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섭리에내맡김

겸손한 자부심/ 제5장 -01 완전하고 참된 신앙만 있으면, 영혼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은가루리나 2017. 3. 23. 17:39

 

 

《하섭내 제5장 완전하고 참된 신앙만 있으면, 
영혼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01 현명하고 경건하다고 말해지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부당한 비평》

 

 

제 5 장

 

 

완전하고 참된 신앙만 있으면, 영혼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01 

 

현명하고 경건하다고 말해지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부당한 비평

 

 

 

 

   자신을 내맡기는 것보다 더 안전한 도 없고 

더 이상 확실하거나 손쉬우며 즐거운 없으며,  

잘못과 실수가 더 적은 일도 없습니다. 

 

 

내맡김에 힘쓰는 영혼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완수하며  

성사를 자주 받고 신자의 의무인 모든 외적인 행사에 참여하며  

장상에게 순종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힘씁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육신과 악마의 유혹에 대적합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서 

을 따라 걷는 이들보다 더 조심스럽고 충실한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도 자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걸까요?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다른 많은 그리스도인들처럼

아주 엄격한 신자들이 요구하는 것을 이행했을 때,

교회가 필요로 하지 않는 여러 가지 번거로운 일을 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며,

또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나쁘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교회의 계명을 준행하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어느 한 그리스도 신자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그 신자는 묵상이나 관상도 하지 않고 영적 독서도 하지 않으며

어떤 특별한 신심에 대해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세속의 다른 인생사에 전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그를 두고 비난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가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내가 방금 언급한 그런 신자를 우리가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적어도 평범한 신자와 마찬가지로 계명을 잘 지킬 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이 거의 모르고 있는 

내적・외적 신심행위를 준행하고 있는 영혼들을  

귀찮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선입견은 

그러한 영혼들이 잘못된 망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까지 단언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회가 그들에게 명하는 모든 것을 지키고 난 후 

감추어지고 친밀한 하느님의 활동에 

조건 없이 그들 스스로 빠져드는 것을 자유롭게 느끼며,

그들이 해야 하는 다른 어떤 필수적인 의무가 없을 때는

언제나 그분 은총의 재촉하심에  따르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다른 사람이 여흥을 즐긴다든지 아니면 세속사정에 몰두해 있는 시간을

그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시간을 사용하기 때문에 

비난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상당히 부당하지 않습니까?

이 점을 너무 강력하게 주장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평범한 생활을 하면서 일 년에 한 번 고해성사를 보는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들어봅시다.

 

그 누구도 그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며 

그가 좀 더 노력하도록 가끔 제안 받는 것을 제외하고

그는 평화로이 살아갑니다.

그에게 주어지는 압력은 결코 심한 것일 수 없으며 

그러한 제안도 의무의 문제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이 일단 

전통적인 그리스도 신자들의 모임을 벗어나기로 결심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는 자신의 영성생활에 관한 충고로 질려버리고 말 것입니다.

 

만일 그가 규정 규칙을 전력을 다해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곤궁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최악의 상태를 상상하며 그의 생활 태도를 불신하게 됩니다.

 

분명 그들은 이러한 규칙들이 제 아무리 좋고 유익하다 할지라도

하느님과의 일치로 인도하는 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은 이 의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는 영혼이 

도중하차하기를 바라고 있는 걸까요?

 

이는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영혼에게 요청하는 것이 

바로 생각의 희생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혼은 시작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는 정해진 모든 방법을 배웠고 충실히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들에게 종속되도록 그러한 방법을 강제로 동원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그 영혼이 이런 방법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에 감동을 받으시고  

친히 임하시어

영혼이 그 복일치의 길들어서는 데 스스로 떠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영혼은

모든 분위기가 자신을 내맡김으로 해서 하나가 되고 

랑으로 하느님을 소유 수 있는 힘을 주신 영역에 도하며 

또 선하신 주님께서 영혼 스스로가 지금까지 해 오던 노력들을 

맡아 주신 이상, 

그 모든 방법들과 의식들은 영혼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영혼이 이러한 방법들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영혼은 이미 도착한 목적지를 포기하고

전에 걸었던 길로 다시 귀환하기를 요구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만일 이 영혼이 

그러한 요구가 시간과 노력의 낭비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면,

온갖 혼란에도 흐트러지지 않고  

어떤 잡음과 소동에도 끄떡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내적・외적 소란과 잡음을 무시한 채, 

영혼은 평화로이 머물고 

랑의 표시로써 많은 선익을 길어 내는 깊은 평화 속에 

초연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이 휴식 할 수 있는 중심부이며, 

이 길은 하느님이 손수 그려 주신 올곧이고  

영혼이 항상 따라 걸어가야 하는 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꾸준히 그 을 따라 걷는 동안 

거기에는 해야 할 의무가 순간순간 제시될 것입니다.

 

영혼은 의무가 제시되는 대로 서두르거나 당황하지 않고

그 모든 의무를 이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영혼은 모든 것에 대해 완전한 자유를 누릴 것이며, 

깨달음을 얻는 순간 

고무된 은총에 늘 순명할 준비를 갖추며 자신을 섭리에 내맡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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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 영혼의 스승이 되려하신다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 속삭여 주시고 

당신 원의대로 영혼을 인도해주시고자 합니다.

 

그래서 

영혼이 자기 멋대로 행동하여 창조주의 최상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깨닫게 해주십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은에 협력하질 않고 

규칙과 자기 노력으로써 삶을 온 사람들에게 적용된 법칙에 의거하여 

행동한다면, 

그것은 영혼이 미래의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바를 

수없이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점을 모르기 때문에

영혼의 이런 단순함에 대한 자세를 비난합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하한 모든 생활 상태를 인정해 주며  

다양한 영적 진보의 단계를 구분할 줄 아는 영혼들은 

사이비 학자들로부터 멸시를 당합니다.

 

이러한 학자들은 

고결하고도 마음 전체에서 우러나오는 하느님 섭리에로의 내맡김에 대해 

결코 올바른 가치 평가를 내릴 수 없습니다.

 

 

 

   세속적 지혜는 

어느 곳에도 정주할 수 없었던 사도들의 끊임없는 방랑생활에  

호감을 갖지 않으며, 

많은 평범한 종인들도 

자기들이 하는 모든 일을 섭리에 내맡기고 있는 영혼들의 사고방식을 

참아주지 못합니다.

이들 영혼을 인정해 주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피조물을 통해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하느님은

단순하고 충실하게 스스로를 내맡긴 영혼에게 

반드시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이러한 영혼들은 다른 사람들만큼 가르침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명한 지도자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만 외로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그 이유는 하느님의 섭리가 지도자들을 세상에서 불러가셨거나

아니면 아주 머나장소로 파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그들은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그분의 뜻을 평화 속에서 기다립니다.

 

그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들은 때때로 신뢰감을 갖게 해 주는 미지의 인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그들을 돕기 위해 미지의 사람을 쓰는 표지인데, 

그때 영혼들은 그 사람을 찾아 상담도 하고 

또 그 사람이 주는 충고를 아주 유순하게 따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영혼들은

최초의 지도자가 가르쳐 준 가르침들을 따라감으로써

결코 훌륭한 지도적인 가르침이 결여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섭내5장1번 이러한영혼들에대한부당한비난과비평.m4a.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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