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18권

소리-무화_천상의책{18권 10장} 지옥 고통을 능가하는 예수님의 부재 고통. 하느님의 뜻 안에서 고통받는 것의 의미

은가루리나 2015. 9. 2. 12:28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18-10



1925년 11월 1일



지옥 고통을 능가하는 예수님의 부재 고통.

하느님의 뜻 안에서 고통받는 것의 의미




1 다정하신 예수님의 부재로 몹시 괴로운 날들을 보냈다.

그분을 더 이상 뵙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뭐랄까, 

내 가련한 심장을 모루 위에 얹어 놓고 쇠망치로 잔인하게 연거푸 내리치는 것 같았다.



2 '아이고, 예수님!

당신께서 저를 산지옥 속에 집어넣으셨습니다!

더구나 저의 고통은 지옥 고통마저 능가합니다.


3 아! 지옥에 있는 자들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랑의 씨가 없기 때문에 당신을 피해달아날뿐더러 

당신의 포옹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당신의 현존 앞에 있으면 오히려 더욱 호된 고통을 겪습니다.

사랑을 증오하는 자들이니  그 증오의 대상인 이의 존재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그들에게는 당신의 부재가 더 견딜 만한 것이 됩니다.



4 그러나 저에게는 이 불행한 자에게는 그것이 정반대입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의 씨가 저의 뼈와 신경과 피 속에 깊이 박혀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 잊으셨습니까?

근 40년 동안 함께 살아오면서 당신께서 저의 뼈와 신경과 피를

저의 모든 것을 당신 자신으로 가득 채우셨다는 사실을?

 

5 저는 제 안에 계시도록 당신을 덮어 가리는 옷과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당신과 함께 있지 않으니 제 안의 모든 것이 텅 비고 말았습니다.

저의 뼈가, 저의 신경과 피가 울부짖고 있습니다.

늘 저를 가득 채워 주시던 분울 원하는 것입니다. 

제 안에서 터지는 이 끊임없는 울부짖음이 저를 갈가리 찢어대며 고문하고 있습니다.

저의 생명을 채우곤 하셨던 당신을, 당신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6 잡아 찢기는 잔혹한 고통을 

이 가련한 인간이 얼마나 수도 없이 겪고 있는지 보이지 않으십니까? 

아! 지옥에는 이 혹독한 고통은 없습니다. 

이 잡아 찢기는 고통은,

소유와 사랑의 대상이었던 하느님이 비어있는 이 뼈저린 공허는 -. 

 

7 아, 예수님, 돌아오십시오. 

당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돌아오십시오. 

불행한 자들 중에서도 가장 불행한 자,

하지만 오직 당신 때문에, 다만 당신 때문에 불행한 저에게 돌아오십시오. 

아, 정말이지 당신만이 저를 불행하게 합니다. 

다른 불행들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8 그처럼 예수님 부재의 그 괴로운 바다에 잠겨 있는 동안, 

그분 성심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내 가련한 마음의 고통과 비교하게 되었는데, 

예수님의 고통으로 위로를 받기는커녕, 

아무래도 

나의 고통이 예수님의 고통보다 더하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더 괴로워지는 것이었다.


9 왜냐하면, 

그분 성심의 고통은, 얼마나 큰 것이건, 피조물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피조물이 배은망덕하게도 그분을 모욕하며 그분에게서 달아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어디까지나 유한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지만, 

나의 경우 이 고통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고통이다.

내게서 달아나는 것이 일개 피조물이 아니라, 무한한 존재 곧 하느님이신 것이다.


10 게다가 예수님에게는 당신을 떠날지도 모르는 또 다른 하느님이 없었고,

그런 하느님이란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모든 고통을 능가하는 고통, 

즉, 하느님 없이 지내는 고통을 겪을 수 없으셨다. 

그 반면에 하느님 없이 지내는 나의 고통은 크고 무한하다. 

하느님만큼이나 크고 무한하다. 

아, 예수님 꿰찔린 성에는, 

그 꿰찔린 성심에는 하느님 부재의 이 꿰찌르는 고통만은 없었다!


11 더욱이 피조물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끼치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모욕하는 이들에 대한 통치력도 지배력도 결코 잃으신 적이 없었다.

그들이 그분을 더 작게 만들거나 광택을 흐리게 한 적도 없었다. 

그분은 있는 그대로의 그분 자신에서 아무것도 잃지 않으셨다.

