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신부님 글

무위신부님의 신비에 관한 댓글 모음

은가루리나 2016. 10. 14. 23:58

 

 

-moowee 10.01.19. 18:30-

 

하느님에 대한 "앎"은 끝이 없습니다. 

신앙의 선배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 세상 마칠 때까지 

오직 겸손된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말씀"에 귀기울일 때 

당신의 신비를 하나하나 가르쳐 주십니다.

 

 

 

-moowee 10.06.13. 22:52-

 

저는 지금까지 큰 집, 작은 집 10채 짓고, 곧 이어 바로 한 채 더 짓고, 

그다음엔 기도원(수도원)을 지으라고 그분께서 일을 주셨답니다.

저는 집짓는게 참 재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군대성당 하나, 일반성당 하나, 사제관, 교육관, 사제휴양원 등을 지어 보았지만,

이 번, 마리아처럼처럼 기쁘고 즐겁고 하나도 힘이 들지 않은 것은 처음이죠.

그것은 다름아닌, 

그 전에는 내가 지었고, 이 번에는 주님께서 지어 주시고 있으시기 때문!

참으로 내맡김의 신비입니다.

보잘 것 없는 신세, 한 번 내맡겼을 뿐인데 어찌 이처럼???

"주님, 저는 그저 당신께 오로지 감사드릴 뿐입니다."

 

 

 

-moowee 10.07.09. 12:40-

 

탈혼보다 더 높은 차원의 신비가 "하느님께 내맡김"입니다.

내맡김은 정말 참으로 "신비" 그자체입니다. 

탈혼보다 더 소중한 것입니다. 

탈혼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인간적 노력으로 

당신과 가까와지기를 너무나도 크게 노력하는 것이 안쓰러우셔서 

잠시 당신 가까이로 들어 높여 주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느님께 100% 내맡겨지면 삶이 곧 지속적 탈혼 상태에 머무르는 것과 같습니다.

옛날 성인들께서도 아마 "내맡김"을 강하게 체험하셨더라면~~~~

 

 

 

-moowee 10.07.26. 15:59-

 

내맡긴 영혼은 절대로 연옥을 거치지 않습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은 자신의 존재의 영원한 소멸과 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생기게 되는 것인데 하느님께 나의 모든 것을 완죤히 다 내맡겨 드려서

내가 온전히 하느님의 것이 되어 죽음으로 하느님과 영원히 부르스를 출 수있는데

죽음에 대해 쩐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맡김의 신비"입니다.

 

 

 

-moowee 10.09.05. 18:41-

 

님은 이미 내맡김의 봉헌으로 다 내맡겨졌어요, 하느님께!

100% 다 내맡겨졌음을 믿어야 합니다.

내맡김 이후에 내 뜻이 가끔 나타난다 하여도 

그것마저 하느님 뜻에 의해 생겨난 것이예요.

왜냐구요?

봉헌미사에서 내가 내 뜻을 하느님께 완죤히 봉헌했고,

그리고 하느님께서 내 뜻을 완죤히 받아주셨기 때문이예요.

내맡김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하느님의 뜻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니,

그것을 확실하게 믿어야 큰 영적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겁니다. 

 

내맡긴 우리들이 여러 모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하느님 앞에 아무런 부끄러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 부족함의 해소는 하느님 몫!

 

내가 하느님께 내맡겨 내가 없어졌기에 당연히 하느님의 몫입니다.

그게 "내맡김의 신비"입니다.

내맡김의 봉헌을 한 영혼이 그것을 확신할 때만이

신비를 체험하게 됩니다.

내맡김은 체험이며 체험만이 답입니다.^-^

 

 

 

-moowee 11.02.17. 08:20-

 

제가 왜, "오~ 지극히 흠숭하올 하느님의 뜻이여!"를 자꾸 외칠 수밖에 없는지~~~

하느님의 뜻은 참으로 "至善至極(지선지극)"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은 "신비" 그 자체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수히 이끌리면 누구나 신비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비생활이란 정말로 별 것이 아닙니다.

신비생활이란 이상한 현상을 체험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신비생활의 종점은 "하느님과의 密愛(밀애)"입니다.

 

"密(밀)" 은 "빽빽할 밀"이며,

하느님과의 사랑이 짙어(빽빽해)지는 것이 "밀애"입니다.

