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신부님 강론

2011년 12월 27일 무위 신부님의 강론

은가루리나 2016. 11. 6. 01:07



엊그제 기쁜 "성탄 대축일"이 지났습니다.  

바로 이어 26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이 지났고, 

오늘은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이며,  

내일은 "죄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입니다. 왜 일까요?"


성탄절 뒤에 이러한 축일을 지내는 것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탄생 축일은 중요한 축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은, 

자신의 것을 생명을 다바쳐 내들여,

바로 맡겨드리는 것이 그들의 삶이며 영성입니다


돌아 가신 후의 첫 순교자, 스테파노 성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자들이 

예수님처럼 자신의 생명을 다 바쳤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요구하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요한이 백수를 누리며 오래산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도 하느님의 뜻입니다.

태어나자 마자 죄없는 생명이 왜 죽었습니까? 그것도 하느님의 뜻입니다.

요한이 오래 살게된 것도 예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사도요한이 예수님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의 뜻을 전하라고 오래 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삶을 사는 이유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의 묵상을 쓰신 신부님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신부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사 후 다시 읽어 보시면 아주 훌륭한 묵상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면 나 자신을 내려 놓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천주교 신자에게는 내려놓는다는 표현보다는 맡긴다는 표현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데나 내려 놓으면 안되고,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 것이므로, 하느님께 내려 놓아야 합니다.

즉, 비운다는 것은 하느님께 맡긴다는 것입니다.

아무데나 내려 놓으면 마귀가 가져갈 수 있으므로,  

하느님께 비우고, 내려놓고, 맡겨야 됩니다.


묵상 끝의 말씀도 공감합니다.

성경 공부를 백날해도 소용없는 건 사실입니다.

진실된 말씀은 하느님을 체험하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옛날에는, 19C 가까이 까지도 성경을 몰랐습니다. 

성경을 볼 수도 없었고 , 아예 막아 버렸습니다.

유럽 성당에 있는 그림들은 성경을 설명해 주는 하나의 교과서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기독교 신자들에 비해 , 

천주교 신자들이 성경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매일미사가 생겨 많이 나아지기는 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성경을 백날 공부해도 알 수없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사도를 너무 사랑하였으므로 당신의 모친까지 맡겼습니다.

믿음이 가고 사랑하는 요한 사도에게 가장 중요한 모친을 맡긴 것입니다.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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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신앙의 해, 삼위일체 대축일(2014, 06, 15)



저는 '비움'과 '내맡김'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비움'이라는 말과 비슷한 말이 있는데 저는 그것을 '내려놓음'이라 하고 싶다.


어떤 어려움에 빠졌을 때 흔히들 하는 말이 바로 '내려놓으라'는 말이다.

"여보게 이 사람아, 이제 제발 그만 내려놓아."라고들 말이다.

반드시 무엇을 비워야만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비움은 곧 내려놓음이요, 내려놓음은 곧 비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비움도 내려놓음도 다 그 '주체'가 남아 있는 것이다.


비운 다음에도 비운 사람이 남아 있고

내려놓은 다음에도 내려놓은 사람이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 번 비운 다음에는 또 채울 수가 있게 되며

한 번 내려놓은 다음에도 다시 채워지면 또 다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맡김',

특히 하느님께 완전히 위탁하는 내맡김, '거룩한 내맡김'은

한 번 완전히 내맡기면 그것으로 그만 끝이다.


내맡기는 주체가 아무리 부족하고 죄스러운 주체라 하더라도, 

맹세 수준의 굳은 결심으로 한 번 하느님께 내맡겨,

하느님이 받아주시기만 하면 곧 그 주체가 하느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맡긴 주체가 이 세상에 남아 있다하여도

그 사람은 이미 하느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데레사 성녀나 이냐시오 성인이나 후코 성인의 기도들이

바로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내용의 기도들이다.


완전한 내맡김, 다른 말로 '거룩한 내맡김'은 곧 주체가 "無"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내맡김'과 '비움'이나 '내려놓음'의 큰 차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