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질 하느님 뜻의 나라
천상의 책
사람들로 하여금 질서와 그 본연의 위치와 창조된 목적에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
3-28
1900년 1월 12일
자기 인식과 겸손의 차이
1 평소와 같은 상태로 있노라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가엾은 모습으로 오셨다.
양손이 꽁꽁 묶여져 있고 얼굴은 침으로 뒤덮여 계셨는데,
몇 사람은 그분을 무지무지하게 때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분께서는 아무런 동작이나 슬퍼하는 기색 없이 고요하고 침착하셨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는 품이
겉으로 뿐만 아니라
속으로도 그러한 모욕을 받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2 그것은 아무리 굳은 마음도 아프게 할 만큼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지저분한 것으로 더럽혀지고 걸쭉한 침으로 뒤덮인 그 얼굴이
얼마나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는지!
나는 무서워 몸이 부들부들 떨렸는데,
그것은 예수님 앞에 있는 나 자신이 단지 교만 덩어리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3 이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신 그분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작은 자들만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루도록 그들 자신을 맡긴다.
인간적인 기준에서 작은 자들이 아니라 신적인 기준에서 작은 자들 말이다.
4 내가 겸손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홀로 나뿐이다.
인간의 겸손이라고 하는 것은
그 보다도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이미 그릇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5 예수님께서는 잠시 침묵을 지키셨고, 나는 그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 사이에 등불을 든 손이 하나 보였는데,
이 불빛이 나의 내면을 가장 깊숙한 곳까지 두루 탐색하고 있었다.
내 안에 나 자신에 대한 인식이 있는지,
그리고 수치와 무안과 모멸을 기꺼이 당할 마음이 있는지 어떤지를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빛은 나의 내면에서 하나의 빈자리를 찾아내었고
나도 그것을 보았는데,
이는 내가 복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수치와 무안으로 채웠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한 공간이었다.
6 오,
그 빛과 내 앞에 계신 거룩하신 분의 모습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7 하느님께서는 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수치와 무안을 당하셨건만
죄인인 내게는 그런 면모가 없다니!
하느님이신 그분께서는
그 역겨운 침을 털어 보려는 동작조차 하지 않으시고,
흔들림 없이 그 많은 모욕을 굳건히 받으신다.
그렇다.
하느님 앞에 계신 그분의 내면이 내게 드러나 보이고,
사람들 앞에 계신 그분의 외면도 보인다.
그리고 그분께서 모든 고통과 모욕을 물리치고자 하신다면
그 모든 것에서 해방되시리라는 것도 알 수 있다.
8 내가 보니 그분을 묶고 있는 것은 사슬이 아니라
그분의 확고한 뜻
-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어떤 희생도 감수하시겠다는 그 뜻이다.
그런데, 나는, 나는?
나의 수모는 어디에 있는가? 나의 확고함은?
예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선행을 행하는 한결같은 항구함은?
오, 예수님과 나는 너무도 다른 희생 제물이다!
오, 우리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9 내 변변찮은 머리로 그런 생각에 몰두해 있었을 때에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0 "오로지 내 인성만이
모멸과 수치로 가득 차 있어서 밖으로 넘쳐흐를 지경이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나의 덕행 앞에서 부들부들 떤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영혼들은
이 나의 인성을 사다리로 쓰며 올라와서 내 덕행의 몇 모금을 마시는 것이다.
11 이 말에 대답해 보아라.
나의 겸손 앞에서 너의 겸손은 어디에 있느냐?
홀로 나만이 참된 겸손을 가지고 있음을 자랑할 수 있다.
나의 신성은 (하고자만 했다면) 나의 인성과 결합하여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말과 행적으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자진해서 나 자신을 인성의 범위 안에 국한시켰다.
더없이 가난한 사람으로 나를 드러내었고 죄인들과 어울리기도 하였다.
12 극히 짧은 순간에 말 한 마디로 구속 사업을 완성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기간에 걸쳐 숱한 고생과 고통을 겪으면서
인간의 비참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내가 그토록 다양한 활동들을 여러 모로 펴려고 했던 것도
인간이 온전히 새로워져서
아주 작은 일들 속에서도 거룩한 사람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내가 수행한 그 일들은 신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광채를 내는 영광을 받았으며
신적인 업적이라는 도장도 받았던 것이다.
13 나의 신성은 내 뜻에서 나오는 단 하나의 행위로도
무수히 많은 세상을 창조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인성 안에 숨은 채 스스로를 낮추어 인생 행로의 과정을 따르면서
보통의 흔한 일들을 하면서 지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의 비참과 나약을 마치 나 자신의 인성처럼 느꼈다.
이것이
인간의 모든 죄들로 뒤덮인 채 하느님의 정의 앞에 있음을 보는 것이야말로
(그것도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으로 온 피를 쏟으며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보는 것이야말로),
심오하고 영웅적인 겸손의 끊임없는 실천이었다.
14 오, 딸아,
여기에 나의 겸손과 사람들의 겸손 사이의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의 겸손 앞에서 그들의 겸손은,
설사 내 모든 성인들의 겸손이라 할지라도, 있으나마나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일개 조물이어서
죄의 무게를 내가 아는 것만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15 (나를 본받아 다른 이들의 고통을 받기 위하여 자기를 바친)
용감한 영혼들의 고통도 다른 이들의 고통과 별개의 것은 아니다.
같은 질료로 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고통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선익을 얻어 주고 하느님께는 영광을 드리게 된다면
그 생각만으로도 큰 영예가 되는 것이다.
16 더군다나
사람은 하느님께서 자리잡게 해 주신 범위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이 한정된 경계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사람이 만약 마음대로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을 능력이 있다면,
다른 일들도 얼마나 많이 할 수 있겠느냐!
