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

33회 영적치유_현대영성가 토마스 머튼과의 만남_박재찬 신부 해설

은가루리나 2020. 4. 11. 17:32



+ 찬미예수님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의 박재찬 안셀모 수사 신부입니다.

지난 한 주간도 주님의 성령안에서 충만한 나날들이 되셨는지요?

이번 시간에는 여러분들과 조금 생소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너무도 관심이 많으신

영적인 치유에 대한 내용을 좀 다룰려고 합니다.


사실 이 토마스 머튼의 영성에 있어서 영적인 치유부분은 조금 다른 방향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토마스 머튼이 영적인 치유에 대해서 많이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마치 보너스처럼 여러분들에게 영적인 치유, 요즘 관심이 많잖아요 그죠.

심리치료에 대한 거, 뭐 영적인 상담, 마음이 아픈 분들이 많기 때문에 아마 이런 분들, 또

영적으로 힘겨워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영적인 치유에 대해서 많이 관심을 갖는 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에 토론토로 공부하러 갔을 때 처음부터 토마스 머튼을 공부한 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심리학에 관심이 좀 많았습니다. 제가 심리적으로 문제가 좀 많기 때문에~

그래서 심리학 공부를 하고 또 석사 학위는 심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때 석사 학위 받을 때 주제가 "spritual healing and growth"  라고 해서 '영적인 치유와 성장'

대한건데 수도생활이, 어떤 영적인 생활이 영적인 치유와 영적인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 연구한 논문이었습니다.


그 논문은 몇 년 후에 한 베트남 수사님께서 영어로 된 논문을 발견하시고는, 당신 나라 베트남

말로 번역하고 싶다고 그래서 지금 베트남 말로 번역되어서 출판되어 있을 겁니다.


아무튼 이런 영적인 치유에 대해서 제가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토마스 머튼의 삶의 여정에서도

이런 영적인 치유에 대한 부분들을 어떻게 토마스 머튼이 점점 더 영적으로 더, 과거에 아팠던

기억들이 많았죠. 그죠! 


방탕하게 살아가면서 사생아도 생기고 또 이러는 과정에서 장상하고 싸우는 그런 갈등,

또 내면에서 일어나는 그런 갈등 안에서 어떻게 영적으로 치유되고 성장 되었는지

이런 부분들을, 지난 시간에 성장에 대한 부분들을 많이 다루었었는데 영적인 치유에

대해서는 많이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부한 내용하고 또 여러분들이 지금 실제 삶에서 영적인 치유에 대해서 어떤

개념을 가져야 되는지 설명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우리 흔히들 그 영적인 치유가 뭔지 이렇게 물어보면 영적인 치유가 뭡니까!

영적인 치유를 좀 받고 싶은데 영적인 치유가 뭡니까! 라고 물으면 답을 잘 못 합니다.


그리고 뭐 심리치료는 또 무엇이고, 영적인 상담 혹은 사목 상담은 무엇이고, 또 영적인 기도는

무엇이고 이런 개념이 좀 혼돈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으신 것 같은데 우선 우리가 그 심리 치료

라는 부분이 있죠 그죠!


심리 치료, 뭐 'psychotherapy '라고 말하는데 이 심리 치료는 목표가 뭘까요?

그쵸. 목표는 마음을 치유해서 정상적인 삶을 살 때,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병이 와서 우울증이라든지 또 조울증이라든지 뭐 여러 가지 신체 장애라든지 여러 가지

진단을 받고 정상적인 삶을 못하는 그런 분들, 뭐 공황 장애 이런 분들이 있죠.


그런데 그런 분들이 이런 심리 치료를 통해서 그 마음이 치유가 되어서 정상적인 삶을 살 때

마음의 병이 치유받는 것, 이게 정상적인 삶을 살 때 심리 치료가 완성 됩니다.


근데 사목 상담이라든지 본당 신부님들이 많이 하시죠 그죠!

그 다음에 또 뭐 영적인 지도, 그 다음에 또 뭐가 있나요?

아, 이건 좀 다르지만 그래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고해 성사 그죠!

