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를 당신께 맡기나이다

***당신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은가루리나 2016. 7. 20. 17:13


당신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성서는 우리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간추려놓았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 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라.

이것을 너희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주어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주어라.

네 손에 매어 표를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문설주와 대문에 써붙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신명6,4-9; 마태22,37-39참조)


그러니 죽음이여 오라!

오라, 그대를 기다린다.

이제는 나를 무서워 떨게 하지 못한다. 그대를 원수로 여기지 않는다.

어느 성현이 했듯이, 나도 그대를 누이로 반기겠다.

그대 얼굴을 마주보겠다. 지금은 그대를 알 듯하다.


그대가 내게 다가오는 그때, 나는 그 능하신 팔에 그대를 끌어안으셨던 분을 생각하고

이렇게 말하리라. "이 몸을 그대 좋을 대로 하라."

진심에서 이 말을 하리라. 꾸밈없는 마음에서 이 말을 하리라.

"이 몸을 그대 좋을 대로 하라."고.


정말 나는 이 경지에 도달하고 싶다. 이 극단의 자아포기, 잠깐이면 끝날 이 시험.

이 성숙한 포옹, 순전히 은혜로이 주어진 이 보화.

이 은밀한 대화에 익숙해지고 싶다.


내 생애의 나날에 나의 죽음을 나누어 겪는 가운데 서서히 길들여지고 싶다.

내 먹는 빵에 재와 모래가 씹히듯이 죽음을 맛보게 하라.

"사랑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님"(마태4,4)을 잊지 않도록...


내 집에 '뭔가 없어진 듯한 허전함'을 느끼듯이 죽음을 실감케 하라.

보이는 사물의 저 테두리에 안주하지 않도록...

내 하찮은 안전함 속에 뭔가 불안이 감돌 듯이 죽음을 냄새맡게 하라.

절대자이신 그 어른께만 내 마음이 안주하도록...


내 흥겨운 축제가 한창 무르익을 때 뉘 부르는 소리 있듯이 죽음의 목소리를 듣게 하라.

혼자 있는 법을 배우고, 사람들에게 에워싸여도 님과 단둘이 있는 법을 익히도록...


나의 부친은 임종을 당하시면서 나더러 곁에 있어달라고 하셨다.

나에게 마음을 두셨고, 우리는 서로 마음이 통했었다.

하느님 은혜로 나는 마지막 밤을 지켜드릴 수 있었다.

나는 가까이에서 부친의 손을 꼬옥 붙잡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 힘을 주시므로 무슨 말씀인가 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말씀이 없으셨다.


내게 기대시려는 것 같았으나 부친의 눈은 앞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분은 차츰 혼자 몸이 되시는 것 같았다. 세상을 떠나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경계로 걸어나가시는

마당에서 그분은 정말 홀몸이셨다. 아무도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었다. 홀로 걸어나가셨다.


그렇다. 사람들은 정말 혼자 죽는다.

모든 도움이 차츰 멀어져간다. 죽는 이에게 그 도움이 미치지 못한다.

오로지 하느님과 단둘이 선다.


그 길에서 하느님만이 내 손을 붙잡아주신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내 손을 움츠리고 빼왔다.

그때에는, "이 몸을 당신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라는 말씀을 하느님께밖에 드릴 수가 없다.

하느님이시기에, 우리의 희망을 무너뜨리지 않으실 분은 그 어른뿐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