언제나 모든 이를 다스리시고, 언제나 영원 무한하고 무변하며 

사랑스럽고 흠숭할 만한 존재가 아니신가!


12 그러나 나로 말하자면, 

통치력도 지배력도 없고, 

예수님 없이는 점점 더 작아지며 희미해지고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아,

나 자신이 보기에도 역겹고 참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13 '그러니, 보십시오, 오, 예수님, 저의 고통이 당신의 고통보다 얼마나 더 큽니까! 

아, 당신께서는 피조물이 당신께 끼치는 고통은 아시지만,

하느님이 주실 수 있는 고통은 모르십니다! 

당신 부재의 고통이 얼마나 모진 고통인지는 모르십니다!'





14 내 하찮은 정신이 그렇게 자꾸 푸념 아닌 푸념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부재 고통에 비길 수 있는 고통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거니와, 

그것은 정녕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시작도 끝도 없고, 헤아릴 수도 고칠 수도 없는 고통이어서, 

내 마음 역시 물에 빠져 숨이 끊어진 것 같았다.


15 그러나 더 이상 그런 넋두리를 늘어놓지 않으려고,

내 고통과 예수님의 고통을 비교하는 짓은 그만두고 

다른 일로 넘어가기 위해 나 자신을 강박하다시피 하였다. 

그리고 다만 기도했을 뿐이다. 


그분께서 힘을 주시기를 빌었고, 

그분 부재의 고통이 이토록 크고 

다른 고통들에는 없는 신비스럽고도 신적인 기운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모든 고통들을 합친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인 만치, 

그럴수록 그분의 자애로 나의 이 고통을 받아 주시기를 빌었다. 

이 고통을 보시고 모든 사람이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알게 되는 더없이 큰 은총을 내려 주시게 하기 위함이었다.


16 또한 그분의 뜻이 신비스럽고도 신적인 소리로 모든 마음들 안에 울려 퍼지면서 

그 모두를 불러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실행하게 하시고,

그 무게로 인간의 뜻과 나쁜 격정과 죄를 눌러 으스러뜨려 주시기를 빌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당신을 알고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요,

하느님을 상실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17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다 적으려고 들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이다. 

사실은 모든 것을 비밀로 간직한 채 한 마디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순명'이 강요하는 바람에 '피앗'을 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8 나중에 나는 기진맥진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측은히 여기시고 나의 내면에서 나오셨는데,

입 안에 피가 가득 고인 모습으로 비틀비틀 간신히 나오셨다.

피가 너무 가득 차서 말씀도 하실 수 없어 그 애처로운 눈길로 나의 도움을 청하시는 것이었다.


19 나는 그런 예수님의 고통 앞에서 나 자신의 고통은 잊어버렸다. 

게다가 그분께서 현존해 계시니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함께 고통을 받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얼마간 그분과 함께 고통을 받고 나자, 그분의 입에 고이던 피가 멎었다.


20 그분께서는 당신의 부재로 하여 

내가 얼마나 살가죽과 뼈가 맞붙을 정도로 바짝 마른 몰골이 되었는지를 보시고 

품에 꼭 껴안아 주셨다.

또한 당신 자신으로 나를 가득 채워 주시려고 나의 내면에 드러누우셨다. 

그런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다.



21 "가엾은 딸아, 네가 얼마나 처참한 모습이 되었는지!

네 말이 맞다. 

하느님을 상실한 고통은 무엇보다도 큰 고통이다. 

너무나 큰 고통이기 때문에 너를 지탱하기 위해 내 뜻의 모든 힘이 필요할 정도였다.


22 그러나 너는 내 뜻 안에서 고통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내 뜻이 있는 곳에는 너의 고통도 흐르고 있었다. 

즉, 땅에도  하늘에도  성인들과 천사들 속에도 있었다. 

네 고통이 그들에게 다다르자, 모두 너를 보며 도움을 줄 태세를 취하였다. 

모든 눈이 너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23 그러니 만일 낙원이 고통을 받을 수도 있는 곳이라면,

그들의 기쁨과 행복을 모조리 고통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을 받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은총을 간구하였다. 

그토록 큰 고통과 맞바꾸어 주기 위함이었다.


24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의 고통은 모든 이의 십자가이니, 

이 고통이 모든 것을 보속하고  하느님 정의의 격노를 천상 이슬로 바꾼다.

그러니 용기를 내고, 결코 내 뜻 밖으로 나가지 마라."



25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 

실없는 푸념을 늘어놓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꾸지람이 내리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완전한 평화 안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