고해 성사 안에서도 어떤 성령을 통해서 영적인 지도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결국은 사목 상담 하는 분들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치유의 메세지를

전하는 그런 과정에서 어떤 인도해 주고 식별해 주고 그런 역할을 하는게 사목 상담이겠죠.


영적인 지도,  영적인 지도는 이 심리 치료하고는 다릅니다.

영적인 지도는 성령께서 그 내담자와 성령과의 관계 안에서 그 관계를 증진시켜 주고,

그 관계를 더 새롭게 해서 더욱더 하느님과 일치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영적으로

지도해 주고 식별해 주고 하는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고해성사는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거죠.

그런데 고해성사 안에서도 성령께서 작용하시는 거죠.

결국은 사목상담, 영적지도, 고해성사는 더 탁월하죠.

고해성사 안에서는 성령이 직접 활동하시니까.


이런 걸 통해서 우리가 이런 과정, 사목상담을 한다든지 영적지도를 받으면서 또 고해성사를

통해서 영적인 치유가 일어납니다.

전에는 내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데 있어 길을 잃고 막 헤매고 있는데 영적인 지도자

이 쪽으로 한 번 가 보십시오, 아! 그거는 그 길이 아닙니다. 식별해 주는 거죠.


그런 과정에서 내가 영적으로 고갈되고 마음이 힘들고 아팠는데 이런 것들이 서서히

방향을 잡아가고 또 깨달음을 얻게 되고 아, 그래서 그때 내가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구나!

그래서 내 안에 있는 그런 상처와 아픔들이 내가 또 다른 하느님께 대한 그런 나쁜 관을 만들게

해 주었구나! 하느님에 대한 그릇된 상을 만들게 해 주었구나!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영적인 치유가 일어납니다. 근데 이 영적인 치유가 끝이 아닙니다.

이런 사목상담이라든지 영적인 지도, 고해성사는 영적인 치유가 끝이 아닙니다.

그래서 큰 차이가 있는데 그 끝이 뭘까요? 맞춰보세요?  결국은 구원이죠. 구원.

구원에 있습니다. 네.


그래서 제가 예전에 이걸 모를 때는 특히 토론토로 유학가기 전에는 저한테 와서 상담을

하거나 어떤 영적인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한테, 또 고해성사도 많이 주게 되니까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면담을 통해서, 성사를 통해서.


그러면 그분들의 정말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들, 힘겨움들을 이렇게 접하면서

너무 감정이입이 많이 되어가지고 어떻게 저 사람을 도와드려야 되는데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 내가 정말 돈이라도 많으면  돈이라도 좀 드리고 싶고,  또 정말 아픈 분들에게 더 어떤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상담을 하고 오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내에 기도하는 동안에도 계속 머리속에서 떠나지를 않는 거예요.

그만큼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는 겁니다.


근데 제가 토론토에 가서 심리학을 배우고 또 그곳에는 예수회 신부님들이 많이 계셔가지고

제 석사논문 지도 교수님도 예수회 신부님이셨는데, 그 신부님이 심리학을 전공하신 분이시

라 심리학 뿐 아니라  영적인 지도에 대한 것들을 많이 가르켜 주는 수업 과목을 많이 개설

하셨는데 그 가운데 이런 영적 지도를 어떻게 할 건가,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제가

거기에 관심이 되게 많았습니다.


실제로 제가 해야 될 역할이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근데 그분께서 또 가르침을 통해서 주신 말씀이 뭐냐면 영적 지도자는 성령이시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말씀 드렸던 것처럼 영적 지도자는 성령이시다.


성령께서 우리를 지도해 주는 거고 영적 지도자는 안내자일 뿐입니다.

쉽게 표현해서 그 영적 지도해 주는 사람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인 거죠.

근데 이 손가락이 달인 줄 알고 착각했던 겁니다.


성령께서 이 사람을 영적으로 치유시켜 주고, 도구를 통해서 결국은 구원으로~

구원이란 말은 결국 하느님과 일치 그죠!  하느님 예수님을 만나는 게 구원입니다. 그죠!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시고 난 다음에 나았으니 이제 집에 가거라.

이렇게 말씀하지 않고 많은 경우에 어떻게 말씀하세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를 구원하였다.


