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맡긴영혼은 ■

"거룩함"만이 모든 것의 잣대입니다!

은가루리나 2016. 10. 21. 01:38

 

 

 

14"거룩함"만이 모든 것의 잣대입니다!(14:23)

14거룩함만이모든것의잣대입니다!.m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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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맡긴 영혼은 ■ The abandoned soul
"거룩함"만이 모든 것의 잣대입니다!

지도사제 10.07.05 08:33


우리는 가끔,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옥신각신합니다.
특히, 하느님을 믿는 이들 안에서 그러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에 그것의 판단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
바로 "거룩함"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세상의 지식이나 상식"이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거룩함"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참으로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일어난 모든 일에 있어서 
"거룩함"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세상의 상식"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을 그저 상식적으로 알고 있을 뿐 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로마12,2)



그러면 "거룩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거룩하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테살4,3)

거룩함이란 우리가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사는 것"일 뿐
다른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뜻"을 우리 인간이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뜻에는
"명시(밝을明,보일示) 의지"와 "임의(맡길任,뜻意) 의지"가 있습니다.

"명시(분명하게 가르킴,밝힘)의지"
성경이나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의 오랜 역사를 통해
이미 밝게 드러난 하느님의 가르침을 말하며,
여기에는 십계명, 교회법 등이 있습니다.

"임의(자기 뜻대로 하는 일)의지"
말 그대로, 하느님께 맡겨진 하느님의 의지를 말하며,
임의의지를 더 쉽게 표현하면 
"엿장사 맘대로, 하느님 맘대로"입니다.
엿장사가 엿을 어디서 끊어 줄지 손님은 엿장사의 맘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
우리는 하느님 맘(뜻)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란,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임의의지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오직 한 가지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善"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절대로 "惡"하지 않고 "善"합니다.
그 선함이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거룩한 사람
하느님의 가르침, 하느님의 법, 하느님의 규범, 교회의 법을 
잘 지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가르침은 사람을 속박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참자유"를 줍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에 속박감을 느끼는 사람은
다른 것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른 것이란 바로 "죄"인데 
죄의 주인은 사탄 마귀입니다.

사탄 마귀에 속박된 사람은 자유를 잃게 됩니다.
사탄 마귀는 사람을 기기묘묘하게 잘도 속입니다.
자기의 뜻을 따르면(유혹),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고 말입니다.

40일 단식 후에 예수님 앞에 나타난 
사탄 마귀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참자유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것"이 
"참자유"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을 수 있어도
주인이 따먹지 말라고 하셨기에 따먹지 않는 것이 
참자유입니다.

담배를 필 수 있어도 건강에 좋지 않으니 피지 않는 것이 
참자유입니다.


마약을, 도박을, 도색을 다 할 수 있어도
하느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 참자유인 입니다.

참자유를 얻은 사람은 감옥 속에서도 자유를 느낍니다.
죽음도 고통도 그 사람을 속박할 수 없습니다.

자기 생명만을 살리려
다른 생명을 몰라라 하는 비굴한 짓을 하지 않습니다.
참자유인은 참으로 죽음 앞에 의연한 모습을 취합니다.


참자유인을 속박할 수 있는 분은 오직 단 한 분!
그에게 자유를 허락하신 그를 있게끔하신 그의 주인 되시는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은 자유자재(自由自在)하신 분이시라
그분의 속박은 오히려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그분께 자신의 모든 것을 속박(내맡김)시킬 때,
오히려 사람은 "참자유인"이 됩니다.



참자유인이 된 사람은 
사람을 진짜로 속박하는 "죄"로부터 멀어집니다.

아직도 많이많이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그렇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입니다.

부족한 그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 주시어
뛰어난 "사리분별력"을 주십니다.

거룩한 생활을 하는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보다 
"분별력의 탁월함"입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죄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사는 사람은
뛰어난 지혜의 소유자인 사탄 마귀의 지혜를 넘어섭니다.
하느님께 속박(내맡김)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래서
사람의 거룩함의 정도에 따라 분별력이 크게 다른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의 분별력을 받은 이는
결코 사람을 분별하여 "차별"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식의 높고 낮음이나 직업의 귀천이나 재물의 있고 없음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 모든 이가 다 같은 존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단 한 가지 분별하여 따지는 것이 있다면
사람의 "거룩함"입니다.

