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기도

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 -요안느 베르니에 루비니 지음-

은가루리나 2016. 11. 5. 08:41



<하느님 안에 숨은 생활>



제2권. 모든 생활 환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내외적 동일화




7. 가난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숨은 십자가 생활을 본받음으로써 

그분을 닮음에 대하여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특별한 취향을 갖게 마련이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재산, 쾌락, 기쁨이나 명예에도 관심을 갖지 않으시고,

가난과 멸시와 십자가만이 그분께 매력이 있었다.>

<본성으로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게서 아무런 즐거움도 느낄 수 없지만>

은총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취향을 알게 해주므로 

우리는 그분이 좋아하시지 않는 일에 대해서 불쾌와 혐오감을 가지며, 

그분의 지혜가 좋다고 여기는 모든 것에 기쁨을 갖는다.

본성을 꺽는 것과, 자기 이탈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들이다.

만일 한 영혼이 이러한 데에 맛들이게 되면 

이런 음식으로 배불리고 하느님의 사랑과 함께 만찬을 나누는 것이 

그의 기쁨이다 (요한 묵시록 3:20 참조).



오, 눈뜬 장님과도 같은 세상이여!

너는 가난하고 멸시받은 예수님 생애의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그분의 가르치심과 교의만이 그 홀로 진정한 빛이시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은 헛된 암흑과도 같다.

너의 생각과 희망과 소원, 너의 두려움과 일거일동이 혼란과 어두움이로구나.

네가 빛 가운데 걷지 않기 때문에 걸음걸이마다 발을 헛디디게 되며,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너를 빛 가운데로 인도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지상에서 모든 빛의 근원이 태양이고  또 태양 없이는 암흑이 지배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모든 신적 빛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빛으로 비추이지 않는 곳과 그분의 가르치심이 알려지지 않은 곳은 헛된 암흑의 세계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영광과 쾌락과 부유함은 참으로 바람직한 재산이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사람은 다 믿을 수 없다”(시편 115:2) 라고 대답하겠다.

그리고 나는 가난과 고통과 멸시가 진정한 재산이라는 것을 말과 표양으로 보여주고

또한 그리스도인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경외하고, 사랑하고 찾아야 하는 영원한 진리에 매달리겠다. 

만일 초자연적인 빛의 크고 힘찬 줄기가 그의 마음 속으로 스며들지 않는다면 

그 누가 이 일을 “좋이 살피며… 깊이 깨칠꼬?”(시편 106:43)

이 빛 가운데서 진리와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은 복되도다!


내가 한번 밤중에 깨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떠나라. 떠나라. 피조물이여, 나에게서 멀리 떠나가라!

나를 오직 하느님께 맡기고 내 주위를 떠나가다오.

궁핍과 가난, 멸시와 고통아, 어서 오너라.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행원들이니 나는 기꺼이 너희들에게 팔을 벌려 환영하노라.”

<나는 즐거이 온갖 문명의 이기(利器)를 포기하고 사용하지 않겠다.>

<아름다운 집들과 정원들과 다른 외적 향락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주해야 할 곳에 세상과 본성의 정신이 깃들도록 돕는 것이다.

그분의 가난과 멸시와 고통과 그의 수행원들이 가장 즐거이 머무는 곳은 초라하고 누추한 움막이다. 

예수님의 정신은 세상과 본성이 만족하는 그 어떤 것도 허용할 수가 없다.>


내 영혼아, 용기를 내어라!

<너는 고통과 가난을 떠나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슬퍼하지 말아라! 

너의 유일한 즐거움은 네 하느님을 현양하는 것이며,

네가 가장 사랑하는 그분께 매달리는 것이다.

네가 그분을 닮는 것이 그분의 큰 기쁨이다.

용기를 잃지 말아라! 한 걸음도 여기서 뒤로 물러서지 말고,

너를 박해하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지 말아라!



<하느님 마음에 드시는 일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들에게는 사악한 일이 생길 수가 없다.>

그러나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자기 마음에 드는 대로 완전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참으로 가련한 일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은(요한 14:6 참조)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며

이 길은 가시밭길이다.

이 진리는 자아포기와 우리의 무가치함을 깨달을 때 발견하는 것이며,

이 삶은 완전히 초자연적인 것이다.

예수님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히브리 13:8 참조).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기 위해 모든 것에서 벗어남은 얼마나 고귀한가!

나는 예수님께서 친히 걸으시고 또 당신을 따르도록 나를 부르시는 이 길을

성실하게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언젠가 완전히 헐벗게 되면 나는 기쁘게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새와도 같이, 사냥꾼의 올무를 벗어났으니,

올무는 끊어지고 우리는 살았도다”(시편 123:7).

그리하여 나의 영혼은 거룩한 자유와 하느님의 순수한 사랑에로 들어가게 된다.

예수님의 숨은 생활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왜 내가 이 깊은 감명에 저항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각기 그들의 소명과 직업에 따라 공공이익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더라도,

나의 소명과 몫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불타 

기도 중에 인내하고 가난하고 천대받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오, 예수님! 내 마음의 벗이여,

내가 당신의 삶을 영위하도록 이 마음 속에 당신의 성령을 보내 주십시오!

