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모음

거룩한 순명 '아님말구'에 대한 글모음

은가루리나 2021. 8. 25. 12:47

 

 

★신심생활입문
Re:열린영성강좌 제39강"프란치스코살레시오의 신심생활 입문"1부 (2부작)
moowee 추천 0 조회 193 17.12.17 22:12


하느님섭리에내맡김(韓)
하느님섭리에내맡김《서론》⑷ p.21-24
무화 추천 0 조회 83 16.04.27 21:38



⑷ p.21-24

코사드는 예수회원으로 여러 가지 중요 직책을 맡았었지만,
그의 훌륭한 가르침은 성 이냐시오의 영성보다는
살레시오와 가르멜 영성에서 훨씬 더 큰 영항을 받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그가
살레시오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 de Sales)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1610년에 방문 수도회를 세운 분은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샹딸의 요안나(Jane de Chantal)였으며,
코사드는 자기 생애의 여러 해를
그곳 방문 수도회의 영적 지도자로 보냈다는 점이 바로 그러하다.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는 코사드가 태어나기 20년 전에 성인품에 올랐고
성인이 쓴 두 개의 걸작품인

『신심생활 입문』, 『신애론』이 그당시 편집에 편집을 거듭하였으니,
코사드와 같은 분이 이런 책을 읽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그리고
코사드는 자신의 영성적 견해와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적 견해가
참으로 유사함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코사드가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에 대해 말할 때,
성프란치스코는 "무관심"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어휘의 문제일 뿐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청하지 말고, 아무 것도 거절하지 말라" 고 말씀하신다.

또 그는
"무관심한 마음이란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느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
그분 손 안에 든 왁스덩어리와 같다" 고 선언한다.

그는 확실한 표지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뜻이라면
가치 있는 어떤 일도 중도에서 그만두고,

또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면
우리가 훌륭한 목표로 향하던 도중에서 되돌아오는 것은
우리가 정말로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뚜렷한 표지" 라고 한다.



성프란치스코가 사용한 또 다른 말은 "이탈" 이다.

"이탈한 영혼은
묵상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인지 아니면
이웃을 돌보는 일이 그분을 섬기는 일인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하느님이 영혼으로 하여금
매순간 해아 할 역할을 다하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코사드가
"현 순간의 의무"(그의 영성에 있어서 생동감이 넘치는 부분)에 대한
자신의 학설에
이러한 점을 어떻게 도입, 발전시켜 나갔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p.23)



가르멜 수도회의 위대한 신비가이며 교회학자인 십자가의 성 요한이
코사드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확실하다.

성 요한은
코사드가 방문 수도회가 있는 낭시에 맨 처음으로 갔을 때인
바로 3년 전에 성인품에 올랐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당시에는 영성이 뛰어난 사람
곧 교회의 봉인으로 새겨져야 할 남녀의 작품들과 글들에 대해
불꽃과도 같은 훨훨 타오르는 관심사를 지니고 있었다.



코사드가
방문회 수녀들에게 보낸 지침서에서
단 한 번 성 요한에 관해 언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특기할 만한 사항이 없다.

이유는
그가 성 요한을 대단히 신뢰하고 있었지만
인용은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서의 인용도 거의 제한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는 십자가의 성 요한을 상당히 자주 반영하고 있다.

이 가르멜 수도자는
영혼이 신앙의 전적인 암흑에 싸여 있지만,
이 암흑 속에서 영혼은
빛과 확실한 안내자를 찾고 있는 소경과도 다름없다는 것을 선언한다.

그리고 여러 번 되풀이하는 가운데 코사드는
"신앙의 어둠보다 더 안전한 것이 없고,
우리를 잘못에로 덜 이끌기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로 이 암흑이 우리를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합니다."
라고 주장한다.


