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23권

{천상의 책 23권7장} 그런 영혼에게는 이 세상 삶이 귀양살이가 아니다

은가루리나 2019. 12. 28. 00:50



23-7


1927년 10월 10일



하느님 뜻은 하나이지만 

그 안에 사는 영혼 안에 잉태되어 머물고, 

그 행위들 속에서 수가 증가한다

그런 영혼에게는 이 세상 삶이 귀양살이가 아니다




13 그 뒤 나는 풀이 죽어 기운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있었다.

길고도 가혹한 이 귀양살이의 무게에 온통 짓눌린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래서 흠숭하올 예수님께 

당신 부재의 극한적인 고통에다 

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고통마저 덧붙여 주신다고 

투덜거리면서 이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14 "당신께서는 어떻게 저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저로 하여금 당신의 사랑하올 뜻에만 사로잡힌 채 

당신 없이 홀로 있게 하시다니,

이 귀양살이하는 땅에서 

어쩌면 이다지도 오래 저를 떠나 계실 수 있습니까?"



15 내 고통을 그렇게 쏟아내고 있자니,

나의 생명, 나의 전부이신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걸음을 옮기시며 이르셨다.



"딸아, 

내 뜻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 내 뜻 안에서 살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귀양지다.


그러나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귀양지가 아니라 (천국에서) 딱 한 걸음 떨어진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16 그러므로 

전혀 기대하지 않은 뜻밖의 순간이 왔을 때에도 

딱 한 걸음만 떼어 놓으면 천국에 들어오게 된다.


그것도 귀양지에서 오는 사람처럼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 왜냐하면 그는 귀양살이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

천국이 자기 차지임을 이미 아는 사람, 곧 

그 '영원한 도성'의 아름다움과 영화로움과 행복을 이미 아는 사람처럼 

들어오는 것이다.



17 내 뜻은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이 유배자의 처지로 사는 것을 

참고 보지 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뜻의 본성을 바꾸어야 할 것이고.

천상에서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과  

지상에서 내 뜻 안에서 사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제도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는 내 뜻이 할 수 없고, 하기를 원하지도 않는 일이다.



18 사람이 자기 집에서 딱 한 걸음만 떨어진 곳에 나가 있을 때에도 

그를 유배자라고 부를 수 있느냐?


아니면, 

자기 조국 안의 한 성읍에 나가 있는 사람을 유배자라고 부를 수 있느냐?

물론 그럴 수 없다.



19 딸아, 유배자란 

경계선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제한된 공간에서 

온갖 물자를 박탈당한 채 

벗어날 길 없는 고달픈 노역에 처해진 사람을 뜻한다.


내 뜻은 그러한 것들을 할 줄을 모른다. 


그러니 너는 (마음대로) 볼 수 있고,

모든 곳에서 너 자신의 손으로 사물을 만질 수도 있다.


네 영혼에는 장소 내지 공간의 한계가 없기에 어디든지,

곧 태양 속에, 하늘 속에, 

때로는 잠시나마 저 높이 천상 영역 속에도 갈 수 있는 것이다.



20 너는 그러니 

네 창조주의 무한한 빛 속에 자주 잠기곤 하지 않았느냐?


네가 자유롭게 가지 못한 곳이 어디냐?

바다 속에, 공중에, 곧 어디나 가지 않았느냐?


더구나 내 뜻도 그렇게 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기에,

너를 밀어 붙이며 어디든지 두루 날아다니게 하였다.


내 뜻은, 내 뜻 안에서 사는 이가 

족쇄를 찬 것처럼 부자유스럽게 있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행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1 내 '거룩한 피앗'은 또한 

영혼에게서 좋은 물자들을 박탈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뜻의 재산을 넘치도록 가득 채워 준다.


영혼 자신에 대한 지배력을 주고,

그의 욕정을 덕행으로, 

나약을 하느님의 힘으로 바꾸어 주며,

무수히 많은 기쁨과 행복을 주고,


내 뜻이 본성적으로 가진 굳건함과 영구한 확고부동성을 

은총에 의하여 영혼에게도 준다.



22 유배 중인 사람은 자기 지배력이 없고

하느님 안에서 만물 사이를 순례하지 못하며 

욕정의 무게에 짓눌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도 어떤 선에 대해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대체로 어둠과 섞이고 암흑에 둘러싸인 선이다.


그러므로 

그 가련한 유배자의 덕행이란 

그릇되게 왜곡되고 항구성이 없는 것이 되기 일쑤다.


그는 그 자신의 비참한 것들에 종노릇을 하면서 

그 때문에 불행해하는 것이다.



23 내 거룩한 뜻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그와 정반대다.


네가 귀양살이하듯 살고 있음을 알았다면 

내가 너를 그토록 오래 살아 있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네 예수가 

그렇게 부자유스러운 상태로 사는 너를 어떻게 참고 볼 수 있었겠느냐?



24 네가 아직 세상에 살아 있도록 내가 허용하는 이유는,

내 뜻이 자신의 작은 딸인 너를 귀양살이하듯 살게 하지 않고


내 뜻 소유의 영역 안에서

- 자유롭고 지배력이 있는 내 뜻의 빛 안에서 살게 하고 있다는 것과


그 유일한 목적은 

너 자신 안에 내 뜻의 나라를 이루고

인류 가족을 위해서도 그 나라를 탄원하여 얻어 주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5 정녕 너는 행복할 것이다.


네가 네 예수의 모든 소망과 열망과 갈망이 

땅에도 내 뜻의 나라가 오는 것임을 알고 있고,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Fiat Voluntas Tua) 에 

내가 기대하는 완전한 영광이 있음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