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책 36권

하느님 뜻의 나라는 이에 대한 진리들 위에 수립되리라. 사람이 하느님 뜻 안에서 살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징들.

은가루리나 2021. 2. 15. 23:32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117

 

 

1938년 11월 13일

 

 

하느님 뜻의 나라는 이에 대한 진리들 위에 수립되리라. 

사람이 하느님 뜻 안에서 살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징들.

 

 

 

1 하느님 의지 안에서의 날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지 않을 수 없다. 

이 비상을 그치고 있으면 내가 내 영혼을 죽인 느낌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말기를! 

더구나 생명 없이 내가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2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거룩하신 뜻에 대해 말씀해 주신 

그 숱한 진리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니, 

믿기지 않고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하느님 의지 안에서의 삶에 그 정도로까지 도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3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불현듯 오셔서 매우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복된 딸아, 놀라지 마라. 

내 뜻은 사람이 이 뜻과 함께 있기만 하면 어디까지라도 도달하게 할 능력이 있다. 

이제 너는 알아야 한다. 

내 뜻의 나라는 그것이 드러내 보인 진리로 이루어지고 그 위에 수립되리라는 것을.

 

4 이 나라는 그 진리들을 많이 드러낼수록 그만큼 더 찬란하고 아름답고 장엄할 것이고, 

그만큼 더 좋은 것들과 기쁨거리들이 풍성할 것이다. 

내 진리들이 이 나라에서 살게 될 사람의 통치 체제와 법과 양식이 되고, 

막강한 군대와 방어 수단 및 바로 그의 생명 자체가 될 것이다.

 

5 각 진리가 저마다 서로 구분되는 일을 맡을 것이니, 

어떤 것은 스승으로, 다른 것은 자애로운 아버지로, 

또 다른 것은 자상한 어머니로 활동할 것이다. 

특히 어머니는 아기를 위협에 처하지 않게 하려고 

품에 안고 팔로 흔들어 주며 자신의 사랑을 먹이고 빛을 옷으로 입힐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각 진리가 하나하나 독특한 선을 지닐 것이다.

 

6 내가 이리도 많은 진리를 너에게 말하고 있으니 

내 뜻의 나라는 얼마나 풍요하겠느냐? 

그러니까 네가 유의해서 다 쓰지 않으면 내 기분이 언짢아진다. 

덧붙여진 어떤 선을 빠뜨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고, 

이를 읽을 사람은 그 선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인지 알아야 누릴 수 있지 않겠느냐?

 

 

7 지식은 생명과 빛을 가져오고 그것이 내포한 선도 가져온다. 

알지 못하는 선을 소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마치 볼 눈이 없고, 이해할 지성이 없고, 

활동할 손이 없고, 걸을 발이 없고, 사랑할 가슴이 없는 사람과 같다.

 

8 내 뜻에 대한 지식이 맨 먼저 하는 일은 

사람에게 볼 눈을 주어 가련한 소경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니, 

보고 알게 하여 지식이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선과 생명을 갈망하게 한다. 

지식 스스로 행위자요 관찰자가 되어 그 자신의 생명을 사람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9 한데 내 의지 안에서 행해지는 행위들은 

그 성덕과 아름다움과 사랑과 지혜로 서로 구분되면서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행위들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표징을 지니고 있다. 

성삼위는 각각 구분되지만 나뉠 수 없는 분이시니, 

각 위의 뜻과 성덕과 선성 등이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10 따라서 서로 나뉠 수 없으나 구분되는 이 행위들은 

하나이며 셋이고 셋이며 하나인 지고하신 삼위일체의 표징을 내포한다. 

뿐만 아니라 지고하신 삼위일체를 그들의 생명으로 소유하기도 한다.

 

11 이 행위들은 모든 천상 주민들은 물론 우리 성삼위의 가장 큰 영광이 된다. 

우리의 거룩한 의지 안의 행위가 사람에 의해 수행될 때마다 

이 행위들 안에 우리의 신적 생명이 증가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12 그때 나는,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살고 있는지 아닌지 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다정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13 “딸아, 그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나의 거룩한 ‘피앗’ 이 영혼 안에 군림해 있으면,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은 채 있을 줄 모르기에 계속 움직이며 작용한다. 

그것은 생명이고, 

생명이니 만치 숨쉬고 움직이며 고동치고 스스로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행위도 먼저 하기 마련이어서 

사람은 자신이 그 지배하에 있음을 깨닫고 그대로 따라 하는데,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거의 계속적으로 그렇게 한다.

 

14 이 계속성이야말로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살고 있다는 확실한 표징이다. 

사람이 계속해서 그 피앗의 숨과 활동과 거룩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를 중단하면 

생명과 활동과 다른 모든 것의 결핍을 느끼고 곧바로 다시 계속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 계속적인 행위를 하지 않으면 막대한 대가를, 

곧 하느님의 생명을 잃는 손실을 치러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은 따라서 쉽사리 이 생명을 놓치지 않는다.

 

15 그렇다면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행하는 그 행위의 정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내 뜻이 사람 안에서 행하는 생명의 펼침이다. 

오직 내 뜻만이 그 계속적인 행위를 중단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중단한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모든 사람과 사물이 마비된 듯 생명이 없는 상태로 있게 될 것이다.

 

16 사람은 그러니 혼자서는 그 계속적인 행위를 할 능력이 없다. 

그러나 내 의지와 결합되면 

그 능력과 힘과 의지를 얻기에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사람이 내 뜻의 인도를 받고 내 뜻의 소유가 되려고 하면, 

내 뜻은 어떻게 변화를 일으킬 것인지 그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사람이 더 이상은 자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화시키기에 

그에게는 과거의 삶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지는 것이다.

 

 

17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살고 있음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표징이 있다. 

내 뜻은 영혼이 준비되어 있음을 보면, 

다스리기 위해서 먼저 

그 영혼의 의지와 고통에 평화의 공기와 함께 발삼 향유를 발라 주고, 

거기에 자신의 옥좌를 만든다.

 

18 그러므로 내 의지 안에서 사는 사람은 

결코 약해지는 법이 없는 힘을 소유하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하느님 안에서 참사랑으로 모든 이를 사랑하는 그런 사랑을 소유한다. 

그리고 특히 모든 사람과 각 사람을 위하여 수없이 많은 희생에 그 자신을 내놓는다. 

가엾은 이 작은 사람이 모든 이를 위한 참된 순교자요 산 제물인 것이다.

 

19 나는 그가 고통 받는 것을 뜨거운 애정과 연민으로 바라보면서, 

오, 얼마나 자주 이렇게 말하며 격려하는지 모른다. 

얘야, 네가 나하고 똑같은 운명에 시달리고 있구나. 

불쌍한 아가, 용기를 내어라. 

네 예수가 더욱더 너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면 그는 내게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끼면서, 

고통 중에서도 그 자신을 내 팔에 맡긴 채 생긋이 웃는다.

 

20 딸아, 내 뜻이 행하는 법을 알고 행하는 모든 것을 경험하며 소유하려면 

내 뜻 안에 있을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내 뜻에 대해 한 자(字)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