그래서 영적인 우리 이런 지도라든지 상담 또 고해성사를 통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성령의 힘으로

영적인 치유가 일어납니다.  근데 이 치유는 결국은 하느님의 구원을 위한 도구인 겁니다.

외적으로 신체적인  어떤 뭐 치유가 일어나기도 하고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기도 하고,

복음서에 보면 많이 나오죠 그죠!


근데 그게 결국은 이 구원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는 그냥 이 사람한테는 그냥 기적일 뿐이죠. 그죠!

하느님께서는 그런 기적이 아니라 정말 그 고래의 뱃 속에 있던 요나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는

그게 진짜 표징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회개 구원,  회개를 통한 구원에 이르는 것!

그것이 바로 영적인 치유의 목적이고 또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것을 이야길 합니다.


그래서 이 토마스 머튼의 삶에 있어서도 이런 그 영적으로 토마스 머튼도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뭐 수도원 안에서뿐만 아니라 수도원 밖에서도들어가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안에서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살았구요.

 

그리고 또 길을 헤맸을 때미국에 있을 때는 많은 교수님들친구들이 어떤 영적인 지도를

해 주었죠그리고 실제로 수도원 안에 들어가서도 그 영적인 지도를 받았고또 영적인

지도를 계속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토마스 머튼에게 관심 있었던 것은 이 구원에 있는거죠.

예수님과 어떻게 하면 일치할 건가?

관상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일치할 건가?

여기로 이어지는 그런 과정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치유와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이 심리치료 하고는 조금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먼저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내가 우울증이 있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래서 저 신부님이 용하다더라~

저 신부님한테 가보자그 신부님이 다 해 주시겠지~

제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성령께서 해 주시는 겁니다.

 

제가 예전에 토론토에 있을 때 여러 번 병자성사를 통해서 혹은 안수를 통해서 어떤

치유가 되기도 하고 그런 기적들이 좀 일어났었어요.

근데 이상하게 소문이 나가지고 그 안셀모 신부님 손에서 뭐가 나간다 카더라~

그런 소문이 났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안수를 청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제 손은 아무것도

안 나갑니다뭐 장풍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안 나갑니다.

그때 하느님의 때가 되었을 때 그분들에게 치유의 은총이 내린 거죠.

또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 사람을 어루만져 주시고 감싸주시고 비단 단순히 몸이

낫고 아픈 분들이 치유되고 심지어 이런 경우도 있었어요.

 

제가 10년전에 어린 10세 아이를 안수해 주었었는데 제가 토론토 갔다 오니까 그 어머니가

전화가 왔어요. '우리 딸이 그때 불치병이었는데 신부님 안수를 받고 기적적으로 나아서 지금

대학생이 되었다고 신부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저한테 감사할게 하나도 없습니다.

다 하느님께서 하시고 성령께서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 손에는 아무것도 안 나갑니다. 성령께서 늘 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치유와 기적이 거기서 멈추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그것일 뿐이죠근데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을 더 알게 되고 또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을

더 믿게 되고 회개하게 되고 그래서 내 삶이 바뀌어 진다면 그것이 진짜 기적이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식별이 필요하고 또 이런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영적인 지도자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사람들을 안내해 주고 또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런데 만약에 그 영적 지도하시는 분이 심리적인물론 인간을 연구하기 때문에 심리학도

도움이 됩니다근데 심리학만 가지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심리학적인 그런 어떤 도움 될 자질을 가지고 있으면 상담할 때도 어떤 많은 도움이 되는데

이런 것들과 영적인 지도 이런 것들을 병행해서 하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영혼도

치유해 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되는 거겠죠.

 

그리고 영적인 치유를 한다는 것은 결국은 우리가 자기 중심으로 살던 사람이 하느님 중심으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도록 만들어 주는 거, 제가 관상이야기 하면서 그런 말씀 드렸었죠 그죠!

새 아담.

 

낙원에서 살고 있는 그 아담하느님이 창조하신 가장 아름다운 그 아담!

그 아담의 그 본래의 인간의 모습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것그것이 바로 영적인 지도와 치유의

목적입니다그게 바로 우리에게 있어선 구원이겠죠.

