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신부님 강론

2월 15일 (수) 우리신부님의 강론

은가루리나 2016. 11. 6. 01:32


+찬미 예수님+



제가 엊그제 친구 신부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일본으로 가는 것이 우리사이에서도 화제거리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갑자기?"  "일본으로 가게 되었나?"

그런데, 그에 대한 답은 너무 간단해요. 말씀드렸듯이

"하느님의 뜻이야."   "하느님의 뜻이야."

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을,  신부들이 못 알아들어요.


과거의 저!  어제 저의 모습이예요.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뜻이라는 말, 그 말조차도, 과거에는 잘 쓸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뜻뿐만 아니라, 

하느님에 관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입에서 나올 수가 없어요.


제가 왜 이렇게 외치냐면은,  

제가 과거에 하느님을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외치고,

제가 잘났다고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저는 과거에 하느님을 사랑할 줄 몰랐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제가 하고싶은 대로, 자기 뜻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지난 주에 말씀드린 대로  저를 본받으십시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1코린 11,1)

저와 여러분들과는 똑같았습니다.

신부고 뭐고 소용없습니다.

암만 하느님에 대한 신학을 공부해도,  공부가 하느님을 알려드리지 못합니다."  


영적 성장에는 그 단계가 있어요.

맨~날 무엇을 공부하고, 이걸 공부하고, 저걸 공부하고, 암만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하느님을 알아들을 수 없는 노릇이예요.

마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장님의 눈을 뜨게해 주는 과정이 계세요.

처음에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뭔가 나무가 걸어 가는 듯 보입니다. 

이정도만 해도! 이정도만 해도!  아주 다행이예요.

나무가 걸어가는 다니는 지, 뭐가 걸어 다니는 지

뿌옇~게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 하는 것예요.

그래서 하느님 체험이 중요한 것이예요.


오늘 제1독서

"완전한 법 곧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완전한 법, 하느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모~든 게 뿌옇게 보여요.

뿌~연 상태에서 하느님을 뜬 구름 잡듯이, 자기 관점에서 바라봐요.

자기 관점이란 것은, 거울을 바라보는 거예요.

오늘 야고보사도가 말씀하신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실행을 할 수가 없죠.

자기가 생각하는 관점에서, 모든 걸 생각하니까

아! 하느님은 이렇구 저렇구,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체험을 해야 됩니다.

하느님 체험이란, 깨달음이예요. 

한번 깨달으면, 하느님이 계~속 깨달음을 주셔요.



정말 제가 소신학교 때부터, 대신학교 때부터 만나온,

제가 좋아히고 사랑하는 친구들, 우리 동기신부들을 만나면, 너무 안타까습니다..

과거의 저와같이 하는!

저는 특별나서 이런 얘기를 하느냐?

아니예요.

하느님이 저에게 병을 주셨고, 또 저를, 모든 것을 포기하게끔 만드셨어요.

근데 저를,  이세상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드셨고,  어떻게 이끌어 주셨냐하면은

화살기도의 길로 이끌어 주셨어요.


참~ 놀라워요.

제가 빈 말씀이 아니예요.

우연히 어떻게 이렇게 화살기도를 체험한 것이 아니라, 지리산에 들어가서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나도 정말 한번 하느님 체험을 해보자!` 해갖고 들어갔는데

저의 계획을 완전히,

기도문 5가지 종목을 갖고, `이걸 지리산에 들어가서 한번 해보자!` 했는데,

그것을 다 날려 보내셨어요.

그리고 저를 이끌어 주신 것이 화살기도였어요.

그래도 작심을 하고 지리산에 들어가서, 언젠가 말씀드렸지만, 

제일 해보고 싶은 것이 관상기도였어요.

관상기도 들어가기 위한 향심기도. 향심기도를 시작해서 묵상, 관상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아예, 깨끗이 깨끗이, 그냥 화살기도가 나오게끔 만들어 주셨어요.


이 화살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리고 별거 아니예요.

야~ 역시 하느님은 단순하신 분이예요

하느님은 하나이신 하느님이예요.

복잡함! 그 속에는 ,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곳, 어렵다고 하는 곳에는 하느님이 없어요.

제가 드리는 말씀, 정말 진심이예요

어렵게 어렵게 공부하면 뭐하고,,    공부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예요.

하느님만 믿고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그 화살기도를 하면

하느님을 만나요. 누구든지!  단순한 거예요.

그러면 그 다음부터 

하느님이 공부를 시 켜 주 십 니 다!  내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는 내가 공부를, 하느님을 찾아서 했지만, 그러니까 얼마나 어두워요? 모든 것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여러가지 종목을 섭렵을 합니다.

자기 관점에서 인간적 관점에서 거울을 비추듯이..


하느님의 법이란 것은 하느님이예요.

완전한 법, 자유의 법, 자유를 주는 법!  

법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체험하면, 하느님이 하나~하나 그때부터는 다 가르쳐주십니다.

너 이거 공부해라, 저거 공부해라,  이게 필요하다.


왜 이천년 역사 동안에,  이걸 사람들이 모릅니다.

제대로 된 쉬운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

그동안 정말입니다. 이거!

그러니까 이 방법, 저 방법, 

자기가 깨달은 자기의 거울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려고 하게 되는데.

얼마나 어렵습니까?

불교가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깨달은 사람을 통해, 그사람의 관점에서 알려 줍니다.

그러니, 뿌~예요. 모든 것이!  명확한 모습이 보이지 않아요, 하느님의 모습이!

나무같기도하고 걸어다니는 것이, 사람인 지 뭔지 몰라요.

하느님을 만나면,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예요.

제가 여러분들께 말씀드릴 기회도 별로 없어요.

무조건 무조건,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들 화살기도만 해 대세요.

화살기도가 여러분들의 눈을 뜨이게 해 줍니다.


나무가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걸어 다니고 이런 사람이 걸어다닙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다. 저 사람은 누구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있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하느님을,  깨닫는 방법은 별거 아닙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분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맡기면, 

분이 우리의 눈을 뜨게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