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

28회 대담 : 성령과 영적 치유_현대영성가 토마스 머튼과의 만남_박재찬 신부 해설

은가루리나 2020. 4. 5. 23:17



28회 대담 : 성령과 영적 치유_현대영성가 토마스 머튼과의 만남_박재찬 신부 해설

(약 30분)





김남희 교수 : 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늘 스튜디오 안에서 촬영을 하다가 오늘 이렇게 밖에서 시청자분들을 뵙게 되었습니다.  신부님과 먼저 인사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박재찬 신부 : 네, 안녕하세요. 이렇게 먼 곳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남희 교수 : 아, 네. 여기 부산에 있는 분도 명상의 집인데 첫 번째 강의에서 아마 신부님께서 밖에서 촬영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때 보면서 한 번 와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마음속으로만 품다가 이제서야 오게 되었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부님!


박재찬 신부 : 네, 감사합니다. 오늘 이렇게 뭐 촬영전에 저희와 같이 이렇게 한 바퀴 산책로도 산책하고 또 3층의 성당도 구경하고 저희 수도자들이 기도하는 그런 소성당도 구경하시고 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김남희 교수 : 음, 한 마디로 정말 좋습니다. 왜냐하면 서울에는 워낙 사람들도 많고 또 자동차 소음도 많고 자동차들도 많고, 사람들도 많은데 여기 오면서 부산역에 내려서, 여기 역에까지 내려서 다시 여기로 올 때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이 안에 첫 번째 그 촬영하셨을 때, 그 장면에 신부님께서 걷고 계시는 장면이었는데 네.


박재찬 신부 : 네, 일부러 오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김남희 교수 :  네, 정말 좋더라구요. 정말 추천합니다. 꼭 한 번 와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신부님, 지난 번에 강의 때 성령을 사랑과 용서의 의미로 연결해서 해 주셨는데 정말 참 인상적이었었거든요. 네, 근데 그 용서라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한 번 정말 누군가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사실 용서하기보다는 미워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는데 신부님이 알고 계시는 용서의 노하우는 뭐가 있을까요? 비결을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재찬 신부 : 어쩌면 용서한다는 그 자체가 우리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어려운, 또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 이런 것들도 있구요, 그런데 우리가 끊임없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또 그 사랑을 배워갈려는 마음으로 용서에 대해서 언급을 하게 되고 또 용서를 할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사실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가는 그냥 자잘한 형제들간에 혹은 뭐 친구들간에 다투고 그냥 화해하고 이 정도는 아주 쉽겠지만,  정말 내 가족이나 또 내 재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한다는 것은 정말 너무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수 사랑이라고 가르쳐 주셨지만 사실 힘들기도 하구요 또 뭐 부부지간에도 예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퀴즈할 때 그 천생연분이라는 글을 이렇게 들고 있었는데 여보 우리 사이가 뭐지? 그러니까 네 자로 하니까 평생 원수 이렇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정말 함께 살면서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으로 간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가 다음 시간에 또 자세하게 설명을 해 드리겠지만 용서라는 것은 하늘 차원의 사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평화가 너희와 함께' 라고 하신 다음에 '성령을 받아라' 요한 복음에 보면 나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신 말씀이 '서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대목을 이렇게 묵상하다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빌어주시면서 숨을 다시 불어넣어 주시면서 성령을 불어넣어 주셨죠. 그리고 그 성령의 첫 번째 열매가 바로 용서라는 그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애요.