거룩하게 사는 사람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차별하게 됩니다.
죄와 거룩함은 천차만별하기 때문입니다.


사탄 마귀의 조종을 받는 사람은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사탄 마귀의 지혜가 그를,
그의 보잘것없는 지식을 잡아먹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의 우두머리, 
사탄 마귀의 지혜에 그의 알량한 지식이 잡혀먹혀
사탄 마귀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의 
일어난 모든 일의 판단의 기준은 "거룩함"뿐입니다.

하느님이 보실 때,
어느 것이 더 하느님의 마음(뜻)에 드시겠는가를 따져야 합니다.

세상의 상식과 지식을 앞세우거나, 
어떤 사람을 내세우거나,
과거를 들먹이지 맙시다.

하느님의 지혜가 담긴 성경말씀을 앞세우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간 성인을 앞세우고,
지금 현재를 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나간 과거를 들먹이지 않습니다.
과거에 자신이 엄청나게 거룩히 잘 살았어도
지금 현재 그렇지 못하면 입니다.

과거에 자신이 하느님 앞에 엄청난 죄인이었어도
지금 현재 거룩히 잘 살면 끝입니다.

자신의 모든 과거를
자신의 주인이신 한없이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이미 다 용서해 주셨는데
누가 감히 하느님이 용서한 이를 또 판단합니까?

하느님은 시작도 마침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잠시 지나가는 현세에서 
인간끼리 서로 잘잘못을 너무 따지지 맙시다.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은 오직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느님처럼 과거, 현재, 미래 등의 시간이 없는 
"영원"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영원을 기다리는 이들답게 
과거를 묻지 말고
오직 영원을 허락받을 수 있는 조건인 
"거룩함"만을 생각하며
이 세상을 지나가는 "나그네"로 살아갑시다!

나그네는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주께 내맡깁니다.

그날그날 필요한 것만을 소유합니다.
그날그날 필요한 것은 그날의 주인께서 채워 주십니다.

"존재의 가벼움"을 하루하루 느끼며
이 세상에서부터 "존재의 근원"과 함께 "참존재"되어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게 삽시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로마12,2)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테살4,3)


<마태 4장>
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2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



*  *  *



< 하느님의 뜻에는
"명시(밝을明,보일示) 의지"와 "임의(맡길任,뜻意) 의지"가 있습니다.

"임의(자기 뜻대로 하는 일)의지"란
말 그대로, 하느님께 맡겨진 하느님의 의지를 말하며,
임의의지를 더 쉽게 표현하면 
"엿장사 맘대로, 하느님 맘대로"입니다.
엿장사가 엿을 어디서 끊어 줄지 손님은 엿장사의 맘을 잘 모릅니다. >



[ 창화살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14 바빠야 산다?
2010. 06. 16.

하느님께 내맡기는 삶은 느림도 바쁨도 아닌, 
하느님 맘대로, 곧 엿장수 맘대로의 삶이다. 
하느님께 내맡겨진 이는 
하느님께 당신 맘대로 하시라고 자신을 내드렸고, 
엿은 엿장수 맘대로 하라고 엿판 위에 놓여진 셈이다. ]



【 ★거룩한위탁
4. p.36-40 제 1편 제 2장
천주의 명시의지(明示意志)와 임의의지(任意意志)) ②

천주의 명시의지란, 
미리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천주의 의지이며,
이것은 사상의 통상기호인 
언어, 문자 등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명료히 알려진다.

천주의 임의의지는 
사건의 진전에 따라 나타나 오는 것인데,
이것은 보통 예견하기 어려우며,
더구나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도
천주의 뜻이 명백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 ★거룩한위탁
1-2장 하느님의 명시의지(明示意志)와 임의의지(任意意志)
지도사제 12.06.12 18:48

(동아 새국어 사전 :
명시 - 분명하게 가르킴, 밝힘. 임의 - 자기 뜻대로 하는 일)

하느님의 뜻은
우리에게 이미 다 명확하게 밝혀진 하느님의 뜻과

아직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는
반드시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전자의 명확히 드러난 하느님의 뜻을 '명시의지'라 하고,
후자의 아직 밝히 드러나지 않은 하느님의 뜻을 '임의의지'라 한다.


