.


즉,

천주께서는 우리를 자유로운 것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결코 우리의 의지를 강압하시는 적은 없으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풍부히 은혜를 베푸신다고는 하지만,

그 분량과, 그 때와, 그 양식(樣式)에 있어서는,

원하시는대로 갑에게는 많이, 을에게는 적게 주신다.


우리 역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특히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에게 모범과 희생을 주도록 하자.


만일 숭고한 사도직의 영예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면,

성교회로 부터 맡겨진 공식 기도에 각별히 유의하자.


사람들의 영혼이 어떤 명의로 우리에게 맡겨져 있을지라도,

천주께서 그들에 대하여 가지시는 사랑과,

그들이 천주의 어전에 가지고 있는 가치에 맞갖는 열심으로,

그 함양에 헌신하자.



그러나, 

우리는 해야할 일을 완수하고, 끊임없는 열심으로써 기도하면서,

천주께서 그 은혜의 분배주가 되시고,

또한 인간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주시기를 원하셨으므로,

천주의 권한(權限)과 섭리의 계획을 존중하여,

언제나 평화를 간직하도록 힘쓰자.



p.364


가끔 의외의 일이 있을 수도 있다.


천주 자신이 사람들의 마음의 열쇠를 쥐고 계시다고는 하지만,

결코 강제로 내부에 들어가려고는 하지 않으시며,

문 앞에 서시어 두드리신다.


여기에 은총과 그것에 응한다는 현의(玄義)가 있다.


어떤 이는 급히 뛰어가고, 어떤 이는 열기를 거절하며,

많은 이는 그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래서 천주께서는 자주 문 밖에 남게 되신다.


최고의 은인과 벗이신 양선한 구세주께서는,

당신 자신의 나라에 내려오셨지만, 자기 백성은 그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음이 악한 무리는, 주를 그 설교하시는 동안에 잡으려고 찾아 다니며 

군중은 배반하여 떠나갔고,

「유다스」는 배신하였으며, 다른 사도들은 도망쳐 버렸고,

그렇게 하여 주께서 적의 채찍질 아래 쓰러지셨을 때,

성교회는 폭풍우에 시달리는 가냘픈 한 그루의 관목(灌木)에 불과했었다.



제자는 스승보다 우월하지 못하다.


즉, 사도들은 많은 기적을 행할 수 있었다고는 하나,

드디어 죽음을 당했을 때에,

아직도 연약한 양의 무리를 시랑이 가운데 남겨 두었다.


어떤 성인은 극히 감탄스러운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음에 대하여,

다른 성인, 그것도 매우 탁월한 성인은 외관상 최후까지 실패하였다.



성「알퐁소」의 보기만 들어도 그의 최초의 제자들은 그를 떠났고,

또한 후에 얼마나 많은 제자들이 

혹 스스로 떠나고, 혹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던가!


그 가운데는 교황 앞에서 그를 실각시켜,

성인 자신이 창립한 수도회에서 추방하려고 기도(企圖)한 이도 둘이나 있었다.


이런 모든 실패는 창립자로 하여금 성덕의 절정에 이르게 하고,

그 수도회를 「갈바리아」의 요지부동한 반석 위에 세우는데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천주의 계획은 느리어 바로 실현되지 않으므로,

열심한 사제에게 있어 영혼이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을 보는 것,

또한 장상에게 있어,

성성(成聖)의 희망을 걸고 있는 영혼이 평범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작지 않은 시련이다.


p.365


비록, 실패의 고통이 아무리 심각하드라도,

그것은 천주의 허락하심이 있었기에 일어난 것임을 깨닫고,

평온한 위탁 안에 이것을 받아들여,

그것을 자기 영적 진보(靈的進步)에 도움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겸손의 덕으로 견고하게 되고,

허영심과 인간적인 위안에서 이탈하여 의향을 순수한 것으로 하며,

사람들의 영혼 안에 천주만을 찾는데 최선의 기회의 하나다.



예언자인「다위」왕과 함께, 우리를 낮추게 하신 천주를 찬미하자.

(성영 118.71)


왜냐 하면, 성공은 

가장 흔히 우리를 소경으로 하여 헛된 자부심에 도취시키기 때문이다.


성공은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것은 천주에 의한다는 것,

또한 우리가 아니라,

남 모르게 기도하고 자신을 희생으로서 바치고 있는

세상에 숨은 영혼에 의한다는 것을 잊게 한다.


이에 반하여 실패는 

우리를 현실에 대한 올바른 판단에로 돌아가게 한다.


즉, 그것은 우리가 보잘것없는 연장에 불과함을 상기시키고,

반성과 숙려, 필요에 따라서 결점의 시정, 방법의 개선, 열심함의 갱신(更新),

더욱 더 끊임없는 기도에 이끈다.


왜냐 하면, 우리의 소홀함과 죄과가 악을 초래했다면,

단지 통회로써 그것을 씻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가져온 나쁜 결과를 가급적 기워갚으며

열심과 기도와 희생을 더욱 많이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겸허한 인종(忍從)때문에, 분발심이 이완돼서는 안된다.


