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기도

능구 3개월⑵ EBS 기획특강 - 도올 김용옥의 중용, 능구能久와 삼개월 ╋ 봉헌서약 준비

은가루리나 2019. 6. 7. 15:07



 EBS 기획특강 

 - 도올 김용옥의 중용, 능구能久와 삼개월 

 ◀ 능구(能久) 3개월 ▶


 moowee 등급변경▼ 조회 599 추천 0 2017.12.08. 13:41




제10강 교육의 리듬과 능구(久矣)




<동양 사상은 추상적 개념이나 주제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하지 않는다.

그러한 탐구도 반드시 실천과 관련되어 있다.


중용은 이론과 실천을 통합한다.

성인이 되기 위한 실천이 그 대전제.>




<중용>


子曰 

"中庸基至矣乎" (중용기지의호)


아~ 그것(중용)은 지극하도다!



이러한 찬탄의 배경에는 

그러한 중용을 끊임없이 실천하는 자들의 삶에서 느끼는 어떤 감탄같은 것.

위대한 것이지요.



"民鮮能久矣" (민선능구의)


중용의 실천은 누구나 삶 속에서 직각적으로 수용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문제는 구(久)에 있다.

항상 그것을 오래 실천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불변은 없다

삶의 항구적 기준은 불변, 영원이 아니라 지속(久)이다. -공자-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지속(부부간에도)


<생식은 유기체가 시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속시키는 방편이다.

그것은 진화의 유일한 통로이다.

그러나 인간세에서 그것은 문명의 지속방편이었다.>




<지속은 존재의 연속고리이다.

그것은 역사의 존중이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역사가 곧 하느님이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야할 가치라는 것은 지속이다.

청춘의 위대함은 소기하는 가치를 지속시키는 능력, 즉 지구력에 달려있다.



자왈

중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의 지속일 뿐이다.


중용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중용이라는 것은 너무나 지극한 것이라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것인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오래 실천하지 못한다.


오래 실천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제11강 능구能久와 삼개월



< 11-4 강 > 


사람이 무엇이든지 3개월만 실천을 하면

그 다음부터는 달이면 달마다 날이면 날마다 변함없이 굴러간다.


여기에서 久라는 것을 10년, 100년 지속하라는 것이 아니고

중용을 실천하는 것을 능구하라는 것은 겨우 3개월.


3개월, 쉬울 것 같지만 무엇이든지 3개월만 실천해 보라.

discipline 이필요

우리 동양에서는 공부(工夫)라고 해요.


<중국인들은 "꽁후우gong-fu 工夫"라는 말을 다양한 의미로 사용한다.

모든 "몸의 단련"을 지시하기도 하고, "시간"을 지시하기도 한다.

몸의 단련을 시간을 요한다는 뜻이다.>


훈련의 총칭.

운동을 한다는 것도 몸의 단련.



<공부工夫 = 功扶: 이 말은 당대의 선사들의 어록에서

출현하기 시작하여 주자학의 기초개념이 되었다.


백화(白話)용법에 속함.

이것이 우리 현대어에서는 서양말 "to study"의 해당어로 쓰였다.


몸을 닦는다.

우리 동양에서는 수신이라고 표현.


그 수신은 수신의 문제이고 능구의 문제


공부工夫 = 수신修身 = 시중時中 = 능구能久



몸의 훈련이라는 것도

내가 지적인 훈련을 해서 단련하는 것과 같은 것


어떠한 것이든지 수신을 능구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모든 방면에 달인(버처러스)이 된다.



<몸Mon의 능력은 "공부"를 통해서만 그 최대의 가치를 발현한다.

신체적 측면에서 정신적 측면에 이르기까지 공부의 층차는 다양하다.


그러나 정신적 단련이, 

영향력과 지속성의 차원에서는 단순한 뮥체적 단련보다 

탁월힌 측면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무슨 애인 만나고 그런게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고 있는 아레떼, 그 덕성을 발현하는 것이다.



<아레떼arete : 어떤 사물의 기능이 최대로 발형되는 덕성.

탁월함, 훌륭함excellence의 의미로도 쓰인다.>


칼이란 무엇을 베기 위한 것이고

칼이 잘 드는 것이 칼의 아레떼 덕성이다.

칼이 안들면 무용지물.


풀은 잘 붙여야 대패는 잘 밀려야 톱은 잘 쓸려야

그 효용을 잘 발현한다.


그런데 칼이 잘 들듯이 

인간이 인간으로써 최대의 쓰임이 뭐냐?


이게 인간의 아레떼다.


이게 덕 悳이라는 의미도 되지만

아레떼라는 말은 excellence탁월함, 훌륭함이다.



뭐든지 excellent하게 자기의 가능성을 발현해야 한다.


가능한 존재란 자기가 갖고 있는 아레떼를 최대한 발현해서

자기의 가치를 다 드러낼 때 비로소 유다이모니아 행복한 인간이 된다.