 

하느님과의 밀애없는 신비현상은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받아적는다 해도 말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귀로 듣고 받아적는 것보다

"화살기도"로 하느님께 몰두하는 것이 백배 더 좋은 일일 것입니다.

 

내맡김의 화살기도가 왜 훌륭한 기도인가는

그 기도가 "주님의 기도"의 핵심요약이기 때문입니다.

 

화살기도는 하느님과의 밀애로 빠져드는 아주 중요한 "열쇠"입니다.

 

 

 

하나하나 다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 ╋ 보조교사방  2011.05.12. 09:27

 

 

저는 더욱더 하느님께 집중하기 위하여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냥 쉽게 넘기지 않고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가끔가끔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저는 신기한 일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니 지금은 "★신비★"를 살고 있습니다.

저의 현실이 바로 신비, 그 자체입니다.

 

신비란 별게 아닙니다.

신비는 현실이니까요.

 

 

 

우리의 생활 속에서 가장 큰 신비는 

눈에 보이는 밀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성변화인 

"성체성사"입니다.

 

아니, 우리의 신앙생활이 신비 그 자체입니다.

미사 때마다 우리는 "신앙의 신비여!" 를 외치지 않습니까?

 

 

그러나, 신비를 눈 앞에 두고도 신비를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보다 세상의 것들에 

재물에, 자녀에, 취미에 더 마음이 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자신의 모든 삶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인정하고 100%의 결심을 봉헌하셨다면,

또 그리하여 앞으로도 "내맡김의 화살기도"에 몰두하신다면 

 

여러분도 분명히 저처럼 하느님의 신비를 느끼며 사실 수 있습니다. 

 

 

 

-moowee 11.09.08. 08:06-

 

크~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다 내어 맡기면 

'단계'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제가 감히, 알퐁소 성인의 이 말씀은 

알퐁소 성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완죤히 다 내어 맡기지 못하셨을 때에

쓰신 글일 것이라고 언젠가 말씀드렸고, 

또 성인의 하느님께 나아기 위한 방법은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보다 낮은 차원의 방법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성인들이 체험하신 방법으로 하나 둘, 차근 차근 하느님께 나아가도 좋겠지만,

그것은 너무 힘이들며 중간에 하차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소수의 사람만이 하느님 가까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완죤히 100% 다 내맡깁시다!"

 

알퐁소 성인의 이 '거룩해지는 세 단계'는 人間이 직접 노력하는 것이고,

자신의 모든 것을 완죤히 다 내어 맡기는 '거룩한 내맡김의 삶'은 하느님이 직접 

거룩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100% 다 내맡겨 드리면 

하느님이 직접 우리의 모든 부족함과 죄스러움까지도

"나날이 조금씩, 그리고 때로는 왕창 거룩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거룩한 내맡김의 삶은 '신비의 삶'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정말 신비입니다, 신비!

 

하느님께 내맡기지 못하면

어느 것이 자신의 결점이며, 

어느 것이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를 잘 알 수가 없으며,

그래서 어느 것이 

세상이 주는 평화인지 하느님이 주시는 참 평화인지 분별하기도 힘든 것입니다.

 

'명오'가 열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명오를 열어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참 빛'을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진리'가 가려지겠습니까?

진리는 오직 '예수님'뿐이시며, 예수님은 참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누구든 명오를 열어주십니다.

하느님을 아주 뜨겁게 사랑합시다, 아주 뜨겁게!

 

 

 

-moowee 11.11.06. 08: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10,21)

 

철부지가 되는 것이 "천국의 열쇠" 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 은 오직 철부지들만이 누릴 수 있는 신비요 특권입니다.

 

3개월간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2)" 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것이 

철부지가 되는 첩경입니다.

그토록 화살기도 3개월을 강조해도 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철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moowee12.10.14 21:41


암만 생각하여도 "신비는 그저 신비" 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제가 썼던 글이 저를 깨우쳐 줍니다. 정말 신비롭습니다.
정말 이곳의 글은 저의 글이 아님을 또 확인확인 합니다.

 

 

 

moowee 13.01.26. 01:51

크~ 감탄의 감탄!

