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를 당신께 맡기나이다

당신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은가루리나 2016. 7. 12. 08:12


당신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모든 것이 표징이다.

그러나 표징과 그 뒤에 숨은 표징을 더듬어 자꾸만 오르다 보면 

우리는 낙원에 이를 것이니...

사랑이라, 집이라 하는 것은 곧 낙원의 표징인 까닭이다.

사랑하며 사는 집이 낙원이다.

그것을 하늘이라고도 하고 하늘 나라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똑같은 것이다.


이승에서 나그네살이하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번뇌는 있다.

내가 타만라세트와 베니 아베스 사막에서 지낼 때의 일이다. 

나는 그 용감한 히피들 - 아마 그들이야말로 진짜 히피이리라 - 이 

한길로 지나다니는 것을 가끔 보았다.

집을 버리고 나오던 그날부터 

여러 해 동안 방랑과 떠돌이생활에 지친 모습들이 측은하여 가끔 집에 맞아들였다.


그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엇인가 달라져갔고, 

우리 수도원에 되도록 오래 머물고 싶어하였다.

싫어진 집을 버리고, 그들의 세계를 등지고, 자기네 체제에서 도망쳐나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뚜렷이 바라지도 않는 길을 가고 있었다. 

여태 살아왔고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집, 다른 세계, 다른 체제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내심에 깊이 새겨져 있는 그 집, 그 세계, 그 체제를 찾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충동이다.

이승에 발 붙이고 있는 한, 인간은 집을 찾는다. 큰 집을...


거기 살고 숨쉬고 사랑하고 안식을 누릴 장소라 하여  집을 찾아다닌다.

집이란 것을 모르고  고아처럼 서글픈 눈으로 집요하게 찾아다닌다.

집에서 살아본 사람은 자기가 아는 그것과는 다른 집을 찾을 것이다. 

찾아낼 때까지는 처절하고 병들고 상처받은 마음으로 헤맬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마음이여... 그 얼마나 많은 상처에 괴로워하는가!

집 없는 사람이여... 그 얼마나 많은 번뇌를 안고 허덕이는가!

집과 낙원... 그것은 같은 개념이다.


인간이라면 이 잠재의식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이 인간의 속마음에 새겨주신 첫 계명이 이 집과 낙원을 미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집을 찾는 것은 사랑을 찾기 때문이다.

그대가 낙원을 꿈꾸는 것은 사랑을 꿈꾸는 까닭이다.


사랑은 낙원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지옥이다.

숨쉬고 먹어야 하듯이 인간은 사랑해야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의 나라에 들어와 있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1요한3,14 참조)


행여 정의를 내세워 이 말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사랑만이 인간을 송두리째 만족시킨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 어른은 곧 사랑이시다.


사랑은 인간의 생명, 인간의 자양분, 그의 완성이자 열락(悅樂)이자 충만이다.

사랑 없이는 못 산다. 

그 반대의 경우를 상상만 해도 지옥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지옥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며, 이 지상에서부터 벌써 체험되고 있다.

그리고 사랑은 늘 긴장을 유발한다.


지금 우리가 점차적으로 발견하고 살아가는 사랑들, 

좋아하는 것들 - 음식, 우정, 이성간의 사랑, 문화, 선(善), 정의, 광명 등 - 은 

전체적이고 성스럽고 완전한 사랑을 준비하고 키워나가고 정화하는 부분적인 단계들에 불과하다.


그것들은 하느님의 사랑, 

곧 우리가 물려받을 영원한 유산, 우리의 낙원을 불사를 그 화염의 조각들이요 표징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태어났으며, 

하느님이 무엇 때문에 우리를 생명으로 불러내셨던가를 깨닫는다.

하느님의 사랑에서 모든 것이 해답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