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

4회 대담 : 토마스 머튼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_현대영성가 토마스 머튼과의 만남_박재찬 신부 해설 입력해주세요

은가루리나 2019. 12. 16. 15:10



[ 8:00

머튼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언자 신비가로 표현하는데
자신이 깨달은 바를 교회 공동체나 수도 공동체에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기존의 생각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하니까 부딪침이 생길 수가 있는데
그것들은 한 시대를 앞서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예언자적인 목소리가 아니겠나~

그리고 예언자적인 목소리는 한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또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외적으로 외쳐야 했다.
그래서 반항아적인 기질이 있다고 표현되는 것 같다.



종교 간 대화라든지 또 디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사회 정의를 부르짖기 위해서는
개인이 먼저 교회 안에서 자신의 종교 안에서 영적으로 성숙해졌을 때라야
그것이 가능하다.

자기 자신의 종교 안에서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 정의, 교회에 대한 비판하고
또 다른 종교와 대화를 나눌 때 부족한 상태에서 하는데,

종 더 영적으로 성숙해졌을 때 더 깊은 열매를 맺을수 있다.

또 반항이란 것이
이미 굳어진 상태, 끊임없이 쇄신하려고 하는 의지로 표현되는데,
제도적인 개혁보다 내적인 쇄신을 강조
쇄신을 향한 의지가 반항아로 보일 수 있다. ]




[ 20;00

전기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이원론적인 삶이었다면
후기에는 부활한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 세상과 대화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50년대 이전에는 머튼의 수도원이 수도원 클로이스터 울타리 안이었다면
60년대 머튼의 수도원은 그 벽이 허물어지고 교회와 세상의 벽이 허물어져
온 세상이 머튼의 수도원이 됐다.

머튼의 영적인 영역은 수도원 울타리를 넘어서 세상으로 확대 되었다.

그는 깨달은 자의 책임감,
깨어난 사람이 세상에 대해 헌신하지 않는다면 그 깨어남은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





27;00

머튼은 작가로서의 활동과 수도자로서의 삶 안의 여러가지 갈등이있었는데
글 쓰기를 거부했다

온전히 관상가가되기 위해서 수도원에 입회했지
글쓰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제일 잘하는 이것을 포기해야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하느님께서 주신 달란트인데...
관상가가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깨달은 이후
내가 글 쓰는 동안 그 시간은 기도시간이었고
글 쓰는 동안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었고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중요한 것은 관상가가 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이다."

작가로서의 갈등을 거치면서
하느님을 위해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달게 되었다


여러 기로에 섰을 때
무엇이 하느님을 위한 것인지 선택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모든 것을 통하여 하느님께 찬양과 찬미를 드릴 수 있다.


내 삶에서 내가 방을 닦으면서 그 방 닦는 과정에서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살아가는 것.

작은 일상의 나의 행동들을 도외시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