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뜻 영성

제4일 새 시대의 도구인 루이사

은가루리나 2019. 9. 23. 00:34


제2강의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


 


제4일 

새 시대의 도구인 루이사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 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지혜 3,9)



예수님께서 

‘하느님 뜻의 작은 딸’ ‘내 뜻의 갓 태어난 작은 아기’ 라고 부른 

루이사는 하느님 뜻 안에서 살며 

이를 전하도록 특별한 모양으로 부르심을 받은 첫 사람입니다. 


루이사는 하느님 뜻 안으로 들어갈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며 원천

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모든 은총을 보통 사람인 루이사에게 주셨습니다.



루이사가 먼저 받은 사명은 산 제물의 사명입니다. 


그리하여 루이사는 일생동안 죄인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서 

보속과 사랑의 산 제물로써 예수님의 수난을 지속적으로 묵상하고 

예수님의 수난에 신비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루이사가 받은 사명 중에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느님 뜻 안의 삶이란 성덕의 창시자' 사명입니다. 


루이사는 하느님 뜻의 나라 도래를 위해 

인류를 하느님 뜻 안의 삶으로 인도하고자 

하느님께서 특별히 선택한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루이사는 

교회 역사 안에서 원죄가 있는 사람들 중에 

하느님 뜻 안의 삶으로 들어간 첫 사람이 되었습니다.


 


 


1. 산 제물이 되기까지의 삶




루이사는 1865년 4월 23일 부활절 다음 주일에, 

이탈리아의 코라토에서 태어났습니다. 


코라토는 이탈리아 동남부 아드리아 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성 니콜라오의 무덤이 있는 항구 도시 바리에서 

서쪽으로 약 20마일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루이사의 아버지는 비토 니콜라 피카레타였고 

어머니는 로사 타란티니 였으며, 

둘 다 코라토 출신이었습니다. 1


1907년 3월, 열흘 간격으로 같이 세상을 떠난 그들은 

자식들이 욕설이나 쌍말을 듣지 않게 하려고 무던히 조심했습니다.



루이사는 어린아이였을 때에도 아버지가 자기를 안아 준 적이 없었고, 

자기가 아버지에게 입맞춤을 하거나 받은 적도 없었다고 

유년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어머니에게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딱 한 번 어머니의 손에 입을 맞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섯 살 때에 집에서 기르던 말을 치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홉 살이 된 해 첫 영성체를 한 후에 성체가 주된 정열이 된 루이사는 

모든 애정을 성체 안에 집중시켰습니다. 


그 나이에 벌써 몇 시간씩 성당에 머물러 있었으니, 

무릎을 꿇고 앉아 옴짝도 않고 관상에 잠겨 있었습니다.



열두 번째 생일이 다가올 무렵부터 루이사는, 특히, 

거룩한 영성체로 예수님을 받아 모실 때에, 

그분의 음성을 내적으로 듣기 시작했습나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일들에 있어서 그녀의 스승이 되시어, 

잘못을 지적하시며 바로잡아 주시고 

묵상 거리를 주시며 설명도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내적 음성 덕분에 

루이사는 자기 자신과 모든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열세 살이었던 어느 날, 

루이사는 자기 집에서 일을 하면서 

예수님의 가장 큰 고통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찌나 가슴이 짓눌리는지 숨을 쉴 수도 없었습니다. 


(정신을 딴 데로 돌려보려고) 아파트 이층의 자기 집 발코니로 나갔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무엇을 보았겠습니까? 


엄청난 군중이 발코니 아래의 길을 지나가면서 

어깨에 십자가를 짊어지신 지극히 온유하신 예수님을 

양쪽에서 이리저리 잡아당기고 있었는데, 

숨도 제대로 못 쉬시는 그분의 얼굴에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루이사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을 받고자 하는 

깊은 열망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사람들의 눈에는 숨겨진 것이었지만 최초의 육체적 고통이 시작되었고, 

또한 깊은 영적 고통도 시작되었습니다. 


고통의 강도가 점점 더 커지면서 

마귀들도 주님의 허락을 받고 영적으로 육적으로 그녀를 맹렬히 공격하며 

격노를 터뜨렸습니다. 