진실로 내맡긴 영혼들의 공통점은 <감탄의 감탄>을 느낍니다.
그것이 100% 내맡겼다는 증거라고 이 왕초보는 외쳐봅니다.
아니라는 분은 저에게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제가 내맡김의 영성은 신비의 삶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부족하고 죄 많은 자신을 주이님께 내맡기면 그의 모든 것을 이끌어주시니,
그리고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의 나라, 천국을 살 수 있으니 말입니다.^-^

 

 

 

<신앙의해, 부활 제3주일 > 2013, 04, 14

 

 

제가 어린 시절부터 수십년을 "덕을 닦는 생활 수덕생활" 에 대해 들어왔고,

배워왔고, 직접 체험해 왔고, 

마침내 몸에 병을 얻은 뒤에 모든 것을 버리고 혼자 지리산으로 들어간 목적도 

사실은 덕을 닦는 "수덕생활" 을 

본격적으로 아주 깊이 체험해 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저를 "수덕생활" 이 아니라 "신비생활" 로 이끌어주셨다.

그야말로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로운 하느님의 섭리>이셨다.

 

어린시절부터 저의 머리 속에 박혀 있던 "신비생활" 이란,

아무나 체험할 수 없는 것, 소수의 특별한 성인들이나 경험할 수 있는 것,

특히 나같은 놈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으로만 여겨졌던 그런 말이 

바로 "신비생활" 이라는 단어였던 것이다.

 

그랬던 단어가 

지리산 속의 생활을 통해서, 아니 <내맡김의 화살기도>를 통하여

내게로 다가왔고 

드디어 나를 차지하고 나의 것이 되었던 것이다.

 

단지, 셀 수도 없이 "하느님의 이름" 을 불렀더니 

하느님이 내게로 다가오셨고,

어느덧 하느님이 나를 차지하셨고, 하느님은 나의 것이 되어 주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 에 나온 구절 그대로의 체험이었다.

 

이제 하느님은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아니 도저히 잊힐래야 잊힐 수 없는 "단 하나의 의미" 가 되었던 것이다.

 

나도, 참으로 부족하고 죄스런 나도

하느님께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아니 잊힐래야 잊힐 수 없는 

"단 하나의 의미" 가 되었음을 나는 확신한다, 

 

아니 느껴진다, 깊이 느껴진다.

 

 

아~ 이것이 바로 소위 "신비생활" 이라는 것이구나, 신비생활!

아~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신비롭게만 생각하던 신비생활!

 

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은 다 "신비" 또는 "신비생활" 이라고 말하는구나!

 

알려지지 않고, 보여지지 않고, 느껴지지 못하는 것을 

신비롭게 여기는구나!

 

 

이제 나는 "신비생활" 이라는 말이 전혀~ 신비롭지 않게 느껴진다.

"단 한 가지" 를 빼놓고 말이다, 그게 또 하나의 "신비" 이다.

 

아직 신비롭게 느껴지는 그 "단 한 가지" 란,

"왜? '루이사 피카레타'처럼 거의 죄없이 산 사람이 아닌, 

정~말로 부족하고 죄스런 나에게 까지 찾아와 나를 차지하시고

또 나의 것이 되어주셨나?" 

 

이 의문이 또 하나의 신비인 것이다, 지금 나에게는!

 

 

아마, 이 신비가 벗겨지면 

또 하나의 다른 신비가 나타날 것은 너무나 뻔~하다.

 

그래서 우리가 미사 때마다 "신앙의 신비여!" 를 외치는 모양이다.

 

 

아마 신비생활이 끝나는 날, 

그날이 바로 하느님을 만나는 그날일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한다." 고

그의 편지 <코린토 1서 4장1절>에서 말했나보다.

 

하여튼, 

하느님께서는 부족하고 죄많은 저를 "통하여"

엄청난 일을 계획하시고 시행해 나가고 계심을

나는 "느끼고 있다, 느낌으로" 말이다.

 

오늘 저에게 훌륭한 강론 거리를 주신 저의 후배 전영준 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또한 

"수덕생활" 에 정진해 나가실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여러분께서도 

"신비생활" 의 체험도 권장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moowee 13.06.06. 07:31-

 

모든 <내맡김>은 <신비>입니다.

<거룩한 내맡김>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쩡~말로 <부족하고 부족한> 저를, 

쩌~엉~말로 <완전하고 완전하신> 하느님께 완죤~~~히 내맡겨 드렸을 뿐인데,,,,,,,,,,

 

하느님은 그토록~ 그토록~ 부족하고 죄스런 저를,

이토록~ 이토록 사랑해 주십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

부족함과 죄스러움까지 몽땅 내맡기는 것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그로써,

제가 <완전하신 하느님>에 취해 살며,

하느님이 <부족하고 죄스런 저>에 취해 계시다는 말이 어디 될 법한 이야기입니까?

