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섭리에내맡김

Re:제4장 -02 내어맡김의 상태에 이르고자 한다면, 모든 피조물에서 이탈해야 한다| ★하느님섭리에내맡김(韓)

은가루리나 2019. 7. 14. 01:58



무화|등급변경▼|조회 137|추천 0|2017.02.02. 23:40



제 4 장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는 것이 영성의 본질이다



2. 내맡김의 상태에 이르고자 한다면, 모든 피조물에서 이탈해야 한다.




순수한 사랑에 관한 가르침은 

인간의 사고나 정신력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성으로써 뿐만 아니라  괴로움과 장애를 통해서 가르치신다. 

우리가 가르침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하느님만이 선하신 분임을 맛들이는 실천적 지식이다. 


이것을 배우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소중하게 지니고 있는 일체의 것에서 마음을 비워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비어 있는 상태가 되기 위해 

현세적으로 부자유스러움을 견디어 내야만 한다. 

우리는 시련과 굴욕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체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순수한 사랑을 몸에 지닐 수가 있다. 


창조된 것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하느님만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는 단계에까지 가야 한다. 


그곳까지 인도하시려고 하느님은 우리의 개인적인 애착심을 파괴하신다

그러한 애착심들이 어떠하든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인가 특별한 신심과  신심의 대상에 사로잡히게 되면 

이런저런 독자적인 길로 완덕에 이르려 생각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의 안내를 받아 오르고자 한다.


그렇지만 무엇인가에 애착심을 느끼기 시작할 때, 

하느님은 개입하시어 그러한 계획을 뒤엎으시고 

평화 대신 혼돈과 근심과 어리석음을 체험토록 안배하신다.

자신의 기호를 따라서 

"나는 이 길을 가야해,  이 사람과 상담해야지,  나는 이렇게 행동해야 돼" 

하고 말하자마자 

하느님은 그와 반대되는 일을 진행시키고 

우리가 택해 놓은 것을 무력하게 만드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것이 기대에 어긋나 피조물의 허무함을 맛보고  

하느님께 도움을 구하며  하느님만으로 만족하게 된다.





엄하시지만 사랑이 충만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파악하고  

거기에 열심히 협력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복되다.


이러한 영혼은


지나가 버리고 마는 모든 것을 넘어서서


변함없고 무한하신 하느님 안에 휴식을 얻으며,

피조물에 신뢰하며  그 안에 빠져들어가는 것 같은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이 원하실 때는 피조물들을 사용하신다.

그때 하느님은 우리가 자신의 모든 원의를 벗어나서 

자기 식으로 선택하고 취하는 것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바라 보신다.


이것은 우리가 완전한 무관심 속에 죽어 묻힌 상태이다.

이때 하느님은 당신의 주권을 남김없이  영혼의 그윽한 깊은 곳에서 나타내 보여 주신다.




그리고 ,,,,,,,,,


그분은 ,,,,,,,,,,


피조물의 모든 구별과 차이점 을 없애 버리는 ,,,,,,,


섬멸의 그림자를  ,,,,,,,


모든 피조물 위에 흩으신다.


그리하여 

이들 피조물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전부 잃고 

자신의 모든 활동력을 상실하게 되어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서 아무런 마음도 갖지 않게 된다.

이는 하느님의 위대함만이 우리의 모든 능력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느님 안에서 살게 되면,

우리는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 죽어 있고   다른 것도 우리에 대해서 그렇게 소멸하게 된다.


모든 것에 생명을 주시고,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영혼을 구하며, 또 영혼을 위해 피조물을 살리는 일은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 다음 하느님의 뜻을 통해서


우리 마음은 피조물에게로 향하고,  우리 영혼은 그들을 맞아들여 이용할 수 있다.



하느님의 뜻 없이는,


피조물이 영혼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고


영혼도 피조물을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


하느님이 뜻을 통해서 보여 주신 한계에 머무르는 모든 피조물은


영혼에게 있어서 끊임없이 하느님 자신이고  동시에 모든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매순간 우리 마음은


하느님 안에서 평화 중에 머물며


전 창조에 완전히 내맡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순간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moowee 13.09.27. 00:42



<아마, 아직 확실히 잘 모르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드 코사드 신부님의 이 말씀이

내맡김의 영성의 최고 단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현재까지의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에 대한 저의 체험의 끝 입니다.






moowee | 등급변경

| 조회 195 |추천 0 |2017.04.19. 06:57



<그때 하느님은

우리가 *자신의 모든 원의를 벗어나서*

* 자기 식으로 선택하고 취하는 것에서 이탈 * 하고 있음을 바라 보신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다 내맡긴 영혼은
정말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고 있지 않기에,
* 자기 식으로 선택하고 취하는 것에서 이탈 * 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이유는 단 하나!
★ 하느님께 100% 다 내맡겼기 때문입니다. ★

따라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다 내맡긴 영혼에게서 이루어지는 모든 <취사선택>은
100% 내맡긴 참으로 부족한 한 인간이 취사선택한다 하여도


그것은 그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하느님이 취사선택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그가
★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다 내맡겼기 때문입니다. ★


그가 100% 내맡겼나 99%만 내맡겼나 하는 것은,
아브라함처럼 
자신의 모~~~든 것과 똑같은 가장 소중한 이사악을 바칠 수 있나 없나에 달려 있습니다.

