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
제 1 권
하느님의 현존(現存)과 그분 섭리에의 온전한 위탁
9. 우리는 어디에서 하느님을 가장 잘 만나는가?
“나는 길 잃은 양처럼 오류 안에서 해매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밖에서만 찾았는데 당신은 내 안에 계셨군요.
나는 내 밖에서 당신을 찾으려고 큰 수고를 하였는데
내가 당신을 그리워할 때면 언제나 당신은 내 안에 계십니다.
내가 잘못 찾았기 때문에 세상의 골목과 거리를 헤매었지요.
내 안에 계시는 분을 지금까지 밖에서만 찾았어요.”라고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하였다.
인간이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그만큼
피조물 안에서는 그분을 발견할 수가 없다.
사실 하느님은 인간 안에 계신다.
영혼은 하느님을 사람의 내면에서 발견할 수가 있고,
자기 안에서 그분과 결합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과 의지 속에 하느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현존하시며,
바로 그곳이 그분이 즐겨 거처하시는 곳, 곧 당신의 성전이다.
그곳에서 하느님은 감각과 모든 조성된 것을 초월하여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볼 수 있고 맛들일 수 있게 하신다.
그곳이야말로
하느님이 다스리시고, 지시하시고, 가르치시는 옥좌이다.
그곳에서 영혼은 믿음으로 그분을 발견하고
그분과 함께 순수한 기도안에서 가장 친밀한 사귐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하느님 외에 아무것도 없고,
영혼은 신비로운 대화를 방해하는 피조물 없이
하느님과 단 둘이 있기 때문이며,
그분 손수 이 모두를 주재하시기 때문이다.
어떠한 피조물도 줄 수 없는 평화 속에서 영혼은 그분을 발견하게 된다.
하느님 만이 당신 현존을 통하여 영혼에게 평화를 허락하신다.
그분의 거처는 평화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현존은 내적 비추심과 격려를 통해 우리를 인도하신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감도하심에 충실하기만 한다면
그분의 현존은 우리를 지도하시고 벌주시기도 하며,
교정해 주시고 강하게 해 주신다.
자기 자신과 피조물로 가득찬 영혼은
이 현존과 그분의 은밀한 인도를 잘 깨닫지 못한다.
조용하고 순결한 영혼만이 그분의 부드러운 모습을 느끼게 된다.
영혼은 내적으로 하느님과 함께,
때로는 그분의 완전하심에 몰두하게 된다.
때때로 영혼들은
그들의 결점에 대해 벌받기도 하고 다시 위로를 얻기도 하면서
내적으로 고통을 받아야 하고, 또 어느 때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열심으로 가득찰 때가 있고 건조할 때도 있으나
하느님께 대한 애착과 위탁은 언제나 한결같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인자하심과 사랑하심과 감미로움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는 영혼은
복되도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내면에서 행하시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하신다.
수덕에 대한 한 영성가의 말씀에 의하면
“삼개월 동안 성령의 감도하심에 성실하고,
그분께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 영혼은 틀림없이 완덕에 도달한다”
고 한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언제나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께서 우리 자신을 완전히 차지하시도록 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남김없이 그분께 맡겨드리면서
우리 자신을 온전히 잊어버리고 그분 안으로 빠져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