만일 맡겨진 영혼이 우리의 배려에 응하지 않는다면,

「저 양순하신 예수,

그 일생 동안, 죄인 때문에 몇번이나 눈물을 흘리시고,

드디어 두 눈이 눈물로 충만되셨으며,

몸은 피투성이가 되시어 죽으신 주와 함께

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탄식하며, 애원하자」라고,

성「프란치스꼬.살레시오」는 말하고 있다.


p.366


형이 선고되시고 배반을 당하시며, 버림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원하셨더라면,

생명을 끝까지 보전하시고,

우리를 완고한 죄인 상태로 버려 두실 수도 있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극도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주께서는,

참된 사랑이란 결코 낙담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셨다.


즉, 사랑은 

흔히 가장 혹심한 반항에도 드디어는 이긴다는 것을 알며,

또한 만사를 배려하시는 천주께 희망을 두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천주의 자비하심은 「유다스」의 경우 실패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이같은 자비는 

성녀「막달레나」, 성「베드루」, 성「아우구스띠누스」,

그 밖의 모든 통회자를 만들지 않으셨는가.



우리의 비참함과 죄를 명백히 드러내 주는 겸손은,

수덕(修德)의 곤란한 일을 충분히 깨닫게 하여,

아직도 연약한 영혼에 대해서 마음에서의 깊은 동정을 환기시켜 준다.


「죄인이 회개하여 구령할 수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과연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가.

우리는 희망의 영역 안에 있는 동안... 그리고 생명이 있는 한, 

희망도 있다...


결코 죄인을 버려서는 안된다.

도리어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 가련한 상태가 허용하는 한 그를 도와야 한다.」(「신애론」9편 8장)



결국, 우리가 인도하는 영혼이 우리의 희망을 배반하여

우리의 노력이 허사로 끝났더라도

만일 그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나 아끼지 않고 진력했다면,

이 실패에 관해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책임도 없다.


우리는 자기 임무를 완수하였다.

자신에게 관계되는 한, 우리는 천주께 영광을 돌리고,

그 자애 깊으신 성심(聖心)을 기쁘게 해드렸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부족함과 책임을 느끼드라도,

그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p.367


성「벨나도」는 그 제자인 복자 「보돵」에게 보낸 서간 가운데서,

우리에게 이 점에 관하여 안심시키고 있다.


「그대는 받지 않은 것에 대해서가 아니고,

받은 것에 관해서만 셈이 요구되리라.


그대는 항상 그것에 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대에게  맡겨진 『탤런트』에 관해서 뿐이다.

그 밖의 일에 관해서는 전연 안심하여라.


그대가 많이 받았다면, 많이 주어라.

조금 받았으면, 조금 주어라.


왜냐 하면 마지막 한 푼이라도 모두 요구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그대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에 관해서가 아니고

가지고 있는 것에 관해서 뿐 이다.」(「서간 」201)




「그러나, 드디어 완고한 죄인을 위하여 울고,

멸망의 길에서 일으키려고 그들에 대하여 애덕의 의무를 완수한 후에는

주와 사도들을 닮아야 한다.


즉, 우리 정신을 거기에서 떼어 버려, 다른 것 위에 옮기고 

보다 큰 천주의 영광이 되는 일에 향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어떤 사람들의 일을 너무 헛되이 탄식하고 슬퍼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적절하고 필요한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천주의 자비하심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복적이며,불의(不義)를 징벌하시는 그 정의(正義)도 

흠숭하고, 사랑하며, 찬미해야 한다.


왜냐 하면

자비도 정의도 마찬가지로 천주의 인자하심이 사랑하는 딸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지선하신 분이신 천주는

그 은총으로써 우리를 착한 이로 하시기 바라신다.


또한 죄를 미워하시기에, 

정의로써 이것을 벌하시거나, 은혜를 베푸시드라도,

항상 그 성의는 흠숭할 만한, 사랑할 만한, 

또한 영원히 찬미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다. p.368


이렇게 하여 

구원된 이를 위하여 천주의 자비하심을 찬미하는 의인(義人)은,

또한 가공할 정의의 복수를 보아도 마찬가지로 기뻐하리라.


.... 또한 천사들은,

자기가 수호하도록 위탁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일을 완수한 후에는

비록 그들이 고집하고 또는 지옥에 떨어지도록 선고를 받는 것을 보아도,

조금도 평화를 잃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천주의 의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받고,

그 자비의 오른 손에도, 그 정의의 왼 손에도

같은 사랑과 존경으로써 친구하자.」

(「신애론」9편8장)



p.368


영혼을 지도함에 있어,

아직 이 밖에도 각가지 시련에 부딪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시련도,

적어도 우리를 사람들과 사물에의 애착에서 이탈시켜,

온전히 순수한 열심과 거룩한 위탁을 실천시키는

섭리의 손에 의한 각기 목적을 가지고 있다.


보기 하나를 드는데 그치지만

우리에게 온전히 만족을 준 사람들을,

예기하지 못했을 적에 천주께서 앗으시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는 불평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우리를 채찍질 하신 손에 친구하자.


우리의 임무는 이런 영혼을 천주께 인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미 그것에 성공하여 감미로운 위로를 맛 보았다.


우리가 이런 영혼을 함양한 것은 천주를 위해서이며,

그들은 우리의 것이라기 보다는 천주의 것이다.


따라서, 만일 천주께서,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는 기쁨,

우리의 가장 귀중한 희망을 앗아가시기를 바라신다면,

천주의 의지에 우리의 의지를 ,

그 무한한 예지는 우리의 보잘것없는 지혜에

또한 우리의 영원한 이익이 지상(地上)의 이익에 앞선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