또한 성 요한은 선언하기를
"이 지상생애에서
우리는 지성, 상상력 혹은 우리의 어떤 감각을 통해서는
실상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일치를 신앙과 희망 그리고 사랑에 의해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


코사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자아포기의 상태는
하느님 및 그분의 모든 활동들과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하는
특별한 행위 안에서의 신앙, 희망, 그리고 사랑의 혼합입니다."
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성 요한과 코사드를 연결하면서
앞뒤 참조 형식으로 많은 장을 채워 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훨씬 더 흥미 있어 하는 것은
가르멜 성인이 이 예수회 신부에게 끼친 영향이 아니라
이 예수회원이 역시
위대한 가르멜 성녀인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에게 끼쳤던 영항이다. 
(p.24)



* * *



■ 내맡긴 영혼은 ■
"아님 말구!"
moowee 추천 2 조회 2,843 09.12.18 09:25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은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수많은 "아님 말구!"를 경험해야 합니다.

"아님 말구!"가
일반인들에게는 너무나도 무책임한 말이 아닐 수 없지만,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살아가는 영혼들에게는
반드시 꼭 체험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울림이,
"아! 이것이 지금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뜻이구나!"하고
그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 들였더라도,
처음엔
하느님의 뜻이 그것을 거쳐 다른 것으로 옮겨질 때가 많습니다.


내적으로 아주 깊은 확신이 서게 되었다 생각하여
그래서 그 일을 곧 추진하려는 단계에서
갑자기 하느님의 뜻이 그것을 비켜가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때는 참으로 "아님 말구!"의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님 말구!"는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데 있어서 매우 필요한 자세이며
더 나아가 참으로 "거룩한 순명"의 자세입니다


"아님말구!"가 반복되어 주위로부터 비웃음을 사더라도
그 비웃음을 통하여 굳어지는 하느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어야
참으로 하느님의 뜻을 찾는,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영혼들이 됩니다.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렸기에
하느님의 뜻이 아무리 변덕을 부려도
(사실 하느님 뜻은 불변하지만)
결코 내 뜻이 나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은
하느님의 뜻이 아무리 심한 변덕을 부려도
변덕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 심한 변덕 속에 깊이 숨어 계신 하느님의 뜻을
발견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 내맡긴 영혼은 ■
Re:"아님 말구!"(다시 한 번 더 읽어 보세요)
moowee 추천 0 조회 1,743 11.08.29 11:18


아님말구는 '하느님의 뜻이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에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특히 司祭가
감히 하느님의 뜻이 틀렸다고 말하는 멍충이가
그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분명히 '아님말구'를 이야기 하면서,
"하느님의 뜻이 틀렸을 때 아님말구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이 '아님말구'를 통하여
저를 엄청나게 당신 가까이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는 이 '아님말구'라는 말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경박히 대한 바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은
'하느님 앞의 재롱둥이 철부지 어린이'입니다.

경건하고 어른스런 분은
그래서 하느님 가까이 나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경건하고 어른스러움 속에는
하느님에 대한 것보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방법(방식)'에 더 경건함과 어른스러움이
교묘히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하덧사께서는 게시판 < 내맡긴 영혼은 >에 들어가셔서
'아님말구!'를 다시 한 번 더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내맡긴 영혼은 ■
참으로 영적 성장을 바란다면 이렇게!
moowee 추천 0 조회 1,488 10.08.09 10:50


지금, "에포케"하십시오!
멈추십시오!

멈출 때야 비로서 자꾸 느낌이 주어지게 되고,
주어진 느낌들이 날카로운 영적무기로 거듭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아님말구"를 자꾸 체험시켜 주십니다.

아님말구를 통해 날카롭게 갈아진 느낌이
바로 "영감"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멈추는 영혼에겐 "靈感"으로 말을 걸어오시고,
"영감"으로 당신 가까이로 데려가십니다.

멈추는 영혼의 하느님과의 대화법이 바로 "영감"임을
부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님말구를 통하여 만들어진 영감은
그때부터 거의 아님말구가 사라집니다.

이때가 가장 영적으로 위험할 때인데,
그럼에도 내맡긴 영혼들에게는 그리 겁나는 시기가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마저 기꺼이 받아 주신 하느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맡김은 신비"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맡긴 영혼은 내맡김으로 벌써 "신비생활"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지사입니다.





moowee 11.08.26. 11:48

근데요? 중요한 건,
아님말구가 결코 뒤로 돌아가는 'turn'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아니면 뒤로 후퇴할 수밖에 없는데
하느님의 일은 후퇴 없는 '전진'뿐입니다.