근데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아드님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그래서 아담이 지었던 죄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용서되었고 우리 모두  구원받게 되었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에게 힘겨움을 주거나 또 시련을 주었던 사람들을 내 인간적인 마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으로 용서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성령의 작용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함께 해 주셨을 때 어떤 용서도 일어나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런데 이 성령의 은총이 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준비된 자세, 그래서 때때론 침묵속에 기다리면서 기도하고 내 마음속에 평화가 오기를 청하는 그런 시간도 필요하구요, 그리고 또 내 안에 여러 가지 영적인 그런 수행들이라든지 또  자기 비움이라든지 또 여러 가지 하느님께 대한 기도를 통해서 얻은 여러 가지 열매들을 통해서 내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게 될 때, 내가 뭔가 모르는 새로운 것들이 솟아납니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그런 어두운 감정, 부정적인 감정을 이제 하느님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그러다보면 내가 몰랐던 하느님을 만나기도 하고, 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그 사랑을 배우라고 이 시간을 허락하셨고, 또 하느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용서해 주시는 거고, 나도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용서할 자격도 없는 사람인데, 내가 그동안 많은 시간을 나 자신만 생각하며 살아왔구나, 이제는 하늘 차원의 사랑을 좀 배워야겠다. 이런 마음도 일어나게 되는 것 같아요. 오랜 시간과 수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김남희 교수 : 그럼 이 용서를 잘 하는 비결은 결국 자기를 돌아보고 침묵 속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여지들을 많이 남겨놓는 거라는.


박재찬 신부 : 시간이 필요하고 또 내 마음이 좁을 때는 내 마음의 연못에 돌이 하나 던져지면 온 연못이 술렁이는데, 내 마음이 크게 넓어지고 더 큰 호수가 되었을 때는 같은 돌이 던져져도 아무렇지도 안잖아요. 조금 더 여유로움이 생겨나고 그래서 자기 수양이라는게 그래서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 마음밭을 하늘 마음밭으로 가꾸어 나가는 거죠. 


김남희 교수 : 그래서 더군다나 이런 명상의 집이 같이 올 수 있는 여유가 많이 있었으면 하는데요, 저도 사실 신부님 말씀 들으면서 신부님과 같이 산책을 하면서 그 정원 있었던 연못이 떠올랐거든요. 거기에 진흙 속에 있는 그 물 안에 지금 연꽃이 있다고 신부님께서 연꽃 한 번 보라고 했는데 아마 그런 의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박재찬 신부 : 이런 피정도 필요하겠죠. 그 내 안에 있는 어떤 뭔가 복잡하고 분열이 일어나고 미움의 감정이 일어나고 할 때, 내 스스로 해결하기 보다는 하느님께 먼저 의탁하고 또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기 위해서 이런 피정센타라든지 또 고요히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든지 해서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다시금 정립해 나갈 때 이웃과의 관계도 또 나 자신과의 관계도 좀 더 더 변화되어 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지러우냐? 그러면 지금 너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한 번 살펴보아라. 그러면 답이 있을 거다.


김남희 교수 : 네, 맞는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이렇게 명상의 집에 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성령세미나에 가기도 하고 그러는데요, 신부님이 생각하시기에 성령세미나를 통해서 그 뜨거워진 신앙이랑 그 다음에 신앙의 열정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박재찬 신부 : 아! 좋은 질문이십니다. 교구 차원에서라든지 또는 여러 수도단체에서도 성령세미나라든지 예전에는 교회 안에서, 특히 가톨릭 안에서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조금 뭔가 개신교랑 연결시켜서 조금 그런 분위기로 너무 가톨릭이 좀 더 정적이기 때문에 아마 움직임이 많은 그런 기도를 좀 부정적으로 보는 그런 경향도 있었고,  또 성령세미나라든지 성령대회를 하면 너무 지나치게 마치 광신도들이 하는 행동처럼 그런 모습을 보일 때는 아, 저게 어떤건가 하고 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근데 성령께서 활동하시는 그런 여러 가지 모습들은 항상 그렇게 뭐 찬양을 하고 율동을 하고 뜨거운 그런 열정을 일으키는 그런것만 있는 게 아니고 성령은 잔잔히 불어오는 산들바람 같은데도 활동을 하십니다. 그리고 예를 들면 엘리야 같은 경우에도 천둥이나 번개가 아니라 고요한 산들바람속에 계시는 하느님을 만났었죠.


