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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완전한(100%의 올바른 지향) 맡김과 불완전한 맡김

은가루리나 2022. 6. 28.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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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육 (상위카페 마처예함)
1. 완전한(100%의 올바른 지향) 맡김과 불완전한 맡김
이해욱프란치스코 16.02.10 10:05



6. '내맡긴다'는 말의 의미는? (2) 내맡김의 영성

'내맡기는 것,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드리는 것'은 2%의 남김도,
아니 1%의 남김도 없어야 한다.

완전히! 100%! 0.00001% 한 치 오차도 없는 완전한 맡김!
'내 뜻'을 완전히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만 남은 상태!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소유한 상태!



강의록(3)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100%를 다 내맡기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부족함이나 죄스러움까지도
100% 다 받아 들여 주시어
우리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 되며,
또한 하느님의 모든 것이 다 나의 것이 된다.

소위 "하느님을 소유"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천상의 책

6-29 (1904년 4월 9일)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맡기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영혼이 모든 불완전에서 깨끗해지기에 넉넉하다

5 왜냐하면
이 행위를 하면서 영혼이 우선적으로 마주치는 것이
바로 나의 거룩한 뜻이고,
내 뜻이 그의 인간적인 의지를 깨끗하게 하면서
이 뜻의 특성으로 그를 아름답게 단장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영혼은 나와 똑같이 되는 것이다."



2-20 (1889년 5월 7일)
일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 일이 행해진 지향을 보시는 예수님

2 "딸아,
올바른 지향 없이 습관이나 이득 때문에 행해진 숱한 선행들은
어떻게 되겠느냐?

심판날에
그 자체로는 선행인 많은 일들이
그들의 지향 때문에 썩어 있는 것을 볼 때
그들은 얼마나 부끄럽겠느냐?

그들의 행위가
다른 많은 행위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영예롭게 하기는커녕
수치스럽게 할 것이다.

나는 위대한 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행해진 지향을 본다.
이 지향이야말로 내가 주목하는 것이다."



9-29 (1910년 3월 8일)
"올바른 지향은 영혼의 빛이다."

2 "딸아, 올바른 지향은 영혼의 빛이다.
그것이 영혼을 빛으로 변화시켜 신적인 방식으로 활동하게 한다.

영혼은 어두컴컴한 방에 불과하지만,
올바른 지향이 태양과도 같이 빛살을 보내어 방을 조명해주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올바른 활동은 모든 것을 빛으로 바꾸는 반면,
태양은 방의 벽까지 빛으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7-67 (1906년 11월 18일)
내적 정신과 올바른 지향이 없는 활동의 해악

2 "딸아, 실질적인 양분을 제거한 음식이 있다고 하자.
누군가가 이 음식을 먹는다면 그에게 유익을 주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위장만 부풀릴 것이다.

내적 정신과 올바른 지향이 없는 활동도 그와 같다.

3 신적인 실질이 비어 있기 때문에 유익하지 않고
다만 그 인간(의 자만심)을 부풀리는 역할만 한다.
그러므로 그는 유익보다 해악을 입게 된다.



12-53 (1918년 7월 2일)
영혼이 예수님께 자기를 맡기면
예수님도 자신을 영혼에게 맡겨 당신으로 영혼을 가득 채우신다.

4 아, 딸아,
내 안에 맡기는 것 - 완전한 맡김의 정신이 참으로 필요하다!

영혼이 내 안에 자기를 맡기면
나도 나를 그 안에 맡겨 나 자신으로 그를 가득 채우고,
그가 나를 위해서 해야 할 모든 것을 내가 몸소 행한다.

5 그러나 영혼이 자기를 맡기지 않으면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이 그 자신 안에 붙어 있을 뿐 내 안에는 있지 않다.

그러면 나는
그 피조물의 일이 온통 불완전하고 비천한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낀다.
그런 것이 내 마음에 들 턱이 없다.



19-13 (1926년 4월 18일)
하느님께서 그분의 모든 사업을 당신의 뜻 안에 맡겨 두신 까닭.

8 우리의 사업들이 그러할진대,
사람의 일들이야 더욱더 우리 뜻 안에 맡겨 두어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의 뜻 안에 맡겨 두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위험에 처할지,
얼마나 많은 변질을 겪을지 모르는 것이다!

9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자기의 행위들을 지고한 의지 안에 맡기는 것을 볼 때
마음이 흡족해진다.

이 행위들은 비록 작거나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행위들과 즐거운 경쟁을 벌이기에,

우리는 그가 자기의 하찮은 행위들을 안전하게 두려고
우리 뜻 안에 맡기는 그 꾸준함을 보며 즐거워한다.