 

그것이 바로 신비이고, 

신비 중의 신비인 것입니다.

 

주님, 부족하고 죄스런 

당신께 내맡긴 모든 영혼들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moowee 13.06.24. 21:03-

 

중생(세속인)이 스스로 도를 닦고(自力) 깨달음을 얻으려면 

이처럼 어렵디 어려운 길을 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타력(他力)에 의지하고, 의탁하고, 위탁하면 

타력에 의해 쉽디 쉬운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력의 <신비>입니다.

 

다같이 한 번 그 신비의 길로 들어서지 않으시렵니까?

 

 

 

moowee 13, 04,14

 

단지, 셀 수도 없이 "하느님의 이름" 을 불렀더니 하느님이 내게로 다가오셨고,

어느덧 하느님이 나를 차지하셨고, 하느님은 나의 것이 되어 주셨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 에 나온 구절 그대로의 체험이었다.

 

이제 하느님은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아니 도저히 잊힐래야 잊힐 수 없는 "단 하나의 의미" 가 되었던 것이다.

 

나도, 참으로 부족하고 죄스런 나도

하느님께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아니 잊힐래야 잊힐 수 없는

"단 하나의 의미" 가 되었음을 나는 확신한다, 아니 느껴진다, 깊이 느껴진다.

 

아~ 이것이 바로 소위 "신비생활" 이라는 것이구나, 신비생활!

아~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신비롭게만 생각하던 신비생활!

 

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은 다 "신비" 또는 "신비생활" 이라고 말하는구나!

알려지지 않고, 보여지지 않고, 느껴지지 못하는 것을 신비롭게 여기는구나!

 

이제 나는 "신비생활" 이라는 말이 전혀~ 신비롭지 않게 느껴진다.

"단 한 가지" 를 빼놓고 말이다, 그게 또 하나의 "신비" 이다.

 

아직 신비롭게 느껴지는 그 "단 한 가지" 란,

"왜? '루이사 피카레타'처럼 거의 죄없이 산 사람이 아닌, 

정~말로 부족하고 죄스런 나에게 까지 찾아와 나를 차지하시고

또 나의 것이 되어주셨나?" 이 의문이 또 하나의 신비인 것이다, 지금 나에게는!

 

아마, 이 신비가 벗겨지면 또 하나의 다른 신비가 나타날 것은 너무나 뻔~하다.

아마 신비생활이 끝나는 날, 그날이 바로 하느님을 만나는 그날일 것이다.

 

 

아마 신비생활이 끝나는 날, 그날이 바로 하느님을 만나는 그날일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한다." 고

그의 편지 <코린토 1서 4장1절>에서 말했나보다.

 
 
 
moowee 2013.07.20. 20:46
 
 
저는 <거룩한내맡김의 영성>을 통해 세상에 하느님을 전해 드릴 뿐이다.
 
흉내쟁이, 따라쟁이인 제가 오늘 제2독서에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흉내 내보고 싶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거룩한내맡김 영성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거룩한내맡김의 영성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크~
 

 

 

-moowee 13.07.22. 15:09-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에 목표를 둔 사람은 자신의 <삶의 중심을 하느님께 두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의 중심을 하느님께 두고 하느님께 집중몰입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친히 그 사람의 모든 계획을 미리 세워주십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다 이끌어 주십니다.

정말, 놀라운 신비입니다.

신비의 삶입니다.

신비입니다.

 

 

 

-moowee 13.10.02. 08:48-

 

하여튼 우리의 하느님은 정말 신비스러운 분이십니다.

 

하느님을 진실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 <지상의 신비>도 천상, <천상의 신비>로 생각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진실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천상, <천상의 비밀>을 지니고 살 수밖에 없는 모양입니다.^-^

 

 

 

-이해욱프란치스코59 14.04.27. 04:53-

 

21세기의 신비체험은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에 의해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모든 영혼들의 삶을 통해 신비스럽다는 체험이 

 

보통의 일상적인 체험, 곧 생활 속에 보편화되어 

신비★가 아닌 ★생활★이 되는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당!