근데 성령세미나라든지 성령대회가 우리 신앙에 어떤 초기에 뜨거움을 일으켜 주는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애요. 예를 들면 이 장작에는, 여기 나무들도 많이 있는데, 장작에는 불을 붙이기가 쉽지 안잖아요. 그런데 뭐 지푸라기라든지 또 종이같은데는 불이 잘 붙죠. 근데 그 불이 오래가진 못 해요. 그래서 일단 그 지푸라기라든지 장작을 통해서 내 감정적인 것, 그리고 내 안에 어떤 그런 그동안 쉬고 있었던 그런 마음들을 이렇게 불태우기 위해서 이런 세미나라든지 성령대회에서 그런 기운을 얻는 것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애요.


근데 거기 다녀오신 분들의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기를 그때는 너무 뜨거웠는데 일상으로 돌아오니까 다시 또 옛날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하고 그 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그런 분도 계세요. 그래서 다시 또 거기에 가게 되고 하는데 같은 걸 반복하게 되는거죠. 그러니까 예를 들면 관상기도라든지 이런 것들은 좀 더 더 깊이있는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는데 있어서 마치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것 같은 그런 역할을 할 겁니다.


그렇지만 한 번에 그 장작에 불을 붙일 수 없죠. 그래서 흔히 제가 우리 몸의 비유를 많이 듭니다. 우리 몸이 머리가 있고 가슴이 있고 팔 다리가 있잖아요. 우리 신앙은 전인적으로 성장해야 되는 것 같애요. 그러니까 어떤 성령세미나라든지 뭐 어떤 그런 무슨 피정대회 이런데 가면 막 이렇게 뜨겁게 뭔가 불타오르잖아요. 근데 그건 바로 내 마음에 어떤 불을 지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합니다.


근데 이성적으로 내가 그것을 공부하고 배우지 않으면 그냥 또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애요. 그래서 그것의 의미를 알고 또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또 공부도 하고, 또 사랑하면 예를 들면 그 교수님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게 되고, 그 사람에 대해서  관심도 갖게 되고 공부도 하게 되잖아요 그죠.  그 사람의 가족들도 더 알고 싶어 하고.


김남희 교수 : 저 젊었을 때 생각이 나는데요.


박재찬 신부 : 하하하하, 네. 첫 사랑이 있으신가 보네요.


김남희 교수 : 당연하죠 신부님.


박재찬 신부 : 그래서 그렇게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게 되고 또 그래서 하느님과 더 깊은 어떤 사랑의 유대를 갖게 되면 내 마음도 뜨거워지고 또 내 안에 하느님에 대한 앎이 많으니까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말씀들이 살아 움직이게 되는거죠.


근데 그것으로 전부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야고보 사도께서 말씀하셨듯이 그 실천이 없는 신앙은 죽은 믿음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손과 발 우리 있잖아요 그죠. 손과 발은 의지 실천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열매를 맺어갈 때 우리 신앙이 전반적으로 큰 하나의 이제 완성되어 나가는 거겠죠.


성령은 굳이 그런 성령세미나에서만 성령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령은 불고 싶은 대로 부시고 또 우리 삶 가운데 늘 함께 하십니다. 또 특별히 제가 여기 명상의 집에 와서 느끼는게 많은 분들이 이 명상의 집에 오셔가지고 미사도 참례하시고 물론 평일미사에 많은 분들이 오십니다.


주일미사에는 본당으로 가셔가지고 안 오시는데 평일미사에 많은 분들이 오시고 또 피정하러 많은 분들이 오시면서 또 면담하러도 많이 오세요. 고해성사, 면담하면서 그분들이 치유받고 또 용서하고 또 기쁨을 얻어서 가는 걸 보면서 아, 이곳에도 정말 성령께서 함께 해 주시는구나 하면서 늘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김남희 교수 : 네, 신부님 말씀은 정말 많이 와 닿는데요, 그 신앙이 전인적이어야 한다는 것, 머리와 가슴과 모든 사지가 그 열정이 함께 같이 해야 된다는 걸 많이 느끼게 되는데요, 그러면 아까전에 그 바람이 불고 싶은 대로 분다고 하셨었는데 정말 성령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때, 아니면 많이 드러난 때는 언제일까요? 신부님 보시기에.


