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시간들18

{6권 11장}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만나신 순간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하신 흠숭 행위

은가루리나 2016. 11. 7. 00:14



6-11



1903년 12월 17일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만나신 순간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하신 흠숭 행위




1 여느 때와 같이 머물러 있다가 복되신 예수님을 잠깐 뵈었는데,

십자가를 지시고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를 만나고 계신 모습이었다.

나는 그분께 이렇게 여쭈었다.

"주님, 

더없이 고통스러운 이 만남 속에서 당신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분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2 "딸아, 

그분은 오로지 참으로 깊고 단순한 흠숭 행위를 하셨을 따름이다.

그런데 행위가 단순할수록,

지극히 단순한 영이신 하느님께 그만큼 더 쉽게 결합된다.

따라서 

그분은 그 행위를 통하여 내 안에 당신 자신을 부어 넣으시어,

내가 내적으로 하고 있었던 일을 계속하셨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내 마음에 드는 일이었으니,

그분께서 한층 더 위대한 다른 무엇을 하신 것보다

훨씬 더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흠숭의 정신은 사람이 스스로를 버리고 신적 영역 안으로 들어가서 

하느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을 흠숭하며 그분께 결합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3 입으로는 흠숭의 행위를 하면서

정신은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참된 흠숭이 되겠느냐?

혹은 정신으로는 나를 흠숭하면서 의지는 나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인간의) 한 능력, 

(이를테면 지성으로는) 나를 흠숭하면서

다른 능력들은 온통 불온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원한다.

내가 그에게 준 일체가 다 내 안에에 있기 바란다.

이것이 

피조물이 나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예배 행위 - 흠숭 행위인 것이다."




참된 흠숭은 하느님의 뜻과 영혼의 완전한 일치에 있다.

이 흠숭의 완전한 모범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시다.♧


{16-55,2 "딸아, 참되고 완전한 흠숭은 

하느님의 뜻과 영혼이 한마음으로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것에 있다. 

영혼이 자기의 뜻을 자기 창조주의 뜻과 하나되게 할수록 

그의 흠숭이 더욱더 완전하고 완벽한 것이 된다.

 

3 그러니 인간의 뜻이 하느님의 뜻과 하나 되지 않으면 

- 하물며 그것이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 흠숭이라고 일컬어질 수 없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그림자, 또는 흐릿한 그늘이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의 뜻이 지고하신 뜻의 일치와 입맞춤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흠숭은 고사하고 모욕이나 조롱이 될 수 있다.

 

4 흠숭의 첫 행위는 자기 창조주의 뜻을 알아보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실행이 따르지 않으면 말로만 흠숭할 뿐 실제로는 악담과 모욕을 퍼붓는 격이 된다. 

네가 흠숭의 참되고 완전한 모범을 알고 싶다면, 

나와 함께 거룩하신 삼위 가운데로 들어가자."


6 "보아라, 딸아, 

우리 성삼위의 원초적 행위는 우리 뜻의 완전한 일치다. 

우리의 뜻은 합일되어 있어서 각 위(位)의 뜻이 서로 구분될 수 없다. 

세 위격은 서로 구분되지만 - 그러니 우리는 셋이다.- 우리의 뜻은 하나이고, 

이 하나의 뜻이 성삼위 상호간의 완전한 흠숭 행위를 계속한다. 

이 뜻의 일치가 거룩함과 빛과 선성과 아름다움과 능력과 사랑의 동일성을 낳고, 

우리 안에 질서와 평화의 진정한 다스림을 이룩하면서 

우리에게 무한한 기쁨과 행복, 끝없는 지복을 주는 것이다.

 

7 따라서 

하느님 뜻과 인간 뜻의 일치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를 잇는 첫 연결 고리이고, 

이것으로부터 하느님의 제(諸) 덕이 도관을 통과하듯 피조물 안으로 내려오면서 

그 사람 안에 자기 창조주에 대한 참된 흠숭과 완전한 사랑이 생겨나게 한다. 

그리고 그는 동일한 도관으로부터 신적 속성들의 다양한 그늘을 받는다. 

그러므로 영혼이 높이 올라 이 영원한 뜻 안으로 뛰어들 때마다 아름다워지고, 

뛰어든 횟수보다 더 많고 다양한 신적 아름다움을 얻게 된다.


8 이것이, 

내가 내 뜻을 이루는 영혼이 나의 낙이며 만족이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나는 이 낙을 즐기려고 내 뜻의 붓을 손에 들고 있다. 

영혼이 내 뜻 안으로 뛰어들면 붓을 대어, 

나의 아름다움과 사랑과 거룩함과 내 모든 속성들의 그늘을 하나씩 더 그려 넣으면서 

즐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는 그 영혼 안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똑같다. 

성삼위의 흠숭과 똑같은 흠숭, 나의 뜻, 나의 사랑을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