<유다이모니아: 행복, 

인간을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한다.

행복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아레떼를 구현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




그러기 위해서는 아레떼excellence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꽁후우gong-fu 공부를 해야한다.


꽁후우란 지적, 신체적 단련 다 포함.


<인격적 훌륭함은 올바른 것들을 수행하는 습성이 굳어진 상태라고 

보는데,

이것을 희랍인들은 "헥시스hexis"라고 불렀다.

"헥시스"와 "공부"는 상통하는 개념이다.>




< 11-5 강 >



선(善)이 무엇이냐를 논쟁할 필요가 없다.

하루하루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실천하는 것, 

즉 공부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선의 가치는 천명(天命)의 직각(直覺)이다.



우리의 문명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의 가치기준에 따라 건설해야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능구하라.


능구는 다른 것이 아니라 3개월 실천!



공자님 말씀은

안회는 3개월을 실천한다.

그러나 나는 3개월이 어렵다.

그러나 너희들은 안회처럼 최소한 3개월은 해라. 

(*안회-공자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로 무서운 실천력의 소유자)


아주 간곡하신 말씀입니다.



동양 사랑은 이렇게 비근한 데서 여러분들의 실천을 요구합니다.

아주 비근한 일상 생활에서!


3개월만 정확하게 실천하면

그 다음부터 그 습성에 따라서 인생이 그대로 흘러갑니다.





* * *



천상의 책 16-1, 1923년 7월 23일


하느님 뜻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한 변화



"딸아, 내 뜻은 피조물의 뜻과 지속적인 만남 속에 있다. 


인간의 뜻은 내 뜻을 만나기에  

내 뜻이 내포한 빛과 거룩함과 힘을 받는다.


내 뜻은 사람에게 하늘의 생명을 미리 주려고 

그 자신을 내어 주는 행위를 계속한다. 


사람이 나를 받아들이면 이 천상 생명과 함께 머무르게 된다.


그러나 

매 행위를 할 때마다 하느님의 지고하신 의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들은 다만 자신들의 인간적인 뜻과 함게 머무르게 된다. 



그러므로, 딸아, 

내 모든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너의 첫 행위가 내 뜻을 만나게 하고, 

첫 생각과 첫 심장 박동이 내 뜻의 영원한 고동과 만나게 하여라. 


모든 것 속에서 지속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힘써라. 


그러면 

너는 내 뜻 안에서 변화되고 나는 네 뜻 안에서 변화될 것이니, 


이를 통하여 

네가 내 뜻과 최종적으로 만날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하면 죽은 뒤에 고통과 만나지 않게 될 것이다.“





moowee 2017.12.08.14:18



★ <신앙>이야말로 지속(能久) 입니다, 천국까지 ★


남아 있는 여러분은 부디 能久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뵙는 그날까지!



* * *



천상의 책 

12-36 1918년 3월 4일

굳건함은 용맹을 낳는 지대한 덕행이다.


2

"딸아, 용기를 내어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마라. 


굳건함은 지대한 덕행이다. 

그것은 용맹을 낳는다. 


그러므로 

성인이 되지 않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큰 덕행이다.


그런 영혼은 

행위를 거듭함에 따라 좌우 양쪽에 두 개의 막대를 형성하는데 

이것이 버팀목과 방어물 구실을 한다. 


또한 그 행위의 반복으로 

자기 안에는 새롭게 증가하는 사랑의 샘을 형성한다.





「수난의 시간들」제14시간


14

굳건함이라는 덕은 

하느님께서 참으로 우리 안에서 다스리고 계신지 아닌지를 

알게 하는 덕이다.


우리의 이 덕이 참된 것이라면 

시련 중에 있을 때에도 항구하고 언제나 한결같은 굳건함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게다가 선과 고통과 활동 중에 굳건하면 할수록, 

우리가 우리 주위에 예수님께서 은총을 펼치실 영역을 

그만큼 더 넓게 확장하는 것이다.


15  

따라서 우리가 항구하지 못하면 그 영역이 좁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쓰실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거나 전연 없게 되지만,

우리가 굳건하고 항구하면 

예수님께 매우 넓은 공간을 드리게 된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을 떠받칠 지주와 은총을 퍼뜨릴 공간을 

찾아내시게 되는 것이다.



16  

우리가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쉬시기를 원한다면,

그분 자신의 굳건함으로, 

즉, 그분께서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활동하셨던 그 굳건함으로 

그분을 에워싸자.


그러면 그분은 우리의 수호를 받으시는 셈이기에  

편히 쉬시며  우리의 마음 안에 머물러 계실 것이다.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깨여,

저에 대한 사랑으로 언제나 굳건하고 한결같이 고통을 겪으시니,

저에게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고통 받는 힘과  

항구성과 영웅적인 용기를 주소서.


오, 예수님, 

제가 사랑에 항구하지 못하는 때가 없게 하시여,

당신의 불변성에 동참하게 해 주십시오! +「수난의 시간들」제21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