박재찬 신부 : 바로 저는 내가 사랑하고 있을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잖아요 그죠! 그래서 우리가 요한1서에 보면 하느님께서, 하느님은 사랑하신다 라고 표현하지 않고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고  be 동사를 쓰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사랑이 되어 가고 또 서로 용서하고 나누며 살아갈 때, 그 안에 이미 하느님이 계시는 거고, 이미 그 안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것 같애요. 아까 제가 용서에 대해서 말씀드린 것처럼 용서할 때 그건 내 힘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 같애요.


또 하느님의 때가 되었을 때 그런 용서하는 마음을 통해서 우리가 더 하늘 차원의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거기 때문에 성령은 성부와 성자간에 나누는 사랑의 유대다. 일치와 화합, 평화를 가져다 주시는 분이라 그랬잖아요. 그죠! 그래서 우리가 서로 갈라져 있는 곳에 정말 성령이 임하셔서 서로 일치를 이루고 또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그런 성령이 임하실 수 있도록 청해야 되고,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김남희 교수 : 그러면 그 용서는 사랑이네요 신부님!


박재찬 신부 : 용서는 하늘 차원의 사랑을 배우는 도구인 것 같애요.


김남희 교수 : 아, 네.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이런 하느님의 관, 관점이 변하는 것이 토마스 머튼도 하느님관이 변했는데 어떻게 변했는지 다시 한번 좀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고, 거기 안에 신부님께서는 어떻게 하느님관이 변하셨는지...


박재찬 신부 : 네, 토마스 머튼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죠. 뭐 예를 들면 그 기숙사에서 생활할 때 미사드릴 때 그 학교에서 미사드릴 때,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라고 다른 사람들은 사도신경을 하고 있는데 혼자 외치기도 하고 그랬죠. 마음속으로!


근데 그 토마스 머튼이 처음 느꼈던 하느님은 굉장히 가톨릭에서의 그런 부정적인 모습들, 중세때의 모습들, 이런 것들이 선입견이 되어가지고 본래 제대로 된 가톨릭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가톨릭에 대해서 조금씩 조금씩 긍정적으로, 처음에는 이성을 통해서 느끼기 시작하고 또 점점 특히 미사에 갔을 때, 기도하는 5, 6살 된 소녀의 모습을 봤다고 그래요. 처음으로 미사에 갔죠.


그 오후에 여자친구랑 데이트 하기로 했는데 그걸 취소하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는 미사에 가라, 미사에 가라 하는 소리를 듣고는 성당에 가는데 그 한 소녀가 정말 진지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어요. 그때 새롭게 머튼이 느낍니다. 아, 이 가톨릭이라는 곳은 기도하는, 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구나! 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점점 의탁하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또 좋은 책들을 통해서 토마스 머튼은 하느님관이 사람을 통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죠. 그리고 책을 통해서 변화도 시작하고 그런데 아직 나의 하느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죠. 그 이후에 하느님 체험을 하고 , 하바나에서 특히 하느님 체험을 하고 또 수도원에 들어 갈 결심을 하면서 점점 나의 하느님의 자리가 아주 굳어지게 되고 나는 하느님을 위해서 일생을 살겠다 라는 마음으로 사제가 되는거죠.


그리고 난 이후에는 하느님께서 수도원이나 이런 성당이나 이런 곳에만 계시는게 아니라 점점 확장되어서 사람들 안에 있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 안에 있는 그리고 다른 종교안에 있는 하느님도 나중에는 만나게 되면서 점점 확장되어 가는데 저 역시 처음에 하느님은 부모님의 하느님이었죠. 부모님이 제가 어머니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제 이름은 안셀모였어요. 그래서 어머니의 육아일기를 보면 안셀모랑 대화하는 내용도 막 나와요.


