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위탁

93 pp.470-474 제 3 편 제13 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계속) 제3절①

은가루리나 2021. 5. 17. 02:10

 

 

★거룩한위탁
제 3 편 제13 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계속) 제3절 거룩하고 정의(正義)신 천주께 대한 경외(敬畏)


옴니아 추천 0조회 127 13.10.01 23:47 댓글 16


제3편 위탁의 대상


제1장 위탁의 일반적 대상

제2장 현세적 사물에 있어서의 위탁 일반

제3장 외부적 선과 악, 행과 불행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순경과 역경
 제2절 공적 및 사적 재화
 제3절 부귀와 빈천 ①②
 제4절 장소와 환경 ①②

제4장 육체 및 정신의 각가지 자연적 선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건강과 질병 ①②
 제2절 질병의 지연과 그 결과 ①②
 제3절 삶과 죽음
 제4절 자연적 은혜의 분배에 관한 불평등에 대하여
 제5절 직무
 제6절 휴식과 평온

제5장 명성의 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호평
 제2절 굴욕
 제3절 선인으로부터의 박해

제6장 본질적인 영적선익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영광의 생명
 제2절 은총의 생명
 제3절 선덕의 실천
 제4절 죄를 피하는 일
 제5절 계명, 서원, 회칙 등의 준수

제7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어떤 종류의 영적원조의 상실 -
 ⑴
 ⑵
 ⑶
 ⑷

제8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실패와 과실 -
 제1절 분발심에 의한 사업에 있어서의 실패
 제2절 자기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3절 남의 영혼의 성화에 있어서의 실패
 제4절 우리 자신의 죄과

제9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내적시련의 일반 -
 ①
 ②
 ③
 ④

제10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유혹 -①
 - 유혹 -②
 - 유혹 -③

제11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위안과 건조-①
 - 위안과 건조-②
 - 위안과 건조-③
 - 위안과 건조-④

제12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암흑, 무감각, 기타
 제1절 정신의 암흑 ①②
 제2절 마음의 무감각, 혐오감, 기타
 제3절 의지의 무력
 제4절 영적빈곤 ①②

제13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 평화, 불안, 소심
 제1절 평화 ①②
 제2절 각가지 공포 ①②
 제3절 거룩하고 정의이신 천주께 대한 경의 ①②
 제4절 양심상의 小心

제14장 심령생활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
 제1절 일반적 길인가, 신비적 길인가
 제2절 신비적 관상의 갖가지 상태
 제3절 관상의 진보와 덕의 진보
 제4절 신비적 길에 있어 "천주께서 하시는 대로 맡긴다는 것"

제15장 기억해야 할 두가지 실례제3편 위탁의 대상




제 3 편 위탁(委託)의 대상(對象)

제 13 장
심령생활(心靈生活)의 일반적 길의 각가지 상태에 있어서의 위탁(계속)

제 3 절 거룩하고 정의(正義)신 천주께 대한 경외(敬畏) ①


p.470


우리가 죄를 범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것이다.
천주 스스로 때로는 우리의 마음에
우리의 죄, 비참함, 당신의 무한한 성성(聖性), 그 심판의 올바름에 관해서
생생한, 깊은 감명을 느끼게 하신다.

그 때,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 가련한 영혼은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의 발 아래 전전긍긍하면서
괴로운 불안 안에, 어떻게 될것인가,
만일 구령을 잃지나 않을까 하고 고민한다.

이 불안이 오래 계속되고, 또한 자주 닥칠 때,
영혼의 밑까지 투철하는 이 전망은
귀중한 은총임과 동시에, 하나의 가장 가혹한 정화(淨化)의 수단이 된다.

이런 시련을 부드럽게 하고, 이 광명을 유익한 것으로 하는 방법은
온전한 신뢰와 관대로써, 천주의 계획에 자신을 적합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천주께서는 이로써 어느 것이나, 훌륭한 은총의 세가지 효과,
즉 완전한 순결, 지극히 깊은 겸손, 영웅적인 위탁의 열매를 맺으려 하신다.

p.471

천주께서는 우선,
의아스러운 사랑의 고민으로써 우리의 정화(淨化)를 완성하기 바라신다.

오래 전부터 영혼은 쓰라린 죄의 생각을 고뇌 안에 회상하며,
그것을 지워버리고,
그 보상을 하며, 그것에서 치유돼 간다.

영혼은 이미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는 일이 없으며,
가장 사소한 태만과도 싸운다.

이 때, 이미 영혼은 현저히 깨끗하게 돼 있다.


그러나, 거룩하고 시기심이 깊은 천주께서는 
거기서 더욱 세련되고, 치유되기 위하여
영혼을 더욱 통회와 사랑의 대야 안에 몇번이나 거듭 던져 넣으신다.
주와의 친교(親交)에 들기에는 얼마나 순결한 것이어야 하겠는가!

이미 죄에서 온전히 자유가 된 후에도
전에 느끼지 않았던 각가지 불완전한 경향이 남아있다.

그것은 예컨대,
희생을 싫어하는 마음, 미묘한 즐거움에의 갈망, 천대에 대한 두려움,
자기 공로에 대한 자아만족, 자기에게만 대한 신뢰 등과 같이
가장 거룩한 일 안에까지도 자기만족을 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애심의 슬픈 잔재이며
자기를 숨기는데, 또한 자기를 사랑하는데 매우 교묘한 것이므로
불행이 되는 악이다.

누가 우리에게 이것을 드러내고 우리를 그것에서 고쳐 줄 것인가.