11 너 자신 전체,
너의 사소한 행위들, 아주 하찮은 것들까지도 다 맡기지 않으면,
나의 '피앗'이 너에 대해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땅에서도 하늘에서와 같이
그 자신의 '피앗'을 완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16-40 (1924년 2월 10일)
교회의 중심에서 새로운 태양으로 떠오를 책.
이는 교회를 쇄신하고 땅의 모습을 바꾸리라.

4 내 뜻 안의 삶에 있어서
맡김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예로 들어 보자.

내 뜻 안에 완전히 맡기고 살지 않는 영혼이 있다면,
그는 호화로운 궁전에 살면서도
어떤 때는 창문에서 어떤 때는 발코니에서 몸통을 내밀고
또 어떤 때는 정문 쪽으로 내려가는 사람과 같다.

5 이와 같이 이 가련한 사람은
궁전의 방들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거나 지나는 길에 잠깐 들르는 것이 고작이기에,

통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고,
그것에 필요한 일,
거기에 있는 재산,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것,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거의 알지 못한다.

7 그러므로
내 뜻 안에 살면서 여기에 자기를 완전히 맡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기에 대한 생각이나 걱정, 두려움, 내적 소란이
바로 그가 내 뜻 안에서 만드는 창문이나 발코니나 정문이다.

그렇게 툭하면 밖으로 나감으로써
인생의 비참한 것들을 보고 느끼지 않을 수 없어지는 것이다.

8 그 비참한 것들이 그의 재산인 반면
내 뜻의 부(富)는 나의 것이므로
그는 풍요한 것 보다는 빈약한 것에 더 집착하게 된다.

따라서 내 뜻 안에서 사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좋아하지도 즐기지도 못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궁전 정문을 만들어 가다가
자기 뜻의 누추한 오두막에서 살기 위해
언젠가는 영 나가 버리고 만다.

9 그러니, 보아라,
내 뜻 안에서 살려면
내게 자기를 완전히 맡기는 것이 얼마나 긴요한 일이냐!

11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일치가 생겨,
나의 뜻에는 비통을 가져오고
인간의 뜻에는 불행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12 내 뜻 안에서 살려면 완전한 맡김이 요구된다는 점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는 것
- 이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이제 알겠느냐?



*   *   *



이해욱프란치스코61작성자 16.02.10 10:14
첫댓글

보조교사 무화님이 그동안 올려주셨던 천상의 책에서
100%의 내맡김(곤색)과 그렇지 못한(-1%) 내맡김(빨간색)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찾아 모아보았습니다.

100%의 완전한 내맡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저의 영적지도에 순명치 못하여 저(무형의 기도원)를 떠난 사람도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온전히(100%) 내맡겨 살아간다면
완전한 내맡김의 결과(하느님의 은총)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예수님께서 루이사 피카레타에게 자주 언급하신 대로,
반드시 자신의 영적지도 사제를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자신의 영적사제를 두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달아드는 마귀의 손아귀에서
결코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100%의 완전한 내맡김이란,
여러분이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식 때의 맹세와 같은 굳은 결심,
하느님 앞에 자신의 목숨, 배우자와 자녀들, 전 재산을
100% 다 내어 드리겠다는 지향,
완전한(올바른) 지향을 말하는 것외의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그 당시(봉헌식)의 결심이 100%였다면 다른 어떤 것은 필요치 않습니다.
오직 필요한 것 한 것 한 가지는 끊임없는 화살기도 뿐입니다.


이끌어주시는 대로 이 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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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육
Re: 2. 완전한(100%의 올바른 지향) 맡김과 불완전한 맡김

이해욱프란치스코 16.02.10 11:01


이해욱프란치스코61 16.01.27. 21:54

오늘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한 비유>는 우리
100% 내맡긴 영혼들의 영적성장의 기준이 되는 말씀으로 삼겠습니다.

즉, 지금까지 100% 내맡긴 영혼들이 중도 탈락하는 이유를 저는
1가지의 기준 - 100% 다 내맡기지 못했기 때문 - 만을 기준 삼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의 이끄심에 의해 한 가지 기준을 더 추가 아니,
主 기준을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한 비유로 삼겠습니다.


다시 말해,
<왜 그녀를 비롯한 소위 하느님께 내맡겼다는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는 까닭이 도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라는 질문에 답을 한다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 100% 완전히 다 못 내맡김 
때문이라 답을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시 100%의 완전한 굳은결심을 봉헌했다 하더라도,
그 씨앗(내맡김)이 많은 열매 맺을 수 할 수 있도록
각 영혼이 꾸준히 좋은 땅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100%의 완전한 내맡김이어야 함은 가장 당근이고요.