그래서 어머니가 안셀모를 사랑하고 또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모습들을 읽으면서도 굉장히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지만 제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될 때쯤에는 제가 가지고 있는 하느님관이  바뀌었어요. 그러니까 어머님의 하느님이 싫다, 나를 귀찮게 하는 분, 그 부분은 제가 예전에 한 번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수도원 들어와서 또 한 번 쓰러지고 넘어지는 그런 체험들을 통해서 하느님은 더 저한테는 전에는 내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느님 없이는 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하느님, 나에겐 전부인 하느님,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하느님, 그런 하느님관으로 나중에 변해집니다.


아버지의 어떤 하느님,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저한테 있어서의 하느님은 늘 저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제 안에 사시는 하느님, 특히 성령께서 늘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런 방송도 아마 할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끊임없이 질문을 해요. 주님, 제가 언제까지 이것을 해야 합니까! 늘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 안에서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이런 느낌이 듭니다.(18;13)


사실  제가 뭐 전문 방송인도 아니고 또 말을 조리있게 잘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이 방송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저를 통해서 뭔가 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방송을 때때로는 뭐 제가 계획했던 것 하고 전혀 다른 말들을 많이 해서 또 방송시간이 많이 길어지기도 하고 또 지금도 제가 무슨 말을 할지 계획을 세우고 온 건 아니지만 뭔가 계속 끊임없이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말씀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복음서에도 무슨 말을 할 지 걱정하지 말라 하셨는데, 그게 성령에 대한 믿음이 클 수록 어떤 하느님과 함께 한다는 거에 대한 믿음도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김남희 교수 : 조금 전에 말씀하신, 신부님께서 첫 마디에 토마스 머튼이 하느님을 사람을 통해서 만나게 해주고 변하게 했다 라고 했던 것처럼 신부님도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요, 왜냐하면 시청자분들이 또 신부님의 모습을 보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또 여기 명상의 집에 오고, 자기를 돌아보고 다시 또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그러지 않을까 싶어서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신부님!


신부님께서 그래서 영적지도를 많이 해 주시는 것 같아요. 음, 여기 분도 명상의 집에 처음에 건물이 딱 들어섰을 때 바로 옆 방이 고해실이면서 신부님의 사무실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 저는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써 사무실이라고 해서 사무실인가보다 했는데 앞에는 고해실이라고 써져 있어서 정말 많은 신자분들이 오셔서 신부님과 상담도 하고 상의도 하고 또 고해성사도 보는구나 싶었거든요.


영적지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라든가 아니면 꼭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신부님?


박재찬 신부 : 아, 네! 그래요. 때때로는 이 영적지도뿐만 아니라 고해성사라든지 또 어떤 면담이라든지 또 상담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거, 내가 깨닫지 못했던 거, 이런 것들을 일깨워주는게 영적지도자의 역할인데 제가 일깨우는게 아니라 저는 방향을 잡아주는 거죠.


결국 영적치유에서 혹은 영적인 면담에서 상담에서 우리를 치유해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고, 우리를 지도해 주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다만 제가 해야 될 역할은 이제는 자기 자신만 바라보지 말고 하느님을 좀 바라보라고,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동안 내 삶에서 어떻게 작용해 왔는지를 바라보면서 앞으로도 하느님께 의탁할 수 있는 그런 어떤 내적인 힘을 키워낼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도와줍니다.


그래서 지나온 시간들을 총고해 하시는 분들 같은 경우에는 미리 정리를 해오라고 그럽니다. 왜냐하면 그냥 오시면 사실 쉽게 말해서 했던 말 또 하시고, 또 하시고 굉장히 시간도 많이 길어지고 하는데 한 번 정리를 해서 오시면 저한테도 좋구 그분도 자기 객관화가 되는거죠.