 

그 다음에 영적인 지도할 때결국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관계를 새롭게 해 주는 겁니다.

관계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또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가 새로워지고 또 더욱더 친밀해지고

하나가 되었을 때 분명히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됩니다.

분명합니다.

 

만약에 하느님과 나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가 아니고 뭐 분열되어 있고 하느님을 믿지 못하고

거부하고 있다면 그 불신의 그런 마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이성물론 합리적인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또 어떤 경제적인 이익을 통해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의 어떤

욕심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어서 진정한 어떤 영적인 치유라든지 이런 것들

하고는 개념이 거리가 먼 거죠.



그래서 영적인 지도는 결국은 내담자와 또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일치의 길을 안내해 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영적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제가 이렇게 정의해 놓은 걸 옮겨왔는데 명확한 개념정의를 위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적지도란 어떤 개인으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개인적으로 의사전달 하시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렇게 의사전달 하시는 하느님께 응답하며 하느님과의 친교를 깊게 하고

그 관계에 바탕을 둔 삶을 살아가도록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도움이다.'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인 목표는 개인과 하느님과의 관계의 일치를 육성시켜 주는 것,

장려시켜 주는 것이런 것들이 바로 영적 지도자의 어떤 역할이라고 생각이 듭ㄴ다.

 

그래서 영적 지도자는 심리치료자가 아닙니다.

또 영적 지도자는 점쟁이가 아닙니다.

저하고 이렇게 면담하시는 분 가운데 혹은 또 고해소에서

신부님이번에 땅을 샀는데 이번에 팔아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이런 걸 묻는 분도 계십니다.

이분이 아파트를 샀는데 이거 지금 내 놔야 됩니까안 내놔야 됩니까!

저도 모릅니다그런 거는!

 

그래서 여러 가지 개인적인 뭐 미래를 예견해 달라고 그러고 어떤 운명을 결정지어

달라고 하는데 그런 결정은 제가 하는 게 영적 지도자가 하는 역할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분명히 영적 지도자는 안내자 역할을 하는 거고치유를 시켜주시는 분은

성령이시고 그리고 그 치유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근데 이런 영적 지도를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그 선물을 이렇게 알아가는 거죠.

이게 선물이었구나!

 

때로는 정말 나한테 닥쳐 온 엄청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그런 고통과 시련이

그냥 막연히 피해야 될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그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또 다른

눈을 갖게 되는 거죠.

 

예전에는 내가 이것이 단순히 고통과 시련아픔은 피하고 싶은 것이었는데

그것을 마주하면서 자기 자신의 자아를 바라보게 되고 그것을 마주하면서 나의 과거의

상처도 바라보게 되고 또 그것을 마주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상처와 고통을 딛고 일어나서오히려 그것을 디딤돌로 해서 더 큰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리고 그 다음에 똑같은 고통이 다가왔을 때는 고통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어서 이제 더 이상 고통이 아닌 거죠.

 




또 다른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힘이 생겨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성장이요 영적인 치유인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치유와 성장을 위해서 제가 7가지 테마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7가지 테마 가운데 하나가 첫 번째는 영적인 치유를 위해서는 어떤 신앙체험이 영적인

치유에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하느님과의 어떤 관상적인 관계깊은 일치의 관계가 영적인 치유를

일으켜 줍니다.

 

그리고 또 내 안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우리 흔히 말하면 속 시끄럽다 그러죠.

내 안에 일어나는 부정적인 여러 가지 생각들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질투심이 일어나고

문득 두려움이 생기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떻게 다루어 가느냐

하는 것도 영적인 치유에 있어서 중요한 과정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 성장에는 항상 저항이 있기 마련입니다.

상담에도 물론 저항이 일어나지만 영적인 치유에 있어서도 저항이 일어납니다.

그 저항이 무엇이고 또 그 저항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그 다음에 다섯 번째는 영적인 신앙체험에 있어서도 식별이 필요합니다.

어떤 것은 악령으로부터 오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것은 자기 착각일 수도 있고 또 어떤 것은 그냥 자신의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잘 식별하는 것들이 영적인 지도와 영적인 치유에 있어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는 단순히 어떤 영적인 부분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인간은 우리 육신과 마음과 영혼이 함께 이루어져 있죠.