이해욱프란치스코61 16.01.28. 06:39

사랑하는 안나!
그동안 제가 느껴온 안나는 돌밭, 가시덤불을 다 갈아엎고
지금은 <좋은 땅>을 일구는 있는 중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에게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날이 조금씩 조금씩 진행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맓니다.
또 그러나, 어느날 엄청 기름진 땅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주님만 죽도록 뜨겁게 사랑(집중몰입)하는 삶 속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분께서 그렇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해욱프란치스코61 16.01.28. 10:59

천상의 책
19-23 (1926년 5월 23일)

 하느님의 뜻은 생명의 씨앗이다. 

< 내 뜻의 행위 하나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행위들을 품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큰 행운의 사람이겠느냐?

이 사람은 생명의 씨앗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생명의 충만을 받고, 성덕 안에 무사히 안착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씨(하느님의 뜻, 말씀)가 떨어진 장소의 종류는
4곳(길,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입니다.

모든 "영혼은 예수님께서 뿌리고 수확하며 경작하시는 땅" 입니다.
땅(영혼)은
'길'같은 땅, '돌밭'같은 땅, '가시덤불'같은 땅 그리고 '좋은 땅'이 있습니다.

이 4가지 땅 중에서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땅(영혼)"은
주님 뜻 안에서 살고 있는 땅(영혼)입니다.

하내영은,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 드림으로 이미 "좋은 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가장 좋은 땅"은 아닙니다.
좋은 땅은 '각자'가 만들어가야 합니다.


천상의 책의 예수님 말씀처럼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을 걸어나가며
주님께서 내 영혼 안에서 당신 마음껏 경작하실 수 있도록
계속 내 뜻을 내어드리는(주님을 사랑해 드리는) 일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아무리 자신의 모든 것을 100%를 다 내맡겨 드렸다 하더라도,
걸음을 걸어나가지 않는다면
'좋은 땅'도 어느새 열매 맺지 못하는 '나쁜 땅'이 될 것입니다.

농부이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 마음껏 농사 지으실 수 있도록,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주님께 집중몰입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이해욱프란치스코60 15.03.31. 22:45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긴 영혼들(하.내.영)"의 최종목표는,
<하느님 뜻 안에 사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상의 책은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고 사는 삶>의 교본입니다.
그 교본을 자주 읽고 교본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을 맡기오니 당신의 뜻 안으로 이끌어주소서!



*  *  *



이해욱프란치스코61작성자 16.02.10 11:13
첫댓글


저는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식에 있어서,

1) 여러 봉헌자들의 마음 안에 들어가
그 봉헌자의 굳은 결심(지향)이 100% 인가 아닌가를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하느님만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간혹 봉헌자 가운데에는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 - 목숨, 배우자와 자녀의 목숨, 재산 - 을
완전히 100% 다 내맡기겠다는 결심에 대한 진지하고 진솔한 묵상 없이>
봉헌한 봉헌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생각으로 100%의 결심을 봉헌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봉헌자들 중에는 
봉헌 당시 100%의 결심을 봉헌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화살기도 능구 3개월> 또는 그 이상 오랜 기간을 통하여
주님께 집중몰입하는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주님의 이끄심으로
나중에야 비로서 100%의 결심을 봉헌할 수 있는 분도 계실 겁니다.


3) 또한,
봉헌 당시 100%의 굳은 결심을 봉헌한 봉헌자라 하더라도
봉헌 후 얼마나 <끊임없는 화살기도로 살아왔는가>
저 자신은 잘 알 수 없습니다.

화살기도의 집중도
봉헌자가 자신의 신앙심과 그의 처해진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자신을 성찰하는 습관이 전혀 없던 봉헌자가
자신의 화살기도의 집중도를 성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처음 산 속에서 '혼자' 살면서도
끊임없는 화살기도의 지향을 갖고 생활한다 하였지만,

하루에도 가끔씩 수차례 저 자신을 돌아보면,
저의 머릿 속에는 화살기도가 아니라
다른 잡념이 자리 잡고 있을 때가 많았던 경험을 보더라도
끊임없는 화살기도의 집중도는
수시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가정 살림과 성당 활동, 이웃들과의 빈번한 만남,
신경쓰는 직업의 소유자들에게 있어서의
끊임없는 화살기도의 집중도는
자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랜 기간을 평소에 기도생활과 거리가 멀었던 봉헌자가
짧은 시간? 내에 <집중도 높은 화살기도의 수준>에 오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영적지도 신부인 저에게 직접 영적지도를 받지 않는 이상,
각 봉헌자의 정신상태, 마음상태, 영적상태를 알 수 없지만

이미 제가 말씀드렸듯이 지금까지 주님께서는
봉헌자의 글, 말, 행동 그리고 일어나는 사건(일)을 통하여
영적지도를 하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100% 내맡겼다는 사람이 삼천포로 빠지는 이유는
위의 글에 올려져 있는 내용들을 참고하여 판단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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