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신부님 강론

2016년 3월 31일 목요일 무위신부님 강론

은가루리나 2016. 4. 1. 23:27

 

 

2016년 3월 31일 목요일 무위신부님 강론


복음: 루카 24,35-48

† 찬미예수님.

어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제자들에 관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 대한 말씀이 있었고,

그제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못알아봤어요.

이어서 오늘도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우리 인간은 뭐가 합쳐진 존재입니까?
영,육. 즉 영혼과 육신이 합쳐진 존재라는 것을 교리로는 잘 알고 있지요.

실제로는 잘 몰라요.
그냥 거의 영혼은 잊어버리고 육체에 매어서 살아가요.

물론 육신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육신은 뭐라고 표현해요?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표현하지요.

육신이 없으면 이 세상에 영혼이 존재할 의미가 없지요.
그러니 육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도신경에서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라고 고백을 하고 있지요.
우리는 육신의 부활을 믿고 있어요.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에서 예수님 당시에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파가 있었지요.

사두가이파, 바리사이파,
부활을 믿지 못하는 파와 부활을 믿는 파가 서로 대립하지요.

참으로 사람은 우매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그것을 잘 이용하지요.


현대에도 과학이 발달하고 인간이 상상할 수없을 정도로 지능이 발달하지만,
오히려 인간의 정말 고유한 인간성, 이성은 더 퇴보하는 것 같아요.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얼마나 미개한가?

그냥 지식에 얽매어서,
영혼의 감옥이라고 하는 육신에 얽매어있지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육신을 죄라고 여겼지요.

결혼하는 것도 죄라고 생각한 파가 있었지요.
대표적인 파가 가타리파라고 아주 유명한 파가 있었어요.

하느님이 여자와 남자를 창조했는데도,
부부관계를 갖는 것도 죄라고 여겼어요.

완전히 육신을 무시하고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이래야 하느님께 나아간다고 생각했지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도
지금도 그런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아요. 적지 않아요.


그렇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버리고 육적인 것을 죽이고
그래야만 하느님과 가까이 된다고,말입니다.

하느님은 그것을 다 원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도
"하느님나라를 위해서 고자가 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 가톨릭교회는 여러 종파들 중에서 가장 육신을 죄악시한 교회입니다.
그것을 벗어 날 수 있었던것은 개신교 덕분이에요.

개신교에서 말하는 만민사상,
즉 뽑힌 사람 이외에도 구원받을 수있다는,
루터가 말한 이것이 가톨릭에서 받아들여진 것이
2차 바티칸 공의회이후 입니다.

그래서 사제직, 왕직, 예언직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육신이 있어야 영혼이 있는 것이고
육신이 살아있어야,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이고
하느님께 다 봉헌할 수 있고 봉사도 할 수 있고 기도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환자 여러분을 볼 때,
제가 암에 걸려 죽다 살아났기 때문에 제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오늘 미사에 들어오면서 한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지리산에 있을 때,
동기 신부님을 통해서 온 환자를 치유로 이끌어 준 경험이 있고
여러분에게도 어떤 도움을 줄 수있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치유의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이란 - 분명히 자기가 잘 못 살아온 것이 있을 겁니다. - 그 결과입니다.

중세시대 어두운 시대, 정말 군사독재보다 더 어두운 시대.
가톨릭교회의 권위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짓눌려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시대에 그것을 뛰어넘은 사람들이
남성보다 여성들이 더 많았습니다.

여성신비가들, 정말 죽음앞에서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교회법으로 마녀사냥으로 죽어갔어도
하느님을 향한 자유의지가 그것을 뛰어넘었어요.

그중의 한사람이,
오랫동안 이단으로 무시되었던 힐데가르트성녀입니다.

성녀는 인류의 최초 여의사입니다.
현대 의술은 과학기술에 의한 통계수치에 따른 치료인데,
그것은 기계에 의한 치료입니다.

인간의 몸은 통합치료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몸을 죄악시 하던 때에 벌써 힐데가르트는 그것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분의 글 한대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우리 안에 이미 각인되어 있는 기능으로 전체 유기체를 만들고 있다.

세포 하나하나마다 이성적 숨결이 살아있으므로
세포모두는 이성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렇게 영혼은 신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신체를 보면서 영혼의 모든 활동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이야기를 했지요.

"우리 생명체는
맛있는 향기를 솔솔 풍기며 화덕에서 금방 나온 달콤한 케익을 보며 기뻐하듯이
그렇게 우리의 선행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다. "


힐데가르트는
우리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해서는 안된다고 자상하게 충고하고 있지요.

"영혼은 신체와 더불어 선하고 성스러운 일을 행하면서 생명를 살릴 수도 있지만,
동반자인 신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귀를 잘 기울여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해야한다.

마치 자상한 어머니가
우는 아이를 달래어 다시 방긋방긋 웃음을 모습을 되찾아 주듯이,
영혼도 신체가 이 세상의 일을 즐길 때 허락해 주어야 한다.

영혼은 이 모든 것을 다 감내하는데,
이는 육신을 너무 지치지 않게 해주기 위함이다."

너무 육신을 억압하고 사는 사람들은 얼굴에 빛이 없습니다.
영혼과 육신을 함께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말씀을 들었는데.
부활이란,
우리 몸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고 제가 예전에 말했지요?

이 몸과 영적인 몸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아주 중요한 겁니다.

이 몸이 부활한다면 천국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김치냄새 마늘냄새...천국이 못견디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몸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제자들이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못알아 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몸을 키우기 위해서
영적인 음식을 자주 보충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35절이하 말씀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주님을 죽도록 뜨겁게 뜨겁게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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