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섭내

《제1장 -06 우리의 이성과 다른 기능들의 사용은 그것이 하느님의 활동 도구들로 사용될 때에만 유익하다..》

은가루리나 2015. 10. 12. 01:39



제 1 장


우리의 몫을 행하고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 드림에 대하여



 06 


우리의 이성과 다른 기능들의 사용은

그것이 하느님의 활동 도구들로 사용될 때에만 유익하다.





   정신과 거기에 딸린 모든 활동은 

하느님이 사용하신 연장들 가운데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정신은 마치 위험스러운 종처럼  맨 끝자리로 밀려나야만 합니다. 

진정으로 선한 사람이  그 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알게 된다면 

커다란 유익을 가져올 수 있는 종이 되겠지만, 

단단히 예속되지 않은 경우라면  그 종은 그에게 심각한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상투적인 방식으로 도움을 받고자 할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행위야말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아무런 합당한 이유 없이  우리가 외적인 도움을 폐지하고자 한다면, 

그런 도움은 일시적으로 이용되지도 거부되지도 말아야 하겠지만, 

우리가 모든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듯이 

전적인 이탈로 사용할 때에는 

그분의 계획을 돕고자  진실하고 자연스럽게 쓰여져야 합니다.



   하느님의 행위는  그 범위와 능력에 있어 끝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능력에 대한  모든 거짓된 신뢰를 없애 버린다면 

그분의 행위는 우리 영혼을 채워 줄 수 있습니다. 

이 거짓된 신뢰는  우리 안에 하느님의 활동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하시고자 한다면 

여타의 모든 방해물들을  영적인 진보를 위한 도움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동일하여 

똑같이 유용하던가 아니면 무용하던지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그분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닌 것도  그분이 함께하시면 모든 것이 됩니다. 


우리는  묵상이나 관상에 젖어들고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내적 침묵을 지키며 

활동적인 삶을 살아가거나  아니면 세상을 멀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비록 이런 것들이 모두 가치 있는 것일지라도, 

하느님이 어느 특정한 순간에 원하시는 바를 우리가 행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한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여타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말고 

오히려 그런 것들을 아주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또 그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능력도 가치도 없는 사물들을 사용하지도 말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만을 뵙기 때문에, 

그분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취하든지 아니면 그만두든지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뜻 밖에서는 살지도, 계발하지도, 희망하지도 않고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능력도 가치도 없는 것들을  결코 사용하려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사도 바오로처럼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사도 9,5). 


우리는 고르거나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만 합니다.


"저는 당신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제 마음은 이 일을 하고 싶고, 몸은 다른 것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주님, 저는 오로지 당신의 거룩한 뜻에 순명하기만을 원합니다. 

당신의 뜻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행하는 일, 

염경기도, 묵상기도,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그 모든 종류의 기도들 역시 

모두 헛된 것입니다. 

저의 모든 신심은 

세상 사물들이 제 아무리 대단하건 고상하건 간에  그것들 때문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사실 때문에  

당신의 거룩한 뜻에 맞추려는 것입니다. 

은총이 주어짐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사랑 때문이지 

그 안에 있는 어떤 뛰어난 성질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우리 마음 속 깊숙한 곳에 거처하시는 복되신 성삼에서 비롯되며, 

우리 마음을 그분 뜻에 맡겨 드릴 때  그분께서는 일하십니다. 

래서 우리는 하느님 뜻에 우리 마음을 내맡깁니다

그때에  관상은 우리와 하느님 간의 밀접한 일치를 가져다줍니다. 

만일 다른 행위들이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에 속한다면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그것들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관상은 최고로 좋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경우, 

관상은  위에서 말한 일치를 이루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관상과 여타의 모든 신심 행위들을 사랑하는 것은 아주 올바른 행위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과 일치하게끔 하는 모든 수단을 사용토록 원하시는 전체선(全體善)이신 

하느님께 실지로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왕자를 대접하는 경우라면  마땅히 그와 함께 그의 대신들을 대접합니다. 

만일 우리가 왕자에게만 영예를 돌리려는 마음으로 

변명을 하며  그의 대신들을 소홀히 대접한다면  

왕자는 모욕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사도9,3-6)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사도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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