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제6장] 3. 육신과 영혼|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은가루리나 2019. 12. 19. 20:51


3. 육신과 영혼



육신과 영혼의 긴밀한 결합 때문에 영혼은 육신 전체뿐만 아니라 가장 작은 지체 안에도 있다.


육신과 영혼은 쌍둥이와 같다. 야곱과 에사오가 함께 태어났듯이 육신과 영혼은 한 사람으로 함께 태어나고 또 서로 대립된다. 에사오는 경솔한 사람으로 사소하고 썩어 없어질 것에 마음을 쓴다. 야곱은 투쟁하는 사람이고 승리자다. 땅은 이 현재 세계의 불확실성을 상징한다. 이런 것들 때문에 야곱은 그의 고향과 형을 피해 떠나갔다. 영혼도 이와 비슷하다. 영혼은 하늘에서 오고 육신은 땅에서, 곧 부모에게서 온다. 그리고 육신은 영혼과, 영혼은 육신과 싸운다. 성 바오로에 따르면 영혼과 육신은 본래 싸우게 되어 있다. 영혼은 영원한 것을, 육신은 덧없는 것을 갈망한다. 영혼은 감각적 쾌락과 영원하지 않은 모든 사물을 피해야 하는데, 성 바실리오가 말한 것처럼"완덕은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을 쓰지 않아야 할 것으로 다음 네 가지를 예로 든다. 첫째는 현세 사물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헛된 영광, 곧 이웃의 명예보다 자신의 명예에 더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감각의 쾌락이다.  이 세 가지를 통해 네번째 것을 배우게 된다. 넷째는 자신에 대해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영혼은 안식을 누리게 되며 돌베개를 베고 자면서 사다리가 한쪽 끝은 땅에, 한쪽 끝은 하늘에 닿아 있음을 보게 된다.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사다리 위에 하느님께서 계시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제 영혼을 살펴보면 영혼은 약간의 지적 본성을, 불꽃을, 한 줄기 빛을 가지고 있으며 육신 안에서 각각의 역할을 하는 갖가지 능력들을 지니고 있다. 그 한 예가 소화 능력인데, 이 능력은 낮보다 밤에 더 활발해지고 이를 통하여 인간은 성장하고 자라난다. 또한 영혼은 눈에도 능력을 가진다. 그 능력은 눈을 매우 예민하고 섬세하게 하며 너무나 까다로워서 사물이 원래 가진 조잡한 양식으로는 수용될 수 없게 만든다. 그 대상 사물은 먼저 빛과 공기에 의해 걸러지고 정화되어야 하는데, 그 사물이 영혼의 능력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영혼 안에 있는 다른 능력은 생각하는 데 쓰이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그 자리에 있지 않은 사물을 자신 안에 떠올릴 수 있어서 나는 그 사물을 마치 내 눈으로 보듯이 보거나 또는 그보다도 더 잘 볼 수가 있다. 나는 겨울에 장미가 없어도 장미를 볼 수가 있다. 이 능력으로 영혼은 비실존물에서 사물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무에서 사물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처럼 말이다!


다른 무엇들보다도 참회의 고행은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다. 단식, 밤샘, 기도, 무릎 꿇는 것, 편태(鞭笞), (거친) 털로 된 옷을 입는 것, 딱딱한 바닥에 눕는 것 등은 모두 육신이 영혼에 대립되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육신이 영혼에 비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는 끝없는 갈등과 투쟁이 생긴다. 이 세상에서 육신이 용감하고 강한 것은 세상이 육신의 고향이고, 세상은 육신을 도와주며,세상은 육신의 조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신은 육신의 모든 가족들, 곧 음식.음료수.편안함과 같은 것에서 도움을 받는다. 이들은 모두 영혼에 대립된다.


이 세상에서 영혼은 이방인이며, 영혼의 가족들은 천국에 있다. 영혼이 사랑하는 이들은 천국에 살고 있다. 어려움에 빠진 영혼을 돕고 육신이 영혼을 정복하지 않도록 싸움에서 육신을 방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육신에 고행이라는 굴레를 씌워 영혼이 육신을 통제하게 한다. 그 목적은 육신을 복종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육신을 정복하고 억제하기 위해서, 그것도 훨씬 더 잘 억제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굴레를 씌워야 한다. 사랑으로 그대는 육신을 가장 확실하게 이길 수 있을 것이며 사랑으로 육신에게 가장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우리를 기다리신다.


사랑은 어부의 낚싯바늘과 같다.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만이 어부의 것이 된다. 바늘에 걸린 물고기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지만 일단 바늘에 걸리고 나면 그 물고기는 영락없이 어부에게 잡히고 만다. 어부는 확실히 그 물고기를 잡았다. 사랑에 대해서도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사랑에 붙잡힌 사람은 가장 강하게 묶인 셈이지만 기분 좋은 짐이다. 이 감미로운 짐을 지는 사람은 더욱 앞으로 나아가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온갖 심한 고행을 할 때보다 더 가까이 간다.


그뿐 아니라 그는 그에게 닥치는 시련을 즐거이 견디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모든 고통을 즐거이 받는다. 이 감미로운 결합보다 더 그대를 하느님의 것이 되게 하고 하느님을 그대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은 없다. 바늘에 걸린 사람은 빨리 붙잡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손과 발, 입, 눈, 마음, 그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은 사랑이므로 그분은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다. 영혼 안에 그와 유사한 것이 있다. 영혼이 모든 지체들 안에, 그리고 그 각각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영혼이 창조될 때 영혼은 자신의 존재 근거에서 이런 것을 받았다. 그래서 영혼은 전체로서의 지체들 안에서, 그리고 그 각각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영은 신비로운 것으로서 영혼과 육신의 긴밀한 일치의 힘으로 모든 지체들에게 생명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