오히려 'pass over(Pasca 빠스카)'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경험해온 '아님말구'는
다 발전과 성장을 가져다 주었고,
정말 안타까운 아님말구 속에는
더욱 큰 '하느님의 은총'이 담겨 있었음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님말구!'를 경험하시면
놀랍게 영적 성장을 이루시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



moowee 11.10.02. 11:47

'아님말구' 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나쁘게 인식되어 있어서 그렇지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에 있어서의 '아님말구'는
정말 이 영성의 '진수(眞髓)' 입니다.

'아님말구'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지오의 '무관심' 과도 같은 말입니다.

"무관심한 마음이란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느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음" 을 말합니다.

'아님말구'는 moowee의 지적 재산권인 전매특허입니당!
그러나 제가 하느님을부터 거저 얻었으니
모두들 거저 사용하시기 바랍니당! >



moowee 12.06.11. 23:42

성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무관심(이탈)"
또는 십자가의 성요한의 "無" 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저는 이 아님말구를
하느님의 뜻에 대한 "철저한 순명" 으로 받아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순명(아님말구)을 통하여
더욱 당신의 거룩한 뜻 속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아님말구에 철저한 영혼들에겐
언젠간 이 아님말구가 사라질 날이 찾아올 것입니다.



이해욱프란치스코57 12.09.10. 22:27

우리 선상님께서는 무궁무진하신 분이시라,
더 높고 거룩한 말씀을 주시려고
그러신 거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때, "아님 말구!" 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내맡긴 영혼들" 이
당신 이외의 그 어떤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정말, 제 이야기를 들으셔야 합니다.
당신 이외에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다면 다 앗아 가십니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면,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마태6,33)",
즉 "하느님만 사랑하시길 당부드립니다.



이해욱프란치스코57 12.12.24. 09:40

느낌" 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 아님말구>를 아주 여러 차례 경험해야
"참 느낌(영감)" 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moowee 13.01.25. 08:56

성 프란치스꼬 "무관심" = 코사드 "하느님 섭리에 내맡김" = 무위 "아님말구"



moowee14.03.27 04:39

★ 거룩한 위탁 = 거룩한 내맡김 ★
★ 거룩한 무관심 = 거룩한 아님 말구 ★



moowee13.05.25 06:13

아무리 <영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에 오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는 오로지 <사람>일 뿐입니다, 사람!

사람의 같은 말은 <한계>입니다.
한계가 있는 사람은 그래서
한계가 없는 전능하신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드려야 합니다.

"아님말구" 그 자체도 말입니다.



moowee13.05.25 05:29

크~~~ ㅋㅋㅋ~~~

" <이때>가 영적으로 가장 위험할 때 " 라는 말에서,
" 이때 " 란
"아님말구를 통하여 이루어진 영감은
그때부터 <거의 아님말구가 사라졌다>" 라고
생각할 그때입니다.

특히,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100% 완죤~~~히 다 내맡기지 못한 영혼이
<거의 아님말구가 사라졌다> 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자신의 뜻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100%를 다 내맡기고 살아왔다" 말하는
적지 않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99.9999,,,,,,,,,,,,,,,,%만 내맡기고 살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탄 마귀는 그 사람의 부족한
그 0.00000,,,,,,,,,,,,,,1%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옵니다.
사탄 마귀는 <하느님 다음으로 전능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100%를 내맡기십시오, 100%를!!!>을
그토록 강조하여 외쳐온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아님말구의 반복을 통하여)
"아, 이제 거의 아님말구가 사라졌나 보다." 라고 생각한
그 이후에도

아주 가끔 "아님말구" 를 경험해 보았습니다.
아주 <최근>에도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아님말구" 를 통하여
갈수록 더 놀랍게 당신의 뜻을 펼쳐 나가고 계십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따라서,
100% 내맡긴 영혼이 "아님말구를 경험한다" 해서
<영감>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님말구"를 통하여
갈수록 <하느님의 뜻>이 더 날카롭게 드러남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아님말구" 는 부족한 우리 인간이
<언제까지든 무조건 겸손되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체험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아님말구는 인간의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의 차이일 뿐>
그 차이(하늘과 땅)를 인정하고
오히려 아님말구를 주시는 하느님께 늘 감사드려야 하며,
또 오히려
<아님말구를 사랑하는 영혼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moowee 13.11.16. 10:00

크윽!