<이사악>은 다른 말로
<100%>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다 완죤~~~히 다 내맡긴 영혼의 <취사선택>은 곧,
하느님께서 해 주시는 것으로 믿으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취사선택 取捨選擇
여럿 가운데서 쓸 것은 골라 쓰고 버릴 것은 버림 (다음사전)



<피조물에 신뢰하며 그 안에 빠져들어가는 것 같은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러나 ★ 하느님이 원하실 때는 피조물들을 사용하신다. ★>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다 내맡긴 영혼은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두지 않게 됩니다, 정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정말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고 계신 하느님이
★ 그 사람 안에 당신의 피조물을 사용하게 하실 마음을 일으켜 주신다면,★
기꺼이 그리고 ' 기쁘고 즐겁게(마태 5, 12)' 그 피조물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때 피조물의 취사선택도 그가 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으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 그가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다 내맡겼기 때문입니다.★



취사선택 取捨選擇
여럿 가운데서 쓸 것은 골라 쓰고 버릴 것은 버림 (다음사전)




하라 하지말고 하라!
하지말라 네가 하지 말라!
네 안에 계신 그분께서 하시게 하라!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 20)




moowee 06:46 new

무소




근디~~~

사랑하는 무소!
거기에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 하나 있어요.

하느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100% 내맡긴 영혼들 안에서 당신 친히 취사선택해 주시지만,
그 <100% 내맡긴 영혼 각자에게 가장 알맞는 것>을 취사선택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100% 내맡긴 영혼에게 유치원 수준의 것이 필요하면 유치원생에게 맞는 것으로,
100% 내맡긴 영혼에게 대학생 수준의 것이 필요하면 대학생에게 맞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100% 내맡긴 영혼 모두에겐 다 알맞는 것이 됩니다, 100% 내맡긴 영혼의 <취사선택>이.


또 그것을 분별해 주는 이가 바로 < 영적지도자 > 입니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마태 13, 48)



moowee 11.01.04. 00:02


전에 우리 성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적는 다는 자매님이 계셨는데,
★ 제가 볼 때, 유치원 수준의 글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죠.

왜냐하면 저의 낮은 영적수준에도 "루이사 피카레타"의 받아쓰기가 최고의 수준으로 느껴졌으니까요.
제가 그것을 이야기해 드린 후 얼마 후 이 카페를 떠나가셨습니다.
제가 유치해서이겠죠.

그런데, 그분은 "루이사 피카레타"를 너무 잘 아는 분이셨습니다.
왜일까는 저도 모립니다.

 


moowee 17.04.19. 23:32 new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 제가 아니고 아버지께서 모든 걸 주관하시도록 >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안에 지니고 있는>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자기 안에 지니고 있는>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다른 이들의 좋고 나쁜 것들보다 자기 안의 것들을?

그런 다음에야 비로서
100% 내맡긴 이들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모든 걸 주관하시도록> 이끌어주십니다. 
100% 내맡기지 못한 이들은 아버지께서가 아니라 지가 <지 마음대로 취사선택하는 것>일 뿐입니다.





<루카 6>
"39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느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마태 13, 48)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100% 완죤~히 다 내맡겨드린 이들은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릴 수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사랑하는 지혜의 하느님께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할 靈眼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 외의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 100% >를 외쳐왔는지요?
100%가 바로 <거룩한내맡김>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
99%는 거룩한내맡김이 아니라 <불순한 내맡김>입니다.


단 < 1%의 불순물 >만 섞여도 그것은 < 不純한 것 >입니다.

하느님께 바쳐지는 그 어떤 것이든 단 1%의 불순물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순수(純粹) 그 자체이신 < 순도 100% >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순수1 純粹 
1.대상 그 자체에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이 없음
2.마음속에 사사로운 욕심이나 불순한 생각이 없음 <다음사전>


* 1. 잡것 → 내뜻
* 2. 사사로운 욕심 → 내뜻, 불순한 생각 → 내뜻


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
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
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