각 사람이 별들(의 높이)에까지 이르기도 할 것이다.
17 이와 반대로
나의 신성은 한계가 없지만 자진해서 스스로를 제한했으니,
이는 영웅적인 겸손으로 행해진 나의 모든 행적 안에 숨어 있기 위함이었다.
겸손의 결핍이 지상에 넘쳐흐르는 모든 악의 원인이기에,
내가 이 덕행의 실천으로
하느님의 정의에서 모든 선을 끌어당겨야 했던 것이다.
18 겸손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은총의 재결(裁決)도 내 옥좌에서 나올 수 없고,
겸손의 도장이 찍히지 않은 증서는 그 어떤 것도 내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겸손의 향기가 풍기지 않는 기도는 내 귀에 들리지 않으며,
따라서 가엾게 여기고픈 마음도 들지 않는다.
19 사람이 영예욕과 자만심의 씨를 죽여 없앨 정도가 되지 않으면,
(그것도 멸시와 수치와 무안을 당하는 것을 좋아하게 됨으로써 없애지 않으면),
엮어 짠 가시들이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아픔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마음은 공허를 느낄 터이니,
이것이 언제나 그를 괴롭히며 나의 지극히 거룩한 인성을 닮지 못하게 할 것이다.
20 그러니 수모를 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고작 조금밖에 알지 못하게 되고,
결코
겸손의 아름답고 매력적인 의상을 입고 내 앞에서 빛을 내는 일도 없게 될 것이다."
21 이 덕행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과 겸손의 차이에 대해서
내가 이해한 모든 것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두 가지 덕행의 차이를 이해한 것 같지만 표현할 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어 보겠다.
22 한 가난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자기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더러,
그를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그가 무언가를 조금은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여길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가난을 솔직히 드러내기도 한다고 하자.
말하자면 그는 자기를 알고 있으며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에게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그들로 하여금 그의 비참한 사정을 동정할 마음이 들게 하므로
모두 그를 도와주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이 자기 인식이다.
23 그러나,
이 가난한 사람이 자기의 가난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부자라고 자랑하고자 한다면,
그것도
그가 걸칠 옷도 없으며 굶어 죽을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터에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누구든지 그를 업신여기며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니,
그는 자기를 아는 모든 이의 놀림감이 되고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이 비참한 사람은 갈수록 처지가 더 나빠져서 결국 죽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하느님 앞이나 인간 앞에 있는 교만의 모습이다.
그런즉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이미 진실을 벗어나서 거짓의 길로 황급히 내리닫는 것이다.
24 따라서,
자기 인식 덕분에 지니게 되는 또 다른 형태의 영웅적인 겸손이
위의 예에 따라온다.
안락과 부요함 속에서 태어난 한 부자를 상상해 보자.
그는 자기가 부유하며
물질적인 갖가지 선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겪으신 깊은 수모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거룩한 겸손을 사랑하게 되어, 자기의 재산과 모든 안락을 버린다.
25 값비싼 옷가지들을 벗어버리고 초라한 누더기를 걸친 채
남모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자신의 신분을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고 가난한 이들과 어울려
그들 중의 한 사람인 것처럼 살면서,
멸시를 받고 무안을 당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것이다.
26 그러므로 성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그에게도 일어난다.
성인들은 자기를 낮출수록
주님께서 그들 자신의 공로와 상관없이
은총과 선물로 채워 주신다는 것을 아는 지식이 커짐에 따라
더욱더 자신을 낮추게 되는 것이다.
27 먼저 예를 든 극빈자와 마찬가지로
이 부자의 경우에 있어서도 분명한 것은,
겸손이 없는 자기 인식은 해롭고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지만
이 인식이 겸손을 낳을 때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 된다는 점이다.
28 오, 그렇다.
겸손은 은총을 부르고, 사슬을 끊어 버리며,
영혼과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는 장벽을 처부수어
그를 하느님께로 돌아가게 한다.
겸손은
언제나 푸르고 꽃이 피어 있으며 아무런 해충도 갉아먹지 않는
작은 푸성귀이다.
바람도 우박도 열기도 그것을 해치거나 말라죽게 하는 일이 결코 없다.
29 겸손은 푸성귀 중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높이 가지들을 뻗어 하늘 속까지 뚫고 들어간다.
그리하여 우리 주님의 성심 주위에 뒤얽힌다.
이 작은 푸성귀에서 나온 가지들만이
그 흠숭하올 성심에 자유로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30 겸손은 현세의 삶이라는 풍랑이 거센 바다 속에서 평화의 닻이다.
겸손은 모든 덕행에 맛을 내며 죄의 부패로부터 영혼을 보존하는 소금이다.
겸손은 나그네들이 자주 다니는 길을 따라 돋아난 작은 풀잎이니,
밟혀서 사라졌다가도
금방 전보다 더 아름답게 돋아나는 것이 보이는 풀잎이다.
겸손은 들풀을 고상하게 만드는 자가(自家) 접목이다.
31 겸손은 일몰(日沒)이다.
겸손은 은총의 주화(鑄貨)이다.
겸손은 현세 삶이라는 밤의 어둠 속에서 우리의 발길을 인도하는 달이다.
겸손은 재물 거래의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약삭빠른 장사꾼과 같이,
자신이 받은 은총을 단 한 푼도 허비하지 않는다.
32 겸손은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이니,
이 열쇠를 안전하게 보관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
끝으로 - 왜냐하면 이렇게 "끝으로"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끝내지를 못하고 자꾸 계속할 것 같으니까 -
겸손은 하느님과 온 천국의 미소이고, 온 지옥의 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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