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산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1

은가루리나 2016. 8. 5. 01:07


읽기 전에



인도에서는 지난 오천년 동안 수많은 성자와 각자(覺者), 그리고 철학자들이 출현했다.

그들은 마치 눈부시게 펼쳐진 히말라야 연봉(連峰)과도 같았다.

이 무수한 봉우리 가운데 다음의 세 봉우리가 그 주봉(主峰)을 이루고 있다.

    

     ㅇ 붓다(佛陀, 불교의 창시자)

     ㅇ 샹카라차리야(베단타 철학의 大成者)

     ㅇ 라마크리슈나(힌두교의 大聖者, 1836~1886)


   이 책은 바로 이 라마크리슈나 대성자의 말을 모은 성언집(聖言集)이다.



모든 종교와 철학 등의 각기 다른 가르침은

결국 진리(神)의 다양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라마크리슈나는 보았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브라흐만>, <쉬바>, <크리슈나>, <깔리>,

<라마>, <어머니, 또는 영원한 어머니> 등의 여러 가지 이름은

실은 동일한 신(神)의 다양한 이름인 것이다.


이 유일자(唯一者)가 그 기능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똑같은 한 사람이 회사에 가면 <사장>으로,

아이들에게 가면 <아버지>로, 아내에게는 <여보>로 불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 다양한 신(神)의 이름에 길을 잃지 말기 바란다.


그러나 라마크리슈나가 이야기하고 있는 신(神)은

어느 종교에 특정된 종파적인 신이 이니라 이 모든 현상과 우리 생명의 근원,

즉 이 모든 것들이 파생되어 나오는 그 근원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神을 힌두교적으로 파익하면 <쉬바>, <브라흐만> 등이 되고,

영성적으로 파악하면 <깔리> 여신이 된다. 그리고 회교적으로 파악하면 <알라>신,

기독교적으로 파아하면 <하나님>, 불교적으로 파악하면 <공, sunya) 또는

Dharma>, 노자적(老子的)으로 파악하면 <도>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라마크리슈나가 말하는 신의 개념을 기독교인은 기독교적으로,

회교인은 회교적으로, 불교인은 불교적으로, 무종교인은 자기 생명의 근원으로

파악하면 된다. 그러면 자기가 속한 종교나 지향점이 보다 선명해질 것이다.


이 라마크리슈나의 어록은 강론이 아니라

라마크리슈나 자신이 체험한 경지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번에 읽어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늘 옆에 두고

조금씩 읽어 나가야 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영혼의 지평이 열리는 것을 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채 이해가 안 되는 곳은 뒷날 보다 많은 삶을 체험하게 될 때 이해가 될 것이니

우선 접어두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길 바란다. 간디의 말과 같이,

라마크리슈나의 말은 신의 체험에서 나왔기 때문에 모두가 진실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해가 안 되는 곳은

우리가 아직 그 진실에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 라마크리슈나의 말은 감로수와도 같다.

지금 라마크리슈나를 피해 가도 언젠가는 결국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ㅡ 이 말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 말로 옮겨오는 데 최선을 다했지만,

그러나 잘못된 곳이 있으면 많이 꾸지람을 보내주기 바란다.

잘못된 곳은 계속 바로잡아 주고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