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루이사 피카레타의 생애와 사명 〔제5장-하느님 뜻 안의 일상 ①〕(p.63-66)

은가루리나 2015. 12. 27. 01:20


제 5


하느님 뜻 안의 일상 

 


1 (p.63)



  1889년부터 루이사의 일상은 규칙적인 리듬으로 반복되었다. 

그녀는 밤낮으로 예수님과 결합하여 반영구적으로 고통을 받는 상태로 있었고, 

이를 일컬어 “나의 일상적인 상태” 곧 “여느 때와 같은 상태” 라고 하였다. 

자정이나 밤 한 시경이 되면 몸이 돌같이 굳고 숨이 멎으며 영혼이 몸과 분리되었으니, 

이때 부터 새벽 여섯 시까지 그녀의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운 부동 상태로 누워 있는 반면, 

영혼은 예수님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예수님의 인도로 천국과 지옥과 연옥을 방문했으며, 

예수님과 성모님의 생애 중 수없이 많은 광경을 목격했고, 

세상 여러 곳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을 위하여 전구했던 것이다.


  아침 일찍 고해 사제가 루이사의 방에 들어온 뒤에야 

그녀의 영혼이 자신의 몸속으로 돌아왔는데, 

그것은 사제가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등에 십자성호를 그으며 

“루이사, 거룩한 순명으로 돌아오라!” 하고 명령하거나 

같은 효력을 낼 다른 말을 함에 의해서였다. 

이 명령과 아울러 몸의 근육이 이완되기에  그녀는 다시 머리와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평소와 같은 시간에 고해 사제가 나타나지 않을 때면 

마치 바위 속에 있는 화석처럼 자신의 몸속에 갇힌 채, 

의식은 멀쩡하면서도 몸은 움쩍도 할 수 없었고, 

이러한 마비상태에서 죄에 대한 보속으로 

또 몸이라는 감옥 속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는 데 대한 비탄으로 

끊임없이 고통을 받았던 것이다.


  고해 사제는 루이사를 회복시킨 뒤 으레 그 방에 머무르면서, 

교황청에서 허락한 특전에 의거하여 미사성제를 거행하였다. 

루이사는 이 ‘거룩한 신비’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예수님께서 영성체를 한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려주시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고 성체라는 베일로 나를 덮어 가렸다. 

이 성사에서 내가 낮춤의 심연으로 더 할 수 없이 깊이 내려간 것이다. 

그것은 피조물을 나의 수준까지 끌어올려 나와 하나가 될 정도로 내게 동화되게 하고, 

또한 내 성혈을 그의 혈관 속으로 흘려 넣어, 

나 자신이 그의 심장 박동의 생명이 되고, 

그의 생각과 온 존재의 생명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내 사랑의 불꽃이 나를 삼키고 이 불꽃으로 사랑도 삼켜 

또 하나의 나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내가 성체의 베일 아래 숨어 있기를 원한 까닭이었으니, 

이렇게 숨은 상태로 사람 안에 들어가 그를 나로 변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변화가 일어나려면 사람 편의 마음이 준비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 선물을 미리 받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비운 작은 공간과 죄에 대한 혐오, 나를 받아들이려는 원의가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준비 부족으로 좋은 느낌은 조금도 받지 못한 채 나를 영하기에 

내게 염증을 낼 지경이 된다. 


그러면서도 나를 계속 영하면, 

이것이 나에게는 계속적인 갈바리아가 되고, 그들에게는 영원한 멸망이 된다. 

사랑에 힘입어 나를 영하지 않는 것은 내게 또 하나의 모욕을 주는 것이고, 

그들에게는 자기 영혼에 또 하나의 죄를 보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즉 너는, 이 성사 안의 나를 영하면서 

사람들이 저지르는 숱한 능욕과 모독을 보속하며 기도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영혼 안에서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뜻과 성체 사이의 깊은 관련에 대하여 

점진적으로 루이사를 가르치셨다.

‘주님의 기도’ 에 대한 말씀에서 이렇게 설명하신 것이다.

 


  “나는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아버지,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일용할 양식 세 가지를 청하오니, 우선 아버지의 뜻 양식을 주소서. 

이는 양식보다 더한 양식이어서 보통 것은 하루 두 세끼 먹어야 하지만 

이 양식은 매순간 어떤 처지에서나 필요하기 때문이옵니다. 

더욱이 이는 다만 양식만이 아니고  생명을 가져다주는 향기로운 공기와도 같아서 

피조물 안에 순환하는 하느님의 생명이 될 것이옵니다. 


아버지, 이 아버지 뜻 양식을 주시지 않으면, 

저희가 아버지께 매일 청하는 둘째 양식, 

곧 성체 성사적 생명의 모든 열매도 저는 결코 받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오! 저의 성사적 생명이 너무나 괴로운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은, 

아버지의 뜻 양식이 저들을 먹여 기르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뜻이라는 썩은 양식이 보이는 까닭이옵니다.


오! 그것이 저에게 얼마나 역겨운 양식인지! 

딱 질색이어서 천리만리 달아날 지경 이옵니다. 

설령 제가 그들에게 간다고 하더라도  그들 안에 우리의 (뜻) 양식이 보이지 않으니 

저로서는 아무 열매도 선물이나 효과나 성덕도 줄 수 없나이다. 

뭔가를 준다고 해도 

그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작은 몫을 줄 뿐 제가 지닌 모든 선은 아니옵니다. 


그러니 사람이 지고하신 뜻 양식을 받게 되기를  

제 성사적 생명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나이다. 

이 생명의 모든 선을 주려는 것이옵니다… 

우리의 양식인 거룩한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때, 

그때에는 성체성사가 

그리고 이 성사뿐만 아니라 제가 제정하여 교회에 남긴 모든 성사들이 

- 그 안에 완전한 모양으로 포함되어 있는 모든 열매를 썩 잘 줄 수 있지 않겠나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