그래서 전인적인 성장이 필요합니다전인적인 성장.

이 전인적인 성장에 있어서 하나 더 부연 설명해야 될 것은 바로 자기 초월인데

조금 있다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자신의 통합된 삶의 확장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치유가 일어났다고 해 가지고영적인 치유가 일어났다고 해서 그냥 너무 좋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게 너무 좋아그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영적인 치유는 아까 구원이라고 그랬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 인 것입니다.

결국은 사랑의 삶을 살도록관상과 활동의 통합의 삶을 살도록 하느님과 늘 함께 하는

사랑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줄 때영적인 치유가 완성되는 겁니다.

결국은 구원으로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 이어지는 거죠.




그럼 첫 번째로 신앙체험이 영적인 치유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신앙체험!

성인들의 예를 한 번 들어 볼께요.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이 달라졌어요그죠!

 

그전에는 부활을 체험하기 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막 도망갔죠.

도망가고 다락방에 숨어있고 그랬지만 성령을 받고 예수님을 만나고 하면서 그렇죠

영적인 영혼의 치유내가 배반했고베드로 사도 같은 경우는 세 번이나 배반했잖아요 그죠!

 

내가 배반했다는 그 말이 예수님께서 베드로야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그 말그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베드로의 영혼은 치유가 됐죠.

 

그리고 이젠 온전히 예수님과 하나 되어서 예수님을 선포하고 죽기까지 심지어 나는 그냥

십자가에 제대로 달릴 자격도 없습니다그래서 거꾸로 매달려서 순교하셨잖아요그죠! 

그래서 여기에서 어떤 영적인 신앙체험예수님 체험이 영적인 치유에 큰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또 신앙생활에는 여러 가지 예수님에 대한 어떤 신앙의 영적인 체험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만 또도 필요합니다전인적이어야 되니까 그죠!

 

예수님에 대해서 내가 사랑하니까 그분에 대해서 알고 또 그분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또 이렇게 TV를 보시면서 영적인 토마스 머튼의 영성에 대해서 배우시면서 뭔가

진리를 찾아가고 싶고 영적인 갈망이런 것들이 일어나게 하는 것들도 영적인 치유에

있어서 도움이 됩니다.

 

뭘 알아야지 또 이렇게 하죠그죠!

그래서 무엇이 필요한지 그 처방을 주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잘 살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마음이 아프거나 몸이 아프면 의사한테 가서 제가 여기 여기가 아프고 여기 여기가

힘듭니다이렇게 표현을 하잖아요 그죠!  또 검사도 받고~

 

마찬가지로 영적인 치유를 위해서는 예수님을 찾아 가야 됩니다.

예수님한테 가서 주님제가 여기가 아픕니다주님제가 지금 이게 너무 안 됩니다.

당신과 정말 사랑으로 하나 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이 상처난 마음이 마음이 지금

있습니다주님저를 찾아와 주십시오저에게 치유를 주십시오라고 청해야 됩니다그죠!

 

많은 환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잖아요 그죠!

그것처럼 내가 어디 아픈지를 말하고 알고 하는 거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두 번째는 하느님과 나와의 관상적인 관계이것이 영적인 어떤 치유와 성장에

큰 역할을 합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영적 지도한다는 것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더 굳건히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그랬잖아요그죠!

 

근데 지금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잘 살펴보고 그 안에서 내가 부족한 것은

무엇이고또 내가 해야 될 것은 무엇이고 내가 치워야 될 것은 무엇이고 이런 것들을

잘 살펴볼 때내 안에 내 영혼에 때가 묻어있고 또 내 영혼에 뭔가 아픈 것이 아픈데도

아픈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 영혼이 병들어 있는데도 병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살아가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그냥 정상적인 뭐 삶을 살죠바깥에서는 그죠!

뭐 잘 나가는 사람으로 살지만 하느님 앞에 홀로 있을 때 뭔가 모르게 끊임없이 일어나는

죄의식 또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하는 그런 불안감초조감 이런 것들이 일어납니다.

