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마리아

6월9일/ 지혜안에서 성장 {하느님 뜻의 나라 동정 마리아 부록5} 성전 방문. 기도의 모범이신 마리아. 예수님을 잃음. 환희와 고통. | 동정 마리아 부

은가루리나 2019. 6. 2. 19:36




  부록 5

 하느님 뜻의 나라의 천상 여왕.

 성전 방문.

 기도의 모범이신 마리아.

 예수님을 잃음.

 환희와 고통.





천상 어머니께 바치는 기도



1 거룩하신 엄마, 

엄마의 사랑이 한층 더 강력한 소리로 엄마를 부르십니다. 


제가 보니, 바삐 준비하시어 이제 막 나자렛을 떠나시려고 하십니다. 

엄마, 저를 버려두지 마시고, 함께 데려가 주십시오. 

또 다른 숭고한 가르침들을 주의해서 듣겠습니다.




천상 여왕님의 훈화



2 사랑하는 얘야, 

네가 나의 어머니다운 마음에 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기쁨은 

나와 함께 있으면서 나를 본받기 위하여 

이 천상적인 가르침에 귀 기울이는 깊은 관심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 큰 기쁨을 주는 이유는 

내가 상속받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너와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3 그러니 때로는 예수님께, 때로는 내게 눈길을 돌리면서 

내 말을 유심히 들어라. 


이제 너에게 내 삶 속에 일어난 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이는 결과적으로 위안을 안겨 준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내게는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4 하느님 뜻이 

내게 새로운 힘과 은총을 한 모금씩 계속 마시게 하시지 않았다면 

– 상상해 보아라. 

순전히 그 고통의 세찬 엄습 때문에 나는 숨을 거두고 말았을 것이다.




5 우리는 나자렛의 고요하고 작은 집에서 계속 생활하였고, 

내 사랑하는 아들은 은총과 지혜안에서 성장하였다.


부드러우면서도 감미로운 음성,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눈, 

온 몸에서 풍기는 사랑스러움으로 하여 사람의 마음을 끌었으니, 

그렇다, 내 아들은 정말로 아름다웠고,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6 내 아들이 열두 살이 되자, 

우리 세 사람, 곧 (내 아들) 예수와 성 요셉과 나는 관습에 따라 

(유다인의) 파스카 대축제를 지내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길에 올랐다.



7 기도와 묵상에 잠겨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예수님은 매우 자주 침묵을 깨고 

하늘에 계신 당신 아버지에 대해서 성 요셉과 내게 이야기하셨고, 

때로는 당신 마음에 품고 있는 영혼들을 향한 한없는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곤 하셨다.



8 일단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우리는 곧바로 성전으로 갔고, 

거기에서 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다. 

그렇게 하느님께 깊은 흠숭을 드리며 오래도록 기도하였다.


우리의 기도는 매우 뜨거운 잠심(潛心)의 기도였기에 하늘을 열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마음을 끌어당기며 묶는 구속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하느님과 화해시키는 일을 촉진할 수 있었다.




9 그런데 얘야, 이제 네게 털어놓고 싶은 것이 있다. 

이는 나를 몹시 괴롭히는 고통이다. 


교회에 기도하러 오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불행히도 입술로만 하느님께 기도하고, 

그들의 마음과 정신은 하느님에게서 멀리 달아나 딴전을 부리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단지 습관적으로, 

또는 무익하게 시간이나 보내려고 교회에 오는지 모른다!



10 그런 이들은 하늘을 열기는커녕 닫아버리고 만다. 

불경스러운 짓 또한 하느님의 집에서 얼마나 숱하게 저질러지고 있는지!


모든 사람이 우리의 모범을 따르려고 노력한다면 

세상이 참으로 많은 징벌을 면할 것이고, 

그 많은 징벌이 은총으로 바꾸기도 하련마는!



11 오직 하느님의 뜻이 다스리시는 영혼에서 솟아나는 기도만이 

억누를 수 없도록 하느님의 마음에 작용할 따름이다. 


그런 기도는 매우 힘이 있어서 하느님을 이길 정도이기에 

그분께로부터 더없이 큰 은총들을 얻어낸다.



12 그러니 너는 힘써 하느님 뜻 안에서 살아라. 

그러면 너를 사랑하는 이 엄마가 내 강력한 전구의 권리를 

네 기도에도 부여해 주겠다.





13 우리는 성전에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하면서 

파스카 축제를 지낸 후, 나자렛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혼잡한 군중들 사이에서 서로 갈라져, 

나는 여자들 속에 끼여 있었고 요셉은 남자들과 함께 갔다.



14 나는 내 예수가 나와 함께 있는지 확인하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모습이 보이지 않기에 

아버지 요셉과 같이 있으려니 하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합치게 된 지점에서 요셉 옆에 예수가 없음을 알았으니, 

얼마나 큰 놀라움과 당혹감에 휩싸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던 우리는 

너무 두려운데다 고통스럽기 그지없었으므로 

두 사람 다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15 그러나 비통에 잠긴 채 왔던 길을 서둘러 되돌아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근심에 잠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우리 아들 예수를 보셨는지, 부디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우리는 이 아들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16 그리고 울면서 아들의 생김새를 이렇게 설명하기도 하였다.


“우리 아들은 매우 사랑스럽게 생겼습니다. 

아름다운 푸른 눈은 초롱초롱 빛나며 흉금을 울리는 호소력이 있고, 

눈길 또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사로잡고 묶는 힘이 있습니다. 

이마에는 위엄이 넘치고, 얼굴에는 빼어난 아름다움이 넘칩니다.