 
 
[★신비체험★도 마찬가지 입니다.~~~]


[21세기의 신비체험은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에 의해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모든 영혼들의 삶을 통해 신비스럽다는 체험이 
보통의 일상적인 체험, 곧 생활 속에 보편화되어 

★신비★가 아닌 ★생활★이 되는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당!]-moowee-

 

 

-moowee 14.05.03. 13:46-

 

사랑하는 하덧사 여러분! 

 

★관상이란★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 

성인이나 관상 수도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신비체험★도 마찬가지 입니다.

 

관상생활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집중몰입하는 생활★이 바로 관상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한 

성직자, 수도자라해서 다 하느님께 집중몰입하는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다른 성직자나 수도자들을 뜯어내리기 위함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알생을 하느님께 봉헌한 봉헌생활자들이 더욱 하느님의 뜻에 맞는 거룩한 생활,

하느님께 집중몰입하는 관상생활을 해 나가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글에서 이 말씀도 이미 드렸지만,

저 자신이 거룩한 사제 생활을 해 오지 못했기 때문에 

더 쉽게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여튼 저는 지금,

세상 한가운데서 세상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분명 저는, 

지금 ★관상생활 중에 있습니다.★ 하느님께 가장 집중몰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모든 례이다(영적 더듬이)가 하느님께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생활을 하는 여러분들이라 해서 

저와 같이 모든 레이다가 하느님께 집중되어 있지 못하거나 말라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이든지 마음만 굳게 먹으면

저와 같은 생활, 관상생활을 해 나가실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도 술 한잔을 하면서도 말입니다, 정말입니다, 정말!

 

모든 것을 버리고 혼자 산속 생활을 한다해서,

그곳에서 저절로 모든 레이다를 하느님께 맞추고

하느님께만 집중몰입하는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 산속 생활 중에서도 세속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산속에서 세상에 더 레이다를 맞추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생활이란,

주변 환경과 상황과 신분이 자신이 바라는 생활(관상 등)을

어느정도는 도와줄 수는 있더라도 전적인 역할은 못하는 것입니다. 

 

하여튼,

자신의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자신의 모든 더듬이(레이다)를 하느님께 맞추고 생활해 나가는데

어느 순간 "번쩍"하고 떠오르는 생각, 즉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각이 바로 

제가 말씀드리온 "靈感"이라는 것이고, 

 

그 영감을 받아 받은 영감에 따라(대로) 살아나가는 생활이 

바로 ★신비생활★인 것입니다.

 

참으로, 참으로, 참으로 

관상생활과 그에 따르는 신비생활이라는 것은 

소수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제가 드리는 말씀대로만 살아가시면 누구나

현대의 가타리나 성녀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moowee 16.05.17. 10:17

 

 

참으로 부족하고 죄스런 인간이라도

자신의 모든 것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고백(인정)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완죤~~~히 100% 다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는 순간,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때부터 비로서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로 찾아오시게 됩니다, 믿으십시오!

 

 

신의 영역이란 다른 말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 나라>를 말하는 것이며

하느님 나라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믿으십시오!

 

 

<루카>

16:16 “율법과 예언자들의 시대는 요한까지다. 

그 뒤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이 나라에 들어가려고 힘을 쓴다. 

 

 

<마르>

4: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마태>

12:28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이 세상에 와 있습니다, 믿으십시오!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들에겐 

이미 하느님 나라가 주어졌습니다, 그 나라의 신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참으로.

 

 

아버지 하느님, 모든 하덧사를 아버지께 맡기오니 이끌어주소서, 

이 지상의 아버지의 나라로!

 

 

 

moowee 17. 06. 11

 

여러분들의 일생에서 정말 이 봉헌, 

여러분의 지상 삶에 있어서 이런 엄청난 은총의 시간은 없어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예수님이 선포하신 이 일성(一聲)이, 

우리는 이 미사를 통해서 가까이 온 하느님 나라를 내 안으로 모셔들이는 겁니다. 

 

봉헌미사로~! 

이제 여러분들은 놀라운 신비스럽지 않은 신비생활을 해 나가시게 될 겁니다. 

 

믿으시고 오늘 봉헌을, 100%의 봉헌을 바치시기 바랍니다

 

 

 

moowee 17.12.24. 06:16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 아닌 ★ 신비의 삶(영성) ★ 거룩한 내맡김 영성(삶) ★ 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