관상과 고행과의 일상의 수업(修業)에 의해서
이 정화의 사업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 정화를 온전히 완성하기 위하여
견고하고 현명한 사랑으로써 우리를 사랑하시는 천주께서는
이 각가지 감미에서 서서히 우리로 하여금 젖을 떼게 하시며,
그 그르침이 없으신 예지로써 택하시고
안배하신 내적 고뇌와 굴욕과의 치료법에 우리를 복종시키려 하신다.

p.472

그러기 위하여 천주께서는 정신의 암흑, 마음의 무감각, 의지의 무력,
그리고 필요하다면,
가장 수치스러운 유혹의 수단을 아낌 없이 사용하시리라.

드디어 성의시라면,
천주께서는 투철하는 광선을 우리의 죄과와 당신의 정의,
우리의 비참함과 당신의 성덕 위에 넘칠만큼 방사(放射)하시리라.

이렇게 하여
우리는 겨우 자신을 알고 천주를 인식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우리의 눈에 그처럼 명백히 비추는 것은
우리 안에 있어서는 부패의 심연(深淵)이며,
천주에게 있어서는 성성(聖性)의 심연이다.

그 때, 이 가련한 영혼의 감동,
그토록 경멸해야 할 자신의 모습을 볼 때의 부끄러움과 두려움,

전전긍긍하면서 그리고 통회에 넘쳐
자신을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의 발밑에 내던지려는 요구,

또한 영혼은 얼마나 진실히 있는 그대로 자기 죄과를 인정하고,
얼마나 그 고통스러운 벌을 감수하며,
얼마나 모든 일에 구애됨이 없이 자신을 지탱하며,

그 시기심이 깊으신 부드러운 사랑마저 베푸시는 착한 스승에 대하여,
얼마나 깊은 감사의 생각을 지니고 있는가를
누가 적절히 말할 수 있겠는가.


대개 영혼은 천주께서 자기를 끊임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하자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즉 천주께서는 표면적으로 아무리 노하고 계신 것처럼 보이드라도,
다만 영혼의 비참함을 없애시려는 것이다.

괴롭게 하시는 것은 다만 치료하시기 위해서다.
그 각가지 가혹함까지도 그 열렬한 사랑의 결과이며,
그런 것은 우리에게 당신의 거룩한 질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섭리의 신비적인 활동은 지상에서의 연옥이며,
그것은 괴롭기는 하지만,
가장 유익하며, 거기에 우리의 죄, 불완전함, 결점은 마치
열화(烈火) 안에 던져진 짚북더기와 같이 점차로 타버리는 것이다.

p.473

천주께서는 또한 우리를 가장 탁월한 겸손의 영역에까지 높이시기 바란다.
참으로 드물게 그리고 무한히 바랄 만한 숭고한 이 덕!

성「부도」는 이 덕이 공포심을 제거하는 가장 완전한 사랑,
모든 덕은 우리에게 있어 친밀한 것이 되어
우리는 그런 것을 말하자면 자연적으로
성신의 환희 안에서
실천하는 지복(至福)상태에 가장 신속히 이르게 한다는 것을
단언하고 있다.


그러나 겸손에는 올라가야 할 열두 단계가 있으며,
그 중 어느 것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다.

천주의 특별한 도우심이 없이는, 어떻게 거기에 올라가겠는가.
천주께서는 이 도우심을 영적 고통,
특히 위에 말한 밑바닥에까지 투철하는 전망 안에 우리에게 베푸신다.


천주께서는
우리에게 건조와 실패와의 심한 번민을 느끼게 하실 때,
우리를 암흑, 무감각, 무기력에 넘기실 때,
우리가 가장 심한 유혹에 부딪치는 것을 허락하실 때,
우리의 마음 안에
당신의 정의와 우리의 죄와 당신의 성성(聖性)과 우리의 부패의
가장 절실한 느낌을 강하게 새기실 때,

이런 당황과 굴욕을 무언 안에 받아들여
모든 비천 안에 어디까지나 만족하고,
자신을 하나의 지극히 빈약한 일꾼으로 간주하여
남보다도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비교하지 않으며,
즉시 말석(末席)를 선택하는 것이 극히 쉽게 된다.


겸손에 관해서의 가장 고상한 묵상도,
천주로부터의 모든 특별한 은총도
아마 우리의 오만심에 최후의 타격을 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각가지 시련과 광명은
자연히 자기의 비참함에 대한 두려움, 경멸, 저버림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 안에 고취한다.

이것이야말로 성인들이 덕의 절정에 도달했을 때
자신을 사람들의 멸시, 세상의 먼지,
천주의 사업을 해롭게 하는 것에만 맞갖은 연장,
천벌을 초래하는 죄인처럼 간주한 까닭이다.


흔히 착한 스승은 특별한 은총으로써 그들을 채우시고 드높이셨지만,
그러나 필요할 만큼 그들을 낮추시고
그들의 눈에도, 세인의 면전에 있어서도 무(無)와 같은 이로 하셨다.

p.474
이러한 쓰라린 치욕을 몇번이고 경험하여
우리 자신 외에 다름이 아닌 이 비참함의 심연을 싫증이 날만큼 바라볼 때,
우리는 이미 헛된 자기 만족에 탐닉할 수도,
자기 빛과 자기 업에 의뢰할 수도 없게 된다.


그리고,
이를테면 본능적으로 천주의 어전에 있어 자신을 온전히 미소한 자로 하며,
오직 무한한 인자에만 의뢰하고
자신의 비참함의 심연을 무한히 초월하고 있는
그 자비하심의 심연 안에 자신을 내던지려는 요구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겸손의 승리다.
그리고 거의 예기하지 않았던 하나의 결과로서,
이 승리는 동시에 우리에게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홀로 천주께만 의뢰하는 바 참된 신뢰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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