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제4장] 10. 시간이 갖는 문제점, 그리고 수 (數)

은가루리나 2019. 4. 23. 02:11


10. 시간이 갖는 문제점, 그리고 수 (數)



빛깔들을 보듯이 내 눈으로 하느님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현세의 사물이기 때문이다.

현세의 것들은 시간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최하의 가치를 갖는다. 


현재는 본래 시간이며 공간이다.




시간과 공간, 수와 양을 가지고 있는 동안 

인간은 마땅히 되어야 할 바대로 되어 있지도 봇하고 

정의롭지도 않으며, 

하느님은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고 

그의 것이 되지 않으신다. (p. 209)




고대 철학자는 영혼이 하나와 둘 사이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하나는 영원성으로 언제나 홀로 있고 변화가 없는 것이다. 

반면 둘은 시간이며 변화하고 여럿이 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혼은 그 상위 능력에서는 영원성, 곧 하느님께 접하고 

하위 능력에서는 시간에 접하고 있어서 

변화에 종속되고 영혼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물질적인 것들을 향한다는 점이다. (p. 134)




시간과 공간만큼 영혼이 하느님을 아는 데 방해되는 것은 없다.


시간과 공간은 분열된 것이지만 하느님은 완전하시다. 

그러므로 영혼 하느님을 알려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그분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은 수도 없이 다양한 사물들처럼 이것이나 저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한 분이시다. (p. 172)




이 영(spirit)은 시간도 수도 알지 못한다.


는 시간이라는 문제점만 없다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뿌리는 영원 안에 있을 뿐인데, 거기에는 하나라는 숫자밖에 없다. 


이 영은 수를 초월하여 다수성 안으로 뚫고 들어가고 

하느님께서 이 영을 꿰뚫으신다. 


하느님께서 나를 꿰뚫으신다는 바로 그 사실때문에 

나도 또한 그분을 꿰뚫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이 영을 사막으로, 당신 자신의 고독으로 이끄시고 

거기에서 영은 단순히 하나로서 그 자체 안에서 솟아나온다.



이 영은 원인이 없다. 

영에게 원인이 있다면 일치(하나 됨)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은 일치와 자유 안에 있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 함은 그 원인을 안다는 뜻이다. 

어떤 것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을 참으로 아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어떤 것의 기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생명이, 생명을 참 존재가 되게 하는 그 원천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결코 완성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 원천에 머물지 못하는 이유는, 

철학자가 말하듯이 이 시간과 접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세적이고 사멸할 것에만 영향을 미친다.


철학자는 천상의 과정이 영원하다고 말한다.

영혼의 행로는 영원하고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영혼은 추상적 존재들의 볍칙을 따른다. (p. 207)




'언제'라는 말은 시간을 표현하는데,

 이것은 빛이 우리에게 이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하느님께는 시간보다 더 큰 장애물이 없다.



여기서 시간의 의미는 단순히 

시간뿐만 아니라 현세의 덧없는 것도, 

사물뿐만 아니라 애착도, 

애착뿐만 아니라 시간의 흔적과 향기까지도 뜻한다.


사과가 있던 곳에 사과 냄새가 남아 있듯이 

시간과 접한 것도 시간의 흔적과 냄새가 남기 때문이다.




우리의 최고 권위자들은 

눈에 보이는 하늘과 해와 별들은 시간과 약간 접하고 있을 뿐이고 

그 외에는 시간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한다.


내가 이 말을 인용하는 이유는 

하늘보다 높이 솟아 있는 영혼의 정점은 

시간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p. 237)




하느님께서 시간 안에서, 

그리고 여기에서 영혼에게 당신 자신을 주신다면, 

그 영혼은 난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영원 안에서, 영원한 현재 안에서 끊임없이 솟아나오며 

당신을 영혼에게 주신다. (p.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