문정동에 있을 때 이 <아님말구>를 통하여
그곳의 정말 엄청난 교만마귀를 쳐 이길 수 있었답니다.

그리구~~~ <아님말구>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구,
주님께서 저에게 문정동을 <아님말구>시켜주셨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여기 있게 되었답니다.



moowee 16.06.11. 22:16

< 지금까지 저의 내맡김의 삶에 있어서
일본에서의 짧은 3년 간의 지난 경험은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완전한 내맡김의
가장 소중한 체험이었던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사악의 제물봉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오죽했으면
저의 "사제직까지 포기하겠노라" 외쳐댔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자신의 뜻(이사악)을 '아님말구(포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뜻에 기꺼이 '아님말구'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완전한 아님말구'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그 '아님말구'를 통하여
본격적으로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내맡긴 여러분에게 '아님말구'를 계속 경험시켜주실 겁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만나게 될 앞으로의 '아님말구'는
"여러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증거" 입니다.

여러분이 드리게 될 ★쓰디 쓴 아님말구★는
★여러분의 하느님 사랑에 대한 확실한 증거★ 가 될 것입니다. >


제가 만일,
거룩한내맡김영성의 확산을 위해 저의 <사제직을 포기>하면
또 다시 이 영성을 따르는 사람들이 추려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것에 관계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이 일이 정말 <하느님의 뜻이라면>
아버지께서는 제가 포기하였던 사제직을 다시 돌려주실 것을
굳게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 역사를 보면 실지로

<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 교회의 가르침>에는
단호히 거부하신 성인들도 계시고,

또 이단으로 몰려 종교재판에 붙여져 화형에 처해졌지만,
나중에 다시 복권된 의인들도 계십니다.


하느님의 뜻이 아닌 것에 대한 <순명>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미지근하게 <카페놀이>를 하시는 분들은
저의 이이야기가 우습게 들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 <거룩한내맡김영성>에
저의 모~~~든 것 사제직도 걸었다는 사실을 잊지마시고,
앞으로 벌어지게 될 사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서 이곳에서 스스로 발을 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영성에 저의 사제직을 걸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영성이 제가 만들어낸 영성이 아니라
원래 <하느님 신앙 대한 기본 영성>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제 일(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느님, 
이 거룩한내맡김영성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moowee17.03.07 10:36

어떤 일이든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먹기>입니다.
그래서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아님말구>는 최선을 다한 후 아님말구 하셔야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아님말구 하시면
세속인들의 책임없는 아님~말구가 되버립니다.



* * *



하섭내 제 3 장 02
하느님은 영혼을 모든 어두움을 통해 인도하신다.


하느님의 신비로운 손길은
하느님만이 아시는 길을 통해 영혼을 인도해주십니다.

바람이 불어올 때
우리는 그때그때마다 풍향에 대해서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혼들도 그렇습니다.
영혼들 역시 하느님의 뜻에 의해 그 진로가 계속적으로 변경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은 그 결과에 의해서만 알아볼 수 있는데,
그 뜻은 영혼들 안에 비밀스럽게 감추어진 자극,
혹은 그들 삶의 상태에 주어진 의무를 통해 완성됩니다.

영성에 대해 이런 영혼들이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게 전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영혼들에게 있어 계시이고 현시이며
그들의 지혜요 가르침의 전부입니다.

영혼은 이것만으로 충분함으로
더 이상 다른 어떤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 * *



천상의 책
8-34 1908년 4월 8일
어떤 처지가 하느님의 뜻인가를 판별하는 법


10
"어떤 처지가 하느님의 뜻인가를 알게 하는 가장 확실한 표는,
그것이 더 이상 하느님의 뜻이 아니하는 것을
영혼이 알게 되면
언제라도 달리 처신할 각오로 있는 것이오."

12 "내가 방금 한 말을 되풀이하거니와,
그대가 하느님의 뜻을 알기만 하면
언제라도 그 뜻대로 행할 각오로 있다면
- 그렇다면 그대의 그 처지가 바로 하느님의 뜻인 것이오."

13
이제 나는 속으로 절감하고 있다.
만일 내가 하느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기만 하면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거룩하신 의지를 따를 각오로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