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맡긴영혼은 ■

모든 일은 "知彼知己"로부터! ■ 내맡긴 영혼은 ■

은가루리나 2016. 10. 28. 00:22

 

■ 내맡긴 영혼은 ■
모든 일은 "知彼知己"로부터!

moowee 10.11.05 10:58


모든 일의 시작은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상대만을 알아서도 안 되고, 나만을 알아서도 안 됩니다.
자신과 상대를 모두 다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나도 알아야
그 관계가 올바로 형성되고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하느님이 이러저러한 분이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해서
우리가 하느님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은 절대로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 알고 얻게 되는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 55,8~9)


인간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의 하느님에 대한 지식,
즉 "神學"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하느님이 직접 당신을 알려 주셔야 하는 것"뿐입니다.


하느님은 그 오랜 세월을 수많은 예언자를 통하여 당신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알량한 지식이 그것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분명히 당신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가르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그 낮디낮은 머리로 무엇을 자꾸 생각해내어
인간의 방식으로만 하느님을 알려 해왔던 것입니다.

이에, 너무도 답답해하시던 하느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환히 다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입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사랑이십니다.
사랑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아는 지름길"입니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면
하느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십니다(知彼).
또한,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면
저절로 "자신에 대해서" 올바로 알게 됩니다(知己).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靈眼이 열려
"자신이 얼마나 미약하고 미천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또, 하느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그분의 지혜가 얼마나 높으신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을 먼저 사랑하면 "知彼知己"가 가능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자신의 편지들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먼저 강조하셨고
또 인간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찾아 얻을 수 있지만,

저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더 먼저 가능해질 때,
인간에 대한 사랑은 저절로 뒤따라오게 되는 것이며
더 쉬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올바로 알려면 먼저 하느님을 아는 것이 먼저이고,
하느님을 알려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며,
하느님을 사랑하면 하느님을 알게 되고,
하느님을 알게 되면 그때 비로소 자신의 본 모습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의 인간은 참으로 부족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아마, 현자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친 외침이
바로 그 말이 아닌가 합니다.

하느님 앞의 인간은,
엄마 앞의 "똥싸개 젖먹이"보다 못한 존재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미약하고 미천한 우리를 "철부지" 또는 "어린이"로 대접해 주셨습니다.
엄청난 어른 대접을 해 주셨던 것입니다.


똥싸개 젖먹이가
"엄마의 사랑"을 자기의 지식, 생각, 경험으로 알 수 없습니다.

엄마의 사랑을 아는 방법은
그저 "엄마의 사랑"을 통해서 "느낌"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느낌"입니다,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가슴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체온과 심장의 두근거림과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몸으로 느끼며
엄마의 사랑을 알아 갑니다.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된 똥싸개 젖먹이는 "엄마"만을 찾습니다.
똥싸개 철부지의 엄마에 대한 사랑의 표현은 "엄마만을 찾는 일"입니다.
무조건 엄마만을 찾습니다.

똥을 싸도, 오줌을 싸도, 조금만 배가 고파도,
조금만 추워도, 조금만 더워도,,,,,

엄마는 무조건 자신만을 찾는 자신의 똥싸개 젖먹이에 대해
더욱 큰 사랑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 엄마보다도
우리의 하느님은 무조건 당신께 모든 걸 내맡겨 매달리는 내맡긴 영혼들을
더욱 사랑해 주시며 행복을 느끼십니다.

"여인이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사49,15)


엄마와 똥싸개 젖먹이와의 대화법은 오로지 "느낌"입니다.
엄마와 똥싸개 젖먹이는 서로 "척"하면 "착"입니다.

생각이 필요 없습니다,
지식이 필요 없습니다,
경험이 필요 없습니다.

느낌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존재만이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앞의 인간은 하느님을 느껴야 합니다.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면 비록
그의 몸은 살아 있더라도 영은 죽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마태22,32)


여러분!
하느님을 느끼십니까?
하느님을 어떻게 느끼십니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느끼십니까?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느끼십니까?
당신의 배우자나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뜨겁게 느끼십니까?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배우자나 자식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맡긴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느님을 정말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못합니까?
그렇다면, 무조건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만을 애걸하십시오.
"사랑하올 저의 주인님, 제가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모든 일은 "知彼", "知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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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이사55,8-9)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사49,15)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마태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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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 2-28 (1889년 6월 2일)

자기 인식과 하느님 인식

4
"내가 한 영혼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은혜는 그 자신을 알게 하는 것이다.

자기 인식과 하느님 인식은 서로 병행한다.
너는 너 자신을 아는 정도만큼 하느님을 알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영혼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하느님 안에 있는 이 그림자로 변화되고,
그의 모든 행위도 하느님 안에서 하게 된다.

5 그러므로 이와 같이 하느님 안에 있는 영혼은
(다른 무엇을) 보거나 탐색하거나 말하는 법 없이 하느님과 함께 걸을 뿐이다.

요컨대, 마치 죽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허무를 깊이 알고 있어서
혼자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하느님 말씀의 끌어당기는 힘에 이끌려 무조건 따라가기 때문이다."



< 2-88 (1899년 10월 28일)

"나는 누구고, 너는 누구냐?"

2
나는 무한한 것과 유한한 것,
모든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 사이의 무한한 거리를 느껴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한층 더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의 사악함과
그들이 걸어온 질퍽한 진창길이었다.

내 영혼은 마치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그 더러운 진창 속에서,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구더기들과 다른 많은 것들과
그 징그러운 꿈틀거림들 속을 자맥질하고 있었다. >



moowee 18.02.05. 08:25

<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 >은
하느님 앞에 벌거벗지 못한 자신을 ★벌거벗기는 작업★입니다.

자기를 벌거벗겨야
자신의 민몸, 자신의 본 모습, 지 꼬라지를 올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자신을 벌거벗겼을 때,
그때 드러나는 자신의 꼬라지가 얼마나 더럽고 비참한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ㅠㅠㅠㅠㅠㅠ


어느 누구도
교황도 추기경도 주교도 모무모두
오랜세월 자신이 걸쳐 입던 내 뜻의 더러운 옷을 활짝 벗어버려야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느님과의 만남이 관계가 시작됩니다.>

벌거벗읍시다, 우리 모두!
더럽고 교만함에 찌든 ☆내 뜻☆의 겉옷을,
악마취나는 ☆내 뜻☆의 속곳을!

그리하여
하느님이 입혀 주시는 새 옷, ★하느님 뜻★을 의복으로 차려 입고
☆비이원론적 사고의 소유자☆로, ☆하느님의 참자녀☆로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갑시다, 이땅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