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섭내

《제1장 -03 거룩해질 수 있음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

은가루리나 2015. 10. 12. 01:36


제 1 장


우리의 몫을 행하고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 드림에 관하여



 03 


거룩해질 수 있음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





   거룩하게 되기 위해 힘쓰는 일이  견디기 힘들만큼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거룩함은  한 가지 일로만 이루어지는데, 

것은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충실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간에  이 충실성을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충실하다는 것은 

하느님의 법과 교회에 순종하는 것이며 

주어진 모든 의무를 우리의 생활태도로 채워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극적으로 충실하다는 것은 

매일의 순간순간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를 정말 힘들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단 말입니까? 

물론  적극적인 충실성에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무들이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 있을 경우, 

우리는 그런 의무들을 감당하는데 미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누가 몸이 너무 아파 미사에 갈 수 없다면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의무적인 여타의 모든 규칙들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이것은 악한 짓을 금하는 계명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를 짓는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어려움이 더 쉽게 다가오는 건가요? 

아니 더 쉽게 참아 낼 수 있단 말인가요?

우리에게는 아무런 변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고통과 인내심 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고통과 인내심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계층, 시간  그리고 장소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모든 이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은  대단히 직선적이고 매우 쉬운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 단순한 규율들을 따름으로써  참으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계명과는 별도로  하느님은 성덕에 관한 고견들을 우리에게 건네주십니다.

그분은  그것들을 실행하는 것이  

우리 기질과 삶의 처지에 꼭 들어 맞는다는 것을  환기시켜 주십니다.

그분은  절대로 힘과 능력 밖에서 그 누구를 이끌려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은 필자로 하여금  거룩해지려고 힘쓰는 여러분을 돕고 

또 성인들의 삶과 영적 문제들을 다룬 책들을 읽고 실망한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을 쓰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여러분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감히 확언하는 바입니다.


   모든 선(善)이신 하느님은  땅과 공기 그리고 물과 같은 것, 

즉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손쉽게 사용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숨을 쉬며 먹고  마시는 것보다  그 무엇이 더 생동적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무엇이 더 용이한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영적인 문제로 돌아갈 때,  

사랑과 충실성은  아주 생동적이어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그렇게 얻기가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대의 삶을 눈여겨보십시오. 

그러면  그대의 삶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하찮은 행위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 크게 만족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이루어져야 하는 바대로 그것들을 행한다는 것은 

완덕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통해 연출해야 할 몫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 점을 아주 평범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코헬 12,13). 

이것이 우리가 행해야 할 전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적극적 충실성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몫을 다한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나머지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은총은 우리에게 흘러들고  우리 이해의 폭을 넘어  경이로움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고린 2,9).

소극적으로 충실하다는 것은 훨씬 더 쉽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흔히 회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지겨움과 혐오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들을 

사랑과 포기로 견디어 내는 것만을 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 역시 거룩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것은  마치 알아내거나 거두어 들이기에는 너무나 작은 겨자씨와도 같고 

복음에 나타난 은화와도 같으며 

너무나 잘 감추어져 있어  찾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그 누구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보물과도 같습니다.




   무엇이 이 보물을 찾아내는 비결입니까? 

거기엔 비밀도 없습니다. 

이 보물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이 보물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항상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모든 피조물과 친구들 그리고 적대자들은 이 보물을 풍부히 쏟아 부어주기에 

이 보물은 우리 존재의 바로 그 중심에 다다를 때까지 

몸과 영혼의 모든 조직을 거쳐 흘러들어갑니다.

만일 우리가 입을 벌린다면, 입 안이 이 보물로 가득 찰 것입니다. 


하느님의 활동은 우주를 꿰뚫고 나갑니다.

그분의 활동은 솟아나고 있으며  모든 피조물을 관통합니다. 

피조물이 있는 곳에는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활동은 피조물에 앞서 가며, 피조물과 함께하고  피조물을 뒤따릅니다. 


피조물이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일으키시는 파도를 타고  자신들을 앞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왕들과 대신들, 추기경과 군주들, 사제들과 군인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드높은 성덕에 다다르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전적으로 행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단순한 의무들과  자신들의 생활 태도에서 요구되는 것들을  

충실히 이행하고, 

직면하는 모든 괴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스스로 괴로움을 찾지 않으면서 행하고, 

고통 받아야 옳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많은 영성의 방법론과 영혼의 수많은 지도자들이 있기 오래 전에 사셨던 

총대주교들과 예언자들에게  탁월한 성덕을 쌓게 해 준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영성이며, 모든 시대와 사람들에게 유효한 영성입니다.

분명코 우리는  더 이상의 훌륭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선해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선하게 되는 방법으로써 

영혼의 유일한 지도자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수단들을 단순하게 사용하게 된다면, 

이것보다 더 쉬운 방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매순간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그때그때마다 재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섭내 1-3.avi








1-1-3, 完徳을 받아 들임으로, 성스러워 지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에 대해서




우리들이 完徳을 목표로 하고 노력할 때,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 할 수 없을 것 같은 곤란에 부딪치는 것은 

우리들이 聖徳을 올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완덕은 오직 한가지 로서 "하느님의 뜻에 충실 하는 것" 이라고 하는 한마디로 요약 됩니다. 

