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무위신부님 강론

[2019년 12월 8일 위무위 신부님 강론말씀

은가루리나 2019. 12. 11. 00:22



[2019년 12월 8일 위무위 신부님 강론말씀



증언은 자신이 만난 하느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 그거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증언은 복음전파, 복음선포입니다.


자기가 만난 하느님, 지식의 하느님이 아니라 책에 써있는 그런 하느님이 아니라 부족하고 비천한

자신과 만나주신 그 하느님과의 러브스토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은, 또 하느님 안에 사는 사람들은 그 사람안에 있는 하느님이 그 사람안에만

갇혀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을 벗어나서 그 사람의 입을 통하여 자꾸 다른 사람들의 마음안으로 들어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또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것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오그라든 손을 펴고, 암이 낫고, 그런 육적인 치유는 감히 견줄수가 없습니다.

완전히 그 사람 전 존재가 변화되어서 온전히 하느님의 것으로 하느님化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느 누구도, 부모도, 아무리 뛰어난 교사도 그 어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그 사람의 주인이신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2012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신앙의 해를 선포하시면서 개막미사 강론때 하신 말씀이

또 떠오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 광야에서, 이 광야를 헤매는 많은 사람들에게 등불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증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증언없는 신앙인은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 30년, 40년, 50년 해도 자신이 만난 하느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하는 신앙인은

그야말로 절름발이 신앙인이요 소경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한 사람의 변화는 사제인 저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정말 처음에는 내맡김의 봉헌으로 인도해서 그 사람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진짜

그 기쁨, 사람이 변하는 그것을 지켜보는 저로서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기쁨이고 보람이었기 때문에 정말 한 사람, 한 사람 봉헌자가 늘어날 때마다 저는 통곡을 했습니다. 통곡을~너무너무 기뻐서!

저 같은 놈을 통해서 어떻게 ... ㅠㅠㅠㅠ


저는 내맡김의 영성을 전했고 또 봉헌을 권유했고 그것이 전 끝이예요.

그 다음일은 오직 주님께서 하시는 일!


오늘 특히 35명의 봉헌자들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 수도자적인 삶을 살아가요.

여러분들 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그 목적대로 결혼하고 자녀키우고 먹고 시장에서 일터에서, 대부분들이 살아가는 그 평범함 모습으로 그 안에서 세상 사람들과 달리 그런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것은 여러분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안에 계신 하느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이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실 수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봉헌을 통해서 자신의 목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번 봉헌때마다 모가지를 바쳐야 된다. 100%다. 99%도, 0.00001%도 남아있으면 안된다라고

강조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100% 여러분들의 생명, 목숨, 여러분들의 모가지를 내놓는 이유는, 그래야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오셔서 여러분들을 살아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강사들마다 외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는 삶을 살아야 된다고 얘기하지만 실지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목을 땡강 잘라서 바치실 때 그때야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에게

오셔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대신 살아주는 것입니다.


내맡김은 내가 하지 않고 하느님이 부족하고 죄스런 나를 통해서 하시게끔 하시는 것이

내맡김입니다.

가끔가끔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신앙은 자력이 아니라 타력신앙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봉헌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목을 주님께 바치셨기 때문에 이제는 여러분들의

힘으로 살아갈 수가 없어요. 살아가서도 안되요.


하라, 하지말고 하라!

하지마라, 네가 하지 마라!

네 안에 계신 그분께서 하시게 하라!


살라, 삶없이 살라!

살지마라, 네가 살지마라!

네 안에 계신 그분께서 사시게 하라!



이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하느님이 부족한 내안에 오셔서 대신 살아주시길 원하고,

그렇게 해드리기 위해서 오늘 이 봉헌이 있는 것입니다.


그 두꺼운 성경을 10년, 20년 공부해도 그 바른 뜻을 몰라요.

그 두꺼운 성경은 바로 네가 하지 마라, 내가 해 주겠다.

인류창조도 그렇고, 하느님 신앙의 가장 큰 사건, 출애굽 파스카도 주님이 하신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면서 모든 전쟁을, 너희들은 가만히 있어라. 내가 하겠다. 다 싸워

이겨주셨어요.

그러면서 하느님을 믿는다는 신앙인들이 하느님을 제껴놓고 자기가 할려고 해요.

이건 비성경적이예요.

성경적으로 사는 사람은 오직 신명기 6장 5절이하의 말씀.

너희는 마음과 목숨과 힘과 정신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거밖에 없어요.

우리는 오직 하느님을 죽도록 사랑하는 것만 우리가 해야 될 일이고.

나머지 모든 일은 주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나를 대신 살게 나대신 해드리는 것,

이것이 타력신앙이예요.


그리스도교와 불교와 구분하는 이 기준점이 바로 자력, 타력이예요.

그리스도교는 타력, 하느님의 힘을 얻어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고,

불교는 자기의 힘으로 갈고 닦고 수도해서 완성된 자기를 이루는 것이예요.


오늘 여러분들은 이 봉헌을 통해서 그리스도, 하느님께서 여러분안에 오셔서 하시게 하는

그런 작업의 첫 걸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오늘 목을 확실히 100%바치셨다면 여러분들이 아무리 부족하고 죄스럽고

또 내일 죄를 범한다고 하더라도 주님은 여러분들을 떠나지 않으셔요.

여러분들안에 있는 죄를 통해서도 여러분들을 성화시키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오직 여러분들은 죽도록 하느님만 사랑해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