이 악마적인 공격은 삼 년이 지난 뒤에 거의 끝났습니다.



열일곱 살이 된 루이사가 시골의 농장에 묵고 있었던 어느 날, 

마귀들의 마지막 공격이 있었는데 

너무나 사납고 고통스러운 공격이어서 그녀는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고난 중이신 예수님의 새로운 환시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감미롭고 사랑에 찬 은총의 초대에 내적으로 감동되어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동의하면서, 

예수님과 ‘고통의 어머니’ 께서 부르시는 '산 제물의 신분'을 

받아들였습니다. (1882년)



열일곱 살 때 한 번 더 의식을 잃는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것은 고난 중이신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그녀에게 가시관 고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의식은 깨어났지만, 

그 고통의 발작으로 말미암아 음식을 먹으려고 입을 열 수도 없어졌습니다. 


이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러니까 60여 년 동안 그녀는 음식 없이 지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직 

하느님의 뜻과 성체만을 먹고 살도록 그녀를 준비시키셨던 것입니다.



1882년 산제물의 신분을 받아들인 후 

성탄 전 9일기도를 바치게 하시고 수난의 시간들을 바치게 하셨습니다. 


1882년-1887년까지 아우구스티노회 소속 사재 코시모디 로요디체 신부가

고해사제가 되었습니다.




1-18,16 너는 나와 함께, 

능욕되고 있는 하느님의 정의에 너 자신을 산 제물로 봉헌하여라. 

계속 저질러지는 수없이 많은 죄를 보상하는 산 제물 말이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죄에 중독된 샘물을 마시는 눈먼 죄인들의 회개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것이다.


18 네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첫째로,) 

나는 이제부터 너를 홀로 버려 두지 않고 

네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이 내게 범하는 모든 잘못으로 인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매우 특별한 은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의 영역으로 들어갈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19 둘째로

또 하나의 아주 특별한 은총을 약속한다. 

이는 내가 너에게 느끼게 할 모든 고통에 상응하는 영광의 높이에까지 

너를 들어 올릴 은총이다.


20 셋째로

네가 도움과 인도와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지극히 거룩하신 내 어머니를 보내 주겠다


내 어머니께서는 네가 응답하는 정도에 따라서 무슨 은총이든지, 

심지어 은총의 보고(寶摩)까지도 너에게 주실 수 있다.


이 한없이 큰 선들이 사소한 것으로 여겨지느냐? 

설사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일단 시도해 보아라. 


그러면 모든 인간보다 더 높이 들어 올려진 너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2, 예수님과 루이사의 신비스런 혼인




1-38,3 유난히 다정하고 아름다우면서도 크나큰 엄위를 갖추신

예수님께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성녀 카타리나와 함께 오셨다.


그분께서는

천사들에게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천상 노래를 부르도록 지시하셨는데,

그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성녀 카타리나가 내게 다가와서

예수님과의 이 신비스러운 혼인 예식에 시중을 들어 주었다.


한편, 내 사랑하올 어머니, 복되신 마리아께서는

부드럽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면서 내 손을 잡으시어,

예수님께서 지극히 귀한 혼인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 주실 수 있게 하셨다.



1-43,1 그렇게(침상에 감혀)

삼 년이라는 기간이 지난 후의 어느 날 아침,

마침내 예수님께서 내게 친절하게 알려 주신 사실이 있으니,

그것은 지상에서 맺으신 나와의 혼인을

성부와 성령의 승인하에

모든 천상 주민들 앞에서 새로이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었다.



1-47,3 이는 예수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취결례‘ 축일에,

(다시 말하자면 ‘주님의 봉헌’ 축일에, 성녀 카타리나도 참석한 가운데)

지상에서 이미 거행했던,

예수님과 내 영혼의 신비적 혼인을 천상에서 새로이 하려는 것이었다.


4 역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신 축일인 오늘은

예수님께서 성삼위의 승인을 얻으시려고

흰색과 빨간색과 녹색의 아주 값진 보석들로 장식된 반지를 꺼내시어

성부께 드렸고,

성부께서는 이 반지를 축복하신 후 당신 외아들에게 돌려주셨다.