그래서 정리해서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심리적인 치료가 필요하신 분들도 계시기도 하고 또 좀 뭐랄까, 인간적인 위안이 필요한 분들도 계시고, 그리고 그동안 너무 삶에 지쳐서 그리고 또 지나친 죄의식 때문에 자기 자신을 억누르고 억압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또 성령을 초대하고, 제가 항상 성사를 주기 전에, 혹은 면담하기 전에 기도로 시작을 합니다. 성령을 청하는 기도로. 그래서 그 기도를 통해서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바라고 또 그 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우리 둘 만의 대화가 아니라 성령과 함께 대화하는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시작을 합니다.


근데 그 가운데 제가 굉장히 인상 깊었던 부부가 있었는데, 그 부부는 남편이 일단은 부부상담에 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거의 50%는 성공한 거예요. 대개는 자매님들이 남편에 대해서 걱정하고 염려하고 서로 너무 힘드니까 남편을 좀 같이 상담해 달라고 청합니다.


근데 처음에는 남편이 오기를 거부했는데, 그래도 여러 이야기를 듣고, 그 안셀모 신부를 한 번 만나보자 그렇게 해서 왔는데, 굉장히 적대적인 분이셨어요. 예. 경계를 많이 하고 나는 끝까지 옳다. 이 이야기를 많이 하는 분이셨는데 이 횟수가 거듭될 수록 아내의 이야기를 자꾸 듣게 되는 거예요.


제가 부부상담할 때는 어떻게 하냐하면 15분은 같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15분은 아내만, 15분은 남편만, 그리고 마지막 15분은 같이 이렇게 해요. 같이 이야기할 때, 제가 아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하라고 그럽니다. 여기는 고해의 비밀을 지킬 수 있으니까 편안하게 하자고!


그래서 아내가 계속 그동안 남편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막 쏟아내는 겁니다. 남편도 처음에는 막 놀라요. 그동안 나한테 하지 못했던 속에 있는 말을 하니까! 근데 횟수가 거듭될 수록 그 남편도 아내에게 섭섭했던 걸 말하게 되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나중에 그 남편이 한 번은 들어오자마자 제 얼굴을 보더니 6 0대이셨는데 덩치도 크신 분이 눈물을 주루룩 흘리시는 거예요.


근데 그 남편의 눈물을 보고 아내가 많이 변했어요. 우리 남편이 저렇게 우는구나! 나를 위해서 혹은 또 많이 힘들었구나 이런 느낌이 들었나봐요. 그래서 이 눈물로 그 두 부부가 정화가 되고, 화해하고 그런 시간을 갖게 되었고 나중에 남편도 아내를 존중해 주고, 아내도 또 남편을 다시금 받아들이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저한테 마지막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 이제 신부님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하하하, 우리 둘이서 잘 하겠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네, 그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김남희 교수 : 신부님, 그러면 그 보통 일반 신자들도 요즘은 심리상담을 받는 게 워낙 자연스러워서요 어떤 개인적인 문제가 있거나 아픔이 있을 때, 개인 상담사를 많이 찾아가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그런 개인적으로 받는 일반적인 상담과 신부님을 통해서 받는 영적치유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박재찬 신부 : 아, 네! 굉장히 좋은 질문이신데 유사한 점이 있지만 완전히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왜냐하면 심리치료는 정상적인 삶을 살면 그걸로 된 거잖아요 그죠! 우리가 비정상적인 삶, 갑자기 우울해 진다든지  또 이제 정상적으로 사람들을 대인관계를 못한다든지 공황장애가 왔다든지 뭐 여러가지 진단을 내리고 그에 맞는 약을 처방하기도 하고 또 원인을 분석해서 그 원인을 이렇게 이야기 나누면서 또 풀어가기도 하고 해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면 그걸로 치료가 끝나는 겁니다.


근데 영적치료라든지 그 다음에 또 영적상담, 혹은 사목상담 이런 것들은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정상적인 삶, 이 삶이 완성이 아니라 구원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지금 와서 개인의 어떤 영적인 신앙의 여정들을 살펴보면서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가 예전에 멀어져 있었다면 점점점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과 탁 만나는 것, 그 순간이 우리가 구원이잖아요 그죠?