하느님의 명시의지는
언어나 문자등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명확히 알려졌다.
성경이나 성교회의 법규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비하여
하느님의 임의의지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체의 일,
즉 질병, 죽음, 고뇌, 위안, 역경, 행운 등 예견할 수 없는 모든 일 속에서
더나아가
우리 자신이나 다른 이의 죄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아내야 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임의의지는 사건의 진전에 따라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보통 예견하기 어려우며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하느님의 뜻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임의의지)이 명백하지 않을 때에는 가능한 한
하느님의 명시의지에 자신을 일치시키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 


. . . 


우리가 보통 '하느님 뜻, 하느님 뜻'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 '임의의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 "하느님의 뜻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라고 말한다면
바로 그것이 하느님의 임의의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소위, 엿장수가 엿을 끊어 주는데,
때로는 기분에 따라 많이 끊어주기도 하고
때론 적게 끊어주기도 하는데
엿장수에게 왜 엿을 이 번엔 적게 끊어 주었냐고 따진다면
엿장수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왜! 엿장수 마음이다, 왜!"

엿장수의 마음, 뜻이 엿장수의 '임의의지' 입니다.
엿장수가 엿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사는 사람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그렇게 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서면,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나서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그다음부터 우리의 신앙생활은 청산유수입니다.
큰 폭포를 만나게 되어도 물은 흘러갑니다, 저 바다로 말입니다. ] 】



[ ★하느님섭리에내맡김(韓)
제4장 - 04 내맡김의 상태로 불림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무화 17.02.16 23:34


{ 인간적인 표현으로는 하느님의 뜻이 작용할 때에는
그것이 뜻하지 않게 우연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

{ 우리가 <수행해야할 결정적인 의무들을 부과하는 하느님의 뜻>의
다른 면과 구분하기 위해
<순수한 섭리(攝理, Providentia)라 불리는 하느님의 뜻>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

{ 그들은 <하느님과 그분의 뜻 외에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들의 명백한 의무를 진실되게 끊임없이 이행하는 것으로
만족해합니다. }

{ 은혜를 받은 이 영혼에 있어서
<하느님의 뜻은 모든 것에 대한 법이고 최고의 기준>이며
분명하고 확실한 길이기도 합니다. }

{ 우리는 지금 현재 요청받고 있는 모든 것을
능동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그 외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수동적으로 내맡겨 드리고
하느님이 권고하시는 대로 평화 중에 때를 기다리면 됩니다. } ]



* * * * * * *



< 이러한 하느님의 가르침은 사람을 속박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참자유"를 줍니다. >


[ 창화살 
제2부 내맡김의 비법과 진리
18 ‘거룩한 내맡김 영성’이 왜 탁월한 영성인가?
2010. 04. 16.

가끔 하느님께 내맡기는 것을 ‘구속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엄청난 오해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오히려 서로에게 구속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로에게 묶이고 구속되는 것이 오히려 ‘자유로운 삶’이다. ]



* * * * * * *


<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참자유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것"이 
"참자유"입니다. >


[ 창화살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06 자유 의지란?
2010. 06. 02.

사랑은 주고받는 것(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이다.
하느님께 정말로 귀한 자유 의지를 받았으면
하느님께 그 자유 의지를 돌려 드려야 한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다 하는 것’이 자유 의지가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유로이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 의지다.

자유 의지란 쉬운 말로 ‘내 뜻’이다.
내 뜻대로 살지 말고 ‘하느님 뜻’대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하느님이 주신 자유 의지로 하지 않는다.
하느님께 자유 의지를 돌려 드렸기에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 주신다. ]



* * * * * * *



< 부족한 그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 주시어
뛰어난 "사리분별력"을 주십니다.

거룩한 생활을 하는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보다 
"분별력의 탁월함"입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죄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 창화살
제1부 거룩한 내맡김 영성
12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은?(3)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로 무장시켜 주신다
2010. 01. 04.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내맡긴 영혼들을 당신 도구로 쓰시기 위해서,
날이 갈수록 그들의 영을 열어 주시어
당신 지혜로 완전하게 무장시켜 주시며,
성령께서는
하느님 지혜로 무장된 영혼에게
탁월한 ‘통찰력’을 선물로 주시어
어떤 일이나 상황에 대해서 뛰어난 ‘영적 분별력’을 갖게 해 주신다. ]



* * * * * * *



< 거룩하게 사는 사람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


[ 제3부 허무맹랑한 내맡김의 영성
10 관상가가 되지 맙시다?
2010. 06. 12.