 

그리하여 성령께서는 내 오른손을 잡아 주시고

예수님께서는 그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셨다.


이어서 성삼위께서 한 분씩 차레로 내게 입 맞추시며

특별 강복을 베풀어주셨다.


6 그런데 이로 인하여

마음 한편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과 만족을 느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토록 큰 엄위에 짓눌려서 말하자면

으스러져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이 엄위는 그렇게 내 안에 외경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면서도,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본질과 거룩함에서 뿜어 나오는

영원한 빛으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스며들게 하는 것이었다,






3.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은총을 받은 루이사




1-49,2 내 신부야,

우리가 이미 거행한 혼인 외에 또 하나의 혼인이 남아 있는데,

이는 십자가의 혼인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11 예, 주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제 사랑, 거룩한 정배이신 예수님,

저도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힐 은총을 마침내 허락해 주시기를

빕니다.


12 그리하여 그 은총이 내게 허락되었으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살들이

못들과 함께 지체 없이 내 손발을 꿰뚫으며 상처를 내었고,

더욱 찬란한 또 하나의 빛살이 창과 함께 내 심장을 꿰뚫었 던 것이다.


13 그 행복한 순간에 내가 체험한 크나큰 기쁨을,

동시에 다른 모든 아픔을 능가하는 그 아픔을

대체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내가 느낀 그 평화와 기쁨과 고통은

종전에 나를 사로잡고 있던 두려움과 전율만큼 큰 것이었다.


손발과 심장의 통증이 어찌나 극심한지

벌써 임박한 죽음이 느껴질 정도 였으니,

손발의 각 상처 속에서 못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고

뼈가 으스러져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았다.


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처들은 형언할 수 없도록 감미로운 기쁨을 주기도 하더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1-54,3 예수님께서는

채찍질을 당하신 고통이나 가시관 고통을 내게 주실 때가 있는가 하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을 오르시며 겪으신 고통을

느끼게 해 주실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고통도 받게 해 주셨다.






4. 하느님 뜻 안의 삶이란 성덕의 창시자, 하느님 뜻의 맏딸,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첫 사람으로 선택된 루이사




12-27,4 모든 성덕들에는

저마다 그 고유의 성덕 유형을 맨 먼저 시작한 성인들이 있었다.


5 이제 나는 네가 내 뜻 안에서의 삶 성덕의 창시자가 되기 바란다.



12-89,2 너는 내 뜻의 맏딸이다.



14-22,12 우리가 너를 우리 뜻의 첫 딸로 선정했으니,

네가 우리와 함께 살면서

우리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의 첫 판이 될 필요가 있다.


13 이와 같이 우리가 너를 가지고

우리 뜻 안에 사는 영혼의 첫 판을 만들고 나면,

더 많은 복사판들이 따라 나오게 될 것이다.



14-61,9 딸아, 두려워하지 마라. 생각나지 않느나?

너는 이중의 소임을 맡고 있다.


하나는 산 제물의 소임이고,

또 하나는 보다 위대한 것, 곧 내 안에서 사는 소임이다.

내게 모든 피조물의 완전한 영광을 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14-65,21 사실 나는 너를 그 첫 사람이 되도록 불렀다.


내게 아무리 소중한 영혼이라고 하더라도

너 말고 다른 사람에게 내 뜻 안에서 사는 법과 뜻의 효과 및

피조물이 이 지고한 의지 안에서 활동할 때 받게 되는

놀라운 선들을 알려 준 적이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22 성인들의 생애나 또는 교리서들을 꼼꼼히 살펴보아라.

네가 원하는 수 만큼 얼마든지 찾아보아라.


그 어디에서도

피조물 안에서 활동하는 내 의지와 

내 의지 안에서 활동하는 피조물에 대한 놀라운 언급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23 기껏해야 자기 포기나 두 뜻의 일치를 찾아낼 수 있을 뿐,

피조물 안에서 활동하는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뜻 안에 활동하는 피조물 이야기는,

눈씻고 보아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내 자애가 이 숭고한 삶에 피조물을 부를 때가 아직 아니었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