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신부님 강론

1월 24일 (화) 신부님의 강론

은가루리나 2016. 11. 6. 01:36


+찬미 예수님+

 

우연~히, 우연~히, 어떤 일이 생겼다.  또 반대로 아이, 재~수없게 이게 무슨 일이야?

두 표현이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우연히? 어떻게?  어떤 사람이 정말 하느님을 지향하면서 생활해 나가는 가운데 이런 일이 생겼다면,

그게 바로 하느님이 이끄시는 일입니다.

재수없게, 이게뭐야? 그러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표현이 좀 거칠어서 그렇지, 좋지않은 일이 한 번 두 번 일어나면 그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몇년 전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갔었는데

그때는 제가 지리산에 들어가서 첫 해였고

언젠가 말씀드렸듯이, 그 첫 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성모님께 봉헌하는 33일간 봉헌 개인피정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성지 순례를 같이 가지고 제안이 들어 왔습니다.

'아파서 산에 들어갔는데, 몸도 시원찮은데 무슨 성지 순례냐?'

게다가

옛날에 아주 초기에 평화방송에 근무할 때, 성지순례 지도신부로 갔었는데,

공항에서 단속도 심하고 너무 너무 고생을 하여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태어나셨지만,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거절하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

'개인피정 마치고 바로 연락이 왔는데, 우연이 아니다. 이건 하느님의 뜻이다.'

("우연히"의 다른 같은 말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을 지향하고 있으면 우연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우연히 연락이 왔다? 하느님의 뜻에 의해?'

'아, 이건 성지 순례를 가라고 나를 이끌어 주시는 모양이다.'

그래서 다시 연락하여 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성경 복음 말씀이 다 맞아 들어갔습니다.

일행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예를 들어, 그날 복음 말씀이 가나의 포도주의 기적이라면, 그 장소를 그대로 가게 되었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마침내는 어떤 일이 있었나면, 예수님의 무덤 경당을 가는 스케줄이있었는데

거기는 전세계 사람들이 너무 밀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미사를 할 수 없었는데

예약한 어느 나라 팀이 미사를 취소하게 되어

우연히 하느님의 뜻에 의해 그 곳에 도착한 우리가 예수님의 무덤 경당이 비어 있었으므로

예수님의 관이 있었다는 그 곳에 들어가 미사를 드렸습니다.

 

오늘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기념일입니다.

저의 주보 성인은 아씨씨의 프란치스코 성인 (1100년대 후반, 1180년?)이지만

저는 내맡김의 영성을 전할 때 이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1567년) 성인의 말씀을 꼭 얘기합니다.

참고로 우리 수녀님이 속해 있는 카라타스회도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정신을 이어 받은 수녀회입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다."

이 말씀은 아주 유명한 말씀으로, 제가 내맡김의 영성을 전할 때 어디가든지 말하는 것입니다.

최인호 작가와도 내맡김의 영성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있으므로,

지난 주보에도 이 말씀이 인용되었고, 주님을 엿장수라 하며

글이 계속 내맡기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불교에는 두가지 종파가 있는데 쉬울 이자 "이행파"와 어려운 방법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난행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선불교가 자력불교인데, 자기 노력에 의해 닦고 깨닳고 참선을 하여 어렵게 깨달음을 얻는 것이며

이행파는 부처님의 이름에 엄청난 위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오직 염불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타력불교)

우리나라는 이 두가지가 섞여(짬뽕이라 하셨다) 염불도 하고 참선도 합니다.

다른나라와 비교했을 때 특이한 경우입니다.

주님께 내맡기기만 하면 다 되는데 왜 어려운 길로 나갑니까?

 

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기면,

하느님을 이미 얻은 것이므로, 하느님께서 다해 주시므로,

원할 필요도 없고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사람에 맞게 다해 주시므로 굳이 어려운 길로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행복이고, 삶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내맡기어 그것이 "행복"이며 "선"이라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거절하지도 않습니다.

어려운 일 일수록,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감사합니다."하고 받아 들입니다.

그 어려움 속에는 하느님의 "엄청난 선물과 은총"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 들이며

원하지도, 구하지도 않고, 거절하지도 않습니다.

삶 그 자체가 행복이며, 하느님 나라를 살아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인의 축일을 맞이하여,

오늘의 독서에 예수님의 쌀쌀맞은 말씀에서도 "하느님의 뜻"이 또 나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르 3,33-35)

또 문정동 와서도 제 평일미사나 주일미사 강론을 계속 그 쪽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 가장 복되고, 행복하고 즐거운 삶이라는 것을 믿으시고

화살기도를 열심히 바치셔서 하느님의 이끌어 주심을 여러분 모두 체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