이 충실함은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길 때, 

또는 주어지는 모든 것을 받아 들여야 하는 입장으로 있을 때라 하더라도 

누구든지 실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행위에 있어서의 충실함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모든 의무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계약, 교회의 규칙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지금 처해있는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일들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자의 모습에서의 대처 라는 것은 

매 순간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서 받아 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완덕에의 목 마름을 느꼈을 때, 

호기심이나 知識欲은 오히려 완덕으로의 길로 나아 갈려고 하는 마음을 움츠러 들게 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지금 이 순간, 

우리들에게 이루려 하고자 하시는 것과 고통들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매 순간 주어지는 모든 것은, 

가장 성스럽고, 가장 좋은 것이고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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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우리의 몫을 행하고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 드림에 관하여



 03 



거룩해질 수 있음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





   거룩하게 되기 위해 힘쓰는 일이  견디기 힘들만큼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거룩함은  한 가지 일로만 이루어지는데, 

것은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충실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간에  이 충실을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충실하다는 것은 

하느님의 법과 교회에 순종하는 것이며 

주어진 모든 의무를  우리의 생활태도로 채워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극적으로 충실하다는 것은 

매일의 순간순간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를 정말 힘들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단 말입니까? 

물론  적극적인 충실성에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무들이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 있을 경우, 

우리는 그런 의무들을 감당하는데 미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누가 몸이 너무 아파 미사에 갈 수 없다면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의무적인 여타의 모든 규칙들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이것은 악한 짓을 금하는 계명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를 짓는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어려움이 더 쉽게 다가오는 건가요? 

아니 더 쉽게 참아 낼 수 있단 말인가요?

우리에게는 아무런 변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고통인내심 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고통과 인내심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계층, 시간  그리고 장소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모든 이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은  대단히 직선적이고 매우 쉬운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 단순한 규율들을 따름으로써  참으로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계명과는 별도로  하느님은 성덕에 관한 고견들을 우리에게 건네주십니다.

그분은  그것들을 실행하는 것이  

우리 기질과 삶의 처지에 꼭 들어 맞는다는 것을  환기시켜 주십니다.

그분은  절대로 힘과 능력 밖에서 그 누구를 이끌려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은 필자로 하여금  거룩해지려고 힘쓰는 여러분을 돕고 

또 성인들의 삶과 영적 문제들을 다룬 책들을 읽고 실망한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을 쓰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여러분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감히 확언하는 바입니다.


   모든 선(善)이신 하느님은  땅과 공기 그리고 물과 같은 것, 

즉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손쉽게 사용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숨을 쉬며  먹고  마시는 것보다  그 무엇이 더 생동적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무엇이 더 용이한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영적인 문제로 돌아갈 때,  

사랑과 충실성은  아주 생동적이어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그렇게 얻기가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대의 삶을 눈여겨보십시오. 

그러면  그대의 삶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하찮은 행위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 크게 만족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이루어져야 하는 바대로 그것들을 행한다는 것은 

완덕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통해 연출해야 할 몫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 점을 아주 평범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코헬 12,13). 

이것이 우리가 행해야 할 전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적극적 충실성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몫을 다한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나머지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은총은 우리에게 흘러들고  우리 이해의 폭을 넘어  경이로움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고린 2,9).

소극적으로 충실하다는 것은 훨씬 더 쉽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흔히 회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지겨움과 혐오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들을 

사랑과 포기로 견디어 내는 것만을 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 역시 거룩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것은  마치 알아내거나 거두어 들이기에는 너무나 작은 겨자씨와도 같고 

복음에 나타난 은화와도 같으며 

너무나 잘 감추어져 있어  찾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그 누구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보물과도 같습니다.




   무엇이 이 보물을 찾아내는 비결입니까? 

거기엔 비밀도 없습니다. 

이 보물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이 보물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항상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모든 피조물과 친구들 그리고 적대자들은 이 보물을 풍부히 쏟아 부어주기에 

이 보물은 우리 존재의 바로 그 중심에 다다를 때까지 

몸과 영혼의 모든 조직을 거쳐 흘러들어갑니다.

만일 우리가 입을 벌린다면, 입 안이 이 보물로 가득 찰 것입니다. 


하느님의 활동은 우주를 꿰뚫고 나갑니다.

그분의 활동은 솟아나고 있으며  모든 피조물을 관통합니다. 

피조물이 있는 곳에는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활동은 피조물에 앞서 가며, 피조물과 함께하고  피조물을 뒤따릅니다. 


피조물이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일으키시는 파도를 타고  자신들을 앞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왕들과 대신들, 추기경과 군주들, 사제들과 군인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드높은 성덕에 다다르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전적으로 행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단순한 의무들과  자신들의 생활 태도에서 요구되는 것들을  

충실히 이행하고, 

직면하는 모든 괴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스스로 괴로움을 찾지 않으면서 행하고, 

고통 받아야 옳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많은 영성의 방법론과 영혼의 수많은 지도자들이 있기 오래 전에 사셨던 

총대주교들과 예언자들에게  탁월한 성덕을 쌓게 해 준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영성이며, 모든 시대와 사람들에게 유효한 영성입니다.

분명코 우리는  더 이상의 훌륭하고 특별한 방법으로 선해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선하게 되는 방법으로써 

영혼의 유일한 지도자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수단들을 

단순하게 사용하게 된다면, 

이것보다 더 쉬운 방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매순간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그때그때마다 재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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