하느님과 일치하는 거 그게 구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는 나 중심으로 살았다면 이제 하느님께로 점점점 나아가는 거죠. 근데 혼자 못 나아가요. 왜냐하면 여기는 아까 심리적인 것도 조금 연관이 있다고 한 게 우리 인간은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함께 있어요. 그래서 과거의 심리적인 아픔, 상처 이런 것들이 그 하느님께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기도 해요.


예를 들면 무서운 아버지 밑에 컸어요.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그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동시에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도 가지고 있어요. 마치 벌 하시는 하느님, 무서운 하느님, 나를 채찍질하는 하느님, 그래서 엄격한 하느님, 그래서 정말 하느님과 어떤 인격적인 관계, 친밀한 관계를 맺기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있죠.


이런 어려운 분들은 심리적으로 도움을 드려야 되는거죠. 그러니까 심리적으로 이 사람이 안정적인 하느님 아버지관, 또 아버지에 대한 그런 이해, 또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왜곡된 상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죠. 뭐 그런 것들을 분석해 주고 또 치유해 주고 도와 주고 하는거죠.


근데 결국은 이 심리적인 도움은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어떻게 하면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가,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는 거, 이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영적지도를 해주는 사람들은 성령이 지도해 주시지만, 영적 상담하는 사람들은 하느님께로 갈 수 있도록 그래서 말씀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또 묵상할 수 있는 그런 재료를 주기도 하고, 또 지금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 위안을 주기도 하고 안정을 주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본인이 하느님께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그런 도움을 주는거죠.


그래서 정기적으로 어떤 영적인 상담이라든지, 특히 고해성사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고해성사를 통한 면담이 저는 제일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단순한 영적 상담보다는, 그래서 고해성사를 통해서 결국은 모든 사건들, 모든 사람들, 마주하는 모든 것들은 다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을 더,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방향을 잡아주는 것, 그런게 영적지도해 줄 때에 일어나는 일들이고 또 그렇게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김남희 교수 : 말씀 들으면서 저의 어렸을 때 기억이 났습니다. 음, 제가 어렸을 때 고해성사를 짧게 짧게 주시니까 고해소에서 정말 친구들이랑 같이 손 잡고 수사 신부님을 찾아가서 한 시간씩 면담하면서 고해성사를 봤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사실 그때 했었던,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불쑤시개, 그걸 다시 지펴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구요, 제가 내려오면서 보니까 이 벌써 2020년 분도 명상의 집, 벌써 피정 일정표가 다 나와있더라구요. 간단하게 좀 소개를 해 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박재찬 신부 : 아, 네! 저희 명상의 집 블로그에다가 내년 일정, 1차 2차 3차 해서 월요모임, 월요모임은 하루만 하는거고, 1박 2일 모임은 토.일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1박 2일 모임은 거의 많이 피정에 가까워요. 기도하는 시간도 많고 합니다.


그리고 심화과정에서는 토마스 머튼 책을 읽으면서 서로 나눔을 하면서 더 깊이있게 말씀을, 토마스 머튼의 그 글을 읽으면서 서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또 성령에 귀를 기울이는 그런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좀 더 심화하는 과정에서는 자기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토마스 머튼을 버릴 준비를 하는거죠.


나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그런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토마스 머튼 영성을 나누기 위해서 많은 또 명상의 집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방송을 보는 분들도 저희 명상의 집에 오셔서 맛있는 밥도 드시고, 오늘 식사하셨죠? 맛있었죠! 


밥도 드시고 아름다운 자연안에서 산책도 하시고 또 강의도 듣고, 머튼 글도 읽으면서 정말 하느님 안에서 쉬는 시간, 토마스 머튼이 기도는 하느님 안에서 쉬는 시간이라고 그랬잖아요 그죠! 우리 영적인 삶의 쉼표, 그렇지만 다시금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그런 기회로 삼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남희 교수 : 신부님,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시청자분들께서도 이번 기회에 각자의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그리고 하느님을 만나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대담때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