‘사랑’만이, ‘뜨거운 사랑’만이 하느님을 소유할 수 있다.
‘거룩한 사람’만이, ‘아주 거룩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소유할 수 있다.

‘사랑’과 ‘거룩함’은 같은 말이다.
‘성인聖人’이란
하느님과 그분이 만드신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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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맡긴 영혼은 ■ The abandoned soul
Re: "거룩함"만이 모든 것의 잣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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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목.정
환영합니다.

지도사제 10.09.21 08:43


지금, 마목정에 초대 받지 못하신 사실에
"차별 대우"를 받으신 느낌을 갖고 계신 하덧사도 계시나,
어쩌면 그 차별은 어느 곳에서나 필요한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신학교나 수도원에서도 
성직자와 수도자의 양성에 있어서

영성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인성적인 차원에서도 일부러 차별을 두어
한 개인의 전인적(靈肉) 성숙을 위해 교육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차별은 한 사람에 대한 부정적 차별이 아니라, 
긍정적 차별이며

사실은 
"차별"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인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되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시간이 곧 과정"인 것입니다.

시간이 없이는 즉 과정이 없이는 
"되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되어지는 과정을 "교육"이라고도 합니다.
교육은 차별을 통한 "평등"입니다.
평등은 인류의 공동선입니다.

따라서, 차별은 
"비인간적인 차별"이 아니라 "인간적인 차별"입니다.
"비인간적인 차별"은 "죄악"입니다.


"인간적인 차별"은 
"善을 지향"하는 차별이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차별은 
"비인간화"된 인간을 "인간화"된 인간으로 개조시킵니다.

그래서 차별이 필요한 것입니다.
차별은 교육이요, 
교육은 시간이 필요하며 
시간이 곧 과정인 것입니다.

차별에 의해서만, 
교육에 의해서만, 시간에 의한 과정을 통해서만
한 존재가 존재의 완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목정은 영적 성숙을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앞으로 우리 중에 
엄청난 영적 성숙을 경험하는 영혼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소위 "7궁방 수준"의 영혼이 등장하게 된다면,
그 영혼과 갓 세례 받은 이와의 영적 대화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1코린 13,11)

아이와 어른과의 관계는 "차별"이 아닙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장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이 바로 "교육"인 것입니다.

교육 없는 과정은 "닭장 속의 닭"과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닭장 속의 닭의 미래란 무엇입니까?


차별없는 성장은 "죽은 성장"입니다.
교육 없는 성장이란 무엇입니까?

교육 없이 올바른 성직자로, 수도자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 ]





[ 영성교육 (마처예함)
산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

101.
신념과 확신에 찬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신의 의지에 의해서 행한다.

그 자신을 신의 손에 쥐어진 악기로 여긴다.
★그는 이 삶 속에서 오히려 이 모든 속박으로부터 풀려난다.★

★「신이여, <나>라는 이 악기를 통해서
당신의 뜻이 남김없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그러나 신을 모르는 사람은 말한다.
「그것을 해 낸 것은 바로 나다.」●


102.
신에 의해서 축복받지 않으면,
비(卑)금속이 현자의 돌에 의해서 황금으로 변질되지 않으면,
거기 언제나 「나는 행위자」라는 환각적인 비전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환각적인 비전이 멈출 때까지
「나는 좋은 일을 했다」 「나는 나쁜 일을 했다」는
이 이원적(二元的)인 차별심이 계속될 것이다.

마야란 바로 이 이원적인 차별심이다.
이 세계가 계속 유지되는 것은 이 이원적 차별심 때문이다.


그러나 비드야 마야,
★저 신성한 힘에 의지하는 사람은 신과 연결될 것이다.★

그만이, 신을 체험한 사람만이,
홀로 이 마야의 바다를 건너간다.

★「신만이 진정한 지배자다.
신과 연결되지 않고는 우리는 아무일도 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