그죠!

 

그래서 드러나는 나와 하느님 앞에 홀로 있을 때 나이 모습이 다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 홀로 자주 머무는 시간을 가질 때 내 영혼이 어디 아픈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아플 때 그것을 누구에게예수님께 말씀을 드리는 거죠제가 지금 여기가 아픕니다.

 

 

그래서 관상이라는 것은 결국은 주님을 바라보면서 사랑을 속삭이고 주님께 말씀을 드리는

거잖아요 그죠!

그래서 주님이 찾아오시면 내가 그분을 뵙고 그분과 하나 되고 일치되는 그런 여정인 것입니다.

또 그런 선물이고 은총인 거죠.

 

또 내가 그분이 오셨는데도 그분을 못 알아 볼 때가 많습니다.

너무 바쁘니까너무 분주하고 그분 곁에 머물 시간이 없는거죠그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관상 생활관상적인 기도 또 여러 가지 하느님을 찾고자 갈망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들을 계속해서 가지고 그분 앞에 홀로 내 영혼을내 마음을 열어 보여 드리는 그런

시간들을 자주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렇게 될 때는 나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건너가는 그런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늘 그전에는 내가 아픕니다내가 여기가 부족합니다또 내가 지금

상처받았습니다이런 것들만 생각하는데 관상으로 더 깊이 나아가면 이제는 하느님의 그

성심을 헤아리게 되죠.

 

하느님을 바라보니까예수님도 너무 아프신 거예요.

예수님도 가난한 사람들사랑하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는 이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마음이

아프신거죠그래서 그 마음을 닮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나의 치유나의 영적인 구원 이런 것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구원세상의 치유예수님의 그 상처받은 마음들 함께 하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상과 이 영적인 치유는 이런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나 중심에서 이젠 하느님의 상처받은 마음까지도 헤아려 줄 수 있는 그런

단계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좀 깊죠너무 진지했나 봅니다.

이제는 세 번째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안에는 늘 마음이 편안할 날이 없습니다그죠!

 

늘 편안하다가도 조금만 누가 와서 건드리면 막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내기도 하고

또 누가 조금만 손해를 줘도심지어 많은 분들이 고해소에 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운전할 때 막 끼어들면 막 혼자서 화를 내고 이런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왜 부정적인 감정들이 왜 끊임없이 우리안에 일어나는 걸까요?

부정적인 감정 안 주고 하느님께서 늘 착하고 늘 좋은 말만 하는 그런 인간으로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죠!

 

근데 하느님께서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화나고 질투나고 짜증나는 그런 감정들도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겁니다.

그래서 그런 감정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다시금하느님께 또 말씀드리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게 된다면 여러분들의 부정적인 감정은 또 다른 새로운 변화로 나아가고 치유로

나아가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계속해서 기도중에 일어나고 한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과 함께 좀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어떤 금주를 한다든지 또 말수를 좀 침묵 한다든지 그리고 또 뭐 금연을 한다든지 단식을

한다든지 이렇게 해서 내 마음을 좀 정화하는 시간을 가질 때이런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성장하고 치유받고자 하는데 거기에 또 저항이

일어납니다불신이 생겨나는 거죠그래서 막 기도에 심취해 있는데 때때론 기도가 무미

건조해지고 또 자기 문제에 너무 몰두하고 있을 때 이 저항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또 기도를 체험하고 난 다음에 그 감정이 항상 즐겁고 기쁨과 행복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굉장히 자기만족에 빠져들 때 이것도 저항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분심이 오거나 졸음이 올 때도 지금 영적으로 치유되고 성장되어야 되는데

저항의 표시이겠죠.

 

이 저항은 나의 영적인 성장에서 변화할려고 하는데 이 변화를 회피할려는 그런 현상이기도

합니다그래서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않을려는 그런 마음이겠죠.

 

우리는 저항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이 저항은 여정입니다과정에서 당연히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우리 마음 안에 성령께서 오시기를 청하면서

내 안에 있는 이 저항들도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십시오.

주님제 안에서 어떤 저항이 일어납니다치유 받고 싶은데 불신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래도 될까뭐 이렇게 해도 될까! 불신이 일어나는 거죠.