17 더없이 감미로운 음성은 마음 속 깊은 데로 내려오며 

모든 쓴 맛을 단맛으로 바꿉니다. 

구불거리는 아름다운 금발은 준수하고 매력적인 용모를 돋보이게 합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위엄과 품위와 거룩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정녕 사람의 아들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18 하지만 아무리 찾아다녀도 

아무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 주지 못했다. 

너무나 큰 고통으로 말미암아 나는 몹시 울었는데, 

그 고통은 순간마다 내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내면서 

실로 임종의 모진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이었다.



19 사랑하는 얘야, 예수님은 내 아들이었지만 또한 내 하느님이셨다. 

따라서 내 고통은 완전히 신적 차원에 속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너무나 강력하고 엄청난 것이어서

다른 고통을 다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고통이었던 것이다.



20 내가 소유하고 있었던 ‘피앗’

이 그 자체의 신적인 힘으로 나를 계속 지탱해 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 충격 때문에 새파랗게 질려 죽었을 것이다.



21 우리에게 아무것도 알려 주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천사들에게 근심스레 물어 보기도 하였다.


“말해 다오. 내 사랑하는 예수님은 대체 어디에 계시냐? 

내가 어디로 가야 그분을 찾아낼 수 있겠느냐?


22 아, 이런 상태로는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그분에게 전해 다오. 

너희 날개에 그분을 태워 내게 모셔 오너라! 

- 내 천사들아, 내 눈물을 동정해서라도 나를 도와주려무나. - 

내게 예수님을 모셔 오너라!”



23 그 동안 백방으로 찾아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자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너무도 쓰라린 탄식과 눈물과 근심과 두려움으로 

사흘을 보낸 후 성전으로 들어갔다.


나는 온 몸이 눈이 되어 여기저기로 열심히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있는 내 아들을 보았다! 

격렬한 환희에 휩싸이면서!



24 그분의 말씀에는, 

듣고 있었던 사람들을 경탄과 놀라움에 빠져들게 할 정도로 

슬기와 엄위가 서려 있었다.


나는 단지 그분을 보는 것만으로도 생명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고, 

그분을 잃고 (찾아 헤맨) 이 사건의 숨은 이유를 즉각 깨닫게 되었다.




25 사랑하는 얘야, 이제 네게 한마디만 더 하겠다. 

내 아들은 이 신비(로운 사건)을 통해서 

나와 너에게 하나의 심오한 가르침을 주려고 하셨다.


너는 설마 내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그분께서 모르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그 반대로 (그분은 환히 알고 계셨으니,) 

나의 눈물과 찾음과 혹심한 고통이 그분의 마음 안에 그대로 

메아리치고 있었다.



2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끔찍한 고통의 시간 동안, 

그분께서는 당신이 무척 사랑하는 당신 자신의 엄마를 

하느님의 뜻에 희생 제물로 바치셨다.


그것은 나 역시 어느 날인가는 

하느님의 지고하신 뜻에 

어떻게 내 아들인 그분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할지를 

실제로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27 사랑하는 얘야,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그 고통 속에서도 나는 너를 잊지 않았다. 

이것이 너에게 본보기가 될 것을 생각하고 

네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간직한 것이다.


적절한 때가 오면 

네가 하느님 뜻에 모든 것을 희생으로 바칠 힘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28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우리는 예모를 갖추어 그분께로 다가가서,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하고 부드럽게 나무랐다.


그러자 그분은 하느님다우신 위엄이 넘치는 태도로,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에 온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하셨다.



29 우리는 이 답변의 숭고한 의미를 깨닫고, 

그 속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흠숭하며 나자렛으로 돌아왔다.



30 엄마다운 내 마음의 아기야, 들어 보아라. 

예수님을 잃어버렸을 때 내가 겪었던 고통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또 하나의 고통이 보태졌으니, 

곧 너를 잃은 고통이었다.


사실, 네가 하느님 뜻을 떠나 멀리로 가려고 하는 것을 미리 보았기 때문에, 

내 아들과 동시에 너도 잃었음을 알게 된 내 모성적인 마음은 

이중으로 타격을 받았던 것이다.



31 얘야, 네가 하느님의 뜻보다 오히려 네 뜻을 따르려고 할 때면, 

하느님의 ‘피앗’을 저버림으로써 예수님과 나도 잃으려고 한다는 것과 

그리하여 비참과 악덕의 나라 속으로 떨어지려고 한다는 것을 생각하여라.


32 그러므로 네가 내게 한 약속대로 

나와의 나뉠 수 없는 일치 안에 남아 있어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다시는 네 뜻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 뜻의 지배만 받는 은총을 베풀어 주겠다.




영혼의 응답



33 거룩하신 엄마, 

제 뜻이 저를 얼마나 깊이 떨어지게 할 수 있는지 

그 타락의 깊은 구렁을 생각하면 몸이 떨립니다. 


그것으로 인해 엄마를 잃고, 예수님을 잃고, 

천상적인 모든 선도 잃을 수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34 엄마, 엄마께서 저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또 하느님 뜻의 빛의 능력으로 저를 둘러싸시지 않으면, 

항구하게 하느님 뜻 안으로 사는 것이 제게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제 모든 희망을 엄마께 두고, 엄마를 신뢰하며, 

엄마로부터 모든 것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작은 희생 : 예수님을 잃고 사흘 동안 겪었던 

내 극심한 고통을 동정하는 마음으로 “성모송”을 세 번 바쳐라.



환호 : 거룩하신 엄마, 

제가 영원히 제 뜻을 잃고 오직 하느님 뜻 안에서만 살게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