당신의 자기비하는 나에게 얼마나 위대해 보이는지요!

천대받는 당신은 얼마나 훌륭하며 

당신의 가난은 얼마나 부유하고,

당신의 십자가는 얼마나 감미롭고 사랑스러운지요!

내 마음은 온 힘을 다 하여,

이런 것들을 그토록 사랑하게 해 주신 당신의 성령을 소유하기를 갈망합니다.>


하느님께로 향하는 첫걸음은 세상의 보화와 영예와 쾌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에 애착을 갖는 동안 결코 우리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만 마음이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피조물에 마음이 사로잡히는 동안, 마음은 하느님을 완전히 차지할 수가 없다.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만일 그것을 우리에게서 빼앗아가 버린다면 

우리는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하도록 하자.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필수품만으로 만족해한다.

많은 사람들은 

갖게 되면 점점 더 많이 갖고 싶어하며, 허영심을 기르는 자료를 항상 찾는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그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분투 노력한다.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그분의 의(義)를 먼저 구하고 영원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이러한 것은 얼마나 합당하지 못한가!

세상사의 손실에 대해 조금이라도 슬퍼하는 사람은

아직도 자신의 마음 속에 세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필요한 식량과 의복을 갖는 것만으로 만족하게 여기자!

그 외에는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면서 감미로운 현존을 맛들이자! 

이것으로 만족하자(1디모테오 6:8 참조). 

이것으로 내 신분에 맞는 생활을 위해서 충분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데에는 충분하다. 

모든 것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해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현세의 삶은 곧 사라지고 만다.

부유한 사람 역시 가난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빠른 세월 속에 묻혀버린다.

세속적 영화밖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마치 짐승과 비슷하다(시편 48:13 참조).

영과 진리로 하느님께 봉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먹고 마시기에 급급한 생활과 걱정에서부터 떠나야 한다.


세상 사람들의 많은 행위들은 얼마나 우매한지!

그들은 허영심을 뒤쫓고 허무맹랑한 일을 밥먹듯 한다.

얼마나 무가치하게 그들의 시간을 집과 정원과 옷과 가구와 방의 장식과 같은

자질구레한 일로 소일하는지!

우리의 재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다(마태오 6:21 참조).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생각도 있다.

하느님이 우리의 보화이시라면 우리의 사랑과 생각도 그분 곁에 있어야 할 것이다.

세상 일에 마음이 헷갈리지 않은 영혼은 완전히 하느님을 위해 있으며,

그분의 사랑안에서 그분만을 위해서 산다.

만일 영혼이 육신적인 것과 세상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고, 걱정을 한다면

또한 어떤 손해로 인해 불안과 초조, 공포심을 갖고 어떤 이익 때문에 기쁨을 갖게 된다면,

이것은 마음이 아직 피조물에 집착해 있다는 표시이다.

이러한 영혼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는 항상 재산과 영예에 너무 많이 집착되어 있기에 자신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가난과 곤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우리에게 훨씬 더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은총이 필요하며

이 가난과 곤궁을 사랑하고 실천하는 것은 더욱 위대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성은 우리를 끊임없이 그의 굴레로 속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피조물을 적게 가질수록 상대적으로 조물주는 더욱 많이 소유하게 된다.

왜냐하면 어떤 것을 소유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거기에 집착해 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곳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에서 완전히 이탈된 고귀한 가난은 우리 마음에 가장 고귀한 순결을 갖다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에서 이탈해서 가난해지도록 힘쓰자!

만일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린다고 해도 진심으로 기뻐하자!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은 피조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하느님에 관해서는 온전히 텅비어 있는 상태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빈궁이다.

마치 영원한 죽음이 영원한 삶에 누릴 영광에 목말라하는 영혼 상태를 말하듯이

영혼에게서 은총의 삶을 앗아가고 본성에 따라서만 살아야 한다면

영혼은 이미 이 세상에서 지옥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진정으로 가난한 영혼은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밖에는 마음에 없다.

만약 영혼이 피조물을 완전히 떠나는 것이 그분의 뜻이 아니면

그는 하느님 외에는 피조물 안에서 아무것도 찾지 않고 맛들이려 하지 않는다.


하느님과 단 둘이 있는 것이 가장 고귀한 가난이며 동시에 가장 큰 부귀를 누리는 것이다.

이 비밀을 깨달은 영혼은 이웃과의 어떠한 분쟁도 쉽게 일으키지 않는다.

그는 하느님만을 원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웃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한다.

아니면 그분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을 위해서 

그분이 특별한 배려를 해 주시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는가?

만일 의심한다면 주님께서 돌을 빵으로 만드실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한 마귀가

우리에게 창피를 줄 것이다.

만일 우리가 가장 적막한 사막에 있게 된다면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져다 주실 것이다.






'끊임없는 기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끊임없는 기도와 영안의 삶 >  (0) 2017.06.14
11-80   (0) 2016.11.18
신부와 신랑  (0) 2016.10.25
신앙선조들은 하루를 (구산성지)   (0) 2016.10.16
중세 후기  (0) 2016.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