 

그리고 저항이 일어날 때는 그 원인을 한 번 찾아보십시오.

원인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뭔가 그 안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치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저항이 증가하는 곳에 은총이 더욱 충만하다.

저항은 더 깊이 들어가라는 초대입니다.

 

거기까지가 아니고 또 다른 곳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세상!

 

그리고 다섯 번째로는 이 식별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치유에 있어서는 또 악령으로부터 오는 그런 외적인 치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내가 하느님께로 들어 올리지 못하고 그 안에만 머물게 되면

그것은  영적인 치유가 목적이 구원인데 구원이 아니라 자기 교만이라는 덫에 걸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식별이 필요하고  이 식별을 위해서는 늘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또 영적인 지도자를

통해서 식별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어떤 일치된 삶이런 삶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삶기쁨의 삶노동과 그 다음 기도에 통합된 삶뭐 이런 것들절제 있는 삶,

나눔의 삶이런 것들이 내 삶 속에서 이어질 때 나는 영적으로 치유되었고 또 변화되고

구원받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의 이성, 의지, 감정, 그리고 또 우리의 육신, 마음,

영혼이 전인적으로 통합된 그런 치유로 나아가야 됩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점점 불안해지고 초조해지죠 그죠!

또 영적으로 불안하고 초조하면 몸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죠!


그래서 그런 것들이 함께 간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될 겁니다.

또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이 하느님 안에 머물고 하느님 안에서 치유받는 것,

또 구원의 기쁨을 사는 것, 영적으로 충만할 때 몸이 좀 불편하더라도 괜찮잖아요 그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먼저 생각하시면서 전인적으로 서로 상호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예전에 제가 말씀드렸는데 나와 나와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 나와 하느님

과의 관계, 이 세 가지 관계에서 항상 봐야된다는 것을 또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통합된 삶!

그래서 내 삶이 단순히 성당, 가정, 직장 이렇게 분리된 삶이 아니라 내 모든 삶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 구원받은 삶, 그리고 또 내 모든 삶 안에서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는 삶,

그래서 내가 치유받고 변화되고 성장하는 이 모든 과정들 안에서 하느님이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현존가운데 살아가는 삶, 그런 삶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치유를 위해서 제가 다섯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 모두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순례의 여정중에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하느님께서 내 삶의 중심이 되게 하고,  하느님의 뜻을 먼저 선택하는

습관을 키우십시오.


세 번째는 기본에 충실하십시오.

우리가 늘 교우로써 해야 될 것이 있잖아요. 미사하고 성사보고 기도하는 이런 모든 것들,

이 모든 것들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네 번째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고 하느님께 맡겨드리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분,  걸어가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로 끊임없이 자기를 비워내며 가벼워지십시오.

지난 날에 지은 죄와 상처와 아픔은 주님께 고해성사를 통해서 용서를 이미 해주셨습니다.

또 고해성사를 안 보셨다면 성사를 보시고 용서를 받으십시오.


용기내십시오.

고해성사는, 고해소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세탁소가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곳이라 그랬잖아요. 그죠!


그래서 고해소의 문을 열면서 예수님을 만나러 간다.

이런 마음으로 그 고해소에 들어가시면 좋겠습니다.


이 방송을 보시는 분 가운데 난 예수님을 만나고 싶지 않다. 하는 분 있으면 손 들어 보십시오.

아마 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을 겁니다.

그래서 고해소에 가셔서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고백을 하고 또 용서받고

치유받고 그래서 성장할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토마스 머튼의 영성에 대해서 주욱 살펴보면서 마지막 시간에는 영적인 치유와

그리고  영적인 치유가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우리가  2부 part로 종교간 대화에 대한 부분들을 다룰텐데  그 전에 다른 짧은

영상들도 보시고 하실 겁니다.


지금까지 영적 치유에 대해서 많이 다루었습니다.

결국은 우리가 우리를 치유시켜 주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그분께 마음의 문을 여시고 그분께 청하십시오.

그분께서 나를 낫게 해 주실 겁니다.

그분께서 나를 안아주시고 나를 어루만져 주실 겁니다.

용기를 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