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

14 {천상의 책 8권17장} 영혼은 텅 빈 무가 되어갈수록 전부이신 분으로 더 차게 된다.

은가루리나 2021. 1. 20.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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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8-17


1907년 11월 18일


영혼은 텅 빈 무가 되어갈수록 전부이신 분으로 더 차게 된다.



1 평상시와 다름없이 있다가 복되신 예수님을 잠시 뵈었다.
그분을 뵙자 마자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 감미로운 생명이시여,
저는 너무나 좋지 못한 상태가 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무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이제는 내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텅 비어 있습니다.

제 마음이 매혹을 느끼는 것은 단지 한 가지뿐인데
이것으로 저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께서 저를 충만케 해 주시기를 말입니다.

그러나 기다려 보아도 헛일입니다.
충만을 고사하고 언제나 텅 빈 무로 돌아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2 그러자 예수님은
"아, 딸아! 무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 괴롭다고!" 하고 반문하셨다.




위무위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완죤~~~히 100% 내맡긴 영혼은,
머시기 거시기 하느님께서 주신 생각대로 생각하고 행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이가 되기 위하여
그동안 인간의 지혜로만 살아오던 습관을 멈춰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롭다는 자"는 진정 지혜로운 자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주신 지혜를 받은 사람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내 뜻대로 살지 않기 위해 내 뜻을 내맡겨 내 지식을 비우면
하느님이 내맡긴 이의 영을 열어 당신의 지혜로 채워주십니다.


하느님이 내려 주신 지혜만이 참 지혜이며,
참 지혜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참 지혜를 받기 위해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 의한 습관을 멈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 * *



19-54 1926년 9월 3일
천상 것에 대한 열망은 영혼을 정화한다.



2 "딸아,
어떤 선에 대한 열망, 그 선을 알고 싶어 하는 열망이 영혼을 정화하고,
그의 지성을 준비시켜 그것을 깨닫게 하고,
기억을 준비시켜 그것을 기억하게 한다.

그러면
그의 의지는 그 선을 취하고 싶은 욕망이 돋우어짐을 느낀다.
그것을 자신의 음식과 생명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여
그에게 그 선을 주시며 알리시게 한다.


3 그러므로
어떤 선에 대한 열망, 그 선을 알고 싶어 하는 열망은
음식에 대한 식욕과 같다.

식욕이 있으면 음식의 맛을 알고,
유쾌하게 식사를 하며,
먹은 음식에 대해 매우 흡족해하고,
나중에 또 먹게 되기를 바란다."





* * * * * * * 



★벌거벗은지금
Re:Re:3부 비이원적 사유가 아닌 것들< 무뇌 인간>


moowee 추천 0 조회 387 17.12.22 07:49 댓글 67


< 실로, 비이원적 사유 또는 관상은
모든 언어와 생각을 초월한 '절대자'와 만났다는 신호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저장하는 실질적인 하드웨어를 바꾸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윤리도덕이나 신앙체계를 바꾸는 게 아니다.

사물과 사건을 받아들여 
그것을 경험으로 삼는 방법 그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



moowee첫댓글 17.12.22 08:09

< moowee 12.08.10. 11:22


두 눈을 뜨고서도 보이는 것조차 제대로(올바로) 보지 못하는 人間이 
무엇을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오~ 박식한 무지여, 지식의 허영이여!(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靈眼을 열어주지 않으시면 
도저히 그분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하느님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이 긴 짐승이 기린이고 덩치가 큰 짐승이 코끼리라고 아는 것은
'지식'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느님은 이러저러한 분이라고 말하는 것도 
'지식'에 불과 합니다.


우리 많은 교리교사들이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 왔지
'하느님'을 가르치는 교사는 너무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4,16)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4,8)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느님을 가르치는 것은 위험합니다.
잘못된 하느님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무엇을 좋아하지는지 압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외적 신앙의 행위를 좋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단 하나!
당신을 뜨겁게 사랑해 드리는 것뿐입니다.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하느님이 우리 각자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게 되고(靈感),
하느님이 우리 각자에게 원하시는 것을 행하여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응답)

그것이 바로 "하느님 뜻대로 사는 것" 입니다. >


" 오, 박식한 무지여, 지식의 허영이여! " ( 파도바의 안토니오 )

아버지의 완전한(천 21-23-14) 영광을 위하여 이 댓글을 아버지께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